ㅡ지난 5월 26일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다른 영국 방송국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을 포함한 첫 외부 자문 패널들과의 미팅에서 자신의 크리에이티브 아카이브(BBC Creative Archive)에 대한 구체적인 개요를 명확하게 밝혔다. 2003년 8월 에든버러 텔레비전 페스티발에서 전(前) BBC 총 디렉터인 그레그 다이크(Greg Dyke)에 의해 처음으로 공표된 BBC 크리에이티브 아카이브 설립 계획은 그 후 일년 만인 올해 8월에 개시될 예정으로, 모든 국민들이 비상업적인 목적으로 BBC의 일부 프로그램들을 다운로드, 저장, 편집, 공유하거나 2차 저작물을 제작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공개될 컨텐츠의 범위는 출범 초기에는 보도 프로그램 클립에서 시작하여 점차 스포츠, 음악, 드라마, 그리고 좀더 긴 시간의 포맷들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이리하여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BBC 방송국의 아카이브가 일반대중들에게 무료로 개방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크리에이티브 아카이브는 앞으로 공개할 컨텐츠에 표시할 라이선스의 모델을 미국에서 활동 중인 크리에이티브 커먼스(Creative Commons)의 라이선스에서 구하고 있다. 2001년에 설립된 정보공유운동단체인 크리에이티브 커먼스는 저작권 관리 논의에 있어 양극을 이루는 공공 정보 영역(Public Domain) 순수 옹호 논리나 (배타적) 판권 소유(All Rights Reserved) 보호 논리보다는 양자의 중도적 입장을 제안한다.
이들이 고안한 라이선스는 저작권자(창조자)들에게, 그들의 오디오 비주얼 컨텐츠를 이용자가 열람, 복제, 공유할 순 있지만 상업적 이용권과 같은 일부 권리들은 저작권자에게 제한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창작물을 출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그들은 이를 두고 부분적 판권 소유-Some Rights Reserved라고 표현한다). 미국에서의 경험은 이 라이선스 모델이 저작권자들에게 그들의 창작물에 대한 시장을 더 증가시키는 것으로 드러났다.
BBC의 이번 결정은 그동안 시민단체의 운동 영역에 머물러있던 크리에이티브 커먼스의 활동에 결정적인 공신력과 사회적 인정을 제공할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크리에이티브 아카이브가 자신의 공공성 실현 가능성을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이 아카이브의 공동 디렉터인 폴라 르 디우(Paula Le Dieu)는 한 인터뷰에서 밝히길, 그동안 항상 BBC가 구축해놓은 훌륭한 아카이브를 대중에게 공개하려 해왔으나 기술적인 한계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제 디지털 기술의 도래와 함께 효과적인 배급 메커니즘이 마련되자 진정으로 아카이브를 개방하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디지털 컨텐츠의 사용 및 이용에 대한 기업의 규제가 점점 더 강화되고 있는 시대에 BBC는 자신들의 행로가 다른 이들에게 공유로서의 저작권 개념을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와 대안적인 저작권 모델을 제시했으면 하는 포부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아카이브 계획은 첫 창안자가 했던 말처럼 '어떻게 공적 자금이 새로운 디지털 기술과 결합하여 모든 이의 삶을 변화시키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러한 정보공유운동과 관련하여 한국에서는 정보공유연대 IPLeft가 지난 5월 19일 정보공유라이선스의 사회적 확산을 위한 공개토론회를 진행했고, 지난 6월 29일에 열린 문화연대 6월 월례포럼에서는 문화민주주의와 저작권제도라는 제목 아래 한국의 현행 저작권제도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정보공유운동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현 저작권 체제가 정보의 이용 및 확산이라는 측면에 대한 고려보다는 지나치게 저작권자의 사적 권리 보호에 치중하고 있고 이에 따라 저작권자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경우에서의 정보 이용 활동마저도 제한하고 있다는 데 공감했다.
(현재의 저작권 체제는 [상업적 혹은 비상업적 이용목적에 관계없이] 모든 저작물에 대해 저작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저작자의 허락을 맡을 것을 전제하고 있고 저작권 보호 기간을 지나치게 긴 시간인 창작자 사후 50년으로 규정하고 있어 공공의 영역으로 환원되어 이용될 수 있는 수많은 저작물의 이용이 제한되고 있다. 이러한 규정은 또한 디지털이 활성화되어 있는 현 미디어 환경과 맞물려 이용자의 권리를 더욱 제한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즉, 열람과 복제가 하나를 의미하는 디지털 환경에 저작권을 적용할 경우 저작물에 대한 접근과 이용까지 통제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서점에서 책을 복제하지 않더라도 접근해서 볼 수 있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어떻게 이용자의 권리가 축소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문제의 심각성은 최근의 저작권법 개정의 핵심이 현실적으로 디지털 저작물의 유통에 참여하는 자본의 투자에 대한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고 정보의 상업화와 독점화 경향을 강화한다는 데 있다. 과거 저작권은 주로 대량의 상업적 복제를 규제하는 것으로 충분했던 반면,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인터넷의 대중화에 따른 디지털 저작물 유통의 급속한 증가는 저작권에 대한 규제를 오히려 더 강화해야하는 환경(구실)으로 언급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IPLeft에서는 해외의 다양한 사례들을 참고해서, 한국의 법체계와 사회적 여건 속에 적합한 정보공유모델로 정보공유라이선스(안)를 개발하였다. 이 정보공유라이선스 작업은 창작자들이 공개 라이선스를 자신의 창작물에 표시하는 형태를 통하여 자신이 창작한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은 본인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정한 조건하에 저작물에 대한 이용을 허락하도록 했다.
총 4가지 유형의 라이선스(안)가 개발되었는데, 이들 라이선스는 원저작물에 대하여 2차적 저작물의 작성을 허용할 것인가의 여부와 영리적 이용을 허락할 것인가의 여부에 따라 구분된다. 이렇게 하여 창작자는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선택하는데 있어 좀더 다양한 선택권을 지닐 수 있을 것이고 이에 따라 참여 인원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IPLeft는 정보공유 라이선스와 함께, 창작자 자신이 그 기증 시기를 정하는 '저작권 기증 운동'도 병행할 예정이다. 21세기를 이끌 최첨단 정보 통신 기술과 지식 산업이 어떤 미래를 우리에게 선사하게 될 지는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몫이다.
김지현 (ACT!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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