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저항 10년, 잃은 것과 얻은 것 (3) - 교육

참교육 선언에서 7차교육과정·사립고·NEIS 반대, 교육공공성 쟁취로

신자유주의 교육 10년, 희망은 무엇인가?

1995년, 김영삼 정부의 소위 문민정부 시절, 교육계에 일대 개혁바람이 불었으니, 그 이름이 5·31 교육개혁이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수요자 중심의 교육'을 만들겠노라며, 과거 관료 중심의 권위주의적 교육정책을 개혁하여 학생, 학부모에게 서비스하는 교육을 하겠노라는 것이었다.

영국의 대처리즘과 미국의 레이거노믹스를 전공한 박세일이 김영삼을 부추겨 '세계화'의 붐을 일으키던 때였다. 박정희-전두환, 노태우에 이은 군사정권을 마감하고, 문민정부가 들어서 이제 민주주의가 정착되나 하는 헛된 기대를 한껏 부풀려 놓았다.

김영삼을 지나 김대중 정권이 되어서, 수요자 중심의 교육이 다름 아닌 신자유주의의 칼을 교육계에 들이미는 것이었음(즉, 교육시장화)이 확인되었고, 노무현 정부에 들어서서는 교육개방까지 첨가하여 제도정비를 완성하는 형편에 이르렀다. 지식기반사회론과 신지식인, 한가지만 잘하면 대학간다는 구호가 교육계를 뒤덮었다. 이제는 신자유주의 교육이라는 용어가 낯설지 않은 말이 되어버렸고, "교육부의 정책은 신자유주의가 아니다"고 강변하던 사람들이 "신자유주의가 뭐가 나쁘냐?"고 대들만큼 세상은 확확 변하고 있다.

분권화, 시장화, 개방화 - 신자유주의 교육정책

처음에는 제법 기대도 하였다. 교장을 비롯하여 교육청, 교육부의 무신경 그 자체, 행정편의주의 그 자체, 교육의 당사자인 학생과 교사는 뒷전이고 무사안일 속에서 복지부동으로 일관하던 교육계에 '새바람이 불어오나'하고 많은 기대를 모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본 즉, 이런 기만이 또 있을까 싶었다. 중앙의 권력을 분산시켜 권한을 이양한다는 미명 하에(소위 분권화), 국가가 담당해야 할 기본적인 의무를 지방 교육청과 학교에 떠넘기기 시작하였다. 이를테면, '교사는 지방직화 해라'라는 건데, 지방재정자립도가 20∼30%인 시·도가 수두룩한데, 교사를 지방직화 하면 가난한 지방은 교사를 덜 쓰든지, 싼 임금을 주라는 말 아닌가? 가난한 지방은 교육의 질이 떨어져도 '너네 책임'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어서 나오는 '농어촌 학교는 통폐합해라'는 정책으로 이미 1997∼1999년 사이에 경북의 농어촌 초등학교는 30%가 문을 닫았다. 1년 등록금이 2천만 원을 넘는 귀족학교인 자립형 사립학교의 건립여부는 교육부가 아닌 시·도 교육청이 결정하게 된다. 여기에 덧붙여 '각 학교는 회계를 독립하여 스스로 살아남아라'라 한다. 부자동네에서 부자학교를 만드는 건 부자들의 자유이고, 가난한 동네에서 학교 망하는 건 게으른 너네 탓이 되며, 국가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장화의 물결은 단연 대세를 이루고 있다. 교육은 서비스 상품이어서, 학교는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되어간다. 학벌중심의 사회구조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는데, 학생들은 다양한 대학을 선택하고, 다양한 과목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은 다양화되지 않았고, 교사는 충원되지 않았다. 다양한 능력 있는 대학을 만들기 위한 BK21 사업은 서울대, 연·고대, 포항공대 등이 독차지하였고, 숱하게 세워진 지방대학들은 학생이 없어 이제 문 닫아야 할 형편이 되었다.

과학고와 외국어고등학교에서는 기초과학과 기초인문학의 소양이 길러지는 게 아니라, 서울대 가기 위한 점수따기 일류고의 의미만이 있을 뿐이다. 외국어고등학교에서 전공한 자기 어학을 살려 대학을 진학한 비율은 20%를 넘지 못한다. 다들 법대와 의대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교육이 상품이 되다보니 이 상품을 서비스하는 교사들의 노동도 유연화 되지 않을 수 없다. 2000년 이후 기간제 교사(교육분야의 비정규직)는 사립고교에서 30∼40%를 훌쩍 넘고 있고, 공립중고교에서도 20%를 전후하고 있다. 이해찬 교육부장관 시절의 정년단축은 초등학교 교사부족을 낳아 정년퇴직한 교원을 다시 기간제 교사로 고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교사평가제를 실시하여 무능한 교사를 퇴출시키자는데, 평가의 기준은 수요자가 정하란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교육 수요자(?)의 대부분은 아직 '내 자식 일류대'의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발언권이 있는 교육수요자는 다름 아닌 강남을 중심으로 부유층 학부모인 것이다. 재벌들이 군사독재정권의 경직성을 문제삼듯이 부유층 학부모는 관료적이고 평준화된 학교에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부유층 학부모에게 일류대를 가는 다양한, 그러나 비싼 상품을 개발하여 제시하는 것이다. 그것이 과고와 외고의 뒤를 이어 자립형 사립고, 자율학교, 헌장학교 등으로 나오고 있다. 교육의 주도권이 관료에게서 시장으로 넘어가자, 시장의 주도권은 역시 가진 자들이 독차지하고 있다.

시장화를 완성하는 외부로부터의 충격이자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교육개방이다. 김대중 정부 후반과 노무현 정부에서 본격 추진되고 있는 교육개방정책은 대학과 학원은 물론 초·중·고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특징은 외국인 투자 확대라는 미명 하에 국제 자유도시, 교육특구 등 지역 경제개발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더 어처구니없는 점은 국내에 투자하는 외국인의 '편의'를 위한 '외국학교'인데, 사실은 내국인 입학이 무제한 허용되고 학교 이익금의 본국 송금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이는 외국인의 투자유치를 위한 외국인 자녀에 대한 서비스를 넘어서서, 한국인 교육에 외국교육기업의 투자를 촉진하겠다는 발상이 제도화된 것이다. 한국처럼 교육열이 높은 나라에 교육시장만큼 황금알을 낳는 시장이 세계에 또 어디 있을까? 미국의 한 투자가는 "한국의 서비스 시장 중 교육분야가 가장 투자가치가 높다"고 밝히고 있는 실정이다.

희망은 어디에서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가?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 대세를 장악한 10년 동안, 우리의 희망은 어디에서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가?

먼저 조직적으로 보면 1998년 합법화된 전교조가 활동력을 넓히면서 조합원 10만의 노조로 성장하고, 문민정부 이래의 교육정책의 본질을 신자유주의로 규정하면서 성과급 철폐, 7차교육과정 철폐, 자립형 사립고 반대 등에 앞장서 왔다. 특히 작년 2003년에는 일명 네이스(NEIS)라 하는 학생, 교사 통제시스템의 구축을 완전히 봉쇄하는 데 성공하여, 노조로서의 힘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학생-교사의 정보인권보호는 물론, 소위 정보화시대의 인권문제를 전면 문제제기하고 우리 사회의 인권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

대학에서는 대학교수노조가 2001년 발족되어 교육의 공공성 확보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고, 특히 비정규직 강사문제와 사립학교법의 민주적 개정, 교육시장화 반대에 앞장서고 있다. 청소년들 역시 전통적인 '학생'이라는 틀을 벗어나 [희망] 등 여러 청소년 단체를 만들어 두발 자율화를 따내고, 미선이, 효순이 추모의 열기에 주체로 참여하며, 네이스 반대 등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에는 미션스쿨의 어느 고등학생이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며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자기 자식의 일류대 진학이라는 눈앞의 족쇄와 교육계의 혁신을 바라는 이중적 양상을 그대로 표출하여, 제도상의 변화는 지지하면서도 내 자식의 수업결손은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변화의 방향도 평준화, 전인교육의 확대 흐름과 공정한 경쟁심화(?)의 흐름으로 양분되는 혼란함을 사안에 따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소위 386세대가 점차 초중고의 주 학부모 층이 되면서 교육문제에 발언권을 높여가고 있는 추세이다.

교육시민운동단체들은 [사립학교법 개정 국민운동본부]와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 등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 하의 연대단체는 물론, [WTO 저지와 교육공공성확보를 위한 범국민교육연대]라는 새로운 연대단체가 발족하여 신자유주의 반대와 교육공공성 확보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우리에게 대안과 미래는 있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대안과 미래는 있는가? 대안은 새로운 질서와 그 질서를 담보할 주체에 달려있고, 미래는 주체들의 조직적 실천에 달려있다 할 것이다.

'개혁'이라는 미명에도 불구하고, 이사장과 교장의 권한은 하나도 줄어들지 않고(사립학교법의 민주적 개정과 교장선출보직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장판만 활개치는(다양한 일류고 선택권보장, 교사노동 유연화 등) 지난 10년의 경험 속에서, 우리는 교육이 공공의 영역이라는, 즉 가난한 자나 부자나 차별없이 국가로부터 양질의 교육 기회를 제공받는 것이 우리의 대안임을 확인해 왔다.

그래서 2004년부터는 위 [범국민교육연대]를 중심으로 교육 공공성 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연구결과로 '공교육 개편운동'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공교육 개편운동의 골자는 현 대학입시의 관문인 수능을 자격고사화 하고, 대입을 고교내신 위주로 운영함으로써, 학교교육을 정상화하고 경쟁을 완화하며 전인교육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서울대 철폐'로 상징되는 대학평준화를 제기하고 있다.

일류대 학벌이 살아있는 한 그 어떤 교육개혁도 공염불임을 교육부 관계자는 물론 모든 국민이 뼈 속 깊이 알고 있는 마당에, '임금님은 벌거벗었다'고 솔직히 인정하고, 대학을 평준화하여 학벌을 철폐하는 것이 우리의 대안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이러한 대안이 일장춘몽이 아니라 현실가능한 정책대안으로 연구되어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등에서 적극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면 대안을 현실화시킬 '미래'가 우리에게 보장되어 있는가? 그것은 우리의 실천에 달려있다. 군사독재 체제 하에서 기형적으로 성장해온 남한 사회는 1980년대 중반부터 국가경쟁력 제고라는 세계적 경쟁체제에 직면하여 1990년대부터 그나마 공공영역조차 사정없이 없애버리고 오로지 경쟁력 강화에만 매달려 왔다. 그 단적인 모습이 지금 50%를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90년을 전후한 시기에 자동차, 조선, 기계 등 대기업 금속노조 중심의 치열한 투쟁이 2000년을 전후하여 발전, 철도, 지하철, 의료, 전교조, 공무원 등의 공공부문 노동자의 가열찬 투쟁으로 넘어오는 현상은 다름 아닌 남한사회 변화의 초점에 공공부문 노동자가 서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다.

한 분야의 공공성만이 한 노조의 투쟁으로 지켜지는 게 아닌 점은 새삼스러운 진리이거니와, 모든 공공분야가 국가개혁의 이름 하에 구조조정 되는 시점에 모든 공공부문이 총 단결하여 민중과 민족의 나아갈 바를 밝히는 것은 당연한 대응 전략이라 할 것이다. 모든 공공부문의 총단결투쟁! 이것이 우리의 미래를 보장할 것이다.

잃은 것은 '여성노동권'이요! 얻은 것은 '법'이다?
'때리지 마세요'에서 '고용허가제 분쇄' 투쟁으로
덧붙이는 말

글을 써주신 분은 조남규 전교조 본부 정책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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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 전교조 ,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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