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건 누구?... 나다!"

교육공동체 '나다' 출범식 현장 스케치


불볕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는 해도 요 며칠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었는데, 급기야 아침부터 천둥 번개를 동반한 기습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행사 몇 일 전부터 간간이 들려오는 비 소식에 잔뜩 긴장한 사람들은 전날 새벽까지 '우천시' 대책회의를 하면서까지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25일 오전부터 흐려진 하늘에 창 밖으로 후두둑 쏟아지는 빗방울을 원망스런 표정으로 바라 볼 뿐이다. 어쨌든 행사 진행으로 분주한 손놀림에 계속해서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

"여보세요? 네. 풍물패 섭외는 취소해야 할 것 같아요!"
"구라, 나 원잰데 어떻게 된 거야? 길놀이 진행할 수 있어?"

결국 오후 2시부터 시작되는 사전 길놀이 행사는 아예 포기하고 본 행사가 진행되는 장소로 이동하려는 순간, "어? 비 그쳤는데, 봐봐. 해 나고 있잖아!"

누군가 외치는 밝은 목소리에 모두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들이다. 오전 내내 애간장 진간장 다 녹이던 날씨는 거짓말처럼 활짝 개었고 조금 늦춰진 시간에 하나 둘 속속 '나다'로 모이는 아이들의 표정은 마냥 밝기만 하다. 드디어 힘찬 풍물패의 선두로 길놀이가 시작된다.

"세상을 바꾸는 건 누구?"
"나다!"

강남밸트 '분당'에 교육공동체 '나다' 출범하다.


7월, 아이들에겐 무더위만큼이나 잔인한 달이다. 남들은 본격적인 휴가철이라고 호들갑을 떨지만 정작 휴식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진짜 '방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전 같아서야 개학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밀린 숙제로 밤새던 기억이 나름대로 추억이라면 추억이겠지만 요즘 같아선 어림도 없는 일.

0교시 부활과 강제 자율·보충수업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학원과 과외 등 사교육 보따리를 짊어지고 입시라는 비좁은 관문을 돌파해야할 아이들에게 학업[學]을 '잠시 내버려두는[放] 것'이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지도 모르겠다. 하긴 새로 부임한 민선 교육감이 초등학교 일제고사와 성적표 공시를 부르짖고 있는 판이니 더 말해서 무엇하랴!

경기도 분당은 신도시만큼이나 '신'중산층이 대거 밀집한 공간이다. 따라서 자녀들에 대한 교육열은 가히 강남공화국에 견줄 만하다. 교육을 통한 신분 유지 욕망을 알게 모르게 몸으로 받아들인 아이들은 부모와 선생의 극성스런 교육 열기에 대한 부담과 동시에 자신의 장래를 보장할 기득권의 달콤한 꿈속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분당에서 몇몇 아이들과 학부모, 그리고 '비주류' 활동가들이 '교육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겠다'고 외쳐댄다.

4년 전 처음 '청소년을 위한 철학교실'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그들은 2004년 7월 새롭게 교육공동체 '나다'를 띄우며 교육 혁명의 작은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한다.

한국판 BATTLE ROYAL,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오늘 나는 처음으로 내 친구를 죽였다!"
"거짓말, 넌 매일 죽이고 있잖아!"


대한민국에서 '수능'이라는 제도는 단지 아이들에게 지긋지긋한 공부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귀찮은 존재만이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아이들 사이를 서열과 순위로 갈라 서로를 짓밟게 만드는 주범 그 자체인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에서 '학교'라는 공간은 무엇일까? '진실한 배움'과 '배움의 관계'를 철저히 무시한 채 획일화된 방식으로 오직 아이들을 통제하고 길들이기 위한 19세기의 낡은 공장을 닮은 것이 바로 학교이다. 순응과 경쟁, 체념과 포기라는 문신이 새겨진 아이들은 오늘도 '더 가치(!) 있는 어른'이 되기 위해 컨베이어밸트 위를 분주히 움직여야만 한다. 만약 기계를 멈추고 싶다면, 이제 우린 무엇을 해야 할까?

'나다'에서 출발한 50여 명의 아이들은 용머리 장식의 선전물과 각종 구호를 적은 만장을 들고 분당 시내를 행진하면서 그동안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들을 거리에서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야탑 역에 잠시 모여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체념과 포기, 순응과 경쟁을 벗어 던지는 퍼포먼스 공연("battle 수능")을 진행해 많은 갈채를 받기도 했다.

이어 출범식이 진행되는 행사장으로 이동하는 아이들의 눈빛엔 푹푹 찌는 폭염에도 불구하고 지친 기색 따윈 찾아 볼 수 없었다. 드디어 행사장에 도착. 본 행사가 진행되기 전까지 공연장 옆 로비에 설치된 각종 부스(페이스 페인팅, 소원적기, 광고·영화관람 등)를 둘러본 뒤 똥떡(도덕교과)의 만행을 폭로하는 야심 만만 '도전 골든 똥!'을 진행했다.

교육을 바꾸자, 세상을 바꾸자!

행사장에 들어선 200여 명의 사람들이 좌석을 하나 둘씩 메우고 정리가 될 때쯤 잠시 짧은 영상이 흐른다. '학교에서 배운 것...' 숨막힐 듯 반듯하게 구획된 책상과 의자, 피곤을 이기지 못해 쓰러진 아이들. 도대체 그 공간 속에서 12년 동안 지내며 아이들이 배운 건 뭘까? 그래서 다시 묻는다. '우리가 지금 학교를 다니는 이유... 왜 공부해?'

사춘기라는 왜곡된 방식의 통과의례를 거친 아이들은 어른들의 목소리로 답한다. 취직, 사회적 지위, 가족의 기대, 돈과 명예... 그 누구도 꿈을 이야기하진 않는다. 꿈... 하지만 누가 그들을 단지 영악하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자신에게 채워진 족쇄를 당연시하는 아이들이 꿈꾸는 거라곤 그 상태에서의 편안함뿐이다. 그리고 그것에 의문을 품는 순간, 그제서야 아이들은 외치기 시작한다. "좀더... 자유롭고 싶어."

부족한 시간을 쪼개 틈틈이 준비한 아이들의 공연(촌극 '오리 날다', 힙합 '우리들의 세상')이 끝나고 '디딤돌학교'의 연대사, '나다' 정관 토론과 발표, 운영위원(청소년, 학부모, 사무처) 소개와 인준을 위한 창립총회가 진행됐다.

아직 '공동체'라는 이름의 위상과 내용에 걸맞는 옷을 입기에 한없이 부족하지만 교육의 변화를 꿈꾸는 주체들의 힘있는 발언과 결의 속에서 작은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자리였다.

본 행사가 끝난 후, 야외마당을 메운 사람들의 어울림 난장으로 교육공동체 '나다' 출범식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나다'가 해야 할 일들은 앞으로 무진장 쌓여 있다. 교육을 바꾸고, 또 세상을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거듭나는 '나다'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교육공동체 '나다' 사무처 신재성 씨 인터뷰
교육공동체 '나다'에서 어떤 일을 하는가.
'나다'는 2000년 '청소년을 위한 철학교실'로 출발해 왔다. 현재 교육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획일화된 입시위주의 교육은 아이들의 창의력은 고사하고 그들의 삶을 파편화·무력화시키는데 일조할 뿐이다. 이를 바꾸기 위해 다양한 교육운동들이 진행되어 왔고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나다' 역시 함께 연대하고 싸워나갈 것이다. 현재 '나다'에서 진행하는 기본 활동은 '대안적인 토론 수업 모델'을 청소년들과 함께 만드는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이를 축적해 공교육 현장으로까지 확대시켜 나갈 계획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기 위한 토대의 변화, 즉 도덕교과로 대표되는 교과서 국검정제에 대한 문제제기 등 교육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해 활동할 계획이다.


'나다'는 어떤 사람들이 준비해왔나.
현재 '나다'는 10명의 젊은 활동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자가 소속되었던 공간과 환경은 다르지만 교육이라는 화두를 부여잡고 사회 변혁을 위해 싸우고자 하는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그 열정과 깡으로 4년을 버텨왔지만 앞으로는 보다 조직적으로, 그리고 전면적으로 연대활동을 해 나가려 하고 있다.


토론식 수업모델 개발과 공교육 정상화, 도덕교과 폐지와 교과서 자유 발행제를 목표로 교육공동체 '나다'가 출범하게 되었는데, 준비 과정 전반은 어떠했나.
앞서 얘기했듯이 '나다'는 지금까지 대안적인 수업모델 개발을 위해 독자적인 교재 작업과 현장에서의 적용을 통해 '수업모델화'를 추진해 왔다. 하지만 학교교육의 왜곡과 사교육의 전횡 속에서 이를 단순히 적용하고 확대한다는 건 매우 어렵다는 생각을 해 왔다. 때문에 운동단체로의 전환을 고민하게 됐으며 이에 동의하는 학부모와 현직 교사들, 그리고 다른 교육운동단체와의 지속적인 미팅을 통해 7월 본격적인 단체 출범을 하게 된 것이다.


'나다'의 구성과 운영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이번 출범식 및 임시총회를 통해 합의한 내용은 그동안의 수공업적인 운영 방식에서 탈피해 회원 중심의 체계적 운영 활동을 해 나가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모든 운영 전반의 내용은 공개를 원칙으로 하며 전체 총회와 운영위원회(청소년, 학부모, 교사)의 의결 및 사무처의 집행을 기본 체계로 진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형식보다 중요한 건 '나다'의 공동체성과 정체성을 보다 구체화해 나가는 것이다.


토론식수업모델은 7차교육과정 등 공교육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가.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초기 연설에서 '토론 공화국'을 만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어떠한가? 토론은 혼란과 등치되고 있으며 법과 원칙이라는 허울좋은 수사에 밀려 강압과 폭력이 난무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학교에서의 수업 역시 이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입시라는 제도 자체가 이미 교육을 왜곡시키고 있으며 모든 권력은 학교장의 재량으로 맡겨진 상태에서 토론이 발붙일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수업모델에 대한 고민을 넘어 교육환경의 변화를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국검정 교과제 폐지와 자유발행제 실시를 주장하고 있는데 그 취지와 계획은 무엇인가.
과거 전체주의 문화의 습속에 젖어 우스개로 중국집 음식을 시킬 때마다 '자장면 통일!'을 외치던 때가 있었다. 교과서 역시 크게 다를 바 없는데 아직까지 그 습속이 바뀌지 않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교과서는 교과서를 편찬·발행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자유발행제, 검정제, 국정제'로 나뉜다. 그런데 국·검정제란 게 뭔가? 마치 다수의 지지를 받는 지식들을 중립적 위치에 있는 국가가 개입하고 관리한다는 발상인데 이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양심과 가치관은 그 자신의 것이며 교육의 주체들(학생, 교사, 학부모 등)이 함께 만드는 교과서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도덕교과 폐지는 그 출발점일 뿐이다.


특히 도덕교과서를 강조하고 있는데 '똥떡괴담'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개인의 양심은 마치 붕어빵인양 집단으로 찍어낼 수 없는 것이다. 현행 국·검정교과의 최선두에 있는 도덕교과가 바로 그 역할을 도맡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아이들은 교과서에 낙서하거나 도덕교육에 대해 비아냥거릴 순 있어도 10여 년 간 반복되고 체득된 교육의 효과를 쉽게 무시할 순 없다. 때문에 도덕교육 폐지 주장은 너무나도 상식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똥떡괴담'은 '나다' 출범 이후 첫 인문학 강좌이며 관심 있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올해 계획과 앞으로의 전망을 말해달라.
토론수업의 모델 개발은 아이들과의 지속적인 관계 속에서 장기적으로 준비해 나갈 계획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청소년들이 쉽게 읽고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인문교양서의 출판 역시 준비하고 있다. 더불어 도덕교과 폐지를 본격화하기 위해 오프라인 활동과 온라인 활동(www.ddongdduk.net)을 곧 진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사업의 성과 보다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청소년들의 발언권과 집단적 행동들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다.
덧붙이는 말

신재성 씨는 교육공동체 '나다' 사무처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

교육 , 나다 , 교육공동체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이정석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덧붙임

    하나는 자유발행제는 국검정교과제만큼이나 위험합니다. 국가수준 교육과정에 노동자민중이 개입할 수 있는 '사회적교육과정'에 대한 논의가 '사회적교육과정위원회'추진 등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또하나는 이제 교육운동의 주체는 '교사,학생,학부모'가 아니라 '교사,학생, 노동자민중'입니다. 오래전부터 상식화된 정의라 고쳐쓰지 않는 사람들이 많지만, 학부모가 아니라 '노동자민중'입니다. 이처럼 재정의된 교육삼주체는 현재 교육운동이 전진하고있는 전선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나다'가 현재 교육운동 '전선'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고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가 고려된 기사와 편집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 조금 덧붙여보았습니다.
    (나다를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 나다

    교육의 공공성 강화와 민중교육권 쟁취!
    하지만 이 구호에도 부르주아 논리가 교묘히 숨어있습니다. 공공성이란 결국 부르주아가 내세우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Publicity란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내세운 권력 나눠먹기라는 허구의 개념입니다. 그래서 기존의 계급사회에서는 결코 진정한 민중의 공공성이 실현되기 어렵습니다. 현 교육운동 판이 부르주아 시민사회의 공공성을 강화하려는 입장이 대세인 상황이고, 그리고 노동자민중이라는 말을 교육 현실에 적용하는데 심각한 알러지 증세를 보이는 지금, 이제 갓 출발하는 나다는 전술적으로 '학부모'라는 탈계급적 개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국검정제도 폐지를 통해 기만적인 교육의 가치중립성을 깨뜨릴 수 있는 토대를 만들 수 있다면(즉, 토론이라는 형식을 통해 부르주아적 공공성이라는 개념이나마 공교육에 자리잡을 수 있게 된다면), 그 때야 왜 이런 말을 쓰겠습니까?
    이 정도의 최소한의 공교육 정상화라도 이루어지면, 그때부터야 국가라는 부르주아 계급의 지배체제가 교육을 독점하는 짓을 끝장내야 하겠죠.
    너무 두서없이 글을 적은 것 같습니다. 노동자민중의 해방을 위해 교육이라는 부르주아의 무기를 뺏기 위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