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힘겨운 상대는 정읍시민들의 오해와 무관심"

[인터뷰]17일로 천막농성 100일째 맞은 해고 환경미화원 김익선씨

천막농성장 앞에서 결의를 다지고 있는 해고자원직복직투쟁위원회

더위에 지쳐갈 수도 있다.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 용기가 꺽일 수도 있다. 100일이란 시간 속에서 스스로 진이 빠질 수도 있다. 10년만의 폭염이라는 올 여름 지난 5월 10일 시작해 8월 17일까지 정읍시청앞에서 100일째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정읍시 환경미화원들이 지금도 그 땡볕 아래 서있다. 비록 지금은 정리해고된 26명중 재취업을 거부한 9명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힘의 원천은 "승리에 대한 믿음"

천막농성 100일 째 되는 날, 남은 9명으로 조직된 해고자원직복직투쟁위원회를 만나기 위해 천막농성장을 찾았을 때, 그들은 전주노동사무소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막 도착한 상황이었다. 기자의 예상과는 달리 해복투 9명은 비교적 밝은 모습이었다.

"힘들지 않으십니까?" 기자는 해복투의 김익선 위원장(42)과 마주 앉아 인터뷰 아닌 인터뷰를 시작했다.

"통일선봉대 행사 때 서울에 가서 전국적인 유명세를 실감했습니다. 다른 지역과의 연대투쟁을 통해 해복투 투쟁에 활력을 얻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길 거라는 믿음이 힘의 원천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힘든 일은 무엇이었을까? 김익선 위원장과 해복투 사람들에게 투쟁의 일차적 상대는 시청과 시장이지만 가장 힘겨운 일은 시민들의 오해와 무관심이었다. 김 위원장은 시에서 터무니없는 홍보전을 편 결과 시민들과의 접촉을 시도해도 시민들이 믿어주지 않는다고 아쉬운 마음을 토로했다.

"가장 힘겨운 상대는 정읍시민들의 오해와 무관심"

무엇보다 시민들이 가장 오해하는 부분은 민간위탁이 예산절감을 가져온다는 논리라고 지적한다. 김 위원장에 따르면 환경미화원의 급여는 행정자치부에서 교부금 형식으로 통산 1년치 예산이 내려온다고 한다. 흔히 알고 있듯이 정읍시의 예산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행자부에서 환경미화원의 급여는 전국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임금인상을 요구한 적도 없다고 전한다. 따라서 시가 내세우는 예산절감은 명분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산절감이란 명분이 사라진 지금 시는 '업무효율화'란 애매한 명분을 전면에 세우고 있습니다"

수성동 동사무소 등지에서 여전히 살포되고 있는 전단지 때문에 시민들은 미화원의 급여가 많다고 생각한다. 김 위원장은 자신의 급여명세서를 들어 설명한다. 김 위원장은 7년차로 연봉 2570만원을 받는데 전단지에는 2900만원으로 적혀있다. 노조설립이전에는 심야수당을 받지 못하다가 노조설립 후 3년치 심야수당을 한꺼번에 받았다. 그렇게 수령된 심야수당을 포함시키면 2930만원이 된다고 했다. 이 때문에 시민들은 3000만원에 육박하는 임금을 보고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다.

한편 전북일반노조와 연대투쟁을 벌이고 있는 점 또한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애향심이 '투철한(?)' 일부 시민들 사이에 '정읍문제'에 '전주사람'이 나선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성엽 시장도 지적한 문제라고 한다.

김 위원장은 환경미화원들의 자체역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외부에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는 점을 토로했다. 정읍에서는 실질적인 힘을 실어 줄 단체가 없어서 찾던 중 전북일반노조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전북일반노조의 본부가 전주에 있다보니 전주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시민들의 오해가 불식되어 동조적인 여론이 형성되어야 하는 시점에서 시민들을 설득하는 작업은 해복투의 지속적인 과제로 남아있다.

9명으로 할 수 있는 투쟁방식들

해복투 9명은 장기화된 투쟁 속에서도 사기를 잃지 않고 자신들의 투쟁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가장 비중을 두고 있는 투쟁은 전주노동사무소 앞에서 벌이는 부당노동행위의 검찰송치를 요구하는 1인 시위이다. 정읍시청의 일방적 정리해고는 단체협약을 위반한 것으로 결정이 났는데도 기소권이 없으므로 검찰의 재수사를 거쳐 기소여부가 결정나야 한다. 법적 송치 시한은 9월 2일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일반노조가 월수금에, 해복투가 화목에 전주노동사무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그 결과 근로감독과장이 이번 주 목요일인 19일 쯤 검찰에 송치할 것을 약속했다고 김익선 위원장은 전했다.

한편 유성엽시장의 동선을 쫒아다니며 벌이는 그림자시위도 중요한 투쟁방식이다. 최근 내장산에서 열린 전농전북도연맹의 민족농업전진대회에서도 그림자시위를 벌여 주목을 받았다. 또한 시청 앞에서는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하루에 두 번씩 매일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시에서 약 한달 전에 8월 12일까지는 투쟁의 상징인 천막농성장을 철거하라고 통보하고 일반노조에도 철거공문을 보냄으로써 한 때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운명의 시간 12일에 때마침 정읍에 도착한 통일선봉대의 방문투쟁으로 천막철거가 저지되어 일단 유보상태가 되었다. 그후 시청은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하지만 언제 철거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잠재해 있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다.

"철거하면 재설치하고 그래도 계속 철거한다면 시청로비를 점거해 로비투쟁을 벌일 것입니다."

분열의 시련 속에서도 "해복투는 끝까지"

100일간의 투쟁과정 중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동지들의 분열'이었다고 김익선 위원장은 고백한다. 미화원들은 투쟁과 해고를 겪으면서 사분 오열되었다. 초기의 투쟁과정에서 일부가 노조를 탈퇴했고, 해고되는 과정에서 시청에 잔류한 사람들도 있고, 해고된 26명 중 17명은 민간 위탁을 받아들여 떠났고, 9명만이 최종적으로 남아 해복투를 만들었다.

김 위원장은 노조 탈퇴자를 빼고는 모두 노조원들이므로 각자가 처한 위치에서 조직재건을 위해 힘을 보탤 것을 촉구했다. 민간위탁업체인 영파개발로 간 사람들이 초기부터 비인간적 처우를 받는 것으로 전해져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이들이 투쟁 전력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길 바란다는 심정을 피력하기도 했다.

복직은 쉽지 않을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최소한 3년 동안은 투쟁을 지속할 것을 결의했다고 전한다. 해복투의 기본 입장은 선투쟁 후소송이다. 투쟁에 전력투구해 본 다음 법적 절차는 차후에 밟겠다는 것이다.

특히 평택의 경우 1년 7개월의 투쟁을 거쳐 시로부터 복직 약속을 얻어 낸 선례를 남겨 정읍에서의 투쟁에 힘이 되고 있다고 밝힌다.

그렇다 해도 시간이 흐를수록 악화되는 경제 여건은 그들에게 깊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해복투의 서정근 씨(44세)의 경우 부양해야 할 가족이 8명이나 된다. 당장 5개월은 고용보험에서 지급하는 평균임금의 절반도 채 안되는 돈으로 연명하고 있다. 그 후부터는 일용직으로 나서거나 일반노조와 협의해서 공동으로 할 수 있는 경제사업을 구상중이라고 전한다.

안팎으로 닥치는 어려움 속에서 자칫 표류할 수 있으나 그들은 또다시 의지를 다진다.

"시장이 12월까지 갈 것으로 각오했다는데, 우리는 12년이라도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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