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툰 본진 출국, 28일

[단식일지 16] 2004년 8월 24일

바끼통(http://cafe.daum.net/gibumiraq) 회의

밤 열 시부터 바끼통 회의가 있었다. 보통 한 번 하면 새벽 두세 시까지 하게 되는 회의다. 전에는 주마다 한 번씩 하던 것을 요사이에는 달에 한 번씩 하고 있다. '바끼통'이라는 요상한 이름을 가진 모임은 무어 달리 설명할 것 없이 그냥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인 동아리라 하면 틀리지 않다.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닌 보통 사람들의 반전평화모임, 이 모임은 이라크전쟁이 일어나기 직전부터 지금까지 아주 질기게 활동을 해 오고 있다. 감동을 주는 사람들, 감동이 있는 모임.

오늘 회의에서 나눌 것은 크게 셋. 하나는 이동화가 이라크로 떠나기 전부터 얼핏 이야기했고, 얼마 전 메일을 보내와 정식으로 제안한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이동화의 이라크활동 재정 후원 계획, 세 번째는 오늘로 단식 30일을 넘기고 있는 수사님을 지원하는 문제에 대한 거였다.

먼저 첫 번째 것. 동화가 이번에 다시 메일을 보내 제안한 것은 동화가 지내는 마을 둘레의 이라크 아이들과 한국의 아이들이 서로 편지 교환을 할 수 있게 도와주자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라크로는 직접 편지를 보내고 받을 수 없으니, 그 편지배달부 역할을 그곳에서는 동화가, 이 쪽에서는 바끼통 모임에서 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 쪽에서는 동화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아이들 집을 돌면서 그 사이에 쓴 편지를 거둬서 그것에 한국어 해석을 달아 인터넷으로 바끼통에 보내주고, 거꾸로 한국 아이가 쓴 편지 또한 인터넷으로 동화에게 보내어 그곳 아이들에게 전하자는 말. 이 일에서 걱정은 무엇보다 동화가 이라크에서 움직이는 것에 대한 안전이다. 그밖에야 실제로 일을 진행하면서 겪을 곤란함 같은 것 정도. 동화의 안전이 걱정이긴 하지만 어차피 안전하게 방에 숨어 지내려고 간 것은 아니지 않나? 회의를 통해 그 일을 하기로 했고, 그렇다면 이왕 하게 된 것 더 많은 아이들에게 알려서 아이들끼리라도 진정한 화해와 평화의 사귐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른들이 끝내 하지 못한 평화, 아이들은 그것을 아주 잘 보여줄 거다. 그리고 우리 어른들을 매우 부끄럽게 만들겠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가르쳐 주겠지. 이 글을 본 누구라도 곁에 있는 아이, 아이들에게 이라크 친구를 사귀고 싶지 않은지 권해주면 좋겠다. 아이들은 평화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겠지, 우리를 깨우치겠지.

두 번째 안건, 이동화의 이라크활동을 위한 후원금 마련 대책. 두 말 할 것 없이, 지금 당장 이라크에서 동화가 돈이 없다. 학살과 자살폭탄 들로 해서 갈수록 불안한 이라크의 물가는 걷잡을 수 없이 뛰었다. 떠나던 때 짠 예산으로는 지금 생활하기에 턱없이 모자라다. 동화 개인의 안전을 위해서도, 그리고 현지 활동을 위해서도 이동화에 대한 후원은 아주 절실하다. 앞으로 남은 기간만 해도 최소 1년 10개월, 안정적으로 후원이 되려면 가장 좋은 건 잊지 않게끔 정기적 자동 이체를 신청할 수 있는 방법일 텐데, 그런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이라크 현지 뿐 아니라 아랍권과 유럽에서까지도 갈수록 한국인에 대한 테러 위협이 높아지고 있다 하는데, 최소한 활동비가 모자라 자동차를 타야 하는 거리를 걸어 움직인다거나 값싼 숙소를 얻기 위해 누가 보아도 치안이 위험한 쪽으로 들어가는 일 같은 건 없게 해야 하지 않나? 오늘 회의에서도 뚜렷한 대책을 찾지는 못했다. 그래도 이런 회의가 소중한 건 함께 머리를 짜내어 고민하는 동안 적어도 이동화 후원금 마련에 대한 문제를 우리 공동의 문제로 여기게 되었다는 것일 거다.

세 번째, 수사님의 청와대 앞 단식에 대한 지원. 수사님 단식이 벌써 삼십 일 째다. 의논해 보자고 한 것은 수사님 곁을 안정적으로 챙기는 도우미가 아직도 없는 것 같은데, 바끼통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그 역할을 해 보자는 얘기였다. 이 얘기 앞에서 다들 같은 한 마음이었지만 모두 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니 뚜렷이 어떤 계획을 내기란 어려웠다. 마음 같아서야 수사님의 곁에서 몸 상태며, 농성장 생활 들을 챙기고, 더 할 수 있다면 수사님의 단식을 더 널리 알리게 하는 일들까지 다 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욕심만큼 다 하기란 어렵다. 중요한 건 최소한 할 수 있는 만큼 안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것, 그러다 보면 '할 수 있는 만큼'의 범위도 차츰차츰 커갈 거고, 함께 하는 사람들도 더 붙게 되겠지. 이 문제에 대한 결론 또한 확실한 어떤 것을 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면서 무언가 해야 한다, 함께 하자 하는 공감대를 다진 것으로 이미 일은 시작했다. 단식 30일 째가 된 수사님도 그렇고, 56일을 넘기고 있는 지율 스님도 그렇고 그 분들께는 하루가 우리의 일주일, 한 달에 버금갈 것이다. (아니, 그 보다 더 긴 시간일 수도.) 그러니 수사님을 지원하는 일은 이틀, 사흘 미적미적 미룰 수 없는 일이다. 오랜만에 수사님 홈페이지에 들어가 수사님의 단식기도 일지를 보니 26일차 되던 날에는 다리가 후들거리더라고 써 놓은 것을 보았다. 수사님께 편지 한 통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내세요, 함께 가고 있어요.

자이툰 본진 출국, 28일

그밖에 나눈 이야기라면 모임에 기운을 더 불어 넣기 위해 뜸하게 내던 소식지를 주마다 내자는 얘기, 28일 있을 광화문 집회와 같은 날 연대에서 있는 병역거부자 후원주점에 함께 가는 약속들을 얘기했다. 병역거부자들이 하나 둘 수감되고 있다. 반전평화팀부터 소망나무, 그리고 파병철회 운동을 쭉 함께 해 오고 있는 창근이도 곧 그렇게 되겠지. 엊그제 대전에서는 열 다섯 번째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선언이 있었다. 이라크파병반대 대전시민행동에서 일을 하던 이원표 씨다. 그이가 병역을 거부한 까닭은 간단하다. 전범국가의 군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이는 그 대신 감옥을 택했다. 그래, 우리는 모두 전범국가의 국민이다. 입영 영장이 나온 젊은이는 전범국가의 군인이 될 수 없다며 감옥을 택했고, 현역 군인이던 강철민 또한 군대 복귀를 거부했다. 청와대 앞에는 수사님 한 분이 삼십 일째 곡기를 끊고 있고, 이곳 울진에서는 벌써 여든 한 사람 째 밥을 굶고 있다. 이 모두가 우리는 우리 뜻과 상관없이 전범국가의 국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알려져 있는 집회 공지 대로라면 28일 기어이 자이툰 부대의 본진이 그 학살의 땅으로 떠나는 모양이다. 막을 수는 없는 걸까, 정녕 막을 수는 없는 걸까? 앙상하게 날짜와 시간, 집회제목만 있는 공지를 보면서 미리부터 불안함이 앞섰다. 누구 말처럼 오백 명은 죽어야 이 미친 짓거리를 그만 두게 될까? 28일이라면 아테네 올림픽 폐막을 하루 앞둔 날. 아마 꽤나 중요한 경기의 결승이 벌어지는 날이겠지. 그 날도 그럴까? 우리 군대가, 아무런 죄 없는 이웃나라의 백성을 죽이고 짓밟으러 떠나는 날에도 텔레비전과 거리는 온통 메달 이야기뿐일까? 내 아이, 우리 아이와 같은 아이들 몸에 폭탄을 떨어뜨리러 우리 군대가 떠나는 그 날에도, 우리는 모른 척 중계 방송 앞에서 박수를 치게 될까? 떠나기 전까지라도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하자. 우리가 너무 힘이 없어서 여론이 될만한 매체가 없다면 최소한 손쉽게 쓸 수 있는 개인매체들이라도 있지 않나? 싸이가 있고, 블로그가 있고, 저마다 가끔씩 들어가는 인터넷 게시판이 두서너 개씩은 있을 테고, 경우에 따라서는 속한 모임의 종이 소식지나 회보 따위들도 있을 거다. 내가 요구하지 않으면 저들은 결코 바꾸지 않는다. 싸워야 한다. 그 싸움은 우리 스스로가 해야 하며, 그 싸움의 조건을 무르익게 만드는 것 또한 우리 자신이다. 분위기가 마련되어야 싸우는 건, 그건 분위기를 타는 사람들에게 맡겨두면 된다. 싸움의 분위기를 무르익게 해서 분위기를 살피는 이들조차도 확실히 나설 수 있게 만드는 게 진정한 싸움 아닌가? 눈치보지 말고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요구하자. 파병철회와 철군이 대세가 되게 만들자. 거기에서 더 나아가 직접 거리로 나설 수 있는 사람들은 <철군> 두 글자만 가지고라도 사람들을 만나자. 적어도 우리 나라에서 보낸 침략군대가 돌아올 때까지 이 나라의 가장 큰 숙제는 <철군>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28일, 광화문에서 만납시다.

회의는 새벽 한 시 가까이 되어 마쳤다. 다른 때에 견주면 훨씬 일찍 마친 거지만 머리가 무거운 게 부담이 되었다. 그래도 늘 회의를 마치고 나면 힘이 난다.

<<폭탄이 싫어요>>, 기차길옆 작은학교 어린이 작품


할머니들

아침에 일어나 집을 나서기 전, 깜비를 묻은 산에 잠깐 다녀오려던 참이었다. 뒷집을 지나고, 그 뒤엣 집 할머니. 어디 가느냐 하셔서 뒷목을 슥슥 긁으며 산에 좀 다녀오게요, 개 묻어 놓은 자리요, 했더니 할머니가 손사래를 치면서 가지 말라 하면서 이리 와 앉으라 한다. 그래도 잠깐만 다녀온다고, 다녀와서 앉을 게요 하고 말을 하는데도 나를 붙잡으며 가지 말라 한다. 짐승 죽은 데는 가는 거 아니다 하시며 말이다. 그런 말은 처음 듣는 거라 지금도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그게 이쪽 마을에서만 있는 얘기인지. 어쨌든 오전 햇볕을 받으며 할머니 댁 툇마루에 앉았다. 그 댁 할머니와 놀러온 이웃댁 할머니. 늘상 하시는 말씀, "장개는 언제 갈 거야?", "맨날 바쁘게만 다니고 돈은 어떻게 벌어?", "밥은 해 먹어?". 마당에는 벌써 새벽에 따온 고추를 하나 가득 깔고 말린다. 매캐한 고춧내가 좋다. 햇볕에 비추는 빠알간 고춧빛이 예쁘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할머니가 부엌에 들어가 무얼 내온다. 찐 감자, 김이 모락모락 난다. 아, 맛있겠다. 아니요, 할머니. 저는 됐어요. 할머니는 내가 괜히 사양을 하는 건 줄 아는지 그래도 자꾸 먹으라 하신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그래서 할머니께 저 지금 단식 중이라고, 얼마 전부터 먹을거리를 딱 끊고 지낸다 말씀드렸다. '단식'이라 하면 못 알아들으시는 줄 알고 설명을 보탠 건데, 할머니들도 그 말이 아주 낯설지는 않나 보았다. 그러면서 되묻는 말씀이 종교가 뭐냐는 거다. 아아, 할머니는 무슨 종교에서 기도나 수행 같은 의미로 하는 단식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다 내놓고 말씀을 드렸다.

"아니요, 할머니. 저는 그런 거 아니고요. 지금 데모하는 거예요. 우리 나라 전쟁하는 데 가지 말라고, 전쟁터에 가서 죄 없는 사람들 죽이지 말라고요."
"아아, 또 이라큰가 모라큰가 하는 거기?"
"네, 이라크요. 거기에서 지금도 날마다 사람들이 많이 죽고 있거든요. 그런 데를 우리 나라 군대가 가서 또 그 똑같은 일을 하려고 그러잖아요."
"그래, 맞아. 나도 텔레비서 봤는데, 요새는 미국이 해도 해도 너무해. 왜 그렇게 해서 사람들을 다 때리 죽이고, 석유 값이나 쳐 올리고 그카는지."

할머니들도 안다. 나는 이 마을에 이사를 와서 두 달도 채 살지 못하고 바로 이라크로 떠났다. 그랬으니 마을 분들과 아직 친해지지도 못했고, 미처 인사를 나누지 못한 분도 있었다. 이사만 와 놓고 몇 달이나 감감 무소식이었으니 마을 할머니들은 그런 게 다 마땅치 못했을 거다. 집은 돌보지 않아 마당에 풀이 나무처럼 자랐지, 살림을 들이자마자 온다 간다 소리도 없이 행방을 알 수 없으니 그저 예의 없는 타관 사람 정도로만 여겼을 거다.

그런 생각으로 한국에 들어오고, 울진으로 다시 내려온 뒤에도 참 조심스러운 마음이었는데 내가 미처 설명을 드리지 않아도 할머니들이 벌써 다들 알고 계셨다. 거기는 뭐 한다고 갔다 왔냐고, 텔레비전을 보니 우리 마을 새로 들어온 총각이 언제 저기 전쟁터에 갔나 하고 쳐다봤다고 말이다. 그래서 할머니들은 내가 한국에 돌아와서도 정신없이 서울로 올라다녀도 다 그 전쟁하지 말라 하는 일 하러 다닌다 하고 알고 계신다. 그러면서도 꼭 늘어놓는 걱정, "그것도 좋지만 얼른 책을 써야 돈을 벌지", "얼른 장개를 가야 일을 잘하지".

할머니들은 내 팔 마디마디를 주물러 보며 눈이 퀭하다며 걱정을 하셨다. 할머니들 앞에서 일부러 더 크게 웃었다. 장난하는 말도 더 하고, 까불며 애교도 부리고. 그래도 할머니들은 걱정이 되는지, 그런다고 군대를 안 보내겠느냐며 쯧쯧쯧 혀를 찼다. 그러면서 젓가락으로 감자 하나를 푹 찔러 건네시며 "괜찮어, 괜찮어, 이거 하나 먹어도 괜찮으니까 어여 먹어." 헤헤. 아무한테도 말 안할 테니까 몰래 먹으라는 얘기였다. 그런 할머니 마음이 좋다. 귀엽고, 고맙다. 입에 침이 돌았지만 먹은 거나 진배없었다. 할머니가 주는 마음으로 벌써 배가 불렀다.

철군을 위한 걸음

책방에는 벌써 아이들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윤희, 미미, 현미, 미화. 힘이 되는 고마운 아이들. 오늘 단식자는 이기호 선생님과 나. 깔개를 깔고 버스 정거장 앞에 나란히 앉았다. 나란히 파병철회 우산을 들었다. 그 앞을 지나다니는 자동차 안에 탄 사람들이 처음에는 뭐하는 사람들인가 하고 내다보는 이들 뿐이었는데, 요사이에는 팔을 들어 기운 주는 손짓을 하는 분들도 많다. 함께 농성장에 나와 있지는 못하지만, 피켓을 들고 섰지는 못하지만 다들 한 마음이다.

햇살 님, 도토리 님, 눈쪼맨아 님. 거의 날마다 나오시는 분들, 내가 지금 단식을 길게 이으면서 지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이 분들에게 있음을 안다. 곁에서 피켓을 들고 한 자리에 그대로 내내 서 계신 햇살 님이 고맙다, 오가는 사람들에게 하나 하나 말을 붙이며 유인물과 스티커를 건네는 도토리 님, 그리고 농성장 둘레에서 아이들을 돌봐주면서 하루하루 사진 기록을 담고 있는 눈쪼맨아 님이 든든하다. 태풍이 지나가고 나더니 하루가 다르게 날이 짧아지는 걸 느낀다.

우리가 농성을 마치는 저녁 일곱 시, 그건 시계를 안 봐도 평해 쪽 버스 막차가 떠나는 걸 보고 늘 아는데 오늘은 평해 버스가 불을 켜고 다닌다. 그만큼 어두워졌다. 어쩌다 보니 햇살 님과 도토리, 그리고 나까지 셋만 남아 정리 회의를 했다. 특별한 얘기를 나눈 건 없다. 어제 검진 받은 보건소에서 햇살 님께 전화를 했는데 별 이상은 없다고 한다. 혈당이 조금 낮지만 아직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 했다. 아이들은 오늘 남은 종이학을 가지고 글자판 만드는 일을 더 했는데, 이번 글자는 '철군'이다. 한국 군대가 돌아오기 전까지 우리의 가장 핵심이 되어야 할 구호, 철군. 그런데 이 글자판 만들기를 전에는 농성장에서 바로 했는데 오늘은 책방에서 해야 했다. 실리콘 접착제를 쓰는 기구가 전기를 필요로 하는 건데, 7월까지 시위 뒤로는 아직 다시 전기를 빼다 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이학으로 글자판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시위'일진데, 그걸 어디 갇힌 공간에서 하기보다는 농성장 둘레에서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자면 전기를 빼다 써야 할 텐데, 전처럼 농성장 가까이에 있는 빵 가게에 부탁하기로 했다. 성가시게 하는가 싶어 우리가 미안해서 그렇지, 가게 아주머니는 이 일을 적극 도와주는 마음이다. 전기를 빌려 쓸 수 있게 되면 다시 농성장 둘레에 음악도 틀자, 하는 얘기까지 했다. 차츰차츰 해 가면 된다, 막막하기만 하던 것들이 지금도 차츰차츰 되어가고 있지 않나? 철군을 위한 걸음, 이건 단거리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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