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사회적 교섭' 유보 결정

중앙위원회, 활용론-유보론-반대론 열띤 논쟁
"대등한 교섭 틀 유리", "노동운동 상층 야합" 논박

31일 열린 민주노총 제2차 중앙위원회는 '사회적 교섭에 관한 건'을 차기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다루기로 결정함에 따라 노사정대표자회의 등 교섭 기구 참여가 유보될 전망이다. 중앙위원회는 '2004년 상반기 사업평가와 하반기 사업계획안'에 이어 두 번째 안건으로 '사회적 교섭에 관한 건'(사회적교섭안)을 심의한 결과, 현장에서 충분한 토론을 거친 후 차기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다룬다는 결정을 하였다.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안건 심의 말미에 "사회적 교섭 기구를 만들고 사회적 교섭을 한다는 안건은 오늘 중앙위 토론을 바탕으로 오는 임시대대에 상정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조합원, 대의원들이 판단할 수 있는 충분한 인식 공유와 토론을 진행시키면서 다음 정기대대에서 처리하는 것으로 한다"며, 중앙위원의 이의 여부를 물은 후 안건을 통과시켰다.


사회적교섭안은 사안이 갖는 중대성만큼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다루어졌다. 중앙위원의 의견은 전체적으로 볼 때 크게 활용론, 유보론, 반대론의 의견으로 갈렸다. 안건으로 상정된 사회적교섭안은 교섭 기구 활용론을 담고있고, 유보론은 연맹과 지역 등 조합원 전체의 토론 부족을 주된 근거로 들었으며, 반대론은 사회적교섭이 노사정위원회 참여와 다르지 않는 것으로 민주노총의 투쟁성을 훼손한다는 주장이었다. 중앙위원의 발언에서는 유보론과 반대론 발언이 상대적으로 많았는데, 따라서 안건 심의 전 임시로 열린 중집간담회도 9월 21일로 예정된 임시대의원대회 안건 상정이 무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질문과 답변, 상황 인식 편차 뚜렷이 드러나

안건 설명과 질문 답변이 이어졌다. 전교조 소속 중앙위원은 안건 주문 내용과 관련, "가령 노사정위원회 참여인가 아닌가를 분명히 하는 주문이어야 의결할 수 있는데, 사회적 교섭 자체를 주문하는 것으로는 주문 내용으로 적절치 않다"고 지적하였다. 또 충남본부 소속 중앙위원은 중앙위원회도 심의, 의결기관인데, 주문 내용이 심의로만 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고, 이 점에 대해서는 이수호 위원장이 심의, 의결로 바로 정정하기도 하였다.

금속노조 소속 중앙위원은 "중앙위원회 결정사항으로 올리지 않더라도 의장 직권으로 대의원대회 안건으로 올릴 수 있다"는 이수호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중앙위 결정사항으로 올리지 않는다고 결정되면, 올리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해달라"는 주문을 하였고. 이수호 위원장은 "제도가 그렇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하기도 하였다.

계속된 발언에서 공공연맹 소속 중앙위원은 민주노총의 지역, 연맹별 토론 진행 상황 보고에 대해, '파악 안 됨'으로 된 부분을 거론하였다. "토론을 안 한 건지, 지역이나 연맹에서 직무를 유기한 것인지, 고의적인 것인지"를 지적, 현장에서 충분한 토론이 진행되지 않은 점을 공세적으로 문제제기 하였다.

정세 인식과 관련한 문제제기도 있었다. 충남본부 소속 중앙위원은 사회적교섭안 내용 중 '변화하는 노사관계 환경' 부분에서 '정권과 자본도 과거 방식의 노동배제적인 정책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는 측면이 있다'라고 서술된 부분을 가리켜 그 판단 근거를 제시하라는 요청을 하였다.

이에 대해 이상학 정책기획실장은 "정부의 의도나 자본의 생각이 있지만, 현재적으로 노동을 배제하는 것이 한계가 있다"고 말하고, "97년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면서 이익도 봤으나 심각한 사회 문제가 발생해왔다. 장기적으로 많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사회 보장을 확대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고 답변함으로써 정세 인식 상의 편차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이수호 위원장, 사회적 교섭은 사회적 합의주의 아니다

공공연맹 소속 중앙위원은 98년 노사정위 탈퇴 결정 이후 민주노총 대대 결정 과정을 언급하고, "지금 노사정 결정 논의 구조는 사실상 대대 결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짚었다. 이 중앙위원은 이수호 위원장을 향해 "위원장은 사회적 합의주의가 아니라고 했지만 이런 식으로 사회적 교섭에 들어가면 이것은 명백히 사회적 합의주의다"라고 일침을 놓았다.

이수호 위원장은 "그것을 결정한 대의원대회는 지난 집행부 시절이었고, 올해 새 집행부가 들어서고 새로운 사업 계획이 수립되었다"고 말하고, "사회적 합의주의를 하는 것은 아니다. 활용하자는 것이다"라며 사회적교섭안이 사회적 합의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였다. "상황이 엄중하고, 더 효과적인 투쟁을 하기 위해 교섭을 잡았고, 거기에 사회적 교섭도 어떤 형태로든 틀을 만들어서 하자는 것일 뿐 교섭주의는 아니다"라는 답변이었다.

위 중앙위원은 "2003년 대대 결정사항이 노사정 참여의 방법과 오류를 시정하는 조치들이 들어있음을 지적하고, 가시적인 조치가 확인되지 않으면 논의할 필요가 없다"는 문제제기를 하였고, 이에 대해 이상학 정책기획실장은 "2003년 대대 교섭방침이 올라갔다. 그런데 대대 기록을 보면 당시 결정을 하지 못하고 유보한 바 있고, 설령 그렇더라도 그것은 2003년 사업계획이고, 2004년 사업계획은 중앙위로 위임했다"고 답변했다.

이어 이수호 위원장은 질의 답변을 정리하며 정회를 요청하였다. 정회 시간 중 참관인 중 일부는 '사회적 합의주의, 노사정담합 분쇄 전국노동자투쟁위원회' 명의의 피켓을 회의장 곳곳에 진열하였다. 회의 속개를 선언한 5시 30분 경, 이석행 사무총장이 "중앙위원들의 자주적 판단을 믿어달라"며 피켓을 치워달라는 주문을 함으로써 참관인과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활용론, 대등한 위치에서 교섭 틀 갖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이수호 위원장은 "오늘의 핵심은 토론을 제대로 해서 올바른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라고 운을 떼고, "현재 우리 노동운동의 질곡을 어떻게 깨고,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자본과 정권에 맞서서 어떻게 우리 노동자의 자존심을 살려가며 투쟁할 수 있는가를 중앙위원 동지들께서 냉정하게 판단해달라"며 원활한 토론 진행을 당부하였다.

강원본부 소속 중앙위원은 "현재 정권이 자본의 입장에서 노동자를 회의, 강제하려는 것인지 판단을 묻고 싶다. 사회적교섭안이 여러 말 필요없이 요구사항을 사회적 교섭을 통해 사회 의제화 한다는 것인데 국민과 함께 하는 큰 투쟁을 만들어내겠다는 확신이 안 선다. 그것이 무엇인지 제시해달라"고 주문하였다.

이수호 위원장은 질문에 대해 노무현 정권을 어떻게 보는가 등의 이야기와 함께 "우리가 갖고 있는 힘은 대중과 국민밖에 없다. 먼저 우리가 사회쟁점화, 의제화하고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그런 면에서 대화의 틀이 필요하고, 공개된 대등한 위치에서 이런 틀을 갖는 게 지금보다는 훨씬 낫다는 활용론에서 말씀드린 것이다"라며 사회적교섭안의 교섭 기구 참가 의사를 분명히 하였다. 교섭 틀을 활용하는 것이 현재 상태보다는 훨씬 낫다고 판단하지만 동시에 완벽한 틀로 이해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금속노조 소속 중앙위원은 금속노조도 토론을 못해서 조직 입장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하고, "사회적교섭안이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자본의 의도와 노림수가 무엇인지 빠진 상태에서 토론하자는 것이어서 토론안 자체에 한계가 있다"고 짚었다. 또 "노사정에 대한 문제는 경험이나 자본의 추진 내용으로 봐서 제도 내로 포섭하려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활용론이라 할지라도 심각한 조직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광주전남본부 소속 중앙위원은 "한차례 토론과 운영위원 전원 토론을 예정하고 있다"고 지역 상황을 발표하고, "낮은 수준의 토론이나마 지역 토론을 이야기하면 철학적으로 이해를 달리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지금 지도부에 대한 신뢰의 문제로 다가설 수밖에 없다"며 지도부 신뢰 문제를 직접적인 논점으로 제기하기도 하였다.

서비스연맹 소속 중앙위원은 "사회적 합의라고 해서 민주노총이 가지고 있는 것을 올인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있고, 사회적 대타협에 활용된다면 더욱 문제가 되리라 생각된다"며 역시 사회적교섭안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던졌다.

반대론, 사회적교섭안은 계급성과 투쟁성을 제거하려는 상층부의 야합

금속연맹 소속 중앙위원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의 결과 어려움에 직면한 현장 상황을 환기하고, "대정부 교섭의 의미와 필요성이 있겠지만, 이 정세는 우리가 운신하기 힘든 정세라고 판단된다. 지역에서 어느 대표자도 노사정에 들어가자고 이야기 못하고 있다. 우리가 노사정 위원회에서 대대에서 가결하는 순간 보수 언론과 정권은 이제 경제의 회복을 위해 민주노총이 결단을 했다고 보도할 것이다"라며 자본과 정권의 구도에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정권은 서로 대화를 하자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노동 현장에 가면 비수를 꽂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미소를 띄며 어떻게 대화를 할 수 있겠는가"라며 현장 상황의 심각성을 알렸다.

또 다른 금속연맹 소속 중앙위원은 여러 중앙위원의 우려에 동의한다는 의사 표시와 함께 "그러나 지도부에 힘을 모아줘야 할 시기에 투쟁과 논쟁만 이어간다면 언제 이 이수호 배가 한 방향으로 갈 지 안쓰럽다"고 말하고, "변화를 주저하지 않는 동지들이 되었으면 한다. 지도부의 의지를 보여주며 원활히 진행되도록 하자"며 사회적교섭안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을 하였다.

다시 충북본부 소속 중앙위원은 "제출된 안은 전술적으로 활용하자는 것인데, 어떻게 활용하자는 것을 물으면, 힘이 없어서 이것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고 짚고, "힘이 없기 때문에 활용해야 한다는 것은 이라크 파병에 대해 노무현이 힘이 없어서 한다고 결정했던 것과 무엇이 다른가"며 질책하기도 하였다. 힘 문제가 아니라 철학 문제라는 지적이었다. 대안은 없지만 결국 싸워야 하고, 싸움을 통해 힘을 만드는 것 말고는 아무런 대안이 없다며 활용론을 정면으로 비판하였다.

반론에 나선 금속노조 소속 중앙위원은 "교섭에 임하는 것이 교섭에만 임한다면 안 가는 것이 좋다고 본다. 그런데 과거를 탈피해서 우리 노동자 민중에게 처한 암울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교섭과 투쟁으로 돌파하겠다면 적극적으로 받아야 한다"며 사회적교섭안을 옹호하였다.

유보론, 지금 교섭을 이야기하는 것은 탁상곤론, 현장토론에 부치자

금속연맹 소속의 다른 중앙위원은 스스로 "위원장의 의지도 의심하지 않고, 민주노총의 의지도 알고 있는 금속 간부"라고 소개하고, "교섭과 투쟁에 대해서 동의하지만 지금 단계에 있어 교섭을 이야기하는 것은 탁상공론이다"라며 "민주노총 내부에 다양한 편차가 있는만큼 지금 민주노총이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은 모순적이다. 우리가 적극적인 점은 신중해야 하므로 임시대대 상정을 반대한다"며 유보하자는 의견을 제출했다.

공공연맹 소속 중앙위원은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언제 열릴지 우리는 모른다. 언론만 쳐다보고 중앙위원조차도 그 누구도 노사정 교섭의 틀이 논의되는 일정을 알 수 없다"며 그동안 진행된 진행에 불만을 표하고, "사회적교섭안은 명백히 사회적 합의주의이다. 위기극복의 일환으로 계급성과 투쟁성을 제거하려는 전략이며 노동운동 상층부의 야합이다"며 사회적교섭안을 강하게 질타했다. 또 "민주노총의 총 내셔널센터가 계급성과 투쟁성을 지키는 임무에 복무할 것을 단호히 요구한다"며 하반기 지도부는 총사퇴 의사를 걸고 투쟁에 임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아울러 "어느 단위에서도 노사정대표자회의 참가를 결정한 바 없으므로 위원장은 즉시 노사정대표자회의 탈퇴를 선언해야 한다"고 발언하였다.

이수호 위원장은 지난 선거에서의 공약과 토론 과정 및 결정 과정을 환기하고, 노사정대표자회의와 관련해서도 "새로운 공약에서도 그렇고, 중집 논의도 그랬고, 산별대표자회의 논의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틀을 만들기 위해서 노사정대표자회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했고, 그 운용은 집행부에 맡겨져 있다. 그래서 새로운 틀을 만들기 위한 노사정대표자회의를 구성했고 그에 맞춰 참가한 것이다"라고 답변하였다. 이석행 사무총장은 2003년 2월 11일 속리산 유스타운 호텔에서 열린 대대 결정사항을 확인하기도 하였다.

부산본부 소속 중앙위원은 "판단을 1월 정기대대에서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고, "시간을 두고 토론을 진지하게 해서 정말로 현장에서 이 문제에 대한 자기 판단을 해나가자"고 제안했다. 조합원을 대상화해서 일방적 주장으로 끌고 가지 말고 조합원들이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시간을 갖자는 제안이었다.

계속되는 참관인의 발언과 보건의료노조 소속, 공공소속 중앙위원의 발언이 있은 후 이수호 위원장은 사회적교섭안 처리와 관련, 중집에서 처리방안을 내오겠다며 정회를 요청하였다. 이수호 위원장은 속개 후 중집 간담회 결과를 전달하고, 차기 정기대대에서 이 안건을 다루자는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사회적교섭안 심의 의결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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