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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꿈같기도 하죠. 해고 됐다는 사실이 안 믿기고. 일하고 있는 동료들 보면 부럽기도 하고.."
투기자본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외환카드는 팩키지로 다뤄졌다. 외환은행노조의 반응을 기대하기 어려워 외환카드 노동자들이 먼저 나설 수밖에 없었다. 부분파업에 돌입한 건 지난 겨울 12월 15일, 해가 바뀐 1월 13일에는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투기자본 론스타와의 투쟁은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운명이었다.
"외환카드는 독자생존도 가능하다고 같이 방안을 고민하자고 교섭 때 얘기했어요. 당시 임단협 중 이였거든요. 그런데 2차 교섭을 하기로 해놓고 사측이 공문을 보내왔습니다. 외환카드 노동자 55.4%를 정리해고 한다고"
그러나 항의 방문중에 발견된 문서에는 70% 이상의 인원 정리 방안이 기술되어 있었다. 외환카드 노동자들 다 나가 죽으라는 거였다. 이미 외환카드 사측은 실권이 없었다. 외환은행 관계자와 교섭을 진행했지만 그 뒤에는 론스타가 있었다. 미국에서는 론스타와 같은 펀드에게 은행업을 허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허가했다. 그리고 미국정부는 외환은행 미국 지점을 강제 폐쇄 조치했다.
방배동 외환은행 본사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지하주차장을 농성장으로 바꾸고 매일 매일을 보냈다. 투쟁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고 은빛 스키복이 그 빛을 바랠 때 까지 파업은 계속됐다.
"겨울이 유난히 추웠어요. 맨바닥 냉기가 몸에서 떨어지지가 않았어요. 그때 회사가 공격적으로 직장폐쇄를 했습니다. 인력을 배치해 건물의 입구도 안에서 잠가 버렸어요. 이젠 지하 주차장에도 못 들어가게 됐죠. 밖에서 천막을 쳤거든요. 언제던가 눈이 정말 많이 온 날이 있었는데 눈 피할 곳도 없고, 회사도 날 버리고 하늘도 날 버리는가 싶어 그날은 눈물이 나더라구요"
사측은 조합원을에게 S부터 D까지 등급으로 나눠 핸드폰 문자로 성적을 통보했다. '당신은 D등급입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대상은 C와 D등급을 받은 외환카드 노동자들 모두 다였다. 회사가 정한 시한이 다가올수록 파업대오의 동요와 이탈이 눈에 띄는 상황이였다.
"설득도 하고 눈물로 호소도 했습니다. 간신히 파업대오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2월 27일 노동부 중재로 교섭이 재개됐습니다. 근데 새벽 3시 20분에, 교섭 중에 파업대오 한 명 한 명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귀하를 정리해고 합니다'
"자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교섭단은 교섭장에 있는데 개별적으로 이미 통보를 받게 된 거죠. 말도 안 되는 상황이죠. 외환은행이 머리를 잘 쓴 거구요. 조합원들은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어요. 겨울 내내 파업했는데 울며불며..."
결국 김남정 전 외환카드 노동조합위원장은 단독 교섭에 나서게 된다. 외환은행 측은 기다렸다는 듯이 준비된 문서를 내놓았고 파업은 극적 타결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정리해고 없다. 고용승계 한다. 단협승계 한다. 민형사상 책임 묻지 않는다'등이 합의됐다. 그러나 숨겨진 문제가 있었다. 위원장은 은행측과 '희망퇴직 인원을 35%에 맞추겠다, 부족한 인원은 파업 불참 조합원과 사측 동조자 등으로 채운다' 등의 비공개 구두합의를 한 것이다.
"위원장은 그랬던 거 같아요. 어차피 희망퇴직을 신청한 사람들이 400명이 넘었기 때문에 35%는 충분히 넘어 설 것이라고. 위원장은 오히려 희망퇴직 신청자들에게 '취소하라'고 지침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35%의 인원은 채워지지 못했고, 은행측은 C,D 등급의 42명을 정리해고 하겠다고 입장을 밝혀 왔다. 최종적으로 8명이 정리해고 됐다.
"사실 저는 정리해고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회사측이 공개한 명단에도 없었구요. 등급도 해당 등급이 아니었구요. 근데 최종적 8명의 명단에는 제 이름이 있었습니다. 현 사무금융연맹 부위원장인 장화식 외환카드 대책위원장과 저는 예전에 이주훈 외환카드 사장 직무대행을 항의 방문 갔었거든요. 그게 해고 사유더라구요."
"어이가 없었죠. 해고라니. 위원장도 부위원장도 아닌 비상근 간부가 해고라니. 말도 안된다 싶었지만. 후회는 없었습니다. 파업동안 정말,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금융기관 전면파업의 최장기 기록을 가진 외한카드 노동자들은 8명의 해고자와 311명의 강제퇴직자들을 남기고 2월 28일 현업복귀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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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장화식 대책위원장과 민성욱 해고자만이 남아서 복직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명동 입구 외환은행 본사 앞. 그러나 지금은 그 근처에서 투쟁을 하고 있다. 지난 5월 31일 해고자들에게 100m 이내에 접근하면 50만 원의 범칙금을 부과한다는 '접근금지가처분'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대상은 사무금융연맹위원장, 부위원장 2인, 민성욱 해고자 그리고 연맹의 외환카드 조직 담당 김호정 정책부장이다.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가처분이야 나올 수 있는 건데 오히려 연맹이랑 외환카드노동조합에서 외환은행 앞에서 투쟁하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심지어 연맹위원장은 개인 책임을 회피하려고 '외환은행 앞에서 투쟁하지 말 것'이라는 공식 지침을 내리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그 뒤로 한 번도 안 왔습니다"
"다른 해고자 한 명은 연맹부위원장이기도 한데 좀 너무 한다 싶죠. 가처분 나니까 투쟁하지 말라 하고, '사무금융연맹 해고자 주점'한다고 포스터 냈더니 사무금융연맹 이름 도용했다고 쓰지 말라고 하고... 좀 황당한 상황이죠"
"요번 사무금융 징계만 해도 그렇습니다. 김호정 부장의 경우는 외환카드 전담인 간부인데 해고하면 외환카드 해고자들 버리고 가겠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안타깝게도 해고되고 정직된 간부 3인 모두는 외환카드 파업 투쟁 당시 대책위원들이였습니다. 같이 자고 먹고 했던 사람들인데 안타깝습니다"
해고자 연대를 출범 시킨다
손가락 틈을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있으나 잊혀진 해고자들. 외환카드 해고자들은 전국 순회투쟁을 통해 그들을 연대의 끈으로 묶어냈다. 사무금융연맹 내 175명 해고자들은 단일조직 공식 출범 논의를 한참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9월 9일에는 철도웨딩홀에서 해고자 연대 주점도 할 계획이다.
"외환카드 노동자들은 1년 동안 고용 보장하는 합의서가 있습니다. 어차피 론스타 같은 자본은 수단과 방법은 안 가리거든요. 반드시 그때 정리 못한 인원을 정리하려 할 겁니다. 이미 외환은행 내에서는 상당수의 미발령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당연히 대상이 되겠죠."
"지금 제가 하는 투쟁은 다음 투쟁을 준비하는 투쟁입니다. 어차피 투쟁해야 하는 상황은 정해져 있는 겁니다. 해고자들이 꿋꿋히 버티고 세운 바탕에서부터 투쟁을 다시 시작하는 거죠. 그래야 투쟁도 더 힘 받고,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나 가족들도 힘들어하지만, 지금 멈추거나 다른 일을 찾아간다면 평생 후회하게 될 것 같습니다."
복직 투쟁은 이미 200일을 넘었다. 해고자의 복직 싸움은 넘어야 할 산이 정말 많다. 특히 상대가 말도 안 통하는 외국 자본일 경우는 더욱더 그렇다. 동병상련의 사람들을 모아 '함께 산을 넘자'는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경제가 힘들고, 사람들도 힘들다는 요번 추석. 원하는 것은 오직 복직뿐이라고 하는 해고자의 바램이 추석 전에 꼭 이뤄지길 바란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