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국보법] (1) <국가보안법> 폐지가 ‘국가안보’ 이다.

편집자 주> 앞으로 총 4회에 걸쳐 <국가보안법> 폐지의 당위와 필요, 그리고 폐지 이후의 긍정적 효과에 대해 다룰 것입니다. 또한 최근 논의되고 있는 ‘개정론’, ‘형법보완론’과 ‘대체입법론’의 허구성에 대해서도 다룰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넘어 모든 자유권이 온전히 보장되는 ‘괜찮은 사회’에 대한 모습을 그려볼 것입니다. 이번 기획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향한 뜨거운 열기에 보탬이 되는 기획이었으면 합니다.

1. <국가보안법> 폐지가 ‘국가안보’ 이다.
2. 국가보안법, 그 침탈의 역사
3. 형법 보완과 대체 입법 논의
4. 국가보안법 폐지하고 문화사회를 말하자.



사진 : 자유민주주의수호비상시국선언의 모습(출처:독립신문)


수구반동으로의 회귀와 국가전복을 동시에 선동하는 과격한 깃발이 광장 한 복판에서 아무 거리낌없이 펄럭인다. 민주적 질서를 뒤엎는 군부 쿠데타를 통해 민주적 질서를 회복하자는 말장난이 아무런 제재없이 공적 매체에 실린다. 이에 대한 호응으로 ‘군부쿠데타가 안 되는 5가지 이유’가 친절히 설명된다. 국가안보와 직접적 연관을 맺는 군의 보고는 허위로 이뤄진다. 총을 못쓰게 할까 그랬다는 변명은 철없음을 넘어 슬프다. 현역 장성들은 서슴이 없다. 그야말로 ‘민주주의의 풍경’이다. 국가의 보안이 연일 송두리째 부정당하고 국가를 뒤엎자는데도 어느 매체 하나 입을 열지 않으며 사람들은 불안해 하지 않는다. 신경끄고 통장 잔고나 확인하라는 충고가 어지럽다.

지금 <국가보안법>은 무엇이고, 무얼 하고 있는가? <국가보안법>은 그간 무수히 짓밟아온 좌경․반공․용공 세력을 어쩌지 못하고 수구안보세력에 의해 연일 짓밝히고 있다. 선전과 선동, 거리의 압박 정치와 담쌓고 살아온 이땅의 지긋한 ‘보수주의자(!)’들을 만나 ‘국가보안’은 심히 왜곡중이다. 인공기가 불타오르고 이 땅을 미국에게 바쳐 안위를 유지하자는 과격한 주장에 <국가보안법>은 처연하다.

‘국가정체성 논란’은 이보다는 훨씬 미스테리하면서 수준은 낮은 '진귀한 놀이'이다. 문제를 제기하는 쪽도 제기당하는 쪽도 명확한 자기 정체성을 밝히지는 않는다. 애매하게 보이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리곤 상대가 ‘커밍아웃’했다며 야유한다. 이데올로기 첨단을 걷는 성정치학 용어들이 현실 정치를 만나 심각하게 일그러진다. 한나라당은 연일 ‘국가수호’를 외치고 있다. 급기야 ‘국가안보’를 지키고 수호하는 일이야말로 자신들의 정체성이라고 일갈한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자신들만의 ‘원더랜드’였던 70년대의 암흑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이다. 당대표의 아버지가 그 암흑의 수괴였던 것은 그냥 우연이라 치자.

이미 이렇게 된 마당에 ‘국가 정체성’과 ‘국가 보안’에 관한 논의를 애써 피하지 말자. 무고한 노동자가 이라크 땅에서 죽었을때 보복을 선동하며, ‘피의 보복’이야 말로 ‘국익’이고 ‘국가의 정체성’을 지키는 길이라 했던가. 철없는 조선인들에게 일러둔다. 국익과 안보는 국민의 희생과 동의어가 아니다. 국가 정체성을 위해 마땅히 죽어도 좋을 만큼 국민은 가벼운 존재가 아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무생물 국가에 생동하는 정체성이 따위가 있을리 없다. 어떤 국가가 원래 <국가보안법>이 이룩하는 ‘국가수호’를 정체성으로 가지겠는가? 국가나 국민은 ‘국가보안법’을 자발적으로 선택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가? 국가가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가? 국가는 개개인의 인격이 무리를 이루는 것이다. 국가를 이루고 있는 구성체들의 정체성이 바로 ‘국가 정체성‘이다. 국가안보와 국익은 이 개개인의 정체성을 온전히 지켜주는 것에서 시작하고 끝나야 한다. 실존하는 개인의 정체성을 실체없는 국가의 이름으로 규제하고 강제해왔던 것이야말로 국가 정체성의 진정한 위기이고 국가 안보의 위기의 실체였다. 한국 사회의 끝없던 위기 상황은 바로 국가에 의한 과도한 억압과 폭력에서 비롯된 야만 때문이었다.

국가의 보안을 논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국가보안법’의 조건 없는 완전 폐지이다. 개인의 자기 결정권이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국가 보안은, 안보는, 국가 정체성은 아무 의미 없는 말장난일 뿐이다. ‘국가보안법’은 ‘시청 앞 광장에서 인공기 흔들며 북한 괴뢰 정권을 찬양하는 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존재했던 마지못한 법률이 아니었다. 반세기 넘는 시간동안 말 그대로 문화․정치․경제․사회 등 이 땅을 딛고 서있는 모든 분야들을 독재정권의 시각으로 짓누르고 잡아 쳐넣는 근거를 제공해 온 무소불위의 법률이다. <국가보안법>과 단 한번도 ‘국가보안’에 공헌하지 못했다. <국가보안법>과 ‘정권보안’과 사이좋게 공존해 왔다.

이제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당위의 차원을 넘어 실질적이고 차원이 다른, 진짜 ‘국가안보’를 선택하는 길이다. 구성체로부터 존경받는 국가, 국가의 주체로서 개개인의 자유의지를 보장하는 풍요로운 국가로 향하는 길이다. 개인의 삶은 사회의 모든 총체적 현상을 시작하고 완성하는 절대 단위이다. 개인의 감수성들이 모여 세상을 이룬다. <국가보안법>은 이런 국가공동체의 긍정적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잔인하게 파괴해왔다. 단언코 말하건데 이번에는 꼭 끝장내야 한다.

완 군 / 문화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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