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교육부는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아무런 실효성이 없어 보이는 내용으로 대입제도를 바꾼다고 한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올해부터 새로운 대입제도가 적용되는 것은 감안하면 불과 4년 후에 또 대입제도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채 10년 앞도 바라보지 못한 채 정권에 따라, 또 장관에 따라 춤이라도 추듯 수시로 변경되는 것이 우리 대학입시제도의 현실이다. 물론 제도에 문제가 있으면 바꾸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제적인 정책은 수립하지 못한 채 대입제도만 끊임없이 바꿔냄으로써 문제해결은 고사하고 오히려 혼란만을 가중시킨 것이 그간 교육부의 모습이었다. 물론 지난 8월 26일 발표된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한 2008학년도 이후 대학입학제도 개선방안(시안)>(이하 ‘시안’)도 그 역사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럼 무엇이 문제인가? ‘시안’의 주요 내용과 문제점을 꼼꼼히 들여다보자.<시안의 주요 내용>
* 지면의 한계로 인해 주요 내용만 개괄식으로 정리한다.
1. 학교 생활기록부 반영비중 확대 - 내신제도 변화
- 원점수(과목평균, 표준편차 병기) 표기제로 변경
- 과목별 석차등급제(9등급제)로 전환
2. 대학수학능력시험제도 개선
- 고교 교육과정 중시
- 9등급만 제공
- 문제은행식 출제
3. 대학의 학생 선발권 강화
- 대학 특성에 부합한 선발 강화
- 대학 구성원 다양화
<시안의 문제점>
1. 대학별 본고사 부활
시안이 발표되자 각 대학, 특히 소위 얘기하는 상위권 대학들은 하나같이 변별력을 문제 삼았다. 이유인 즉 내신과 수능을 등급제로 할 경우 ‘우수’한 학생을 뽑기 위한 변별력이 없기 때문이란다.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대학은 ‘우수’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별도의 변별력이 필요하게 된다. 실제 몇몇 대학에서는 논술 및 면접을 가장한 본고사식 지필시험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시안대로라면 내신과 수능 등 대입에 필요한 장치들의 변별력이 지금보다 떨어지게 되는데 이럴 경우 대학이 각종 편법을 동원해서 사실상 본고사를 부활시킬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대학서열과 그에 따른 학벌이 존재하는 한 어떤 대입제도를 도입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다는 것은 해방이후 수없이 바뀐 대입변천사가 말없이 웅변해주고 있다.
2. 고교 등급제, 평준화 해제 등의 혼란 가중
역시 대학에선 변별력을 문제 삼고 나서기 시작했다. 내신과 수능의 등급제 전환으로 변별력이 약화된 마당에 각 지역, 각 학교별로 존재하는 학력차라도 반영해야겠다는 것이다. 바로 고교 등급제를 통해서! 시안이 발표된 직후 고려대 어윤대 총장은 “고등학교 간 학력 격차를 입시에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사실상 고교 등급제의 실시를 암시했다. 어 총장의 발언 이전에도 상위권 대학이 고교 등급제를 실시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일 정도였다. 어 총장의 고교 등급제 도입 발언과 이에 대한 교육부의 강한 반대 의사 표시로 논란이 가열되고, 고교 등급제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점점 커지자 고려대는 고교 등급제를 실시한 적이 없으며 일단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9월 7일자 주요 일간지의 고교 등급제 관련 기사를 접하게 되면 의혹은 확증으로 굳어진다.
문제는 대학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틈을 타서 보수언론은 평준화 흔들기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비평준화지역 학교와 특목고, 자립형사립고 등의 반발이 예상된다. 고교 등급은 필연적으로 평준화 해체와 고교 선택권 논란으로 확대될 것이다.
3. 학교교육 정상화는 NO, 학생/학부모 혼란가중은 YES
교육부가 학교교육을 정상화 할 마음이 있기는 있나보다. 굵직한 정책이 나올 때마다 ‘학교교육 정상화’라는 소제목을 붙이곤 하니까.....그러나 새로 내온 정책들을 보면 학교교육을 정상화 할 수 없는 방안들만 쏙쏙 뽑아놓은 듯 하다. 이미 여러 차례 지적했지만 입시위주의 무한경쟁교육이 진행되는 한 학교교육은 결코 정상화 될 수 없다. 그리고 이 입시교육은 대학서열과 학벌이 존재하는 한 어떤 정책이 시행된다고 해도 역시 해결될 수 없다. 대학서열과 학벌을 철폐하기 위한 정책이 입안되고 이를 바탕으로 입시위주 교육이 문화교육으로 전환될 때 비로소 학교교육은 정상화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시안은 학교교육 정상화에는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한 채 대입제도만 바꿈으로써 오히려 모든 교육주체들에게 혼란만을 가중시킬 것이다.
4. 사교육비 증가
교육부는 이 시안의 기대효과 중 하나로 “비생산적인 사교육비 감소”를 들고 있다. 교육부에 묻고 싶다. 과연 이 시안이 무엇이길래 어떻게 사교육비가 감소될 수 있는지를.... 시안 발표 후 진행된 여러 차례의 토론회에서 기본적으로 이 시안에 동의하는 사람들조차도 사교육비 감소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내신과 수능에 대학별 전형이라는 새로운 부담이 추가됨으로써 사교육비는 오히려 증가될 것이다.
5. 비민주적! 졸속적! 정책 결정
비단 이번 시안 뿐 아니라 어떤 정책이 입안되고 결정되는 과정에서 이견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따라서 정책 결정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이다. 그러나 이 시안의 결정과정에는 ‘민주’가 없다. ‘반민주’만이 존재할 뿐이다. ‘참여’도 없다. ‘배제’만이 존재할 뿐이다. 교육부는 시안 준비과정을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했으며 시안이 발표된 지 채 한달도 되지 않아서 최종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물론 공청회는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9월 8일 동국대에서 진행된 공청회를 보면 교육부가 얼마나 기만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말이다. 세상에 무슨 공청회가 최소한의 질의/응답도 하지 않는단 말인가? 교육부는 독단과 독선의 구태를 벗고 교육주체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 이를 위한 사회적 논의구조를 만드는 것이 교육부가 할 일이다.
이상에서 시안의 주요 문제점을 살펴봤다. 이제 교육부가 할 일은 명확해졌다. 더 이상 시안을 강행하지 말라. ‘참여’를 강조하는 정부가, 군사독재시절을 비롯한 과거사를 청산하겠다는 정부가, 이렇게 오만과 독선에 빠져서 허우적거려서야 되겠는가? 시안과 관련된 모든 활동을 중단하라. 그리고 당장 사회적 합의를 위한 논의구조를 마련하라. 그것이 학교교육을 정상화 하는 첫걸음이다.
김종필 / 문화연대 문화교육위원회 활동가 tarock@culturalacti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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