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 제도, 고교 등급제로 부활?

교육계가 뜨겁다. 아니, 우리 사회에서 ‘교육’이 차지하는 특이성으로 인해 사회 전체가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 주범은 바로 ‘고교 등급제’이다.

탄생의 비밀, 그러나 모두가 아는......

교육부는 지난 8월 26일 <2008학년도 대학입학제도 개선방안(시안)>(이하 ‘시안’)을 발표했다. 시안이 발표되자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가장먼저 진보적 교육운동단체들의 시안을 비판하는 성명이 쏟아졌고 그 뒤를 이어 상위권 대학을 중심으로 한 경쟁지상주의자들이 내신과 수능을 등급제(그것도 15등급이 아닌 9등급)로 전환하게 되면 ‘우수’한 학생을 선발할 수 없게 된다며 시안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자구책을 강구하기 시작한다. 그 자구책이 바로 ‘고교 등급제’이다. 그러나 사실 이 방법은 새롭게 강구된 것이 아니다. 이미 2~3년 전부터 일부 대학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기준을 근거로 사실상 고교 등급제를 실시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으니까. 오죽하면 서울대 총장이 “직접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연세대와 고려대, 서강대까지 외국어고 같은 곳에 가산점을 주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라는 말까지 했겠는가?

성장배경.

이렇게 음지에서 비밀리에 진행되던 고교 등급제가 드디어 양지로 나올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바로 교육혁신위원회가 열심히 준비하고 교육부가 ‘맘대로’ 바꿔버린 시안 덕분이다. 시안이 발표되자 변별력을 문제 삼는 집단들이 등장했고 그 선발주자인 고려대 어윤대 총장은 “고교간 학력격차가 엄연한 현실인 만큼 이를 입시에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일단 고교 등급제가 비빌 언덕을 마련해줬다. 어총장의 이 발언이 있은 다음날 고려대 입시 담당자는 “2001년부터 학원 등을 통해 수능 10% 이내 학생 수 등 전국 고교 대상 자료를 확보해 고교 추천 전형에 적용해 왔다. (지금도) 고교 등급화에 대해 객관적 평가 근거를 만들고 있다”라는 발언을 통해 고교 등급제를 드디어 ‘제도화’했다.

파란.

9월 7일. 주요 일간지를 통해 말로만 전해지던 고교등급제가 어느 정도 실체를 가지고 등장했다. 일반적으로 1단계 전형에서 내신이 차지하는 비중은 75%이고, 비교과영역(자기소개서, 추천서, 수상경력, 자격증, 외국어 능력시험 등)이 25%를 차지한다. 특히 기타 전형이 여러분야로 나누어짐을 감안하면 사실상 내신 성적이 당락을 좌우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세대 의예과 1학기 수시결과를 분석해보니 석차백분율이 상위 1.7%, 2%, 2.6%인 경기 및 서울 강북 지역 고등학생은 탈락한 반면 3.5%, 4.2%인 강남지역 학생은 합격했다. 심지어 특목고인 서울 ㄷ고등학교 학생은 25%보다 뒤쪽이었는데도 연대 의예과에 합격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연세대측은 내신의 반영비율을 줄이고 비교과영역과 추천서 등을 통해서 선발했을 뿐 고교등급제를 실시한 것은 아니라는 해명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거짓임이 다시 드러난다. 연대 공학계열이 지원한 비강남지역의 학생은 △수상경력 17회(교내15회, 교외2회) △봉사활동 100시간 이상 △학급임원 경력 2회 등으로 최종합격한 강남지역 학생의 비교과 성적인 △수상경력 8회(모두 교내) △봉사활동 90시간 이하 △학생회 활동 경험 0회 등에 비해 월등히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1차에서 탈락했다. 이렇듯 움직일 수 없는 물증들이 계속 공개됨에도 불구하고 해당 대학들은 거짓해명만을 일삼고 있고 교육부 역시 ‘고교등급제 불가’라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고교등급제는 사전에 공지하지 않은 선발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명백한 불법이며, 학생의 노력에 상관없이 학교에 차별을 두어 대학입시의 당락이 좌우된다는 점에서 위헌시비의 소지마저 있다. 또한 평준화를 해체시키고 학생 자신의 노력과 무관하게 선배들의 성적에 의해 후배들이 대학당락에 영향을 받게 되는 일종의 연좌제라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교육부는 입으로만 ‘불가’를 외칠 것이 아니라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학교에 대한 전면적인 감사를 실시해야 한다. 그리고 의혹이 실체로 들어날 경우 엄중한 처벌을 내려 이와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의 교육환경 -교육내용, 제도, 입시, 대학서열화, 학벌 등-을 완전히 바꿔내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고교등급제 문제는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아있을 것이다.

김종필 / 문화연대 문화교육위원회 활동가 tarock@culturalacti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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