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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후반 가장 논쟁적 인물 중의 하나로 꼽혀
투병 중이던 지난 8월 르몽드와 회견에서는 “나는 자신과 ‘싸움 중’이고 이는 무섭고 고된 싸움이지만 이것이 바로 인생이란 걸 안다”고 말했다. 또한 그의 측근들이 “데리다가 고통 없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했다고 르몽드는 보도했다. 유가족으로는 조스팽 전 프랑스 총리와 재혼한 실비안 아가친스키와의 사이에 난 아들 다니엘 데리다가 있다.
20세기 후반 가장 논쟁적 인물중의 하나인 데리다는 1930년 알제리의 유대인 가정에서 출생했다. 1942년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법안을 청원했다는 이유로 국립고등학교에서 제적된 이후 프랑스로 이주한 그는 루이 르 그랑 고등학교를 거쳐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수학했다.
졸업후 1965년부터 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으며 1980년 소르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3년 국제 철학학교를 설립해 초대 교장을 역임했고 이후 프랑스와 미국의 여러 대학을 오가며 강의와 연구 및 저술 활동을 펼쳤다.
80여 권의 저서를 펴낸 난해한 이론의 해체철학자로 잘 알려진 데리다 이지만 그는 전 인생에 걸쳐 구체적 현실에 대한 구체적 참여를 실천했다. 알튀세르 등과 함께 68세대 철학자의 대표적 인물인 그는 1981년 체코에서 체포당하기도 했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운동에 참여했고 동성애자 차별 철폐운동, 팔레스타인 문제들에 대해 발언했다.
냉전 종식 후 '맑스의 유령들' 발표해
데리다는 정통적 맑스주의와 이론과 실천 양 측면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 냉전이 종식되고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이 발표되면서 전세계적으로 우파가 득세할 때 ‘맑스의 유령들’(Spectres de Marx)을 발표했다. 이 책에서 데리다는 ‘맑스의 사유에 시작이나 끝은 없으며, 역사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의 유령들을 쫓아버릴 수 없으며, 따라서 이런 역사의 유령들은, 마르크스의 '유령', 그리고 공산주의가 시작될 때부터 항상 있어왔던 유령이라는 주목할 만한 예에서처럼, 우리가 그들과 타협하는 방법을 발견하지 않는 이상 우리를 계속 따라다닐 것이다‘ 며 맑스주의에 대한 자신의 친연성을 뒤늦게 고백하기도 했다.
그리고 조지 부시의 이라크 전쟁 승리 선언이 나온 직후인 지난 2003년 5월에는 독일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와 함께 공동 선언문을 독일과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들에 게재했다. 이 선언문에서 데리다와 하버마스는 이라크 전쟁에 대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유인원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작업분담이 이뤄지는 것을 목격했다"고 평가하며 "한편에서는 군대를 배치하는 거대한 병참작전이, 다른 한편에서는 인도적 원조기구들의 열에 들뜬 분망한 움직임이 있었다. 이 두 움직임은 정밀한 톱니바퀴처럼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갔다"고 비판했다.
에드워드 사이드, 피에르 부르디외, 폴 스위지 그리고 자끄 데리다의 죽음과 함께 이제 20세기는 역사의 장으로 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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