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협상 사실상 마무리

정부, 공청회에 맞춰 언론에 내용 전면 공개, 잠정 내용 기정 사실화
노무현정권 "열고 보자", 도대체 대책이 뭐냐? 우려 높아

협상 전술상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던 쌀협상과 관련한 내용들이 일제히 공개됐다. 17일 연합뉴스를 통해 공개됐던 협상 내용은 공청회 자료집에 게재된 내용과 일치했고, 그날 저녁을 시작으로 모든 언론들이 일제히 쌀협상 타결 내용을 실화하는 보도를 잇따라 내놨다. 발빠른 한나라당 대변인은 '농민의 속타는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며 쌀 시장 개방 문제를 농민만의 문제로 축소시키며, 농민의 분노의 화살을 정부에 돌리며 대책을 촉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밀실 협상이 대체로 그렇듯이, 언론을 통해 간간히 내용을 흘리다가 결정적 내용을 동시 다발적으로 일방적으로 통보하는데, 이번에도 정부의 고전적 수법이 그대로 사용됐다. 이로서 칼자루는 다시 농민에게 넘어왔다. 한-칠레FTA 때처럼 결과를 수용하고 뒤로 물러 설 것인가, 쌀협상의 공개된 내용을 전면 거부하고 대정부 투쟁을 통해 원점화 시켜 낼 것인가, 20일 4차 농민대회는 개방 저지 투쟁의 시작 내지는 10년에 걸친 쌀투쟁을 종결하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

정부, 의무수입량 늘리는 관세화 유예의 정치적 선택

지난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농업협정 타결 이후 한국은 쌀 관세화 유예 합의에 근거해 95년부터 2004년까지 기준 연도 86년∼88년 평균 쌀 국내 소비량의 1%∼4%까지의 의무수입을 약속했고 성실히 수행했다. 올해 들어온 외국 쌀은 총 205,000톤. 하지만 지금까지는 떡 같은 가공용으로만 사용됐기 때문에 일반 마트나 매장에서 진열된 상품으로 접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번 쌀협상에서 의무수입량의 증가와, 그중 일정 비율을 가공용이 밥쌀용으로 판매할 수 있게 됐기 때문에 내년부터 손쉽게 만날 수 있게 된다. 내년에는 전체 수입량 226,000톤 중 10%로 2만여 톤이 넘고, 2010년에는 30%로 확대된다.

정부가 잠정안으로 밝히고 있는 쟁점별 합의내용

물론 정부는 17일 새벽에 열린 허상만 농림부 장관와, 미국 앤베너먼 농림부 장관과의 최종 합의가 되지 않아 잠정안이라고 밝히고는 있다. 그러나 이미 관세화유예로 가닥을 잡은 상황이기 때문에 그 비율의 숫자 변동 이상의 큰 변동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이 어떤 식으로 타결될지 불투명하기 때문에, DDA협상에서 한국 우루과이라운드 당시의 개도국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등의 변수가 아직 남아 있다. 일단 관세화 유예를 한 뒤 DDA협상 결과에 따라 관세화 전환여부를 결정하는 수순이다.

쌀협상 잠정결과를 국회 22일 농림해양수산위원회와 대외경제장관회의 보고 등의 절차를 거쳐 이달 28일 쯤 국무회의에 보고한 뒤 정부 입장을 최종 정리할 방침이다. 그러나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을 비롯한 75명의 국회의원들이 '쌀 협상 전면 재협상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는 농림해양수산위원회에서 오는 22일 이 결의안을 심의한다.

정부는 사실상 쌀시장 완전개방의 정치적 부담을 덜고, 단계적 개방을 위해 의무수입량을 확대하는 관세화 유예방안을 선택했다. 국내 농업상품 시장에서, 농민의 쌀 생산의 충격을 최소화하고 완전 경쟁 단계의 반열에 올리기 위한 사전 단계가 시작된 것이다.


정부의 대책, 도산하는 농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이번 협상에 따라 국내 쌀 총소득은 올해 6조7870억 원에서 2 014년에 4조1000억 원으로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농지 10a당 평균 소득 역시 올해 67만8000원에서 10년 후면 53만5000원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경제연구원은 "관세화를 통해 쌀시장을 전면 개방할 경우 쌀 한 가마 가격은 최대 10만6000원까지 떨어질 수 있다"며 "특히 2007년부터 발효되는 DDA 협상 결과에 따라 150%의 관세 상한선이 적용된다면 최악의 경우 쌀 가격은 가마당 8만 원까지 폭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쌀시장 개방과 관련해 향후 10년간 농업 부문에 119조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이후 지난 10년간 70조 원 이상 쏟아 붓고도 오히려 농가 부채가 급증한 현실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또한 한-칠레FTA 체결 당시 정부가 약속한 향후 7년간 1조 6천억 원(1조 2천억 원을 포함해)을 지원하겠다는 대책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과수농가들이 도산했다는 사실에서 정부의 대책이 임기응변에 불과하다는 것이 확인된다.

또한 종자산업의 경우 몇몇 Cargill, Continental Grain, Bunge Crop.사등 주요 5대 곡물 메이저가 세계곡물무역량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10대 기업이 세계 농약시장의 80%, 생명공학시장의 54%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국제 거대 자본에 의해 식량산업이 재편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또한 이번 쌀협상을 통해 한국의 식량산업 시장이 이들에 의해 재편되기 시작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8회 노동영화제에 발표된 <식량의 미래> 다큐먼터리는 식량산업의 현실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캐나다와 멕시코의 농부들은 종자 특허권 침해를 이유로 소송에 휘말리면서 삶의 터전을 박탈당하고, 그 부작용이 검증되지 않은 채 생산량 증대만을 목적으로 생산된 유전자조작식품(GMO)의 판매는 모든 사람의 생명을 위협한다. 또한 몬산토는 8억 달러를 뿌리며 종자 회사들을 매입해서 독점을 강화하고, 미국 정부의 보건, 환경 관련 기관들의 관료로 들어가 거꾸로 기업 활동을 지원하며 노골적인 카르텔을 유지하는 것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다큐 영화에서의 현실이 이제 곧 한국에서도 재현될 것이다. 농업과 농촌사회 그리고 쌀을 주요하게 생산하는 농민들의 몰락은 이미 예정된 수순이다.

자기 무덤을 판 정부, 교섭 무능력의 극치를 드러내

노무현정권은 올 9월까지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2005년부터 '자동관세화 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관련 단체들의 비판이 거세지자 정부는 입장을 선회해 '2004년내 미타결시 자동적으로 관세화 된다고 해석한 적이 없다’고 밝혔지만 '연내 타결을 짓지 못한다면 한국이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며 여전히 ‘자동관세화론’을 주장했다.

우루과이라운드(UR) 농업협정의 어느 규정에도 2004년도까지 쌀 재협상을 마치지 않으면 자동관세화 된다는 것은 없다. 2004년까지 이해 당사국끼리 쌀 재협상을 한다고만 돼 있을 뿐이며 협상 결렬 때의 처리 규정은 없다. 그럼에도 정부가 자동화관세론을 거론하며 오히려 반대하는 농민과 단체에 대해 압박 카드로 활용했다.

상대국이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협상을 연내 완료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 했기 때문에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것과 감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부 자문법률단 내에서도 '자동관세화론'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으나 정부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기준연도 변경이 협상에서는 제기조차 되지 않았고, 협상의 의제가 아닌 국가별 수입물량 배분(의무수입량의 각 국별 쿼터)을 결정, 제3국(북한)에 쌀을 지원, 수입쌀의 소비자 시판 비중(30%) 등을 협상 대상으로 인정해 8개 국가에서 불리한 요구조건들을 무리하게 들고 나오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협상과정 중인 지난 11월, 주무 책임자가 미국과의 잠정협정 결과를 언론에 인터뷰하면서 당시 일정량의 쿼터를 미국 측에 양보할 듯한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고, 2015년 이후 관세화(완전개방)를 전제로 협상에 임해 정부 협상의 미숙함을 여지없이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땅 농민의 생존이 걸려있는 오랜 걱정거리가 한꺼번에 밀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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