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사회통합의 전제조건

양극화-나눔과 양보-사회통합, 반동의 지배코드
양극화 아니라 소수를 위한 절대 다수의 극단화

사회적 책임이 큰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신년 발언은 주목받기 마련이다. 대통령을 비롯 주요 인사들의 2005년 신년사는 무엇보다도 사회통합, 국민통합을 강조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과거에도 양보와 타협, 성장과 번영, 상생과 통합 같은 단어가 단골로 등장하긴 했지만 올해는 특히 유난스러운 모습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첨단산업과 전통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수도권과 지방, 그리고 상·하위 계층간의 심화된 격차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시급한 과제이다"라고 말하고, "이 문제를 푸는 데는 여와 야, 진보와 보수, 성장과 분배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대한민국 공동체의 공존과 번영을 위한 협력이 필요하다"는 요지의 신년사를 발표했다. "상생과 연대의 정신, 양보와 타협의 실천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김근태 복지부장관은 아예 '2005년을 국민통합의 원년으로 만듭시다'를 신년사의 제목으로 뽑았다. "우리 사회가 빈익빈 부익부라는 '양극화의 함정'을 넘어 '새로운 성장을 위한 국민통합'이라는 큰 길로" 나아가자 라고 호언하였다. 이를 위해 △사회안전망의 획기적 강화 △급격한 저출산 고령화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 △BT와 바이오 헬스산업을 실질적인 성장동력산업으로 육성 등을 '국민과의 계약'으로 언급했다. 이런 과제를 차질 없이 수행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한숨짓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역할, 사회통합의 기초를 만드는 소임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계속 된다. 이해찬 국무총리는 "올해의 키워드는 경제활성화ㆍ한반도 평화정착ㆍ국민통합이 될 것"이라고 말했고, 이헌재 부총리는 증권시장 개장치사에서 "경쟁촉진과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근로능력이 있는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교육 훈련 기회를 확대하고 사회안전망을 제공하여 사회통합을 확보해 나가겠다"고 밝혔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화합과 상생의 시대를 맞아 우리의 성과를 이웃과 함께 누리는 나눔의 경영을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발언했으며, 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이 갈등을 치유하고 국민을 통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사회적 갈등을 양산해온 정치권이 먼저 국민통합을 선언"하겠다고 선언했다. 말은 달라도 모두가 사회통합, 국민통합을 강조하고 있다.

사회통합의 반대편에는 늘 갈등과 대립이 있다. 갈등과 대립은 사라져야 할, 없어져야 할, 극복해야 할 현재의 낡은 질이고, 사회통합은 도달해야 할, 실현해야 할 미래의 지고지순한 과제이다. 사회적 책임이 큰 자리에 있는 인사들의 발언을 반복해서 듣고 있노라면 사회통합은, 국민통합은 조만간, 손 안에 잡히는, 곧 도달하게 될 실물처럼 느껴진다.

노무현 대통령은 모든 격차를 넘기 위해서는 여와 야, 보수와 진보, 성장과 분배조차 따로 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여와 야는 시종일관 밥그릇 싸움을, 보수와 진보는 극한 대립을, 성장과 분배는 실체없이 떠도는 경제 용어였을 뿐이다. 바로 엊그제만 해도 첨예한 대립과 갈등이 벌어졌는데, 해가 바뀌었다고 순식간에 화해와 상생, 대화와 타협, 나눔과 양보, 사회와 국민의 통합이 이루어질 것처럼 이야기한다. 가공할 환각이다.

김근태 복지부 장관은 빈익빈부익부라는 양극화의 함정을 넘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 함정은 누가 파 놓았는지, 넘을 거면 어떻게 넘을 것이지는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겠다는데 이 사회안전망이란 체제를 위협하는 위기 요인으로부터 질서를 잘 유지하기 위해 취하는 조처를 뜻하는 게 아닌가. 국민통합의 원년이라 함은 올해를 국민통합의 첫 해로 삼겠다는 말인데, 희망의 원년 타령이야 숱하게 들어온 늑대 소년의 거짓말, 속고 또 속고.

사회통합의 전제조건은 과잉 주술이 아니다. 사회통합의 전제조건은 대립과 갈등의 원인을 짚어내고 원인 제공의 뿌리를 제거하는 것이다. 대립과 갈등의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사회통합에 이르는 길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들여다보면 오늘날 대립과 갈등의 원인 제공자는 하나같이 지배세력인데 그렇지 않은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는 노동유연화를 근간으로 노동을 말살하고, 이라크 전쟁 참전은 평화를 염원하는 다수 민중의 가슴을 찢어놓았고, 개방화 시장화 정책은 교육 의료 등 민중의 삶의 기반을 위협하였고, 사회적 빈곤 정책은 공동체의 기초를 망가뜨려 놓았고, '관세화'냐 '유예'냐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며 농민을 사지로 몰아넣었고, 국보법의 지리한 개폐 논란으로 모든 국민을 바보로 만들어 놓았다. 대립과 갈등은 필연이다.

그러므로 양극화,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한 나눔과 양보, 그리고 사회통합으로 이어지는 시나리오는 사태의 본질을 은폐하는 반동의 지배코드다. 우리 사회는 양극화가 아니라 소수를 위한 절대 다수의 극단화에 휘둘려 있다. 소수의 위치에 있는 지배자들은 제국주의 동맹, 참전, 유연화, 공공성 파괴 그리고 사회적 빈곤을 부추겼고, 이윽고 네 살 아이를 장롱 속에서 굶겨 죽이는 극단을 저질렀다. 이를 기획하고, 조장하고, 방치하는 자들이 제 입으로 사회통합을, 대립과 갈등을 넘는 국민통합을 이야기한다. 극단의 마지막 경계 앞에서 최소한의 저항의 몸짓으로 버티는 민중을 향해 대립, 갈등, 대결, 투쟁을 그만 멈추라 한다. 한결같은 목소리로 사회통합이 바로 저만치 앞에 있다고 호언장담한다. 노무현, 김근태, 이해찬, 이건희, 이부영......

'사회통합'이냐, '대립 갈등'이냐. 새해 벽두에 이 사회를 지배하는 사람들이 강요하는 선택 메뉴얼. 그러나 고무줄 두 끝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은 선택이 아니다. 무엇을 고르더라도 그 고무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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