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 당연지정제 폐지 검토, 의료사유화 가속화 되나

"보건에 산업적 접근 필요" 대통령 말 떨어지자마자 복지부 검토방안 나와

중앙일보 보도, '건보당연지정제 폐지' 물꼬

지난 5일 중앙일보가 예사롭지 않은 소식을 보도를 했다. ‘복지부, 허용 추진… 건보 적용 안 받는 병원’라는 제하의 기사로 보건복지부의 ‘2005년 건강보험 업무계획’을 소개하며 보건복지부가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고 진료하는 병원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내용을 소개했다.


이 보도는 단신으로 그치지 않고 분석기사로 뒷받침 됐으며 ‘건보 자유화, 의료 질 향상 위해 바람직’이라는 사설도 같은 날짜 신문에 실렸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의 요양기관계약제는 중장기적 연구 검토과제일뿐, “복지부 허용추진”은 사실과 다름을 알려드립니다’라는 짧은 보도해명 자료를 발표했고 몇몇 시민단체의 우려 섞인 논평이 나왔을 뿐 파문은 더 이상 확산되지 않았다.

그러나 정황을 살펴보면 중앙일보의 보도는 틀림없어 보인다. 중앙일보는 "대통령 보고 계획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당연지정제 폐지방침이 빠지면 시기가 다소 늦어질 수 있지만 시행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는 복지부 관계자의 발언을 직접 인용하기도 했다. 또한 사실 관계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사실보도에 분석기사와 사설을 같은 날 함께 배치할 리 만무하다는 지적이다.

치고 빠지기식 언론 플레이 펼치는 복지부

의료전문 인터넷신문 메디게이트의 4일자 기사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이 신문은 건강보험 기금화 등 여건변화에 따른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폐지 및 계약제 도입방안이 포함된 건강보험법 개정안이 복지부 2005년 업무계획에 포함되었다고 보도했다. 또한 이 신문은 “의료시장개방을 앞두고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등 건강보험제도 전반을 포괄하는 의료법을 전면 개정할 방침”이고 “당연지정제에 대한 재검토와 아울러 의료기관의 경쟁 시스템 방안도 함께 연구될 것이다”라는 보건복지부 당국자의 발언을 함께 전했다.

결국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식 언론플레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정부 부처가 논란의 여지가 큰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미디어를 통해 기사를 흘려 여론을 떠보고 자신은 한 발 뒤로 빠지는 식의 수순이라는 설명이다.

정부부처의 낡은 언론플레이 방식과 별개로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폐지’가 담고있는 의미는 매우 크다. 현재의 건강보험 당연지정 제도하에서는 모든 의료기관은 의무적으로 건강보험 환자를 진료해야 하지만 당연지정제도가 폐지되고 의료기관이 건강보험 환자 취급 여부를 스스로 결정, 건보 지정 병원에서 벗어나면 의료수가 통제를 받지 않고 진료비를 책정할 수 있게 되고 그 진료비는 환자가 전액 부담하게 된다.

당연지정제 폐지에 찬성하는 측에서는 이를 통해 국내 의료산업의 경쟁력과 서비스 질이 향상되고 환자의 선택 폭이 넓어지게 된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의약분업 도입 당시 ‘사회주의 의료체계 폐지하라’는 슬로건을 내걸기도 했던 의사협회의 권용진 대변인은 “당연지정제는 사유재산권 침해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고 중앙일보를 통해 밝히기도 했다.

당연지정제 폐지-사보험확대-영리병원 허용, 의료 사유화의 3각 축

이에 대해 최용준 민의련 대표는 “복지부에서 당장 추진하고 안하고 여부를 떠나 당연지정제를 폐지 검토 자체가 사보험 활성화의 기반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며 또한 올 해 하반기부터 일부비보장성 보험은 정액 지급이 아닌 정률지급(현재는 암 발병시 3,000만원 지급 등의 계약조건을 내걸고 있지만 앞으로 비보험 적용 치료비의 70% 식으로 지급 조건이 바뀐다는 의미)을 할 계획이 있을 정도로 사보험 업계가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전국민이 건강보험 강제가입 대상인 상황에서 일부 병원은 아예 이용할 수 없게 되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며 “경제특구법이나 기업도시법에서 외국인 병원에 한정해 영리병원을 벌써 허용하고 있는데 결국 당연지정제 폐지는 영리병원의 광범위한 확대와 맞닿을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최용준 대표는 마지막으로“결국 당연지정제폐지-사보험확대-영리병원 대폭 허용의 세 축은 서로 연동되며 본격적 의료사유화의 길을 트는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대통령, "교육과 보건에 산업적 접근 필요"

구랍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민생점검회의
사진출처 : 청와대 홈페이지

물론 보건복지부가 독자적으로 이러한 의료사유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구랍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민생점검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고도소비사회가 요구하는 서비스를 제공 못하고 있다”며 "서비스산업 육성을 위해 교육과 보건에 산업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이들 분야(규제완화나 개방에 반대하는 등 여러 가지 사회적 압력)에 관해서도 내년에 결론 낼 것은 결론내면서 과감히 추진했으면 한다”고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 날 회의에 제출된 ‘2005년 경제운용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이해대립이 심한 교육, 의료등 사회서비스업 경쟁력 강화대책의 협의 조정에 중점’을 두는 ‘총리주재 서비스업 관계장관회의’가 신설하기로 했다. 또한 ‘사회서비스업(교육, 보건)의 고부가가치화를 중점 추진’한다는 명목 하에 ‘의료서비스산업, 제도 개선협의회’를 구성해 ‘의료기관에 대한 자본참여 활성화’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물론 의료기관에 대해 자본참여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영리법인의 병원개업 허용이 필수적이다.

얼마 전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의 짧은 재임기간 중 대통령이 내놓은 “대학은 산업”이라는 말이 보여주듯 교육과 보건이라는 양대 공공영역에 대한 급격한 시장화가 집권 중반기, 현 정권의 명확한 정책기조이며 보건복지부의 건보 당연지정제 폐지 검토안은 그 빙산의 일각일 따름이라는 설명이 가능한 대목이다.

형편없는 공공의료 현실과 거꾸로 가는 정부 기조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는 “민간(의료)보험 도입이 시기상조이며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해 공공 병원 비중을 30% 수준까지 높이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2000년에 15.2%에 달하던 국공립 의료기관의 병상 비중은 오히려 2003년에는 11.6%로 크게 줄었다.

이는 민간의료보험의 천국으로 불리는 미국 국공립 의료기관 병상비중 33.6%의 1/3에 달하는 수준이고 OECD 순위로 따질때는 꼴찌다. 그리고 2004년 보건복지부는 공공의료확충을 위해 3,300억원의 예산을 신청했으나 불과 600억원 밖에 배정 받지 못하기도 했다.

60년 63.7%에 달하던 공공의료 비중은 70년 43.3%, 80년 31.5% 로 급락한데 이어 2000년대 들어 10% 가까이로 떨어지고 있고 병원비가 무서워 50대 실업자가 집에서 제 손으로 바늘과 실을 들어 상처를 꿰메고 4살 짜리 아이가 장롱속에서 죽어가는 등 공공의료가 날로 위기 상황에 처하고 있는데 정부의 기조는 거꾸로 가고 있는 셈이다.

이미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2년 공공의료기관의 비중과 건강보험 보장수준이 낮은 현실에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폐지할 경우 공적 건강보험제도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는 이유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합헌’이라는 판정을 내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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