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이래서 투쟁할 수 밖에 없습니다

농성장취재]이원석 한국통신산업개발노조 위원장

전경련, 금감위, KT의 하늘로 솟은 빌딩들이 즐비한 여의도 입구에 비닐을 칭칭 동여 멘 천막이 있다. 전경련 앞, 버스정류장을 끼고 있는 이 천막에는 한국통신산업개발노동조합이라는 낯선 깃발과 울긋 불긋 선전물들이 붙어 있다. 언 듯 통신시스템, IT관련 업종이 생각할 수 있지만, 이들은 KT건물관리를 해온 한국노총 산하 시설관리 노조이다.

여의도 농성장 정면 사진


"우린 이래서 투쟁할 수 밖에 없습니다!"
KT묵인아래, 불법주주 들어와
회사 설립 정규직 임금 많다고
전원 부당 정리해고 시키고..

이 곳이 내 직장이고, 내 가족의 생명 줄이라 생각했던 회사가 나보고 "너, 나가라" 할 때의 기가막힘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늘이 무너지는 그 맘을 다시 잡고 60여명의 조합원들이 남았다. 1월 31일자로 한국통신산업개발 정규직 전원이 정리해고 되고, 그들은 2월 15일부터 여의도 KT본사 앞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무기한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그게 벌써 26일(3/11)차에 이르고 있다.

비닐을 감아놔도 찬바람은 아스팔트를 따라 천막 안으로 새어든다. 두 개의 천막이 하나의 세트를 이룬 농성장. 곳곳에 붙어 있는 구호 선전물, 널려있는 양말과 옷가지들, 라면과 먹거리들..천막 안에는 그들이 보낸 시간을 보여주고 있다.

"회사가 적자라면 같이 살아야 하니까, 삭감이라도 하고 어떻게든 해 볼텐데..근데 이 회사가 진짜 흑자 회사거든요"

이원석 한국통신산업개발노동조합위원장은 분통을 터트리며 말문을 연다. 한국통신산업개발(KTRD)는 자본금 40억원으로 시작해 매년 매출액 2배 이상의 신장을 거듭하며 지난해 총매출액 1,5000억원과 당기순이익 65억원 이상을 거둔 알짜 기업이다. 이런 기업이 재정악화라는 허울로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KTRD는 97사업다각화 및 기업경쟁력 제고라는 명목으로 KT의 자회사로 설립됐다. 그리고 2001년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정책에 따라 '노사정위원회'의 합의하에 고용보장을 약속하고 KTRD를 매각했다.

그러나 주식매각 입찰 참여 업체 적격심사에 부적격한 e-미래통신(주)에 KTRD는 매각됐다. 당시 e-미래통신(주)는 자본금 10억여 원이 잠식된 상태로 자금 조달능력이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졸속 매각을 추진하며, 낙찰주식에 대해 불법 양수, 양도계약을 체결해 S&C와 신세대종합건설의 대납으로 주식을 재매도 했다. 자금이 부족한 업체의 주식인수는 불법 재매도로 이어졌고 KT가 묵인하에 이런 매각은 진행됐다. 이는 노사정합의사항에 위배되는 상황이었다.

농성장 주변 사진, 바람에 날리는 KT와 태극기가 상대적인 모습을 보인다.
"노동조합이라 회사랑 교섭을 하고 있는 과정에도 회사는 '10월치 받고 나가던지 퇴직 후 계약직으로 재입사 하던지 양자택일 할 것'을 요구하며 조합원들을 개별 접촉하더라구요"

"사실 회사가 1월 18일에 가협의안을 가지고 나왔어요"

연봉제 실시, 1월 24일 정리해고 철회, 세부내용은 추후 협의하자

해고예고 철회 할테니, 회사한테 명분으로 호봉제를 폐지하고 연봉제로 바꾸자는 안을 회사가 들고 나온 것이다. 노조가 동의할 수 있겠냐고. 회사는 그렇게 계속 노동조합을 시험하고 있었다.

"어떻 해요. 동의했죠. 정리해고도 철회한다는데.. 연봉제는 추후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노조는 18일 회의를 통해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사측에 전하고, 회사측과 24일 합의, 조인식을 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회사는 단 이틀만인 20일 '협의 결렬'을 일방적으로 통보해 왔다. 없었던 일로 하자는 거였다. 노조가 못받을 거라 생각했는데 임도도 삭감 하겠다고 하니 일방적으로 무효를 선언한 거다. 그리고 그 당일 나머지 정규직 조합원들도 해고 예고도 없이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당황스럽죠. 교섭 중이었고, 가합의안도 나온 상황이었는데.."

"어차피 법으로 하면 결국 지겠지만, 지더라도 손해볼게 없다. 소송시간은 벌 수 있고, 그 소송이 끝날 때까지 버틸지 못할 것 같은데.. 우린 돈이 있으니 변호사비도 충분히 댈 수 있다..."

오래간만에 이 위원장을 만난 사측의 임원은 이런 말을 이었다고 한다.

"어차피 이들에겐 노조 와해와 정규직의 정리해고, 비정규직 전환이 목표 였던 건데 너무 늦게 감을 잡은 거죠"
그제서야 회사의 속셈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고.

"노동조합 요구요? 뻔하죠. 불법해고자 원직복직시켜라, 협상 재개하라"

현재 남은 인원은 60여명 정도. 나이도 지긋한 분들이 농성장에서 생활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고.

"끝까지 갑니다. 날씨도 점점 따뜻해 지잖습니까. 연맹에서도 현안 사업장이 저희밖에 없어서 외부적으로 도움 좀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순하고 명료하게, 그 웃음 만큼 시원한 결과를 쟁취할 수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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