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법원이 지속적으로 정신지체 장애청소녀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김 모 씨를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하자 여성장애인단체들은 “정신지체를 지닌 여성장애인의 특성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어처구니없는 판결”이라고 반발하며,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에관한법률(성폭력특별법) 개정을 강하게 촉구했다.
“‘장애’ 자체가 ‘항거불능 상태’로 인정돼야”
특히 여성장애인단체들은 계속 논란이 되고 있는 성폭력특별법 제8조의 ‘항거불능 상태’에 대한 법원의 자의적인 해석을 비판하며, ‘장애’ 자체가 ‘항거불능 상태’로 명시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성폭력특별법 제8조는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 여자를 간음하거나 추행한 자’에 대한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부산고등법원의 판결에서 보듯 법원은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를 ‘항거불능인 상태’로 해석하지 않고 있다.
여성장애인단체의 연대체인 한국여성장애인연합(여장연)은 21일 성명서를 통해 법원이 “한국사회의 가장 약자인 여성장애인에 대한 인권을 보호하고, 법 정의를 실현하기는커녕 가부장적이고 남성적인 사고를 갖고 가해자의 입장에서 선고한 반인권적인 판결”이라며 이번 부산고등법원의 판결을 강력 비판했다.
또 성폭력특별법 제8조 ‘항거불능 상태’에 대해 여장연은 “법조인들의 장애특성에 대한 무지와 항거불능 조항에 대한 잘못된 법해석으로 말미암아 신체장애나 정신상의 장애 자체가 성폭력의 위기상황에서 자기방어를 할 수 없는 항거불능의 상태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며 “오히려 이를 현실적으로 입증할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속속 가해자에게 무죄판결을 내리는 조항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부산고등법원은 20일 판결에서 “(김 모 씨를)성폭력특별법으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였다는 것이 입증돼야 한다”고 밝히며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여장연은 “성특법 제8조에 언급 되어 있는 ‘항거불능’은 장애 그 자체가 이미 항거불능 상태이기 때문에 이를 입증해야할 이유가 없다”며 “이는 여성장애인 성폭력특별법 관련 조항의 모순을 보여주는 것이며 재판관에 따라 다른 판결을 내릴 수 있는 빌미를 주는 불합리한 독소조항으로 반드시 개정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당초 성폭력특별법 제8조는 여성장애인 성폭력 가해자의 가중 처벌과 피해여성의 적극적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조항이다. 이 조항이 만들어지기 이전까지 여성장애인에 대한 성폭력범죄에는 일반 형법이 적용되어 왔고, 비장애인들에 비해 인지․대처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인들은 그야말로 법과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이 조항이 오히려 피해 여성장애인들을 옥죄이고 있어 관련법의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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