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왼쪽부터 김세균 서울대 교수, 홀거 하이데 전 브레멘대 교수, 강수돌 고려대 교수 |
한국과 깊은 인연, 국정원으로부터 입국 금지 당하기도
홀거 하이데 교수는 독일의 좌파적 지성으로서, 한국에는 2000년 발간된 그의 저서 ‘노동사회에서 벗어나기’로 잘 알려져 있다. 1987년 한국에 처음 방문하여 87년 노동자대투쟁을 직접 경험한 이후 한국의 경제 발전과 위기, 노동자운동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다양한 연대 활동을 해왔다. 하이데 교수는 ‘노동중독’이란 개념을 통해 근대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노동자들이 폭력적으로 노동사회로 편입, 사회화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노동사회에서 벗어나는 것이 노동중독을 치유하는 길임을 강조했다. 74년부터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주로 동아시아, 특히 한국의 경제, 노동중독의 발생 및 사회경제적 측면을 연구했고 지난해 정년퇴임했다.
하이데 교수는 98년 9월 서울에서 개최된 ‘국제민중대회’(People's International Conference)에 참석해 “지구화시대의 연대”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고 폐회선언 작성에 참여해 한국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입국금지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 |
하이데 교수는 ‘노동중독’, ‘노동사회에서 벗어나기’라는 자신의 연구 주제가 형성된 과정과 자신의 저서들이 쓰여지게 된 배경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는데 이를 통해 독일의 정치적 상황이 하이데 교수의 행적에 직접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하이데 교수는 68혁명의 성과로 만들어진 브레멘대학에 교수로 재임하게 됐고, 70년대 독일의 반핵운동에 대한 비판적 분석 속에서 대안운동을 고민하게 됐다고 전했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이 어떻게 임금인상으로만 귀결됐는가?”
특히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흥미로웠다. 하이데 교수는 독일 브레멘의 조선산업의 쇠퇴가 직접적으로 한국 조선산업과 연계돼 있다는 사실에서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독일의 조선산업이 80년대 들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쇠락했는데, 그 원인을 찾아보니 일본과 한국으로부터의 값싼 공급이 주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며 이것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의 결정은 무엇을 통해 가능한가라는 문제의식으로 이어졌고 이후 한국 등 동아시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다.
하이데 교수가 한국의 노동운동과 자본주의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은 87년 노동자대투쟁의 경험에 의해서였다. 87년 7월부터 9월까지 한국을 방문한 하이데 교수는 자신 역시 울산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최루탄 연기를 마시면서 폭발적 노동자운동을 목격했는데, 하이데 교수는 “어떻게 그런 폭발적 운동이 임금인상으로 귀결이 된 것인지, 또 그렇게 많은 파업이 일어나고 임금인상이 되는데 한국 경제는 계속 성장하는지 의문을 갖게 됐다”고 밝힌다. 이런 한국에서의 경험은 하이데 교수가 ‘노동사회’, ‘노동중독’이란 개념적 틀을 형성하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원리의 운동으로
하이데 교수는 현재 독일의 정치상황을 비롯해 유럽의 상황을 되짚으면서 반세계화, 대안세계화운동이 새로워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층 노동자 민중이 스스로 기존의 틀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새로운 조직형식과 운동방식을 만들어야 한다”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세균 교수와 하이데 교수의 대담 전문이다.
먼저 참세상 독자들에게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 |
키일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같은 곳에서 석박사과정을 마쳤다. 박사논문 주제로는 ‘스웨덴의 장기경제계획’을 다뤘으며 63년, 64년 2년 정도 그 학교에서 연구원으로 있었다. 이후 73년까지 7년 동안 헤센주(州)의 지역경제정책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당시 헤센주는 사민당 정권이었는데 그 당시 정치가들에게 정치경제적인 자문을 해주는 연구소였다. 이 곳에서 개인적으로 지역경제와 정치에 대한 보고서를 많이 냈다.
이후 새로 만들어진 브레멘 대학에 지원해서 교수가 됐는데, 74년부터 공식적으로 브레멘대학 교수로 재임해서 작년에 정년퇴임했다.
브레멘대학에 지원하게 된 계기가 있었을 것 같다. 68혁명을 비롯하여 당시 독일의 정치적 상황도 큰 격변의 시기였을 텐데
브레멘대학의 설립과 내가 교수를 지원한 것은 68혁명, 60년대 말 운동의 영향이 매우 컸다. 브레멘대학 재임 초창기는 교수와 학생 사이에 상호 학습하는 과정이었어서 책을 쓰기보다는 주로 연구하고 토론하는 비중이 높았다. 70년대 초반은 68혁명 이후 시기기 때문에 조용히 앉아서 책을 쓰기보다는 정치적인 프로젝트를 하면서 논쟁하고 토론을 많이 하던 시기였다.
당시 정치사회적 상황을 얘기하자면, 60년대 말 독일에서는 반핵운동이 거셌고 68년 학생운동의 영향으로 반전운동이 일어났다. 학생운동과 노동자운동이 전체적으로, 또 숫자적으로만 보면 소수였긴 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굉장히 깊은 영향을 준 것이 사실이다. 68년 이전까지는 사회가 경직됐었고 껍데기와 같았다고 말할 수 있는데, 68년 이후 운동의 영향으로 사회 전반적인 심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런 운동의 결과 사민당이 지배하던 주(州)들, 그 중에서 특히 브레멘주(州)의 사민당이 학생혁명의 내용들을 수용하고자 함으로써 일종의 개혁정책을 실행했다. 그 노력의 결과 중 하나가 브레멘대학의 설립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는 교수를 지원했고, 브레멘대학의 교수가 될 수 있었던 배경으로 두 가지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데다가 지역경제정책에 관해서 연구소에서 7년 동안 근무한 경험이 있었다는 것이다. 즉 박사학위를 비롯한 전문적인 조건이 갖춰져 있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내 정치적 입장이 진보적이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학풍의 대학교수가 될 수 있었다.
한국에는 ‘노동사회에서 벗어나기’라는 저서가 소개돼 있는데, 당신의 저서 혹은 논문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앞에서 얘기했듯이 정치적 상황에 의해 처음에는 책보다는 작은 논문, 정치적 에세이 수준의 글을 많이 썼다. 당시 썼던 논문 중에는 스웨덴 좌파 사민주의 정책에 관한 이론이 많다. 또 이태리 볼로냐를 좌파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가 정권을 장악하던 시절이어서, 실제 볼로냐에 직접 가서 그 지역 좌파 사회주의자들의 정책을 논리적으로 면밀하게 분석하는 논문을 썼던 시기기도 하다.
70년대 말에는 반핵운동에 대해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논문을 썼었다. 당시 논문들을 정리한 것이 ‘노동사회에서 벗어나기’ 책의 일부로 들어가 있는 ‘인간과 자연의 상생과 연대’인데, 생태계 문제와 정치경제학적 문제를 결합해서 분석하고자 했었다.
정통 맑스주의를 넘어 생동하는 맑스주의로
70년대 하이데 교수는 정통 맑시즘과 새로운 맑시즘의 소통과 연대를 위해서 노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 유럽의 좌파적 지성과 관련해서 현재 상황을 설명해주길 바란다
70년대 말은 반핵운동과 더불어서 자본주의 사회의 대안을 찾는 새로운 운동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던 시기기도 하다. 70년대 말까지의 상황을 얘기하면 한편에선 정통 맑스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과 다른 한편에선 그들이 주장하는 맑스주의가 낡았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입장으로 가야한다는 사람들이 대립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 둘 사이에 소통이나 연대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현실이 본인으로 하여금 둘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정통맑스주의 입장에선 맑스를 넘어서는, 새로운 운동의 모색을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적 경향성을 띠었다고 비판했고, 새로운 운동을 이야기하는 쪽에서는 상대방을 낡아빠졌다고만 비판했다. 난 양쪽 다 의미 있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고 이런 고민은 내 연구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맑스코뮤날레에서 발표한 논문에도 언급됐듯이, 맑스의 위기이론, 공황이론과 관련해서 맑스가 얘기했던 바를 경직적이고 훈고학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어온 것이 사실이다. 한편에서 이를 비판하면서 역사사회적 의미와 맥락에서 맑스를 해석하고, 진보적으로 노력하는, 생동하는 맑스주의가 새로운 흐름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본인이 중독이론 등의 이런 얘기를 하면 맑스주의와 프로이트를 연결하는 부르주아적인 입장이 아니냐는 비판이 아직도 나온다. 여전히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통 맑스주의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입장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이 임금인상으로 귀결된 것에 주목”
![]() |
당신은 유럽 학자들 중 어느 누구보다도 한국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표명해 왔고, 한국에도 여러 차례 방문하기도 했다. 어떤 동기에서 한국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전공영역과 관련해서 지역경제, 지역정책 쪽을 연구하다 보니 이와 밀접하게 동아시아와 관련된 연구를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브레멘은 전통적으로 항구도시고, 조선산업이 전통적으로 융성했던 곳이다. 그런데 80년대에 와서 브레멘의 조선산업이 더 이상 회생 불능할 정도로 상당히 쇠락했다. 왜 그렇게 됐을까를 고민하게 됐고, 주된 원인이 수요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일본, 한국으로부터 값싼 공급이 계속됐기 때문이란 것을 발견했다. 따라서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란 문제제기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80년대 내 학문적 분석의 주요한 화두는 그런 문제로부터 비롯됐다. 당시 한국 유학생을 만나게 되면서 개인적 관심을 갖고,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그러던 중 87년 친분이 있던 교수의 초대를 받아 처음 한국을 방문하게 됐다. 방문한 시기가 7월부터 9월까지 두 달이었고, 두 달이란 기간은 짧을 수도 있지만 한국의 운동사 중 굉장히 중요한 시기라고 알고 있다. 6월항쟁 직후였고 7월부터 노동자대투쟁을 직접 목격한 것이다. 실제로 울산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에 동참해 최루탄 연기를 마시며 함께 싸우기도 했다.
87년 한국의 노동자대투쟁은 중요한 질문을 내게 던져주었다.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노동자대투쟁이 결국 임금인상으로 귀결됐다는 점. 그리고 노동자들의 많은 파업이 있었음에도 지속적으로 수출이 증가됐고 경제성장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왜 그렇게 됐을까?'가 나에게 화두로 등장하게 됐다. 그런 고민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향후 10년 동안 브레멘대학에서 연구를 속행했다.
“노동중독,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체제 재생산의 매개체 돼버려”
그런 고민 하에 당신이 이룬 이론적, 학문적 성과와 결론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한다면. 현대사회에 대한 당신의 진단과 새로운 주체성형성의 문제가 거기에 포함되는 것 같다. ‘노동사회’나 ‘중독사회’ 등의 개념도 설명해달라
최소한 90년대 중반까지 학문적으로 끊임없이 되풀이했던 질문은 어째서 수많은 파업과 높은 임금지불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가능한가란 부분이었다. 이것이 노동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노동하는 인간의 주체적인 측면에서 설명이 가능할까. 내 학문적 노력은 이를 끊임없이 되묻는 과정이었다. 명백한 것은 어느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한국 노동자들이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과, 그럼에도 그것을 넘어서서 얘기할 수 있고 얘기돼야 하는 것은 ‘왜 높은 임금인상에도 불구하고 높은 성장률과, 수출증가를 이룰 수 있는 것인가’, ‘왜 노동자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생산성을 일구어 낼 수 있는가’라는 부분이다.
![]() |
사회적 차원과 개별적 차원을 연결하려는 학문적 노력 속에서 노동중독이란 개념을 중심으로 연구하게 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들이 자본주의 사회를 재생산해주는 하나의 매개 고리, 매개체가 되는 과정에 노동중독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학문적으로 확신하게 됐다.
이런 맥락 속에서 2001년 김진균, 강수돌 교수 등 한국학자들과 독일학자, 이태리학자들이 브레멘대학에서 국제 워크샵을 갖고 ‘대중 현상으로서의 노동중독’이라는 책을 독일에서 출판하기도 했다. 또 하나 한국에서 출판된 ‘노동사회에서 벗어나기’도 같은 문제의식과 내용을 담고 있다.
"독일 노동운동 중앙집권적, 관료적인 면 있다“
68혁명 당시 프랑스, 이태리와는 달리 독일은 노동자의 참여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이태리, 프랑스에 비해 노동자들의 참여가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68혁명 당시 이태리와 프랑스는 상당히 유사했고 독일은 달랐었는데. 그 이유는 처음부터 이태리나 프랑스는 중앙집권적 노동운동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은 중앙집권적 권력을 가진 노동운동이 오랜 시간 존재해왔고, 사민주의 노선 속에서 질서정연한 체계를 가졌다.
그래서 독일 노동운동은 학생운동을 부르주아적이라고 비난하면서 반핵운동, 반전운동을 비롯한 반권위주의 운동을 비판하고 배제한 경향이 있었다. 노조운동은 오히려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해서 군수산업을 지켜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사민주의적 경향성을 강하게 띠면서 노동자를 위한다는 운동들이 자본을 위한 전략에 그대로 포섭하는 식으로 가게 됐다.
물론 당시 노동조합운동 안에서도 비공식파업(와일드 스트라이크 : 노조의 승인 없이 하는 비합법적인 노동쟁의)이라 할 수 있는 노조중앙집행부에 반하는 운동들이 꽤 있었지만, 탄압받거나 무시당했다. 상대적으로 이태리, 프랑스는 와일드스트라이크가 활성화됐고 중앙집권성이 덜했기 때문에 68혁명 당시 노동운동의 참여가 더 많았다고 볼 수 있다.
조금 다른 문제지만, 한국에서 독일로 노조운동을 견학하러 가는 사례가 상당히 많다. 이들은 독일노동운동이 성공했다는 이유로 오는데, 우려스러운 것은 현장의 운동을 배우기보다는 관료화되고 중앙집권적인 중앙집행부만 방문해서 그 사람들의 얘기만 듣고 간다는 점이다. 그런 견학의 한계는 상당히 크다.
김세균, “한국, 산별노조 건설 모델을 독일에서 찾고 있는데”
중요한 지적이다. 아시겠지만 최근 한국에서는 노동운동의 위기론이 나오고 있는데, 일각에선 이 위기의 타파를 산별노조 건설에서 찾고 있다. 산별노조 체제를 모색하면서 주로 삼는 모델이 독일이다
독일에 가서 산별노조 시스템을 학습하는 거 자체를 회의적으로 보거나 문제제기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대개 한국에서 견학 가는 분들이 산별노조의 집행부를 만나보면 노조전체, 노동자운동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데 있다. 중요한 것은 현장의 기초단위와 토대를 이루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생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아까 얘기했던 68혁명 당시만 해도 와일드스트라이크라고 하는, 중앙집권적 노선과 다른 길을 걸으면서 적극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움직임들이 있었다. 그런 논리와 형식을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달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의회 선거에서 집권 사민당이 참패하고 슈뢰더 총리가 조기총선이라는 승부수를 띄운 것으로 안다. 이를 비롯해서 전반적인 독일의 현재 정치상황을 얘기한다면
현재 독일의 정치적 상황은 경제적인 현실의 반영으로 나타나고 있다. 독일의 경제현실이란 것은 역으로 세계화, 지구화라는 세계 경제상황으로부터 규정받고 있다. 한 10년 전부터 이런 경향이 강한데 독일이 세계화된 경제시스템 속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발전하려면 특별한 전문화, 특이화 등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되어 왔다. 기계, 자동차, 화학산업, 제약산업 등 이런 중요한 경쟁력 있는 산업에만 집중하고 다른 것은 제쳐두자, 포기해도 좋다는 경향성이 팽배하게 존재한다.
이러한 '집중과 선택'이 전 사회적으로 이뤄지고 이 속에서 전문화와 합리화를 해내자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그러다보니 선택과 집중에서 배제된 분야에서는 잘려나가는 실업자가 많아지고, 선택된 분야에서 조차도 합리화로 인해 실업자가 생겨 고실업 상황이 만성화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수출분야의 비중은 높아지고 겉으로 보기에 수출이 잘되고 활성화됐지만, 내수는 침체되고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으로 대량실업이 만성화 되니까 정부 입장에서는 재정적 수입은 줄어들고 실업수당 등 재정수출은 늘어서 재정적자가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어떻게 정부 재정의 균형을 이룰 수 있나란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 지금 사민당이 제2기 정부에 들어왔는데 이들이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사민당이 실업률을 효과적으로 낮춰줄 것이라고 국민들이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민당 정부의 경제정책은 전형적으로 기업을 위해서 세금을 낮추고 노동자에겐 임금을 낮춤으로써 좀 더 수출지향적인 경쟁력을 높이고, 이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전략이다.
독일, 보수 기민련이 집권한다 해도 사민당과 별반 차이 없을 것
그러나 결과적으로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이 드러났고 임금을 줄이다 보니 내수 시장이 위축되는 결과만 가져왔다. 국민들은 사민당 정부에 대해 굉장히 불평불만이 높아졌는데, 그 불만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지금 당장 총선을 실시하면 보수야당인 기민련(CDU)이 집권 사민당(SPD)보다도 10% 이상 더 많은 지지를 얻을 거란 추론이 가능할 정도다.
김세균 교수가 말씀하셨듯이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에서 2주 전에 지방의회 총선이 있었는데, 선거 결과 거기서도 보수 기민련이 사민당보다 최소 10% 이상 지지율이 높게 나왔다. 그 지역은 흔히 ‘라인강의 기적’의 중심지로서 그 동안 노동자계급의 지지로 1966년 이후 사민당이 패배한 적이 없는 곳이라는 점에서 현 독일이 심각한 상황에 직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거결과를 보고 슈뢰더 총리는 현재 하원을 조기해체하고 올 가을에 연방하원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얘기하고 있다.
독일의 상원은 이미 보수가 장악한 상황에서 하원마저 기민련에게 넘겨주니 실질적으로 정부가 마비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판단이다. 그런데 문제는 메르켈 기민련 당수가 올 가을 총선에서 새로운 총리가 될 가능성이 90% 이상으로 판단되고 있다. 메르켈이 총리가 되면 독일판 대처 수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그렇게 되면 보수 기민련 정부가 권력을 장악하게 될 텐데, 웃지 못 할 점은 그래도 기존 사민당 정치경제전략과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는 점이다. 다만 노동자 서민에게 더욱 더 가혹한 정책을 실시할 것이라는 점만 달라질 것이다.
만약 새로운 기민련 정부가 들어서서 정책을 펼친다고 했을 때, 예상가능한 사회적 귀결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전문화한 영역들의 경우 해외의 저임금을 바탕으로 수출이 가능했다. 만약 기민당이 집권하게 되면 임금수준을 더 저하하고 사회보장도 축소할 것이기 때문에 사회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굳이 해외의 저임금을 찾아나가지 않고 국내의 저임금을 가지고 경쟁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사민당 집권 시절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일자리 창출을 해 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또 내수 침체도 어느 정도 회복할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과연 효과를 가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럴 때 과연 노동자나 사회 전체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질문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되면 급진적 운동이 고조될 가능성 높다고 예측해 본다.
“좌파 진영조차도 민족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말씀하신 독일의 정치적 상황이나 경제적 상황이 한국 상황과 대단히 비슷해서 놀랍다. 독일도 연관되어 있지만, EU 헌법이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부결됐다. 반대가 성사된 것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반대하는 좌파와, 한편으로 인종주의적 극우세력들의 합작으로 해석된다. 이를 어떻게 평가하나
유럽연합 현법과 관련한 제반 논쟁의 근본은 결국 민족주의 경향으로 보인다. 극우파가 가지고 있는 입장의 예는 “우리의 아름다운 프랑스가 독일에 의해서 통치될 가능성이 높다”는 식의 두려움이다. 이 민족주의적 두려움의 내용은 결국 낯설음, 다른 나라에 대한 두려움, 내 문화와 땅, 집 등을 빼앗길까 하는 두려움이다. EU헌법이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유럽을 지향하는 것이기 때문에 극우파들의 입장과 달리 진보적 좌파진영도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국경이 철폐되고 나라 간 이동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인간을 위한 유럽이 아닌 자본을 위한 유럽이 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바로 그런 진보적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좌파 진영조차 민족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점이 있는 것 같다. 좌파들은 유럽연합 수준에서보다는 각 나라가 고유의 사회주의 정책을 실현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문을 연다고 해도, 유럽이 공동체가 된다고 해도 민족주의적 경향성을 띠는 정책을 실시하려는 생각이 있다고 보인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원리의 운동 만들어야”
마무리하는 의미로 전체 반세계화 운동, 대안적 세계화 운동에 대한 평가를 부탁한다
반세계화 운동 내지 대안운동이란 것은 내가 볼 때 "이대로 갔다간 세상이 더욱더 파괴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그 기저에 가지고 있고, 또 한편 우리가 노력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주체적 의식이 깃들어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토론해야 되는 문제는 그런 운동을 통해 우리가 새롭게 창조하려는 세상, 크게 보면 인간적 세상 혹은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세상이란 것을 열어낼 수 있는 힘이 어떻게 하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될 수 있을 것인가하는 문제다. 이 문제는 아직까지 명쾌한 해답이 제시되지 못했다.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노력들이 계속 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신사회주의 이론가들, 트로츠키주의자들 등 기존의 중요한 분파를 형성했던 사람들이 아직도 중심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려스럽다. 그렇지 않은, 기층을 이루고 있던 노동자 민중들이 다른 내용과 다른 조직 형식으로 새로운 운동을 시도하고 있는 바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이 아쉽다.
대안적 운동형식이나 조직형식을 생각한다면 처음부터 초국적으로 준비하고 진행하는, 기존의 틀을 처음부터 뛰어넘는 방식으로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구체적으로 설계도를 드릴 수는 없지만. 함께 토론하고 노력해야 할 문제다. 기존의 운동을 뛰어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기회가 된다면 새로운 운동의 조직형식, 운동의 형식에 대해서 시간을 갖고 토론해보고 싶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