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소수자들 거리로

제6회 퀴어문화축제 하이라이트 ‘퀴어퍼레이드’ 열려


“오늘 하루만큼은 ‘나 동성애자요’라고 외치며, 거리를 맘껏 활보하고 싶습니다” 한 동성애자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난 5일, 365일 숨죽이고 사는 한국 사회 성적소수자들이 그들만의 ‘끼’를 맘껏 발산하며 거리로 나섰다. 지난 달 27일부터 열리고 있는 ‘제 6회 퀴어문화축제_무지개 2005’(퀴어문화축제)의 하이라이트인 퀴어퍼레이드 행사가 열린 것. 퀴어문화축제 조직위 주최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성적소수자 뿐만 아니라 이성애자도 함께 하는 축제의 장으로 마련되었다.

“시선의 폭력 없는 세상을”

이날 본 행사, 퍼레이드에 앞서 1시부터 종묘공원에서 진행된 사전행사에는 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동성애자인권연대,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등 성적소수자 인권단체들의 홍보 부스가 차려졌고, 단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성적소수자 인권 홍보 활동을 펼쳤다. 한 에이즈관련 단체 회원들은 막대사탕 모양을 한 ‘막대콘돔’을 나눠주며, 에이즈예방과 감염인 인권 홍보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또 다른 한 켠에 차려진 ‘분장실’에서는 퍼레이드 참석자들을 위한 즉석 분장이 분주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눈썹을 더 진하게 그려 달라”고 요구를 하는 한 남성은 “평소에 여자보다 더 예뻐 보이고 싶었다. 이런 날 아니면 언제 한번 해 보겠냐”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날 각양각색의 분장을 한 참가자들 중에 단연 눈에 띄는 이는 전신에 바디페인팅을 한 최연지 씨. 그는 얼굴부터 발끝까지 울긋불긋한 바디페인팅으로 다른 참가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3시간 반에 걸쳐 분장을 했다는 최 씨는 “별 의도 없이 했는데, 하고 나니 먼지 같네요. 그냥 ‘먼지요정’이라고 하죠”라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이날 행사에 참가했다는 최연지 씨는 “속옷 입는 것이 싫어도 입어야 하고, 여성의 경우 겨드랑이 털을 깍지 않으면 아름답지 않은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며 “사소한 것들도 항상 다른 이들의 시선을 고려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시선의 폭력이 너무 싫다”며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폭력을 짚었다. 그는 자신이 지적한 ‘시선의 폭력’에 저항하기라도 하듯 가슴부위를 드러내는 파격적인 의상을 선보였다.

성적소수자 인권단체들의 홍보 활동이 진행되는 동안 종묘공원에 차려진 무대에서는 공식사전행사가 진행되었다. 공식 사전행사는 이번 퀴어문화축제를 축하하기 위해 방한한 태국 트렌스젠더 댄스팀 ‘깁미파이브(Gimme Five)’의 화려한 공연으로 시작되었다. 이어 여성 듀오의 립싱크 공연, 이어 참가자들과 함께 율동을 배우는 시간도 마련되었다.


“성추행범을 공개수배합니다”

한편, 이날 사전행사가 진행되는 도중 행사장인 종묘공원에 때 아닌 성추행범 ‘공개수배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퍼레이드 준비 중인 참가자들로 분비는 틈을 타 트렌스젠더 여성과 여장남자들을 만지고 돌아다니는 취객 아닌 취객이 등장한 것. 이에 한채윤 조직위원장은 무대에 올라 용의자 ‘공개수배’에 나섰지만, 용의자 ‘검거’에는 실패했다.


이날 사전행사 장소인 종묘공원은 파고다 공원과 함께 나이 많은 남성들이 자주 찾는 곳 중 하나. 남성동성애자의 여장 분장을 보고 있던 한 남성 노인은 “왜 여기서 저런 짓을 하냐, 이런 행사를 허가해주는 정부가 미친 것”이라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때로는 성폭력적인 말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내뱉는 모습들도 눈에 들어왔다. 이들의 거침없는 행동은 여기서 머물지 않았다. 이들은 ‘깁미파이브’ 팀원들에게는 노골적인 ‘관심’을 보이며,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방송에서 동성애자들 희화화하지 말기를”

여성이반 풍물패 ‘바람소리’의 풍물공연을 끝으로 이날 사전행사는 마무리되었고, 3시 40분부터 성적소수자들의 상징인 무지개 깃발을 선두로 본격적인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600여 명의 이날 참가자들은 종묘공원을 출발해 탑골공원을 지나 종로 2가 씨티은행 앞 까지 퍼레이드를 벌였다.



이날 퍼레이드에는 단체 회원들뿐만 아니라 개인자격으로 참가한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개인자격으로 참가한 성적소수자들의 경우에는 단체 회원들보다는 소극적으로 퍼레이드에 참가하고 있었다. 올해 처음 참가했다는 남성동성애자 남이 씨는 “축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직접 퍼레이드 행렬에 참가한다는 것은 부담스럽다. 아는 사람이 보기라도 한다면, 어떡하냐”며 “좀 떨어져서 이렇게라도 이번 축제에 참가하는 것도 좋다. 처음이지만, 자긍심이 느껴지는 축제”라고 말했다. 자신을 ‘보수적인 사람’이라고 밝힌 그는 성적소수자로서의 소망을 묻자 “방송에서 동성애자들을 가지고 노는 것 같다”며 “다른 건 몰라도, 방송에서 동성애자들을 희화화하는 프로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퍼레이드가 진행되는 동안 ‘친구사이’ 라인댄스팀과 ‘깁미파이브’가 화려한 율동을 선보였고, 방송차량 위에서는 방송인 홍석천 씨를 비롯해 여장남자(드랙퀸)들이 그들만의 ‘끼’를 한껏 발산하며 축제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퍼레이드 행렬이 종로 탑골공원을 지날 무렵 퍼레이드의 테마곡인 ‘빌리지 피플(Village People)’의 ‘YMCA’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퍼레이드의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참가자들은 ‘YMCA’에 맞춰 율동과 노래를 따라하며, 자긍심의 축제를 즐겼다. 또 참가자들은 ‘학교에서 이반검열 중단’, ‘우리에게 새로운 주민번호를 달라’, ‘성적지향에 의해 차별받지 않는 평등한 노동’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성적소수자들의 다양한 요구들을 전했다.


공동의 추억, 퀴어퍼레이드

이경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는 이번 퍼레이드에 대해 “아쉬운 점이 있지만, 점차 여성들의 참여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의미 있다”며 “내년에는 좀 더 많은 여성들과 또 다양한 성적소수자 운동들의 쟁점들이 축제를 통해 표출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한채윤 위원장은 참세상과의 인터뷰에서 “동성애자로 살아가려면 생일처럼 즐거운 날들이 있어야 한다. 살아가면서 추억도 생겨야 하고, 그런 것들이 개인적 추억이 아니라 커뮤니티 전체의 추억으로 있어야 한다. 퀴어문화축제는 그 공동의 추억을 만들어 내는 작업”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날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한 이들은 목소리를 높여 ‘YMCA’를 따라 불렀다. 노래 가사처럼 이들은 우울하고, 절망스런 날을 보냈겠지만, 이 날 만큼은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내고 맘껏 즐거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