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 위기 논쟁, 제자리걸음 계속하나

한국산업사회학회 주관 '노동운동 위기론' 토론회 열려

최근 노동운동의 '위기' 진단과 이의 극복방안에 대한 논쟁이 무성한 가운데 6월 17일 '노동운동 위기론 쟁점토론회'가 민주노총 1층 강당에서 개최됬다. 한국산업사회학회, 한국산업노동학회, 대안연대회의가 주최한 이 토론회에는 이병훈 중앙대 교수와 노중기 한신대 교수가 주제 발표를 하고 윤진호 인하대 교수, 김성희 비정규노동센터 소장, 박영선 참여연대 사무처장, 임성규 전진 의장, 박성인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소장 등이 지정 토론자로 나섰다.


"새로운 조직모델과 대공장의 각성, 사회적 교섭이 중요"

이병훈 교수는 노동조합 운동의 평가와 과제를 '노동양극화' 문제로부터 출발한다. "우리 사회의 노동양극화는 노동자 계층 내 기업규모, 고용지위 및 성별의 분절성에 따라 근로조건의 모든 지표에서 차별구조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는 것. "한편으로 취약노동자집단이 상대적으로 과밀화되고, 다른 한편으로 상향 직업이동의 기회가 차단됨에 따라 심각한 사회불평등의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는 견해이다.

  이병훈 중앙대학교 교수

이같은 노동양극화의 원인으로는 정부와 자본에 의한 원인, 즉 개발독재와 외환위기, 신자유주의 경제개혁 정책과 원청 대기업의 수익독식 같은 외부적 원인과 '노동조합의 연대성 위기'라는 내부적 원인을 꼽았다. 이병훈 교수는 현행과 같은 기업별 노조체계에서는 연대성의 위기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보았으며, "중소사업장 및 비정규 노동자들의 대다수가 미조직되어 있는 가운데, 기업별 조직체계에 안주하는 대공장 노조들의 폐쇄적인 실천구조는 노동양극화와 연대성 위기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병훈 교수는 노동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한 노조운동의 대응방식인 산별조직으로의 전환과 사회적 교섭에 대해서도 평가했다. 기업별 조직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당수의 대공장 노조들과 형식적으로만 산별로 조직되어 있는 실정 등 산별 전환에 드러나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기업별 교섭구조를 넘어서야 함을 주장했다. 또한 최근 산별교섭 과정에서 드러난 몇 가지 충돌사례를 들어 "조직 노동자의 특수이익에 복무해온 기업별 노조체계의 관성이 사회연대적 교섭구조로의 재편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회적 교섭에 대해서는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민주노총은 장외 투쟁노선을 고집하는 편협성을 보임으로써 실질적인 정책 협의의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우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전투적 조합주의를 재구성해야"

  노중기 한신대학교 교수

노중기 교수는 위기의 '현상'으로 민주성의 위기, 연대성의 위기, 자주성의 위기를 꼽았다. '민주성의 위기'로 보여지는 노조 비리 문제는 "대사업장 노조의 문제라기보다는 기업별 노조체제에서 발원하는 문제"라고 진단했다. 변화된 노동체제에 대응하지 못한 기업별 노조 조직체제의 한계라는 것이다. 현중노조 사태와 '대기업 이기주의'로 표현되는 '연대성의 위기'는 장기적, 구조적 위기라는 점에서 어려운 문제이며 "일차적으로 노동계급의 구조적, 조직적, 이념적 역량의 취약성을 반영하고 있는 위기"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연대성의 위기는 위기인 동시에 기회이므로 국가 자본의 '대기업 이기주의', '노동귀족' 이데올로기에 맞서 계급적 연대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주성의 위기'는 사회적 교섭이나 노사정위 참가 등에서 파악하고 있다. 노사정위 참가 문제에 대해 좌우간 대립하거나 논박하기 이전에 내부 갈등을 야기하는 구조 자체를 보아야 하며, 내부를 분할지배하고 견인해내는 자본의 통제장치인 노사정 합의기구의 성격을 먼저 비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중기 교수는 이러한 위기가 파생된 '구조'를 해명하기 위해 '전투적 조합주의'에 대한 평가를 제시한다. 전투적 조합주의에 대한 비판론과 옹호론이 존재하지만 1987년의 노동운동 평가를 준거로 폐기하거나 전환하자는 입장은 오류가 있다고 보고 있다. 비타협적 계급적 대립이 장기적으로는 경제주의적 실천으로 고착되었던 경향을 비판하며 계급타협과 참여로의 전환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전투적 조합주의는 단위노조를 넘어서는 전국적 연대의 운동노선이었기 때문에 계급적 연대를 지향했던 정신이 포함되어 있고 따라서 우리는 그 개념을 버릴 것이 아니라 재구성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고 말했다.

"위기가 아닌 발전과정일 뿐"

  윤진호 인하대학교 교수

이어 첫번째 지정토론자로 나선 윤진호 인하대 교수는 "산별노조 건설 과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은 위기가 아니라 발전의 과정일 뿐"이라며 "노조 비리 등의 문제도 도덕적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하며 전반적으로 심각하지 않으므로 위기와 연결시키는 것은 비약"이라고 일축했다. 자본의 노동에 대한 분할지배도 그 자체로는 위기의 요인은 되겠으나 뛰어넘을 수 있다고 본다. 윤진호 교수는 '대변의 위기'라는 개념을 제시했는데, 현재 노동운동이 일부만을 대변하고 있고 이것이 지속되면 위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회적 교섭'을 둘러싼 대립에 대해서는 "'노사정위 활용론'을 말하면 어용, 노사협조주의라고 몰아붙이고, '전투성'을 주장하면 좌익소아병으로 치부하는 현재의 토론은 건강치 못하다"고 비판하고 "체제에 매몰되는 것을 끊임없이 경계해야 하지만 극단적 이데올로기로 대중과 고립되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중기 교수가 제시한 '전투성'에 대해서는 "당연히 유지해야 하나 회귀는 곤란하고, 전투성 자체보다 전투성 '일변도'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공장노조에 대한 무조건적 비판 안돼"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이병훈 교수가 주장한 '노동시장 양극화와 노동운동의 관련성'에 대한 해석과 관련하여 '임시일용직 비율 추이'라는 표를 제시하면서 "전투적 노조와 비정규직 증가의 상관관계는 외형적으로 전혀 입증되지 않았다"며 "노조 변수는 부차적"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내부원인으로 든 '연대성 위기'에 대해 대공장노조에 대한 비판만 있고 대공장노조의 고민과 설명은 없다고 말했다. 또 "기업별체계에서 산별체계로 전환하는 과제의 중요성이 부정되어서는 안되지만 모든 문제의 근원을 대공장노조로 몰아가고, 산별노조체계를 만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생각해서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노중기 교수가 제시한 '자주성의 위기'에서는 "노동운동의 정파간 내부 갈등 문제를 다루는 것이 위기의 양상에 중요하므로 빼놓고 진단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주체들의 위기 인식 태도가 문제"

  박영선 참여연대 사무처장

"시민운동의 입장에서 노동운동에 대한 바램을 말씀드리겠다"고 전제한 박영선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시민사회단체가 보는 고민과 연관되어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은 '연대성의 위기'"라며 "경제적 이해에 충실하는 것만이 노조의 역할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갖고 있는 지대한 역할이 있기 때문에 세력으로서 의미가 있고 그래서 연대성의 위기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위기를 인식하는 주체들의 태도가 대단히 '나이브'하다"라고 지적하고 "'개별 사업장 문제다', '정규직 노조의 인식이 소홀하다'는 말로 위기에 대해 변명하지 말고 지도부의 답변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중기 교수에게는 "사회적 대화를 정부가 주도한다고 하여 우리가 관철할 것은 없는가. 목표를 말하지 않고 (노사정위라는) 틀에 대해서만 부정하고 있는데 자본에 대한 적대성만으로 전투성이 담보된다고 생각하는가"라고 질문하기도 했다.

"사회공공성투쟁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 것"

  임성규 평등사회로전진하는활동가연대(준) 의장

'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연대(준)'의 임성규 의장은 "'위기'를 이야기하려면 노동운동 원래의 경로와 목적지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노동운동의 전략적 목표로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 간에 차별과 소외, 통제와 지배가 사라진 평등하고 자율적인 세상"을 내놓았다. 임성규 의장은 '87년 이후 노동운동의 변화추이'라는 표를 제시하고 노동자들의 수는 급격히 증가했는데 조직노동자의 비율은 반대로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민주노조와 어용노조의 구분 자체가 모호해지고, 구조조정 방어투쟁이나 제도개악 저지투쟁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다. 임성규 의장은 위기의 큰 원인으로 '노동자 철학의 빈곤'과 '세계자본의 위기'를 들고 이의 대안으로 '사회공공성 투쟁의 강화'를 주장했다. 이를 위해 담론만이 아닌 사회임금,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에 대해 총체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충분히 위기 극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비정규투쟁으로 '기획'된 위기 돌파해야"

  박성인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소장

박성인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소장은 2004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위기론'이 "현실을 반영한 측면도 있지만 의도, 기획된 측면도 있다"고 본다. 따라서 "반성이나 통찰을 할 수는 있지만 현재의 위기 논쟁은 대단히 수세적이며 정권의 이데올로기 공세 속에서 돌파하기 쉽지 않으므로, 위기 논쟁을 빨리 매듭짓고 오히려 발전적인 전망을 논의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위기 논쟁의 특징으로는 △위기의 원인을 '내부'로 돌리는 특성이 있어 분할, 양극화 등 자본 자체의 문제가 은폐되고 있는 점 △위기의 공세가 결국은 노동자계급 중심성, 즉 '전투적 좌파'를 겨냥하고 있음 △정권이 추진하는 '사회적 대타협' 구도에 그 목표가 맞춰져 있음 등을 제시했다. 또한 2000년대부터 짧은 시간 동안 폭발적으로 진전하고 있는 비정규투쟁을 거론하며 "노동운동은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투쟁으로 위기를 극복하며 진전해 왔고, 이제 또 새로운 주체들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라며 공세적인 전선을 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의 사회로 나선 이원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각자 주장하는 위기의 내용이 다르고 원인과 양상이 다르긴 하지만, 과거와는 다른 위기의식이 있다는 점은 통일적이다"라고 정리하고 "극복 대안 마련에 미진하여 또다시 논쟁점을 펼치는 수준이었다"고 평가했다. 또 "이제 향후의 위기 논쟁은 소모적이어서는 곤란하고 정파적 논리를 배제한 실천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며 "노동운동이 발전을 촉구하고 자성하는 계기가 되는 동시에 공세적인 자세로 전환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으로 토론을 마무리했다.

실제로 몇몇 참가자들은 '위기론'이 정착되는 것을 경계하고 반복되는 위기 논쟁에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내기도 했지만 '원인' 진단이 다른 상태에서 극복 방안을 당장 논의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노동운동 안팎에서 1년 여간 계속되고 있는 노동운동 위기논쟁이 어떤 방향으로 전화할지 주목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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