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 마리아 엘레나 마르티네스는 본인의 출신 국가인 멕시코 지역의 농민운동에 관해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 |
멕시코에서는 1910년과 1938년 동안에 혁명이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멕시코의 사회서비스, 무상교육, 토지 개혁의 부문에서 많은 성과들을 남겼다. 이 혁명에 농민들이 참여하게 된 배경에는 그들이 토지들을 얻을 수 있는, 공동체가 공유하는 에히도(ejido) 형태의 토지소유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후 1938년부터 1968년에 이르는 시기는 내부적으로 내부발전기(Internal Development)였다. 산업을 재국유화 하면서 멕시코 내의 발전을 꽤했던 시기로 전기, 석유 등 미국 기업들의 국유화도 진행됐다. 이런 멕시코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간섭하지 않았던 배경에는 세계 대전과 냉전 등 세계적인 정치구도 상 미국이 간섭할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멕시코에서는 학생, 노동자 운동이 강화됐고, 60년대에 들어 사회적인 조직화가 진행됐다. 권리를 주장하고, 임금 인상을 주장하는 등..
그러나 이후 1968년 사회적으로 억압적인 분위기가 형성됐고, 미국도 멕시코 정부가 통제력을 유지하게 하기 위해 개입 하기도 했다. 그리고 73년 전 세계적으로 석유 파동이 일었고, 석유 회사로 돈이 집중되다 보니 모든 나라에 공격적으로 돈을 차관해 주기 시작 한다. 멕시코 정부는 1-3%라는 싼 이자로 돈을 어거지로 떠 맡게 됐고, 1980년대 멕시코에는 석유가 많아 돈을 빌릴 이유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분위기 속에 엄청난 차관을 들어와 빌딩을 짓는 등 불필요한 공사들로 이 돈을 소비하게 된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이자는 13%에서 22%까지 급등했고, 저리에 차관을 빌려왔던 멕시코의 부채는 급증했다. 결국 이 과정에서 IMF와 세계은행의 영향력은 강화됐고, 멕시코에도 IMF 구조조정 정책이 시행되기 시작했다.
IMF는 첫 번째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고, 시장을 개방하게 하고, 국내 산업을 보호하는 각종 정책을 철회하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고, 정부 정책 목표가 가장 빠른 시일 내 외채를 상환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90년대 들어 상황은 더욱 악화 됐고, 1994년 헌법 27조에 보장되어 있던 에히도(ejido)의 토지공유제도 철폐됐고, 이는 나프타 협정(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을 맺게 되는 준비단계 였다. 나프타(NAFTA)는 토지사유제 도입, 교육 사유화, 관세장벽 철폐, 교육·의료·서비스의 사유화를 진행했다.
![]() |
이들이 94년 봉기를 시작하면서 전세계의 사회운동들이 결집을 했고, 10년 후 2005년 지난 7월에 '헌법을 개정해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철회 할 것'과 '멕시코 전 민중의 결집'을 호소하는 6차 선언을 발표했다. 이는 내년에 대선이라는 멕시코의 정치적인 조건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운동적 상황으로 결집되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고, 이 운동적 상황은 흥미롭게 지켜 볼 필요가 있다.
사파티스타의 투쟁에 있어 중요한 계기가 됐다는 27조에 대한 좀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한다
27조는 토지권리 박탈의 중요한 사건이다. 한국 사람들은 쌀이 주식이지만, 멕시코 인들에게는 옥수수가 주식이다. 그런데 이 토르티야(멕시코 지방의 둥글넓적한 옥수수빵) 옥수수 값이 덤핑으로 하락을 했다. 이로 인해 많은 사회적 사건들이 발생했는데 대대적으로 옥수수 농사를 짓던 농민들이 도산을 해 이농현상들이 발생했다. 농촌에는 여성과 아이들만 남고 대부분이 도시로 떠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는 유전자조작식물(GMO)의 유통 확산으로 인해 농촌, 농업이 파괴되는 현상을 보여준다. 멕시코에서의 옥수수는 단순한 주식이 아닌 문화의 상징이고, 정신적 산물이기도 하다.
또한 미국의 경우는 분산된 가족농이나 기업화나 대형화로 인해 농민 조직화가 쉽지 않지만, 멕시코의 경우는 전체가 가난하고 인구 밀도가 높기 때문에 조직화가 쉬운 편이다. 이런 경과는 사파티스타 운동이나 2003년 칸쿤 투쟁을 통해 드러나기도 했다.
60년대 말 이후 반민중적 정책들이 도입된 주요한 사회적 배경은 무엇이었나
이런 정책들이 도입된데에는 미국 유학파들의 악영향이 많다고 생각한다. 멕시코에는 남미 전역에서도 유명한 무료대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60-70년대에는 멕시코 엘리트들이 미국 유학이 붐이었고, 이들이 돌아와 시행한 주요 정책들을 맡게 되고, 실행한 정책들을 보면 '무조건적으로 근대화 하자'는 주장이 다수를 차지했고 구체적인 정책으로 나타났고, 악영향을 끼쳤다. 단적인 예로 80년대를 기점으로 멕시코의 모든 대통령은 미국의 유학파 출신이다.
내부발전기에는 대학등록금이나, 국제전화 비용도 공짜였다고 들었다. 그런 지원이 가능할 만큼 경제적 지원이 가능한 상황이었나
당시는 석유 및 천연자원들을 국유화 해 벌어들인 돈을 비용으로 활용했다. 혁명시기(38년) 이후 강력한 국가 위주의 정책을 썼기 때문에 가능했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