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출석한 삼성 2인자 이학수, ‘모르쇠’로 일관

X파일 내용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오히려 검찰 훈계

9일 오후 드디어 검찰에 출석한 이학수 삼성 구조본 본부장

  삼성신년회 헤드테이블에 이건희 회장과 함께한 이학수 구조본 본부장 [출처: 삼성그룹 홈페이지]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를 제외할 경우 삼성그룹의 2인자로 공인받고 있는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 겸 구조본 본부장이 ‘안기부 X파일’ 사건과 관련해 지난 9일 9시간 동안 서울중앙지검에서 참고인 및 피고발인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이학수 구조본 본부장은 지난 1997년 대선에서 100억원에 가까운 불법대선자금 지원 논의가 담긴 X파일 내용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모르쇠 작전’으로 일관한 것으로 알려져 향후 검찰의 대응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학수 구조본 본부장은 9일 오후 2시경 검찰에 출석할 때는 "국민 여러분께 여러 모로 걱정을 끼쳐드려 송구스럽다"며 테이프 내용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검사실에서 최대한 밝히겠다"고만 말했고 밤 11시 귀가 길에서는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성실히 조사를 받았다"고답했지만 실제 조사에서는 다른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독수독과론’ 제시하며 피해자 자처

10일자 서울신문은 서울중앙지검에 소환된 이학수 구조본 본부장의 답변 내용을 단독 보도했다. 서울신문에 따르면 “홍석현 주미대사와 나눈 대화(불법 대선자금 지원 논의)가 사실이냐.”는 검찰 신문에 “기억이 안 난다. 그런 말을 한 사실이 없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 신문은 이학수 구조본 본부장이 또 신문조서 말미에 “9년 전(8년 전을 오인한 듯) 일을 지금 얘기한다는 게 참담하다”며 “9년 전에 국가기관이 불법도청을 했고, 도청한 사람들이 자료를 유출해서 협박을 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학수 구조본 본부장은 공운영 전 미림팀장으로부터 X파일을 넘겨 받은 재미동포 박인회로부터 도청테이프를 대가로 금품 요구를 받은 사실에 대해서는 상세히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협박받을 당시 국정원에 신고를 했는데도 언론에 지금 보도돼 다른 국가기관인 검찰에서 조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참담하다”고 밝히며 불법으로 수집한 증거를 이용해 수사할 수 없다는 이른바 ‘독수독과론’까지 제시하며 검찰의 수사를 비판하기 까지 했다고 서울신문은 보도했다.

결국 자신들은 불법도청의 피해자일 뿐 불법 대선자금 지원은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인 셈이다.

자체 변호사 110명 지원받는 삼성의 ‘모르쇠’작전에 수사 난항 겪을 듯

참여연대 등의 고발을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기 위해서는 테이프에 담긴 이 부회장과 홍석현 주미대사의 대화 내용을 확인해야 하고 대화 내용이 사실로 확일 될 경우 정치인들과 검찰 간부들에게 전해진 '떡값'의 출처를 밝혀야 한다. 이렇게 수사가 진행될 경우에도 불법 정치자금의 경우 공소시효가 3년이라 이미 처벌이 불가능하고 공소시효가 남아있는 삼성 측의 횡령, 배임 및 뇌물 공여로만 처벌이 가능하다.

그러나 110여 명의 거대 변호사들을 거느리고 있는 이학수 구조본 본부장이 ‘모르쇠’ ‘배째라’로 일관함에 따라 수사는 난항을 겪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02년 드러난 것만 해도 한나라당에 340억원(채권 300억원), 노무현 캠프에 30억원(채권 15억원), 김종필 당시 자민련 총재에게 채권 15억4천만원을 영수증 없이 제공해 수사를 받았던 이학수 구조본 본부장은 당시 자금 출처에 대해 "이건희 회장 개인돈으로 이 회장 모르게 내가 전적으로 집행했다"고 삼척동자도 믿지 않을 주장을 펼쳤고 검찰과 법원은 이를 인정한 바 있다.

이번에는 그 때보다 한 술 더 떠 불법자금 지원 사실 자체를 잡아 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학수 구조본 본부장이 홍석현 주미대사와 자신이 나눈 대화에 나온 ‘회장님’이 ‘이건희 회장’이 아니라고 부인할 경우 사건 수사는 더 복잡한 형국으로 접어들게 된다는 지적이다.

이 밖에 애초 김종빈 검찰총장등이 삼성 관련 사건 수사 개시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았던 만큼 이학수 구조본 본부장의 이런 태도가 오히려 검찰의 미온적 태도에 면죄부를 줄 수 도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한경·매경, 쌍둥이 사설로 지원사격 나서


  상: 매일경제 사설, 하: 한국경제 사설

한편 ‘아니나 다를까’ 경제신문들도 나섰다. 10일, 매일경제와 한국경제는 나란히 사설로 쌍지팡이를 짚고 나섰다. ‘경제 챙기기 외면만 할껀가’라는 사설을 실은 매일경제는 “기업들은 기업들대로 정치적 사건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숨만 죽이고 있다"며 "여기에 검찰이 삼성 이학수 부회장을 소환해 조사에 착수했으니 재계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검찰과 정부를 압박했다.

‘경제는 더욱 어려워 지고 있는데’라는 쌍둥이 사설을 통해 한국경제는 “우리 경제의 나홀로 부진은 외부환경 때문이라기 보다는 기업투자와 소비를 위축시키는 반시장적인 정책에 원인이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며 "그런데도 불법도청사건의 파장이 기업으로 번질 가능성마저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라 밝힌 뒤 "지금은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어떠한 일도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학수 구조본 본부장, 이미 집행유예 신분

한편 이학수 구조본 본부장은 현재 불법 정치자금 제공으로 이미 집행유예 상황에 처해있는 신분이다. 지난 2004년 9월 서울 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는 여야 대선캠프에 두루 385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 부회장에 대해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바 있다. 당시 이학수 구조본 본부장은 "죄송하고 반성하고 있다"며 "항소할 계획은 없고 기업활동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고 검찰도 항소하지 않아 집행유예로 형이 확정됐다.

당시 재판부는 "국내 대표적 기업의 핵심 간부로서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도 가장 큰 규모의 불법 정치자금을 전달했고, 무기명 채권으로 자금 추적을 곤란하게 한데다 수사과정에서도 자금을 받은 측과 정치자금 규모를 줄이려 한 점이 엿보인다"면서도 "유력 대선후보측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해 자금을 제공했고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점, 형평성 등을 고려해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며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라는 솜방망이 처벌의 이유를 밝혔다.
태그

삼성 , 이건희 , 구조본 , X파일 , 이학수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윤태곤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