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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BS방송 캡춰] |
애초 예정되었던 100여분을 훌쩍 넘긴 2시간 여 동안 대통령은 경제, 외교안보, 사회문화,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전문가 패널과 일반인 패널을 향해 격정적으로 폭포수 같은 언사를 쏟아놓았지만 그 ‘어조’와 ‘어휘’만 격정적이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게다가 실수인지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통령의 발언 중에 통계의 조작까지 드러나 한 층 더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다.
사회 경제 분야에 대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참으로 할 말이 많지만 이를 뒤로 돌리고 정치 분야를 먼저 짚어보자. 모두에서 대통령은 “사실 저에 대한, 저의 국정 운영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는 엊그저께 발표된 것으로 29%입니다”라며 “민심이 천심이라고 한다면 이것을 내가 천심이라고 읽어야 될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현실인식을 해서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말이 이어질수록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로 생각이 바뀌어 갔다.
메아리도 없는 ‘대연정론’이야 ‘대통령의 평소 소신’이라 치부하면 그만이지만 “백성이 옳은 방향으로 가는데 항상 수백 년이 걸립니다”며 “그래서 민심을 읽을 때 항상 중요하게 읽어야 됩니다”라는 대목에서부터 기가 막히기 시작했다.
재신임, 탄핵 이은 삼세판 협박 정치 성공할까
게다가 “나는 항일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 우리 독립투사들이 결코 그 당시에 다수파였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렇게 극단적인 얘기를 할 일은 아니지만, 소수라고 해서 항상 틀리는 것은 아니고 이 시대에 있어서 우리가 정면으로 부닥쳐야 되는 문제는 정면으로 부닥쳐야 됩니다”라며 자신을 독립투사와 동일시하며 ‘핍박 받으며 옳은 길을 가는 소수파’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데 이르러서는...
이어 대통령은 ‘국민을 제왕으로 자신을 신하로’ 비유했다. 그런데 “제왕의 자리에 있다면 그런 모든 것을 책임져야 됩니다”며 “신하는 쫓겨날 때는 쫓겨나더라도, 그 시기에 올바로 말하고, 충직하게 간언하고, 정직하게 소신에 따라서 일하는 것이 올바른 신하 아닙니까? 저는 대통령을 신하로 생각하고, 지금 과감한 거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을 이어나갔다.
지난 2년 6개월간 노무현 대통령은 지지율이 바닥을 칠 때는 ‘재신임’ ‘탄핵’ 이라는 큰 승부수로 국면을 돌파해나갔다. 집권 3개월만에 “대통령직을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든다”라는 발언을 내놓고 위기 국면마다 ‘못해먹겠다’는 승부수를 띄워 쏠쏠한 재미를 본 것이다. 기자는 어제 노무현 대통령이 내놓은 “제왕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 “나는 신하인데 쫓겨날 때 쫓겨나더라도 과감한 거역을 하고 있다”는 발언을 듣고 ‘또 협박정치가 시작되는 구나’ ‘삼 세 번이라더니 이번에도 성공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가 차는 발언들의 연속이었지만 뭐 지역구도를 깨겠다는 것 자체가 나쁜 말도 아니고 정치 분야에서는 일말의 ‘진정성’도 엿보였지만 사회경제 분야에 대한 대통령의 발언은 자가당착, 견강부회의 연속이었다.
국민과 일부 언론 탓이라지만 대통령이 부동산 투기 도박판 개장
입만 열면 ‘부동산은 잡겠다’고 공언을 했지만 전국 균형개발이라는 명목하에 전국토를 투기장으로 만든게 아니냐는 패널의 질문에 대해 대통령은 “지역 개발이 일부 투기꾼들을 움직이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개발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안 할 수는 없습니다”라며 변명을 내놓은 다음 “정부가 정책을 끄집어 낼 때, 총론 끄집어 낼 때는 전부 박수 소리가 나오니까 기분 좋아서 ‘되겠구나.’ 자신 가지고 부동산 정책 딱 입안합니다. 하다가 나중에 하나씩 하나씩 가면서 그야말로 (일부 언론의) 폭탄을 맞아서, 지난 18일경부터 언론 보도들을 한 번 보십시오”라고 ‘국민적 저항’과 ‘일부 언론’에게 책임을 돌렸다.
부동산 부분에 대한 대통령의 발언 중 핵심을 짚는 부분이 있기는 있었다. 대통령은 “국민 생활을 위해서 시장이 존재하는 것이지 시장을 위해서 국민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거든요”라며 “국민 경제가 먼저 있고, 그 국민 경제를 운용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 시장이기 때문에 시장인 것이고, 시장에서 실패한 것은 국가가 정책으로 시장의 실패를 보완해 주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이 부동산이야말로 시장이 완전히 실패한 영역입니다”라고 정곡을 찔렀다.
기자 역시 대통령 만큼이나 ‘일부 언론’의 폐해를 인식하고 있다고 자부하긴 하지만 전국토의 투기 난장판화에는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생각이다.
2004년 6월 대통령은 민주노동당 의원들을 만나 아파트 분양가 원가 공개라는 열린우리당의 총선공약을 뒤엎으며 “장사 원리에 따라 소신 있게 ”라며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에 반대하며, 이것은 건설업계의 압력의 결과가 아니라 대통령의 소신”이라고 밝혔다. 같은 달 대통령은 국토균형발전을 이야기 하며 “큰 (건설)판을 벌이겠다”고 밝힌데 이어 행정부와 경기도가 갈등을 빚고 있던 수도권 공장 설립 규제 부분에 대해 손학규 경기도 지사의 손을 들어주며 수도권 공장 설립 규제를 해제했다.
행담도 개발과 J프로젝트는 알려졌다 시피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것이고 올해 2월 취임 2주년 국정연설에서는 죽지도 않은 건설경기를 두고 “건설 경기는 반드시 살리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한 마디로 부동산-건설업에 대한 구체적 부양과 강력하되 추상적인 부동산 대책 이라는 야누스의 양면이 부동산 문제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이었던 셈이다.
참 이 날 방송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무소의 뿔’처럼 ‘대연정의 길’을 걸을 것을 강조하며 “민심도 위험한 것이 있습니다”라며 “89년도에 경제정책에 대한 민심이 아주 험악해서 민정당에서, 민정당이 민자당을 만들고 그래서 조순 부총리를 밀어내고 당에서 부총리를 맡은 다음에 경기부양책을 썼습니다. 그 부양책 이후에 90년도에 치명적인 경제혼란이 와 가지고, 부동산 파동이 와 가지고, 그래서 엄청난 고통을 겪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민심이 위험한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건설경기 부양책이 위험한 것이라는 사실을 과연 모르고 있을까?
주가도 높고 지표도 좋아 경제 전망이 밝다?
경제 전망이 어둡다는 지적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공적 자금을 쏟아부어 살린 카드 회사의 사례를 치적으로 제시한데 이어 현란한 주식 시세표를 띄워가며 공적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참여정부 2003년 3월 제가 했을 때, (커서를 600포인트 아래로) 2003년 3월 여기지요, 600포인트 아래에 있었습니다. 600포인트 아래에서 정권이 출발했는데, 지금은 1094까지, 어제 1094 갔는데, 1100 수준 가 있는 것 같습니다”라며 “주가를 대통령이 조작하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S&P의 신용등급 상향 조정, 외평채 가산 금리 인하, IMD 국제경쟁력 지수 상향 조정등 초국적 금융자본이 매기는 온갖 신자유주의적 지표를 들어가며 “우리 경제의 전망을 어둡게 보는 것은 매우 소심하고 조심스러운 사람들이거나 정치적으로 입장이 다르거나 이런 사람들이 우리 경제에 대해서 계속 어둡게 얘기하는 것이지요”라고 자신 있게 답했다.
초국적자본의 지표가 높다는 것은 실은 ‘수탈 전망이 밝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라는 지적은 차치하고라도 주가상승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자신감은 자가당착에 불과하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1994년 주가는 1100을 돌파해 최고점을 기록했다. 당시 김영삼 정권은 주가도 상승하고 1인당 GDP 1만불 시대도 열리고 OECD에 가입도 하니까 국민들이 힘들게 느끼던 말던 ‘우리는 선진국’이라고 자랑하며 ‘세계가 우리를 주목하고 있다’고 선전했다.
요컨대 경제에 대한 영삼 정권의 자랑이나 노무현 정권의 자랑이나 오십보 백보라는 것이다. 전세계가 한국 경제를 주목하고 있다고 자랑하던 김영삼 정권이 97년 외환위기를 맞은 사실이나 “주가를 대통령이 조작하지 못할 것입니다”라는 대통령의 발언과 별개로 연기금 주식 투자안, 금리인하 기조 유지로 주식 간접투자 상품에 대한 자금 유입 유도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뭐 중요하지 않으니까 그냥 넘어가자.
사기 수준에 가까웠던 양극화와 복지에 대한 대통령의 발언
‘사회적 양극화’와 복지 부분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거의 사기수준에 가까웠다. 의도인지 실수인지 모르겠지만 통계조작도 엿보이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승자독식의 시장원리가 세계적 현상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면서도 “우리가 세계 최악이냐. 그렇지는 않습니다”고 변명했다.
이어 그는 “소득 5분위 배율, 국제 비교 이것이 국제 표준 비교 방법인데, 5분위 배율하면, 미국이 2003년도에 14.7이고, 중국이 10.7%이고, 영국이 7점이고, 호주가 7.0이고, 이태리가 6.5고, 캐나다가 5.8이고 프랑스 5.6이고, 한국이 04년에 5.41입니다” 라며 “그 다음에 독일이 4.3이고 스웨덴 4.0이고, 노르웨이 3.9, 핀란드 3.8… 제가 성공하고 있는 나라라고 얘기했던 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 이런 나라들이 아주 모범적이지요”라고 장황하게 수치를 늘어놓으며 ‘우리나라가 최악은 아니’라고 단언했다.
과연 그럴까?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현재 한국의 소득배율이 5.41이라고 밝혔다. 2004년 4/4분기의 소득배율은 노무현 대통령 말대로 5.41이 맞긴 하다. 그런데 이는 전체 가구가 아닌 도시가구에 한정된 것이다. 지난 2일 통계청은 도시근로소득자 3천529가구를 포함해 전국의 비농어가 7천291가구를 상대로 실시한 '2.4분기 가계수지 동향'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전체 가구 기준으로 하위 20%는 월 수입이 79만6천원이고 상위 20%는 금액으로는 576만4천원으로 소득배율은 7.24를 기록했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은 복지부분에 대한 깊은 관심을 과시했다. 그는 “예산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국가 예산은 사회 안전망, 사회 복지 예산 부분이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는데, 그 상승세를 그대로 유지해 가고 있습니다”며 “국민의 정부 때는 시작이기 때문에 가파를 수밖에 없는데, 저희도 가파르게 유지해서 어떻든 소득 분배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노무현 대통령은 수치를 늘어놓지 않았는데 2005년의 경우 국가 전체예산은 대략 9% 증가한데 반해 사회복지 예산은 5% 증가하는데 그쳤다. 결국 전체 예산 중에 사회복지예산이 차지하는 부분이 대폭 감소한 것이다.
“내가 야박하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X파일에서 드러난 대선 불법자금 부분도 덮고 가자는 대통령이 이 부분에선 왜 이리 야박하게 구는걸까? 92%의 지지율로 출발해, 탄핵을 촛불로 돌파하고 한 때는 과반수, 지금도 과반수에 불과 4석 미달하는 거대 여당을 지니고 있는 대통령이 ‘자신은 약체’라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제왕인 국민’들에게 한번 ‘과감히 거역’하겠다는데 어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두 시간 남짓 들으며 ‘과연 이 사람이 무엇을 하고 싶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행보를 짐작하려면 고이즈미에 주목해야 할 듯
그러다 고이즈미, 슈뢰더 부럽다는 말을 듣고 조금 가닥이 잡히기 시작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부러워 하는 두 사람은 내각제 정부의 수반, 신자유주의 정책을 총선 승부수로 띄웠다는 점을 공통점으로 가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 우정사업 개혁이라는 것이 일본 개혁에 있어서의 핵심, 아주 상징적인 개혁입니다”라며 “성공하면 개혁을 계속해서 밀고 가는 것이고, 이것 성공 못하면 고이즈미 개혁은 무너지는 겁니다”라고 부러워했다.
노무현 대통령 처럼 독특하고 대중적인 정치인으로 자국내에서 평가 받고 있는 고이즈미는 금융민영화를 핵심으로 하는 우정민영화라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밀어 붙이며 자신의 좌, 우측 진영을 모두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구세력’으로 밀어붙이고 인기몰이를 해 장기 집권의 기틀을 다지고 있다. 슈뢰더 역시 ‘비전 2010’이라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안을 승부수로 띄워 총선을 준비하고 있다.
고이즈미 이야기가 나와서야 신행정수도, 동북아 중심, 금융허브, 경제자유구역, 기업도시...이름은 각기 다르지만 본질은 하나인 사업에 명운을 걸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속내가 짐작이 됐으니 ‘내가 참 느린 건지’ 아니면 ‘대통령이 말을 돌려서 한 탓인지’ 헷갈릴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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