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초심으로, 민주노조운동 아래로부터 다시 세워야

정치적, 정책적 활동 펼치는 모든 정파의 노력을 존중하자

10월 13일 민주노총 사무총국 상근활동가 13명은 민주노총 1층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집단 사직 의사를 발표했다. 상근활동가 13명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강승규 사태는 민주노조운동 정체성의 위기"로, 민주노총 창립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밝히고, 집행부의 '하반기 투쟁 수행 뒤 조기선거 실시' 대책이 "사태의 심각성에 애써 눈을 감은 안이한 상황인식"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수봉 민주노총 대변인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상근활동가의 사직에 대해 원칙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르면 "일부 간부들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계속 설득해 왔지만 허사였다"며 "지도부가 책임을 지겠다고 분명히 했는데도 내부 분란을 조장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13인의 상근활동가는 사직이라는 행동을 통해 '책임'을 이야기했고, 현 집행부의 대변인은 내부 분란을 조장하는 활동이라며 '원칙'을 표명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지난 11일 이수호 집행부가 '하반기 투쟁을 마무리한 뒤 내년 1월 총사퇴 및 조기 재선거' 방침을 결정한 데 따른 연맹과 지역본부, 조합원들의 반발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이 결정이 중앙집행위원회의 결정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충격을 더하고 있다.

하반기 투쟁을 하고 나서 사태의 책임을 진다는 말도,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비리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것도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이수호 집행부는 즉시 물러나는 것이 상식에 부합한다. 그리고 이후 수습이나 하반기 투쟁도 직접 걱정하고 나설 일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은 이제 연맹과 지역과 단위노조에서 자본에 맞서 굽힘없이 실천하는 모든 조합원에게 맡기면 된다. 공허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지금 민주노조운동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해쳐나갈 실마리는 모든 조합원에 의해 아래로부터 풀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처음부터 다시 조직을 건설한다는 마음가짐을 갖지 않는 이상 민주노총의 미래는 좀처럼 투명해지지 않을 것이다.

작금의 사태의 심각성은 보수언론의 태도에서도 확인된다. 민주노조운동이 지도부 비리 연루로 진통을 겪는 가운데 자본의 입장을 반영하는 보수언론은 조롱과 야유, 제언과 충고를 번갈아가며 민주노총을 때려대고 있다. 한국 사회 부정부패 척결의 전위적 역할을 자임해온 민주노총이 부정부패의 원조세력들로부터 역공세를 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실로 통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0월 10일 동아일보 사설 '부패노총에 발목 잡힌 노동시장 선진화'에서는 "두 노총은 반성은커녕 노사정위원회에서 탈퇴해 노-정관계를 파국으로 몰아넣었다"며 부패노총이 어찌 노동시장 선진화에 나설 수 있겠느냐며 호통을 쳤다. 세계일보는 13일자 사설에서는 "자신의 구조적 문제엔 둔감한 채 세를 과시하는 강성투쟁에만 의존하다가는 11%로 떨어진 노조 조직률마저 유지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조선일보 11일자 사설에서는 "한국의 노동운동은 쫓기던 시절의 선명성과 투쟁성에만 매달려 있을 뿐 파워그룹, 파워엘리트로서의 도덕성과 책임성은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쓰고 "노동계의 잇단 비리는 그런 힘과 도덕성의 불균형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결과"라고 쓰고 있다.

보수언론의 이같은 태도는 민주노총이 10월 7일 최초 발표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하게 처리할 것이다'에서 "민주노총의 투쟁을 훼손하고 타격을 주기위한 의도가 포함된 것이라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성명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것인지를 보여준다. 보수언론은 선진노사관계를 구축하려는 자본의 입장을 강조하는 가운데, 현 민주노총 집행부는 이같은 관계를 갖기 위한 자격조차 없다는 야유와 조롱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비리에도 불구하고 하반기 투쟁을 책임지겠다고 말한 데 대해 그나마 노조 조직률마저 하락할 것이라는 제언을 듣게 되고, 민주노총을 파워엘리트로 인정해주고 싶어도 도덕성과 책임성을 갖지 못한 지도부는 곤란하다는 충고를 들어야 했다. 상태가 이토록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데 민주노총의 집행부가 보여주는 태도는 어찌 이리도 둔감할 수 있단 말인가. 노동조합운동 내부의 반대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계급투쟁의 적장으로부터 무장해제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찌 이리도 깨닫지 못한단 말인가!

보수언론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서 현 민주노총의 사태를 두고 정파와 계파간 갈등에 초점을 맞춘 선정적인 보도를 일삼고 있다. 어느 보수신문 할 것 없이 국민파, 중앙파, 현장파를 거론하면서 지금의 이수호 집행부의 총사퇴 주장이 정파간의 이해득실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사무총국 13인의 사무총국 사직 기자회견이나 잇따른 상근활동가의 사직의 변은 민주노총의 현 상황을 우려하고 걱정하는 상근활동가로서의 진정성의 표명이며, 해당 개인으로 놓고 보면 삶의 전부를 도려내는 가슴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연맹과 지역본부와 단위노조에서 논의를 통해 이루어지는 총사퇴 주장도 정파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식의 보도는 민주노조운동을 걱정하는 모든 활동가와 조합원의 주장을 매도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설령 정파의 문제로 본다 하더라도 현 집행부의 책임을 묻는 문제에 있어서는 큰 이견차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행부 총사퇴는 범위의 차이는 있으나 민주노동자전국회의를 비롯, 중앙파와 현장파를 구성하는 세력의 대부분의 판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수언론의 이같은 선정적 보도에 대해서는 민주노조운동 전체가 엄중하게 경고하고 가야 한다.

지금 민주노조운동이 겪는 어려움이 필시 어느 한순간에 도래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제자리를 찾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될 것이다. 그리고 민주노조운동을 바로 세워내는 일은 단위노조와 지역과 연맹, 그리고 민주노조운동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모든 정파들의 노력이 어울려야 가능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노총이라는 권력은 구성과 운영과 실천의 모든 영역에서 조합원으로부터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진전된 해법을 찾아야 하며, 현재의 어려움을 넘기 위해 정치적, 정책적 활동을 펼치는 모든 정파의 활동을 순기능의 맥락에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은 16일 비정규직노동자대회와 민주노총 집회, 19-20일 단위노조대표자회의 등 굵직한 투쟁과 회의 일정을 앞두고 있다. 투쟁은 멈추지 않아야 한다. 특히 단위노조대표자회의는 현 정세와 맞물려 민주노총의 향배를 가름하는 중대한 회의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제 모든 단위노조는 현 사태에 대한 우려와 걱정에 머무르지 말고, 모두에게 닥쳐있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고민과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단위노조대표자회의가 열리는 당일에는 하반기 총파업 준비 논의 뿐 아니라 민주노총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풀어가기 위해 큰 가닥을 잡는 실천적인 토론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모두 민주노조운동의 초심으로 돌아가 마음을 열고 힘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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