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에 출근하는 남자

태광산업 복직투쟁 1568일, "두려운 것은 잊혀지는 것"

장민식. 직업은 해고자다. 오전 6시 20분, 어김없이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그가 출근하는 곳은 대법원이다.

신동주. 직업은 해고자다. 아침도 거른 체 마을버스를 탄다. 그가 출근하는 곳도 대법원이다. 당산역에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서초역에서 내린다.

  대법원. 자유 평등 정의가 또렷이 새겨져 있다

오늘도 아침은 김밥이다. 서초역 매표소 옆 분식가게 앞에 서서 김밥을 먹는다. 대법원 정문 앞 화단에 숨겨 둔 선전물을 꺼낸다. 8시 10분, 대법원에 출근한 두 사람의 근무가 시작된다. 사무실 책상도, 공장 기계 앞도 아닌 대법원 정문 앞이 근무지다.

40년 흑자기업 해고자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귀가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다. 목 위까지 지퍼를 올렸건만 매서운 칼바람은 몸 구석구석을 파고든다. 몇 장 찍지도 않았는데 손이 꽁하니 얼어 사진기를 가방에 집어넣는다. 두 해고자는 올 겨울 내내 김용담 대법관에게 아침 문안 인사를 하려고 대법원으로 출근을 했다.

정리해고를 당한 지 햇수로 6년째다. 회사가 어려워 정리해고를 당한 것이 아니다. 이들이 해고된 2001년 태광산업은 긴박한 경영의 어려움도, 적자에 허덕이지도 않았다.

“40년간 적자가 없던 기업이죠. 해고를 했던 다음 해에도, 그 다음 해에도 수백억의 흑자를 냈어요. 정리해고를 단행한 2001년은 물론이고, 1999년에서 2004년까지 해마다 주주들에게 35%의 현금 배당을 했어요. 회사가 어려워 정리해고를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죠.”
  1인 시위를 하는 신동주 씨

화학섬유업을 통하여 40년 이상 흑자를 행진을 한 태광산업은 재정상태도 튼튼하다. 2004년 부채율은 15%에 불과하고, 누적된 이익잉여금이 8천억 원이 넘는다. 대한민국 초우량기업임이 분명하다.

“저희가 대법원 앞에서 시위를 하는 것은 우리가 복직하겠다는 욕심만 있을게 아니에요. 태광 같은 대한민국 최고의 초우량기업에서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으로 정리해고가 합법화 된다면, 우리나라 노동자 가운데 구조조정으로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리지 않을 직장에 다닐 사람이 어디 한 명이라도 있겠습니까?”

태광산업은 40년간 이익을 안겨 준 화학섬유업을 기반으로 유선방송사업에 뛰어들었고, 금융권 등 계열사 확장에 힘을 쏟고 있다. 주류업체인 진로 인수 작업도 추진하였고, 최근에는 쌍용화재를 인수하였다.

“앞으로 화학섬유산업이 어렵다는 것은 저희도 알지요. 하지만 지금의 우량기업 태광이 있기까지 누구의 힘이 있었습니까? 앞으로 돈이 안 될 것 같으니 너네는 나가라, 화학섬유로 40년간 모은 돈으로 21세기 돈 되는 사업 할 테니. 뭐 이런 것 아닌가요.”

  추위에 모자를 눌러쓰고 1인 시위를 하는 장민식 씨

2001년 태광산업은 500여 명의 정리해고자 명단을 발표하고, 한 쪽에선 희망퇴직자를 받았다. 하루 아침에 850명이 넘는 노동자가 공장에서 거리로 쫓겨났다.

“말이 희망퇴직이지, 어디 그게 ‘희망’ 입니까. 정리해고 당하느니, 위로금이라도 챙겨야 하기에 희망퇴직서에 사인을 한 거죠. 2001년 파업을 빌미로 조합원에게 손해배상청구를 했잖아요. 희망퇴직 신청한 사람은 고소를 취하했거든요. 제 발로 나간 사람은 없는 셈이죠. 모두 쫓겨 난 거지.”

54명의 정리해고, 11명의 징계해고. 65명의 삶은 고달프다 못해 죽어있는 삶이다. 2월 3일로 복직 투쟁 1,568일이다. 서른 중반에 해고 된 장민식 씨는 마흔이 훌쩍 넘었다.

  매일 아침 1인 시위를 한다

850명 노동자, 하루 아침에 거리로
“해고자 가운데 이혼을 해서 가정이 깨진 집이 여럿 있어요. 명절에 부모님 찾아 볼 명목은 없지만, 아직 총각인 제가 그 동지들에 비하면 행복한 거죠. 깨질 가정이 없잖아요. (웃음) 다른 동지들은 막노동을 하며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지요. 이혼 당하지 않으려면 벌어야지요. 해고자의 삶은 가정에서도, 고향에 가도 죽어있는 거예요. 이번 설에도 고향에 못 갔어요. 해고된 뒤로는 명절 지나고 조용할 때 잠깐 찾아뵈지요. 복직이 되면 죽은 삶이 살아나겠죠.”
  장민식 씨

태광산업은 해고자 38명에게 2001년 파업을 이유로 26억5천만 원의 손해배상청구를 냈다. 울산지법에서 대의원 출신 해고자 19명에게 1억9천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을 내렸고, 부산고법은 2억2천4백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손해배상청구도 웃겨요. 노동조합에 청구한 것도 아니고, 파업을 이끌었던 지도부한테 청구한 것도 아니에요. 당시 파업을 이끌었던 위원장을 비롯한 임원, 대의원 대표, 사수대장들은 회사에서 가압류를 해지하고, 소송을 취하했어요. 희망퇴직서에 사인을 했다고. 해고무효소송을 진행하는 일부 대의원들과 평조합원들만 소송에 걸려있어요. 이건 무얼 말하는 거죠? 부당한 해고였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거랑 다름없죠. (회사의) 부당함을 감추려는 압박용으로 사용하려는 것 아닌가요?”
  신동주 씨

지금 65명의 해고자들이 ‘태광산업정리해고저지투쟁위원회’를 만들어 복직투쟁을 하고 있다. 고법에서도 회사 측의 손을 들어주자, 마지막 대법원에 호소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교대로 상경투쟁을 했지만, 해고자들에게는 오고가는 교통비도 부담이 컸다. 그래서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장민식(42), 신동주(38) 씨가 서울에 상주하며, 대법원 1인 시위를 하기로 결정했다.

웃음을 한순간도 놓지 않는 신동주 씨는 평조합원이었다. 2001년 파업 당시 나이 어린 순서대로 끊어 구성된 사수대의 대원이었다는 게 회사의 눈에 찍혀 해고를 당해야 했다. 신동주 씨의 소원은 빨리 복직이 되어 결혼을 하는 게 소원이다.

복직이 되어
“결혼할 나이에 해고가 됐잖아요. 그리고 5년 넘게 복직투쟁을 하고 있으니…. 누가 해고자하고 결혼을 하겠어요. 결혼할 생각은 하지도 못하죠. 염치없잖아요. 돈도 벌지 못하는데 결혼하자고 하면. 빨리 이 싸움을 끝내는 게 우선이죠. 그런데 밤마다 결혼하고 싶어요.”
  화섬연맹 창고에 만들어진 숙소

울산에서 상경한 이들의 숙소는 전국민주화학섬유노동자연맹 사무소다. 사무소 입구 창고에 낡은 이층침대를 갖다 두고 잠자리를 꾸몄다. 언제 이곳을 떠나 공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사는 게 힘들고, 싸우는 게 어려운 것은 견딜 수 있어요. 두려운 것은 우리가 잊혀진다는 거예요. 2001년부터 시작한 싸움이니 잊혀질 만도 하지요. 하지만 저희 태광 해고자는 잊혀져도, 노동자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어요. 태광 같은 흑자기업에서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지면, 더 많은 정리해고가 아주 손쉽게 뒤따른다는 것을.”

태광산업 해고자들의 외로운 투쟁은, 거대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물결을 타고 마구잡이로 일삼아지는 구조조정 정리해고의 칼날과의 싸움이다. 선전물을 다시 대법원 앞 화단에 숨겨두고 지하철역을 향하는, ‘대법원에 출근하는 두 남자’의 뒷모습에 ‘잊혀질 수 없는 희망’이 어른거린다. 아, 그러고 보니 따뜻한 커피 한 잔 뽑아주지 못했다.

“민주노총 선거요? 잘 됐으면 좋겠어요. 태광 해고자도 가끔 기억해줬으면 좋겠고요.”
태그

태광산업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오도엽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희망 또 다시

    장민식님, 신동주님의 복직 투쟁 1,568일!
    감사합니다. 두 분의 용기와 끈기...그리고 희망.

  • 서진상

    민식성, 고생많습니다.
    여기 울산은 간만에 눈이 엄청(?) 내렸습니다.
    아침에 3.5CM의 눈에 온 도로가 난리였습니다.
    동지들의 투쟁은 기필코 승리해야 합니다.
    동지들에게 짐을 떠맡기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버텨온 시간보다 앞으로의 시간이 더 힘들고 고통스러울수도 있지만 그래도 동지들과 함께 하는 울산의 동지들, 전국의 동지들을 생각하면서 끝장을 보는 투쟁을 합시다.

    동주야!
    올해는 기필코 이 싸움 승리하고 장가가야지!

  • 뿌니

    우리 나라는 아직도 멀었단 생각이 드네염.
    아무쪼록 두분의 건강 챙기시고,당연한 노동자의 권리를 찾으셔야죠.정의가 살아있는한 말입니다.

  • BB

    지금은 어떻게 되셨는지요? 아직도 투쟁중이신가요? 하루 빨리 좋은 결과가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