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답사, 근대 민족해방 투쟁 근거리를 찾아서

문화연대의 ‘근대역사에 대한 불온한 답사’

3월 1일, 3.1절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들이 광역시별로 전국 곳곳에서 진행되었다. 종로 보신각에서 열린 3.1절 행사에는 흰 저고리와 검은 치마를 입은 학생 및 시민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당시 3.1절 만세운동을 재현했으며, 정오에는 민족대표 33인을 기리는 보신각 종소리가 33차례에 걸쳐 울려퍼졌다.

또한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국민운동본부 주최 ‘연방제 적화 음모 저지 3.1절 국민대회’에는 무려 7000여명의 시민들이 모였으며, 1일 하루 독립기념관을 관람한 관광객이 무려 4만3천 만명에 이르기도 했다.

같은 시각, 불온한 답사를 위해 모여든 40여명의 시민들은 역사에서 배제된 근대 민족해방 투쟁의 근거지들의 기억을 되밟고 있었다. 창덕궁 옆 생전 몽양 여운형이 살았던 집터는 손칼국수집으로, 고하 송진우 선생이 암살당한 종로구 원서동 자택은 주소가 새겨진 돌기둥과 사랑채 뒤에 놓여있던 정자 기둥만이 그때 그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몽양 선생 옛 집터

인민당 당수였던 몽양 선생의 옛 집터는 2차선 도로와 손칼국수 음식점으로 변했다. 이 손칼국수 집은 한때 ‘몽양선생의 옛 집터’라는 푯말을 붙여놓았으나, 찾는 이가 현격히 줄어들어 푯말을 내려야 했다. 이날의 점심은 이곳에서.

  고하 송진우 선생의 옛 집터. 주소가 새겨진 돌기둥만으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서울시 종로구 원서동 74번지 고하 송진우 선생의 자택은 주소를 새겨놓은 돌기둥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4층짜리 신식건물이 들어섰고, 사랑채 뒤에 위치해 있던 정자는 현재의 집주인이 기둥만 남겨두고 새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답사에 참가한 한 학생은 “고하 송진우 선생의 빠알간 핏자국을 보았노라”며 너스레를 떨었고, 답사를 인도했던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 위원장은 "이번 답사의 의미를 확인했다"며 화답해 답사 분위기가 한껏 들뜨기도 했다.

한편 고하 선생은 1945년 12월 30일 한현우 등 6명의 습격을 받고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고하 선생 사랑채 뒤에 위치한 정자, 그 기둥만 형태가 남아있다.

  중앙고등학교

고하 선생 집을 휘돌아 나오면 중앙고등학교가 그 위용을 떨치고 있다. 중앙고등학교는 지난날 인촌 김성수 선생과 고하 송진우 선생이 이곳 숙직실에 모여 3.1운동 관련 문서를 인쇄하던 곳이다.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장소로 알려져 있는 중앙고는 일본관광객으로 발길이 끊이질 않고, 일명 욘사마 포스터를 쉽게 볼 수 있다.

  인촌 김성수 옛 집터

인촌 김성수 선생이 거주하던 집. 인촌 선생이 거주했다는 의미보다 2.8독립선언준비 및 3.1운동의 초기 준비 단계 등에 항일 독립 투사들이 모인 밀회의 장소였다는 것에 더 큰 답사의 의미가 있는 곳이다.

  헌법재판소, 옛 조선공산당 창립대회 자리

헌법재판소, 이 자리는 조선공산당 창립대회 장소였다. 조선공산당은 1925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다. 이후 1945년 광복과 더불어 박헌영이 중심이 되어 조선공산당을 재건하였고, 조선공산당은 조선의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인텔리겐챠 등 일반노동자의 이익을 옹호를 통한 급직적인 개혁을 위한 투쟁, 조선민족의 완전한 해방과 봉건잔재의 일소, 혁명적 민주적 인민정부수립 등을 주장했다.

그러나 재건된 조선공산당은 소련의 후견을 업고 등장한 김일성에 의해 1국1당 원칙이 파괴되어 북한 지역 내에 독자적인 북조선노동당을 창립, 이후 남한 지역에는 남조선노동당 등 양립하였으나 결국 남조선노동당은 모두 숙청 체포되고 말았다.

  옛 조선건국준비위원회 터

으리번쩍 골프샵이 들어 선 이곳은 1945년 광복과 함께 조직되었던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 터. 일제 식민통치 이후 해방된 뒤 공식적 자주국가 건설을 논의했던 건준 본부 건물은 지난 2002년 10월 철거되었다.
태그

문화연대 , 3.1절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조수빈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