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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전 박기연 씨 모습. 사진 맨 왼쪽(참세상 자료사진) |
장애인, 철로 위에 몸을 던지다
노르웨이와 한국과 축구평가전이 열렸던 지난 6월 2일, 한 장애인이 인천 간석역 철로 위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뇌병변1급 장애를 가지고 있었던 고 박기연 씨는 장애인들의 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현장에서 늘 자신의 ‘동지’들과 함께했던 장애인이었다. 특히 그는 재작년 인천시교육청 앞에서 장애인들이 28일간 농성투쟁을 전개할 때 그 누구보다 더 열심히 장애아동들의 교육권 쟁취를 위해 싸웠다.
“그것은 본인의 지난날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는 신념이었습니다”
당시 박기연 씨와 함께 투쟁했던 김경현 부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13일 간석역 앞에서 열린 고 박기연 씨 추모제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받지 못했던 설움과 차별을 적어도 자라나는 장애아동들에게는 물려주지 않으려는 박기연 씨의 힘겨운 몸짓이었다.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박기연 씨는 그가 가진 장애 때문에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제대로 된 교육 한번 받지 못해 글도 읽을 줄도 모르고, 말주변도 없던 그가 유일하게 세상을 향해 외칠 수 있는 수단은 ‘투쟁’이었다. 집회가 있을 때면 그는 늘 휠체어를 타고, 경찰 틈새를 뚫고 도로를 누볐다. 도로를 점거하고, 방패에 부딪치고, 온몸을 던졌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다른 세상으로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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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전 박기연 씨(참세상 자료사진) |
한국사회, 죽음으로 등 떠밀다
“한번은 시위하다가 남대문 경찰서에 박기연 씨와 함께 붙들려 갔어요. 글도 모르고, 말도 잘 못하니 진술서를 못 쓰더군요. 그냥 경찰들이 묻는 말에 고개만 끄덕이더라구요”
박경석 노들장애인야간학교 교장은 박기연 씨와 시위 도중 남대문 경찰서에 붙들려간 때를 회상하며,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는 또 박기연 씨가 장애인운동에 열성적으로 결합했던 것을 강조하며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라며 “그렇게라도 해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이 사회에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고 박기연 씨는 올해 94세의 노부와 함께 살았다. 많은 중증장애인들이 그러하겠지만, 박기연 씨도 평생을 골방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가족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조건이었던 것은 물론, 박기연 씨의 형은 뇌종양으로 투병생활을 하다 바로 몇 일 전 운명했다. 기초생활수급자였던 박기연 씨가 의지할 수 있는 곳은 이제는 팔걸이가 떨어져 나가고 다 망가진 전동휠체어뿐이었다. 그런데도 장애인이 죽거나 혹은 죽임을 당하면, 흔히들 언론은 가족을 운운하며, 가족에게 보호의 책임을 떠넘기곤 한다.
“박기연 씨 가족도 너무 힘들게 살고 있었고, 그에게 아무런 지원을 할 수 없었죠. 박기연 씨는 그런 상황이 부담됐을 겁니다.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는 장애인들의 고통이죠. 수도 없이 박기연 씨와 같은 장애인의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얘기해도 이 사회는 심각하지 않게 받아들입니다. 장애인들의 절망을 이 사회는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로만 치부해버리죠. 박기연 씨는 바로 이 사회가 죽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회는 박기연 씨의 죽음에 대해 “눈 하나 깜짝안한다”고 박경석 교장은 울분을 토했다. 장애인들이 시설에 처박혀 죽임을 당해도, 수도관이 터져 방바닥에 누운 채로 얼어 죽어가도, 가족의 손에 죽어가도, 철로 위 몸을 던져 죽어가도, 이 사회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얼마나 더 죽어야 이 사회가 장애인들의 ‘투쟁’에 응답을 할까. 얼마나 더 싸워야 이 사회의 야만이 끝날까. 박경석 교장은 “더 열심히 투쟁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떠난 박기연 씨를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투쟁하는 수밖에 없습니다”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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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일 열린 추모제. 고 박기연 씨의 전동휠체어에 그의 영정사진이 올려져 있다 |
장애인의 당연한 권리, 활동보조인서비스를 제도화하라
13일 열린 추모제 참석자들은 박기연 씨의 죽음이 ‘사회적 타살’임을 강조하며, 장애인 생존권 보장과 활동보조인서비스제도화 투쟁의 결의를 다졌다.
추모제 참석자들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70만 명이상 되는 중증장애인들은 거의 대부분은 집에서만 처박혀 살거나 수용시설에서 시설장들의 돈벌이로 이용되고 있다”며 “장애인들은 시설과 집밖으로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있는 사회가 없고, 가족들도 부담스러워 한다. 그들은 스스로 부담되지 않기 위해 감옥 같은 수용시설에서 짐승처럼 살아가고 있다”고 장애인들이 처한 현실을 짚었다.
참석자들은 이어 “더 이상 이 땅의 중증장애인들은 죄인이나 짐승처럼 살 수 없다”며 “권리로서 보장되는 활동보조인서비스가 제공된다면 중증장애인의 삶은 바뀔 수 있다”고 강조하며 박기연 씨의 거주지였던 인천광역시에 활동보조인서비스의 즉각적인 제도화를 강력히 요구했다.
박기연 씨는 떠났지만...
박기연 씨는 떠났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장애인들이 같은 절망을 품고 죽어갈지 모른다. 그렇기에 활동보조인서비스는 제도화되어야 하고, ‘투쟁’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남은 이들은 알고 있었다.
김경현 소장은 박기연 씨를 기리는 추모사에서 “당신이 꿈꾸었던 꿈과 미래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 가겠다”며 “인간다운 삶, 인간으로서의 당당한 권리를 누리며 살아가는 삶을, 우리는 싸워서 쟁취하고 당신의 영전에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박기연 동지의 모습은 우리 아이들의 미래입니다. 혼사서는 설수 없는 사람, 그를 돕는 손길은 동정과 시혜가 아니라 그에게 당연히 주어지는 권리여야 했습니다. 혼자만의 짐으로, 고통으로 홀로 짊어져야 한다면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당신의 길처럼 홀로 외롭고 힘겨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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