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거 중재 씨, 스스로 일어서다

[인터뷰] 자활 꿈꾸는 부산역 노숙인 박중재 씨

  노숙인 박중재 씨가 인터넷을 하고 있다. 그는 인터넷에서 소위 스타 블로거로 통한다

부산역 철도노동조합 건물에서 만난 노숙인 박중재(34) 씨.

그는 블로거다. 웹이라는 가상공간 속에서 애니메이션과 영화, 노래, 상식 등 수많은 재료들을 모아 블로그에 담아 놓는다. 그의 블로그 ‘미소짓는 태양’(blog.naver.com/smilesunkr)에는 하루 8천여 명이 넘는 네티즌들이 들어오며 총 방문자 숫자만도 4백만 명을 넘어선다. 소위 인터넷상의 스타 블로거로 통한다.

중재 씨의 블로그에는 패션, 요리, 영화, 역사, 미술, 추억의 만화영화와 광고, 전문적인 지 등 온갖 자료들이 수두룩하다. 게다가 그는 인터넷 카페 ‘추억의 만화영화 이야기’(cafe.daum.net/anitalgiapark)도 운영한다. 추억의 만화영화를 볼 수 있는 그곳은 그가 2004년 6월부터 운영했다고 한다.

6천2백 명이라는 카페 회원수도 만만찮다. 회원들과 함께 찾아낸 희귀 만화영화들은 다른 곳에서도 찾기 힘든 자료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회원들이 깡통시장과 비디오가게 등을 돌아다니면서 찾아낸 것이기 때문이다.

노숙인 중재 씨, 그는 인터넷에서 스타 블로거

그런 그의 과거 생활은 어땠을까? 기자가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중재 씨는 25살 때부터 7년간 정규직 직장에 다녔다고 한다. 그런 그가 적극적인 노조 활동으로 인하여 직장을 잃고 임시직을 헤매다 노숙인이 된 건 불과 6개월 전의 일이었다.

처음에는 본인도 노숙생활의 타성에 젖어 무기력했다고 고백했다. 그런 그에게 노숙인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물어봤다.

“노숙인은 사회에서 일종의 사망선고나 마찬가지에요. 다양한 사회 구성원에 대한 정책들은 많지만, 그 중에 노숙인에 대한 정책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어요. 어떻게든 그들을 쪽방에 보내거나 노숙인 쉼터에 수용하려고만 하죠. 그리고 사람들은 노숙인을 ‘술을 마시고 누워 자는 모습’의 포장된 이미지들 속에서 찾아요”

중재 씨도 6개월 동안 부산 역에서 무료급식을 통해 밥을 해결하고 역 대합실에서 잠을 잤다. 그처럼 생활을 하는 부산역의 노숙인은 120여 명 정도. 그에게 노숙 생활에 대한 어려운 점을 묻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가 대뜸 얘기를 시작했다.

“부산역에는 많은 노숙인들이 있어요. 그들 중 일부는 ‘내일 일 나갈거야’라고 얘기해요. 하지만 아침에 보면 또 거기 있어요. 그런 그들에게 사람들은 ‘자립할 의지가 없다’고 비난만 하죠. 제가 보기엔 그 사람들이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대화하고 고민하는 의지가 없어 보여요”

중재 씨, 자활을 시작하다

  수제비를 만들고 있는 이호준 씨(왼쪽)와 중재 씨
무엇이 중재씨를 이렇게 변화시켰을까? 바로 “너는 스스로 할 수 있다. 문제는 지금 상황이 좀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이 하는 일에 있어 그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욕먹을 일이더라도 주체가 되어라”라는 지인의 말 때문이었다. 그것이 그의 자립의지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밥도 따뜻한 잠자리도 좋지만 노숙인에게 중요한 것은 진정 자립할 수 있다는 의지 같아요. 처음에는 저도 그들과 마찬가지였어요. 한동안 타성에 빠졌거든요”

자립의지를 가지고 나자 그에게 좋은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의 노숙생활과 블로그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한 인터넷업체가 그에게 일자리를 제의한 것이다. 비록 80만원의 임시직이지만 그에게 있어 인생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그가 이제 스스로 돈을 버는 것이다.

“정상적인 생활을 하려면 우선 머물 방이 필요해요. 부산 역에 있으면 일을 제대로 하기가 힘들게죠? 역에 있으면 씻기도 힘들고 빨래도 제대로 못하잖아요. 비록 지금은 임시직이지만 서서히 제대로 된 일도 찾아봐야죠”

중재 씨는 요즘도 매일같이 시립 도서관에 출근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곳에서 독서도 하고 블로그와 카페도 관리한다. 중재씨가 가르쳐 준 블로그에 들어가니 왼쪽 상단에 자신을 나타내는 곳에 태극기가 걸려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꿈은 인간이 그것을 버리지 않은 한 결코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오늘 누군가 쪽지를 통해 제가 교수나 박사가 아닌지 물어보더라고요. 아무래도 블로그에 하루 40~50개의 엄선된 게시물을 올리다 보니 그런 소리를 듣는 것 같아요. 하루 40~50개 정도의 자료를 블로그에 올리려면 보통 1000개 이상의 자료를 뒤져야 해요”

“실질적으로 소외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주체의식”

중재 씨는 노숙을 시작한 후로 부산역 광장에서 노래를 부르는 거리음악가 이호준씨와 이야기를 나눴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중재 씨와의 인터뷰도 그가 소개시켜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옆에 있던 이호준 씨가 “실질적으로 소외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주체의식”이라고 알려줬다.

“그런 일련의 사고들은 효율이니 실적이니 하는 고정관념을 벗어 던졌을 때야만 진정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을까요. 그것이 노숙인들이 사회인으로서 첫발을 시작할 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입니다”

중재 씨는 이호준 씨와 함께 부산역에서 주 3회 실시해 왔던 아침 수제비 배식 봉사에 6개월째 참여해 왔다. 그리고 지난 4월부터는 주 1회 실시하는 수요일 아침배식에 열성을 쏟고 있다. 중재 씨. 그는 지금도 여전히 노숙인 생활을 하고 있지만, 다른 노숙인들과 달리 조금씩 자활의 의지를 펼쳐 나가고 있는 셈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자 둘은 내일 있을 배식을 위해 밀가루 반죽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이호준 씨가 기자에게 한마디 더 던진다.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물질만이 뒤틀린 사회의 병리현상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것이 이 사회의 기득권을 형성하는데 있어 걸림돌이 되는 부분들을 덮으려고만 하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문제에요”
덧붙이는 말

정연우 님은 참세상 부산경남지역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태그

인터넷 , 자활 , 노숙인 , 편견 , 부산역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정연우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