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기자 무죄, 언론의 자본권력 비판 일정한 가능성..

11일 재판부, "공공의 관심사를 충족시켜 주는 것 언론의 사회적 책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는 국가안전기획부의 도청 녹취록인 ‘안기부 X파일’ 사건과 관련하여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된 이상호 MBC 기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X파일’ 정보의 내용이 중대한 공공의 이익과 직결되는 것이어서 그 정보에 대한 공공의 관심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 언론기관에 부여된 사회적 책무"라고 판단, "정보의 공개가 부득이하게 인정된다"며 이 같은 판결을 내렸다.

"공익적 사항과 직결, 그 공개의 불가피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의 경우 취득한 자료들에 담겨 있던 내용은 민주적 기본질서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공익적 사항과 직결되어 있어 그 공개의 불가피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며 “피고인 이상호 및 문화방송은 최초 불법적인 자료를 취득하였지만, 보도의 수단, 방법 등그 보도에 이르는 과정에서 그 불법성에 깊이 오염되지 않았다고 판단함이 정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의 이번 판결의 핵심 근간은 ‘위법성의 조각사유’ 여부다. ‘위법성의 조각사유’란 위법했던 사실이 일정한 경우에 위법성이 배제되는 사유를 의미한다. 이번 ‘안기부 X파일’ 사건의 경우, 통신의 비밀과 언론의 자유 등 두 가지 기본권이 서로 상충되는 사안에서 통신비밀보호법 제16조 제1항 제2호에서 규정하는 통신비밀을 공개, 누설하는 행위에 해당되어 기소되었다하더라도 그 정보가 공익적 사항과 직결되어 공개가 불가피했다고 보고 공개 행위에 대해 예외적으로 위법성 조각의 가능성은 인정한 것이다.

김득환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 부장판사가 “헌법상의 기본권인 통신의 비밀과 언론의 자유의 조화점이 무엇인지를 모색하여, 언론기관의 보도행위가 정당한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는지 여부와 위법성의 조각을 긍정할 경우 그 내용과 적용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최초의 사례”라고 판결의 의의를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언론의 실천 의무 및 자본권력 비판의 자유에 대한 일정한 가능성을 시사

이번 재판부의 판결은 몇가지 의미를 갖는다. 시사저널에 실릴 예정이었던 ‘삼성그룹 이학수 부회장의 인사 전횡을 보도한 기사’가 경영진에 의해 예고 없이 삭제되는 등의 일련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의 실천 의무 및 자본권력 비판의 자유에 대한 일정한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점.

[출처: 언론노조]
또한 이번 ‘안기부 X파일’ 공개와 관련하여 일부 보수언론이나 삼성그룹이 ‘사생활 및 프라이버시권 침해’라는 주장을 폈으나, 그들이 공모했던 내용이 ‘민주적 기본질서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공익적 사항’이었다고 인정된 점도 그렇다.

마지막으로, 김기춘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소장이 “부산 초원복집 사건으로 우리나라에 중요한 법이 생겼다”고 주장하기도 한바, ‘92년 부산 초원복집 사건(92년 대선 직전 부산시장 등 기관장 7인이 참여한 김영삼 민자당 후보의 당선대책회의가 도청에 의해 세상에 밝혀진 사건)’이 통비법 제정의 배경으로 지목되는 등 그간 통비법이 ‘개인의 통신 비밀을 보호하고 통신의 자유를 신장한다’는 본래의 취지와 어긋나게 사실상 ‘재벌부패보호법’이었다는 오명을 벗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한미FTA를 통한 자본의 언론에 대한 개입력 확대 조짐

아직 이번 판결에 대한 삼성이나 중앙일보 측의 입장은 나오지 않고 있다. 과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번 사건이 언론의 자본권력 비판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나, 자본에 의한 언론탄압의 여지는 여전히 충분하다.

최근 시사저널 사건이나 포항건설노동자의 포스코 점거에 대한 포스코 사측의 언론보도 관리 문건 발견 등 언론에 대한 자본의 개입이 실제 언론보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목도한바 있다.

특히 자본은 한국방송광고공사 해체, 지상파방송사 등의 소유지분 규제 완화 및 해소 등 한미FTA를 통해 방송사에 대한 자본의 개입력을 확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번 판례가 단순 선례 혹은 일련의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한미FTA에 대한 언론의 공정한 보도는 물론이고, 이어 언론노동자들의 한미FTA 저지 투쟁이 필수 불가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언론사회단체, “소수 범죄 집단에 대한 사회 및 공익의 승리”
이상호, “공개되지 않은 ‘X파일’ 더이상 지연할 이유가 없다”


한편 이상호 기자는 선고공판 이후 기자회견에서 공개되지 않은 X파일을 공개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1년 6개월여를 끌어온 'X파일' 과 관련해 향후 새로운 국면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선고공판 중 눈물을 보이기도 한 이상호 기자는 “전혀 예상치 못한 판결”이라며 “언론의 자유의 가이드라인이 정해진 사건이고, 진보 보수 언론할 것 없이 공정한 언론보도에 매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상호 기자는 공개되지 않은 ‘X파일’과 관련하여 “더이상 지연할 이유가 없다”며 “편집국에서 충분한 토론을 거쳐 진실을 밝혀내겠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또한 문화연대,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는 이상호 MBC 기자와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사건 판결에 대한 환영의 뜻을 밝혔다.

신학림 언론노조 위원장은 “정당하고 합리적인 판결이었다”며 “이후 이러한 사건 발생 방지 및 수월한 법률 적용을 위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작업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전규찬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소장은 “소수 범죄 집단에 대한 사회 및 공익의 승리”라며 “역사적 사건”이라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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