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요구를 거꾸로 거스르는 ‘장애인지원대책’

장애인단체들, “빈 깡통에 돌멩이 하나 넣어 소리만 요란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신지체 장애인을 소재로 한 영화 ‘맨발의 기봉이’를 직접 관람 후 범정부적 차원에서 “장애인 복지의 획기적 향상을 위해 마련했다”는 장애인지원종합대책이 정작 장애인 당사자들로부터 ‘생색내기식’ 대책이라고 비판을 받고 있어 주목된다. 특히 4일 발표된 장애인지원종합대책이 기존에 이미 발표되었거나, 시행되고 있는 정책들을 부처들 간에 짜깁기 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어 이번 정부 장애인 대책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질 전망이다.

매년 3천7백억 투입?, “한 개 영역에서만 매년 3천3백억 필요한데..”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 전국장애인교육권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6개 장애인 단체는 6일 오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일 발표된 정부의 장애인지원종합대책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장애인 교육권, 노동권, 이동권, 활동보조인제도,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각 장애인 관련 부문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대단체 및 활동가들이 참석해 정부의 이번 장애인종합대책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우선 장애인단체들은 정부가 이번 장애인종합대책을 ‘4년간 총 1조 5천억 원을 투입하는 예산이 뒷받침되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라고 일축했다.

장애인단체들은 “정부가 제시한 예산안대로라면, 매년 3,750억 수준의 예산이 투입되는데, 장애인지원종합대책의 여러 영역 중 소득보장 하나의 영역에만 3,371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며 “결국 나머지 400억 원 정도를 가지고 장애인 교육, 노동 등 나머지 12개 영역을 시행하겠다는 얘기”라고 지적하며 이번 정부 대책의 실효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또 장애인단체들은 이번 대책이 새로운 복지예산 확대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는 현재 장애인차량에 지원되고 있는 LPG보조금 제도를 내년부터 대폭 축소하고, 2010년에는 완전 폐지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절감되는 2,700억 원의 예산이 장애인지원종합대책의 예산으로 전용될 예정이어서 이번 대책에 대해 정부가 한껏 생색을 내고 있지만, 결국 ‘아랫돌 빼어 윗돌괴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터져나오고 있다.

활동보조인서비스, “35만 명 중 1만3천 명, 그것도 하루 1시간”

장애인지원종합대책에 포함된 각 부문영역별 대책 중 장애인단체들이 가장 문제 삼고 있는 부분은 활동보조인서비스 관련 내용이다.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는 그간 장애인들이 맨몸으로 한강대교를 기어 건너가면서까지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사안이다.

이번 대책을 통해 정부는 가족의 도움으로 집에서 생활하는 저소득층 장애인 13,365명에게 활동보조서비스를 지원하기로 했다. 또 차상위 중증장애인 392명에게 시설 입소비중 일부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 같은 정부 대책에 대해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홍구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부회장은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더라도 일상생활에서 반드시 활동보조인이 필요한 장애인은 34만 명”이라며 “진정으로 장애인을 위한 제도라면, 최소한 이 중 최소 50%는 포괄해야 되는데 고작 1만 3천여 명만을 대상으로 하겠다는 것은 장애인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강력 비난했다.

또 박홍구 부회장은 활동보조인서비스 지원대상의 규모뿐만 아니라 그 질적 수준도 지적했다. 보건복지부와 장애인단체로 구성된 ‘활동보조지원제도 도입을 위한 TFT'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활동보조인서비스를 위해 2007년도에 국고 예산과 지방비를 포함해 140억 정도를 사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박홍구 부회장은 “정부가 투여하겠다는 예산을 시간당 단가 5천원(서비스 전달기관 운영비 포함)을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장애인 1인당 월 평균 17.5시간으로 하루에 1시간도 안 된다”며 “어떻게 이 같은 대책을 내놓고 장애인 복지를 위한 제도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축소한 장애인고용장려금부터 원상회복 시켜라”

활동보조인서비스 뿐만 아니라 정부의 장애인지원종합대책에는 장애인 노동권, 이동권, 교육권 등 각 부문영역 내용들이 포괄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내용들이 ‘생색내기’식 대책에 불과하다는 게 기자회견 참석자들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김병태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이번 종합대책 중 가장 부실하고 실질적인 내용이 없는 것이 노동권 관련된 것”이라며 “고용지원 체계 혁신이라는 이름하에 2007년부터 연구용역을 통해 직업적 장애 개념 도입 방안을 검토한다는 것과 중증장애인 취업지원서비스를 강화한다는 내용이 전부”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진정으로 장애인 노동권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면, 지난 2004년부터 대폭 축소되어 온 장애인고용장려금부터 원상회복 시켜야할 것”이라며 “장애인들의 고용여건을 실제로 개선하려면, 최소한 소득보장 부문에 투입되는 3천억 원 정도를 투입해야 되는데, 예산 마련에 대한 언급도 없다”고 성토했다. 김병태 상임대표는 “빈 깡통에 돌멩이 하나만 집어넣고, 흔들면 요란한 것처럼 실효성 없는 이번 대책에 대한 홍보만 요란스럽다”고 덧붙였다.

“노무현 정부, 장애인복지와 교육에 대한 철학과 패러다임 없어”

정부가 장애인 교육 지원을 위해 2010년부터 유치원을 비롯해 초·중·고등학교 전 과정에 대해 의무교육을 실시한다고 밝히고 있는 것과 관련해 박인용 전국장애인참교육부모회 교육국장 역시 “백화점식 대책으로 내용이 없는 것뿐만 아니라, 노무현 정부는 실현할 수도 없는 허황된 대책들을 늘어놓고 장애인들을 기만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교육인적자원부 조사에 따르면 현재 전국적으로 142개의 특수학교와 4,676개의 특수학급이 개설되어 있다. 이곳에 다니고 있는 장애학생의 수를 전부 합쳐도 그 수는 58,362명에 불과하다. 학령기 장애아동의 추정인구가 230,045명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장애아동 4명 중 3명은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다 얘기다. 이에 따라 현재 장애아동의 특수교육 수혜율은 25% 수준에 불과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현재 있는 것만큼의 특수교육기관이 증설되더라도 부족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상황이 이렇지만,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2009년까지 특수학교 14개교와 특수학급 950개를 증설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 이에 소요되는 예산 또한 정부예산이 아닌, 민간자본을 유치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박인용 교육국장은 장애인지원종합대책을 통해 밝히고 있는 정부의 장애인 교육권 보장 계획에 대해 ‘터무니없는 계획’이라고 일축하며, “노무현 정부는 장애인 복지와 교육에 대한 철학과 패러다임 자체가 없다”고 비판했다.

장애인들 요구 무시하고, 4년간 2천5백억 쓰겠다던 대책의 행방은?

한편, 이번 장애인지원종합대책에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장애인 생활수용시설 확대 계획은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 2005년 9월 ‘희망한국21-함께하는 복지’ 계획을 통해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장애인 생활시설을 270여 개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2006년부터 4년간 2,500억 원의 예산이 시설 증설에 투입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장애인단체들은 그동안 정부의 시설수용 확대 정책에 대해 강력히 반대해 왔다.

김정하 장애인생활시설생활인권확보를위한연대회의 활동가는 “이번 장애인지원종합대책에서 시설확충 정책을 누락한 것은 노무현 정부 스스로가 이 정책이 장애인들에게 비난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는 더더욱 장애인들을 기만하는 얕은 술수라고 밖에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장애인 수용시설 확대 정책은 즉각 폐기되어야 하고, 이에 소요되는 예산을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 등 자립생활 관련 예산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기자회견 단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이번 장애인지원종합대책은 장애인들이 피땀 어린 투쟁을 통해 이미 쟁취해 놓은 성과들과 실제적인 내용이 거의 없는 명목상의 대책들을 함께 묶어 놓은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며 “노무현 정부는 이제라도 장애인을 우롱하는 ‘생색내기 종합대책’을 집어치우고, 시설확충 전면폐기와 실질적인 활동보조인제도화 요구에 답해야 한다”고 밝혔다.
태그

보건복지부 , 장애인지원종합대책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김삼권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