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 맨 땅에 헤딩

'포괄적 접근방안' 마련 어려울듯, 미국이 조금 봐줄 수도...

2001년 3월 7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첫 한미정상회담을 가졌다.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2개월 되던 때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날 한미정상회담에 대해 "솔직하고 진솔한 의견교환을 했다"고 말했다.

부시 : Well, I... first, we had a very frank discussion about North Korea.(우리는 북에 대해 매우 솔직한 토론을 했습니다.)
김대중 : The greatest outcome today has to be that, through a frank and honest exchange of views on the situ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we have increased the mutual understanding. (오늘 회담의 가장 큰 성과는 한반도 상황에 대한 솔직하고 진솔한 의견교환을 통해 상호 이해를 높였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솔직하고 진솔한 의견교환'이란 이견과 다툼의 소지도 충분히 있었다는 이야기로 해석된다. 부시 대통령은 "김정일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부시 대통령이 예상보다 강경한 대북 강성 기조를 보인 것이다. 따라서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 때 채택될 것으로 전망했던 `평화선언'을 사실상 거둬들이고, 대신 긴장완화와 관련해 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를 "상당히 중요한 참고자료로 삼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솔직하고 진솔한 의견교환'이었다고 말해 이견이 있었음을 숨기지 않았다.

이윽고 부시의 북에 대한 태도는 2002년 1월 30일 연두교서에서 이란, 이라크와 함께 북을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지목하면서 분명해졌다. 쿠바.이란.이라크.리비아.수단.시리아와 함께 북을 테러지원국으로 규정하면서 부시정권의 대북 적대기조가 확정되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청와대는 '포괄적 접근방안'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정상회담 전 '공동의 조치'라 회자되던 말이 회담을 거치자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이란 말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런데 지난 한미정상회담에서 '포괄적'이란 용어가 등장한 건 처음은 아니다.

2003년 5월 15일 워싱턴에서 열린 노무현-부시 정상회담에서 '포괄적'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2003년 4월 북-미-중 베이징 3자 회담 이후 북한의 조치에 대해 미 행정부가 물리적인 대응을 검토하던 즈음, 한미동맹을 '포괄적이고 역동적인' 관계로 발전시킨다고 천명한 바 있다. 당시 '포괄적'이라 함은 한미동맹 관계 복원과 완전한 동반자 관계로의 격상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주한미군 재배치를 둘러싼 논란을 정리. 한반도와 아태지역 미군의 강력한 전진 주둔 문제와, 한국경제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대외적인 신뢰 표명과 동시에 지속적인 시장개방과 투명성 제고를 담는 것이었다.

2005년 6월 11일 워싱턴에서 노무현-부시 정상회담이 다시 열렸다. 당시 정상회담에서는 6자회담 후속 회담 개최가 불투명한 가운데, 북이 핵무기 보유 발표와 핵 군축회담을 제안한 상황이었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대화가 아닌 압박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북에 대해 선 핵포기 후 다자안전보장과 에너지 지원 등 북미관계 보장을 기조로 했는데, 이 회담에서 역시 '포괄적이고 역동적인' 한미동맹관계를 표명한 바 있다.

청와대가 이번 정상회담 결과에서 밝힌 이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이란 유엔안보리 결의 1695호에 따라 북을 압박해온 미국의 입장과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아래 6자회담을 조속히 재개해 9.19 공동성명을 이행하도록 추구해야 한다는 한국의 입장을 혼합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구체적인 '접근방안' 합의는 아무 것도 이루어진 것이 없다는 지적이다.

송민순 청와대 안보정책실장은 19일 '포괄적 접근방안'과 '유엔안보리 결의 이행' 사이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포괄적 접근방안은 유엔안보리 대북 결의 이행을 유예하기 위해 추진되는 것이 아니다. 두 개는 별개의 트랙(track)이다. '접근 방안'의 '접근'은 상호 접근을 의미한다. 상호적 조치의 조합을 통해 제재, 대화 재개, 9.19 공동성명의 이행을 아울러서 해결하려는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이는 노무현정부의 주관적 바램일 가능성이 높다. 피터 벡 국제위기감시기구(ICG) 북동아사무소장은 "두 대통령의 사고기준이 워낙 달라 풀릴 수 있는 쟁점들이 거의 없다"라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는 앞선 14일 "부시 대통령 참모들은 두 나라 정상간에는 최근 몇 달 동안 간격이 더 벌어져 일본해(동해)와도 같은 갭이 있다며 이는 거의 숨기기 불가능한 상황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결국 대북 문제에 대한 입장 차이를 무시하고 6자회담을 통한 해결을 말하는 것은 '포괄적 접근방안'과 관계없는 하나마나한 이야기다. 부시 대통령은 북의 6자회담 복귀 방안으로 "김정일 위원장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제거함으로써 고립보다 나은 길이 있음을 분명히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북이 6자회담을 거부함으로써 다른 5개국의 동맹이 더 굳건해 졌다"고 강조한 데 비해,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는 지금 6자회담을 재개할 수 있는 방안을 주로 논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6자회담 실패 시 있을 수 있는 제재문제를 먼저 얘기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말해 기본 인식에 큰 차이가 확인되고 있다.

미국은 이미 보다 강력한 대북 제재를 가하는 쪽으로 저울질하고 있다. 미국은 북미 제네바 합의 이후 해제한 대북 제재를 되살리는 방안과, 99년 북의 미사일 발사 유예 조치에 따라 해제한 제재 조치도 부활하는 방향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미국은 △북 생산 제품과 원자재 수입 금지 해제 △금융거래 규제 일부 해제 △투자 제한 완화 △대북 송금 허용 △북미간 항공기 운항 허용 등의 조치를 취한바 있다. 미국은 또한 6자회담 참가국과 190여 개 유엔 회원국에 유엔안보리 결의에 따른 대북 초강경 제재 조치를 조속히 취해야 한다는 공문도 발송한 상태다. 한편 일본은 19일 조선광업개발무역회사 및 단천상업은행 등 북 기업 16개와 개인 1명과의 금융 거래를 금지했고, 호주도 북에 대한 금융제재 방침을 발표했다.

20일 뉴욕에서 열릴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크리스토퍼 힐 미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간 회담에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의 구체적인 논의를 하기로 되어 있다. 가령 한국이 미국이 1년 넘게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을 조사하는데 대해 이를 조기 매듭하고 대북 협상에 나설 것을 요청할 수 있겠지만, 미국은 조사에 시한을 설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힐 것으로 보인다.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포괄적인 접근방안'의 기본적인 충돌이 예상된다.

송민순 안보정책실장의 뜻대로 행여 '제재 -> 대화 재개 -> 9.19 공동성명의 이행' 구상이 실현될지 여부를 단정할 수는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도 미사일 시험 발사 후 대북 지원을 중단했기 때문에 미국의 대북 압박전선에 동참했다는 점을 강조하기까지 했다. 즉 제재 과정에 노력했다는 점을 부각하며 다음 단계인 대화 재개를 희망한 것이다.

한미FTA 어지간한 보따리 다 넘겨주고, 개성공단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한국도 쌀과 비료 중단으로 미국의 대북 제제에 동참했다는 비굴한 프로포즈에다, 전시작통권 합의로 바다이야기 마냥 돈 퍼다줄 일만 남았다. 미국이 빈털터리로 돌아온 노무현 대통령을 조금 측은하게 봐줄지는 모르겠다. 유엔안보리 결정 집행과 대북 압박 타이밍을 두어 달 정도 유예해줄 지도... 그렇게 되면 또 무얼 얼마나 가져다 바쳐야 할까. 아직 한미FTA 4차협상 일정이 남아 있긴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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