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왜 빵에 갔어? 잘못했으니까 갔지. 왜 빵에 갔는지도 몰라. 잡아가니까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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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1년 아프리 점거농성으로 구속된 뒤 석방되자 수인복 차림으로 창동 집에 오셨다. [출처: 전태일기념사업회] |
민종덕이 하고 장기표하고 만났다고 재판할 때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 그러니까 장기표보고 민종덕이 왜 만나냐고, 누구 만나고 누구 만나고, 장기표 보고 자꾸 그렇게 묻는 거야. 재판장이 그렇게 묻는 거야.
시간은 일천구백칠십칠 년 장기표 씨가 민청학련 사건과 청계피복노조 관련으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을 때로 거슬러간다. 판사가 장기표 씨에게 청계피복 사람을 왜 만나냐고 심문을 하자 방청석에 있던 어머니는 판사에게 따진다.
우리 모두(청계피복 식구)가 다 갔어. 재판하는 소릴 듣자니 참을 수가 있어야지. 야, 세상에 사람이 사람 만난 게 어땠냐고, 지식을 배워서 모르는 사람을 가르쳐 주는 것이 지식인의 도리고, 배워서 모르는 사람 가르쳐 주고 물어보는 것이 죄냐고, 재판장보고 그랬어. 내가 (방청석에서) 손들고 그랬어. 사람들을 만났다고 그게 죄냐? 내가 물었어. (재판장 질문) 해명하느라고 장기표 입이 말랐어. 그래서 내가 교도관보고 물 떠오라고 그랬더니, 교도관이 물 떠다 주더라고. 그래서 내가 물 떠다준 컵으로 장기표보고 마시라, 그러니까 마시더라고. 그러니까 왜 방청객이 설친다고 (판사가) 뭐라 하는 거라. 방청객이 없는 법정이 어디 있냐고, 물 좀 준 게 그게 죄냐고, 이젠 (판사와) 쌈하기로 시비를 붙었지. 누구 만났냐, 누구 만났냐, 누구 만난 게 그게 재판이냐? 그래서 누구 만나면 어떠냐고, 누구 만나서 좋은 지식을 배워서 모르는 사람한태 물어보는 것도 죄냐고, 당신들은 논 팔고 소 팔고 해서 공부 했으면 똑바로 지식대로 재판을 해야지, 아니 독재 지배대로 명령적으로 재판하는 그것은 어떻게 생각 하냐? 내가 그랬어. 근로기준법을 배워서 모르는 사람을 가르쳐 주는 게 그게 죄라면 너희들 역사에 살인죄보다 더한 죄인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그냥 잡는 거야. 잡을라하다 거기서 못 잡으니까, 거기서 밖으로 끌고 나와. 나오면 또 들어가고 또 들어가고 그래서 그날 재판을 못했어.
이 일로 어머니는 1977년 7월 22일 법정모욕죄로 구속이 된다. 긴급조치 시절 법정에서 판사와 싸운 일도 일이지만, 어머니의 구속은 또 다른 속내가 있었다. 어머니는 ‘아시아아프리카자유노동기구(아프리)’의 초청으로 청계피복 식구들과 미국에 가기로 되어있었다. 어머니가 아프리에 갈 경우 우리노동현실이 전 세계에 알려지는 게 독재정권은 두려웠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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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 11월 27일 청계피복노조 결성식장에서 연설을 하시는 어머니 [출처: 전태일기념사업회] |
아프리 그 사람네 단체에서 나한테 초청장이 왔어. 얼마 안 있으면 미국에 가게 되어 있는데. 그래도 어떻게 해서 입던 옷 입고 갈 수가 없으니까, 그때 맞춰 논 원피스가 두 벌 있어. 그 옷 맞춰놓고…. 성철이(이승철, 삼동회, 전태일 친구)가 노동조합에 전화가 왔대. 엄마 북부서 담당이 장기표 때문에 뭔가 조사를 해야 한다나, 집으로 가서 하잖다고 그래. 야, 미국에 못 가게 하려고 그런 거 아니냐? 집에는 왜 가잖다고 하느냐. 나 안 간다고, 예감에 며칠 남았는데, 뭐 또 (조사)한다고. 미국가기로 하고, 일주일인가 남았는데, 비행기 표까지 사났던 거 같아. (이승철 씨가)우리가 택시에 다섯 사람이 타고 가는데 잡아 가겠냐. 그런 거야. 우리 다섯을 잡아 가겠냐고. (어머니 생각에) 아예 미국을 안 간다고 할까? 그런데, 성철이가 엄마 그렇게 고집 세우면 우리도 못 간다고 그러는 거야. 성철이하고 누구하고 나랑 세 사람이 가기로 했는데 나는 미국 안가도 조사 안 받을란다. 그러니까, 엄마 안가면 우리도 못 간다는 거라. 왜 너네가 못가냐, 엄마가 조사를 안 받으면 우리도 다 안 간다는 거야. .
그 때 어머니는 노동교실에서 있었다. 이미 조사를 받은 일을 다시 조사하자는 것도, 그것도 집에서 하겠다는 것도 어머니는 의심스러웠다. 아프리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려는 술책임을 어머니는 이미 읽은 거다. 하지만 아프리에 가서 우리노동현실을 알리려고 했던 청계피복식구들의 바람이 어머니 때문에 무너질까봐, 이승철 씨와 집으로 갔다.
(그 당시 청계피복 식구들이랑) 네 명이서 성철이가 무허가를 하나 샀다고. 우리 집에는 목욕하는 데가 없어서 성철이네 집에서 목욕하는데, 밖에서 경찰차 소리가 나는 거라. 빨갱이 잡아라하고 밖에서 소리가 나는 거라. 그런데 내가 목욕을 하다 홑껏 잠옷밖에 안 입었어. 그런데 경찰이 양쪽에 팔을 끼고 잡았는데, 안 그런다(연행하지 않는다)고 그러지 않았냐고 안 그러기로 하지 않았냐고, 성철이가 막 그래. 그런데 어디 그래. (경찰)차가 얼마나 많이 왔는데. 백차가 7대가 오고 그랬는데. 성철이가 그래 봤자지. 그래서 백차를 타고 막 바로 경찰서로 안가고 성동구치소로 바로 갔어. 성동구치소로 막 바로 가서, 원칙으로는 경찰서로 데려다 놓고 구속영장이 떨어져야 구치소로 가는 거 아니냐고, 그런데 우린 그런 것도 몰랐단 말이야. 맨 처음 가봤으니까. 그것도 가는지 마는지 아주 무섭게 데려다 놓더라구.
어머니의 첫 구치소 생활은 이렇게 시작된다. 노동교실에서 어머니를 연행할 경우 청계식구들의 반항이 무서워 경찰은 어머니를 집으로 오게 한 거다. 어머니의 구속은 을지로 6가 유림빌딩에 있었던 노동교실과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형사는 긴급조치 아래에서도 노동교실을 열어 노동자들을 깨우치는 일을 하는 어머니를 눈에 가시처럼 여겼다.
처음 갈 때는 (구치소) 어디다 갔다가 혼자 놔뒀다가 날 어딜 데리고 가더라. 밤이 되니까 데리고 가더라. 플라스틱 대접 위에 주먹밥 해놓고 개밥 같이 말이야. 작은 거에 반찬 하나 놓고 숟가락도 플라스틱으로 하나 주는 거라. 내가 개도 숟가락을 주나, 속으로 생각했어. 그런데 나보고 먹으라는 거야. 그래서 …….
어머니의 보따리는 빵(구치소) 생활로 이어진다. 울 수도, 마냥 웃을 수도 없는 어머니의 보따리는 밤이 깊어가는 지도 모르게 줄줄이 풀어헤쳐진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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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풀어주신 전 청계피복노조 박영숙 조합원과 전태일기념사업회, 그리고 전태일과 어머니를 사랑하는 전태일 친구, 청계피복 조합원을 비롯한 숱한 이들의 도움으로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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