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의 힘겨운 투쟁이 또 하나의 결실을 맺었다. 장애인계의 숙원사업 중 하나였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됐다. 6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등에관한법률안(장차법)을 통과시켰다.
장애인들이 직접 만든 장차법이 발의된 지 1년 6개월 만이고, 이를 위해 장애인들이 싸움을 시작한 지 7여년만의 성과다. 2003년에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장추련) 출범을 시작으로 장애인들은 청와대 앞 도로 위에서 70여 일간 노숙농성, 인권위 점거농성, 또 지난 해 11월에는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를 점거하기도 했다. 통과 전 날인 5일에는 한나라당이 장차법을 사학법과 연계해 처리를 미루자, 국회 한나라당 원내대표 대변인실을 기습점거하기도 했다. 동정과 시혜가 아닌 자신들의 권리와 존엄성을 스스로 지켜내기 위해 온 몸으로 저항해 온 장애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장차법 제정, 모든 장애인들의 피어린 투쟁의 성과물”
장추련 등 장애인단체들도 이번 장차법 제정을 크게 환영했다. 장추련은 “법 내용에 있어 장애인의 차별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조문화한 것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며 “그것은 장애인이 더 이상 자신의 문제에 있어 대상이 아니라 주체임을 선언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무엇보다 법 제정 투쟁에 있어 장애인의 참여와 선택이 녹아난 과정이었다는 것은 우리의 소중한 승리의 경험”이라며 “이번에 장차법이 제정된 것은 누군가가 만들어서 시혜와 동정으로 던져준 선물이 아니라, 모든 장애인들이 나서서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피어린 투쟁의 성과물”이라고 평가했다.
이번에 통과된 장차법은 금지대상 차별행위를 직접차별, 간접차별, 정당한 편의제공 거부, 광고를 통한 차별 등으로 규정했다. 또 차별의 영역을 △고용 △교육 △재화와 용역의 제공 및 이용 △사법·행정절차 및 서비스와 참정권 △모·부성권·성 등 △가족·가정·복지시설 및 건강권 등 총 6개 영역으로 규정해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차별을 금지토록 했다.
특히 이번 장차법이 이중적 차별을 겪고 있는 장애여성과 장애아동에 대한 차별금지와 권리구제에 관한 규정을 별도로 두고, 지적장애인의 차별을 명시한 것은 그 의미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또 장애인에 대한 차별행위가 악의적인 것으로 판단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 것도 장차법 제정의 큰 성과라는 평가다.
경총 반발 등으로 핵심 요구 제한적으로 반영
가히 장애인계의 쾌거라고 할 수 있는 장차법이 제정되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제정된 장차법 그 자체로 보완해야 될 부분이 아직 남아있고, 장차법만이 아니라 활동보조인서비스, 장애인교육권 등 이 사회에서 장애인들의 권리가 온전히 보장받기 위해서 넘어야 될 산이 아직 많다.
장차법 제정은 단순한 권리선언이 아닌, 무수한 사회적 차별로 침해받고 있는 장애인들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구제하기 위한 실현방안으로 추진됐다. 이를 위해 그간 장애인단체들은 △독립적 차별시정기구 △실질적 시정명령제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입증책임전환 제도 도입 등의 내용이 장차법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장애인들의 요구를 받아 노회찬 의원이 2005년 9월 최초 발의한 장차법은 이 같은 내용을 포괄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부의 차별시정기구 일원화 방침, 경영자단체들의 반발 등으로 그 핵심적 내용들이 제한되거나, 도입이 좌절됐다.
‘독립적 차별시정위원회 신설’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소위원회를 두는 것으로 결정됐다. 또 해당위원회가 실질적으로 차별적 상황을 개선할 수 있도록 위원회에 차별시정명령권과 이를 효과적으로 담보하기 위한 이행강제금 부과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도 포함되지 않았다. 결국 그간 인권위 활동을 비추어 볼 때, 새 위원회가 ‘권고’ 이상의 어떠한 현실 개선능력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풀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대신 장차법은 인권위의 권고에도 차별적 상황이 개선되지 않거나, 악의적 차별행위에 대해서는 법원이 강제력을 가지고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열어놓았다.
장추련은 이에 대해 “실질적인 차별해소의 제도적 장치로써 시정명령제도가 너무나 제한적으로 도입되었다”면서도 “제한적 시정명령 등을 보완하는 법원구체조치와 차별적인 상황에 대하여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명확하게 규정한 것은 이번 장차법제정에서 소중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또 장애인들이 당초 법안에 넣고자 했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제외되었다. 당초 초안에는 차별적 행위로 인한 재산상의 물리적 손실이 없다고 하더라도, 차별을 가한 사람이 ‘징벌적’ 의미의 손해배상책임을 지도록 했다. 그러나 통과된 법안에는 재산상 손실에 대한 손해배상 개념으로 그 의미가 축소되었다. 또 차별행위에 대한 입증책임을 가해자에게 두는 ‘입증책임전환’도 가해자와 피해자 양자 모두가 지는 내용으로 변경됐다.
이처럼 당초 핵심적 내용이 포함되지 않거나, 제한된 배경에는 경영자단체의 압력행사가 큰 몫을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작년 경총과 전경련 등 경영자단체들은 “기업에 부담이 된다”며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해왔다. 이들은 “장애인고용과 관련한 낮은 국민의식과 정부의 재정지출 부족, 사회적 인프라구축 미비 등 열악한 기반 하에서 강력한 차별금지법제의 도입은 기업에게만 부담을 전가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특히 지난 해 11월 장애인단체들의 경총 점거 농성 과정에서 경총 측 관계자는 “경총은 경영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단체로, 장차법 제정을 지지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라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 땅의 모든 사회적 약자들과의 연대를”
장애인들의 요구가 전적으로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이번 장차법 제정의 그 역사적 의미를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고 장애인들은 말한다.
장추련은 “지난 7년간 장차법 제정을 위해 투쟁하였지만, 그 장차법 제정을 위한 투쟁은 7년이 아니라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차별받아온 지난 수십 년 수백 년의 고통과 억압에 대한 저항이었다”며 “장차법 제정으로 이 국가와 사회가 생산하는 장애인에 대한 야만적인 차별이 끝장나는 것이 아니라, 끝장을 내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들은 “장차법 제정은 이제 장애인 인권을 쟁취하기 위한 새로운 투쟁을 알리는 종소리”라며 “그 투쟁은 장애인만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강고한 연대투쟁으로 실천될 것”이라고 또 다른 각오를 밝혔다.
자신들의 권리를 투쟁으로 쟁취해 온 장애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모든 사회적 약자들과의 연대를 위해 달려가려 하는 그들에게 또 박수를 보낸다. 항상 장애인들의 투쟁이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보편적 권리를 보장받고 살 수 있는 참세상을 앞당기는 ‘종소리’로 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