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대학이라 부르는 이유

[기자의눈] 정치적 자유 짓밟는 대학 학칙

지난 6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전국 69개 대학교의 학칙을 시정할 것을 권고했다. 인권위가 문제 삼은 규정은 대학생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학칙들이다. 하지만 정작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기 위한 수단인 집회 등을 금지하는 학칙은 학교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인정했다.

학교 측은 문제가 되는 학칙은 80년대 제정된 낡은 규정이라며 실제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의 '전국 70개 대학 학칙, 학생준칙 분석 보고서'를 살펴보면, 낡은 규정이 내린 징계가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보고서는 규정이 너무 엄격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애초에 정치적 입장을 밝히지 못하는 것으로 추측한다.

대학교의 학칙과 그에 대한 인권위의 결정을 살펴보면, 오늘날 대학이 어떤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번 권고조치에 해당하는 학칙은 학생의 정치활동을 교육목적을 위배하거나 수업, 연구 등 학교의 기본기능 수행을 방해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인권위 역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권위는 “대학은 정숙과 집중을 기본 조건으로 하는 연구와 수업을 위한 특수한 공간”이기 때문에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집회 등을 어느 정도 제약받아도 문제없다고 판단했다.

이것은 해묵은 논쟁에 대한 하나의 입장이다. 이것은 과연 집회나 유인물 배포가 개인의 행복한 삶이나 학문수양과 대립되는 것이냐는 문제와 관련되며, 오늘날의 대학교는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고 있다. 정치적인 논의는 학생의 본분에서 벗어나는 행위이며, 개인이 수업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인간은 정치적인 동물이다. 앞의 문장은 익숙하지만 뒤의 문장은 낯설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흔히 우리에게 정치는 신문 1면부터 6면까지, 혹은 TV뉴스 시작하고 20분 동안 나오는, 어처구니없는 그 무엇이다. 이것이 즐거운 경우는, 정치인들이 피터지게 싸우는 선거철뿐이다. 정치를 어처구니없는 것으로 여기든 오락거리로 여기든, 그 둘의 차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어느 순간이든 우리는 정치적인 동물이 아니게 된다는 점이다. 정치는 그렇게 항상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그 누군가의 것으로 여겨진다.

정치는 어느 정당을 지지하느냐 따위의 문제만이 아니다. 물론 정치를 그것들로 대유하여 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정치의 전부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접근은 정치가 특별한 사람들만이 다룰 수 있는 것이라고 믿게 만든다. 정치라는 단어에서 거대한 대리석 기둥으로 떠받들려진 의사당건물이나 푸른 기와가 얹어진 청와대만을 떠올릴 때, 우리는 정치적인 동물의 지위를 잃을 뿐 아니라, 정치에 대해서 생각하는 동물의 지위마저 잃고 만다.

정치는 우리에게 자신만의 입장을 요구한다. 정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고 있냐고 묻는다. 이런 물음을 통해 우리는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얻은 실천적 지혜의 범위가 개인의 행복한 삶을 넘어 공동체 차원으로 확장될 때 진정 정치가 된다. 한 개인의 삶과 정치적 공동체의 운명은 따로 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개인이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모든 행위는 정치적일 수밖에 없고, 정치적이어야 한다. 인간은 정치적인 동물이다. 이 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이다.

대학은 보편적인 이해에 복무하는 학문을 생산하고 알리는 역할을 맡기에 큰 학문, 즉 대학이라는 이름을 획득할 수 있다. 대학의 수업은 마땅히 이러한 대학의 본분에 복속되어야 옳으며, 대학은 학생이 보편적인 이해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인가 고민하도록 권장할 때 그 본분을 다한다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처음의 질문에서, 대학은 그 무엇보다도 앞장서서 아니오라고 답해야 할 터이다.

대학교가 자본의 요구에 부응하는 전문인만을 양성한다고 비판받는 이유는, 그것이 학생들에게 공동체에 대하여 논하는 정치적 논의를 짓밟는 모범을 몸소 보이는 데 있다.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우리가 장미라 부르는 것은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똑같이 향기롭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미를 장미이게 하는 향기를 잃었다면 그 이름을 버려야 옳다. 지금의 대학이라면 어떤 이름이 어울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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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 인권위 , 정치적인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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