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제국주의에는 국경이 없다”

[인도네시아 현지 리포트](4) - 인도네시아, 연대의 출발

민중언론참세상은 인도네시아 민주주의를 위한 일본네트워크(NINDJA; Network for Indonesian Democracy, Japan) 및 재일 연구자 이영채, 박근호 박사와 함께 인도네시아 현지 조사를 다녀왔다. 이번 방문은 인도네시아의 한국 기업 투자 및 노동실태를 조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인도네시아 현지 조사 결과는 총 네 차례에 걸쳐 실릴 예정이다. 이번 글은 그 마지막으로 함께 조사를 진행한 NINDJA 활동가, 이영채 박사와의 인터뷰를 싣는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왜 일본의 활동가들이 한국 현지기업 조사를 같이 기획하고 동행했는지, 그리고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를 이야기 해 보았다. 이 인터뷰에는 NINDJA 조사단 중 무라이 요시노리 조지 대학 교수, 사이키 사무국장, 현지 조사의 코니네이터 역할을 담당한 에리 와타나베, 그리고 이영채 박사가 함께했다.- [편집자 주]


“인도네시아의 한국 기업도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어”

처음 이 조사를 제안 받았을 때에는 좀 당황했었다. 인도네시아 현지 한국 투자기업 조사를 하는데 일본의 단체가 왜 코디네이터를 자청했는지 의아했다. 이 조사를 제안하게 된 문제의식이 무엇인지 소개해 달라.

에리: 최근 인도에는 한국 기업의 투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미 1000개가 넘는 많은 한국 기업들이 100만 명 이상의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 대해서 많이 우려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의 노동권 문제뿐만 아니라 지역 공동체 및 환경의 파괴 등 한국 기업으로 인한 많은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다.

미오: 게다가 한국 정부는 동남아시아 국가에게 차관 등을 제공하면서 관계를 강화해가고 있는데, 인도네시아는 한국에게 가장 중요한 국가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풍부한 천연자원과 저임금 노동력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가장 핵심적인 사안은 원자력 발전소에 한국이 투자하는 문제다. 이미 노무현 정권과 유도요노 정권 사이의 교감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원자력 발전 관련 설명을 듣고 있는 참가자들


사이키: 이런 한국 투자의 증가는 우리 일본의 활동가들에게 지난 반세기 동안 일본 기업의 행태를 떠올리게 했다. 일본도 과거부터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 아시아국가에서 많은 잘 못을 해 왔다. 한국도 일본의 기업과 똑 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고 생각한다.

98년 NINDJA가 만들어지고 98년 5월에 수하트토 체제가 무너졌다. 숨겨졌던 인권침해 문제들이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아체에 갔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많은 인권유린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 희생자들을 만났다. 인권침해의 배경에 일본의 천연가스 차관 제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천연가스에서 벌어들인 이윤이 인도네시아 중앙정부에는 보내졌지만 아체에는 보내지지 않았다. 천연자원을 지키기 위해 군대를 아체에 보냈는데, 군대를 보낸, 즉 개발원조를 통해 지원한 군대가 보내진 곳에서는 인권침해와 학살이 벌어졌다. 일본의 기업들도 노동탄압을 하고, 벌목을 하면서 마을 공동체를 파괴했다. 일본의 투자로 수력 발전소를 만들면서 지역 주민의 반발이 있었지만, 지역 주민들을 모두 이전시키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NINDJA는 이런 것에 대해서 책임을 느끼며 활동해 왔다. 특히 일본의 ODA(공적개발원조)가 지역의 주민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기 보다는 오히려 파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데 크게 문제의식을 가졌다.

한국도 작년부터 ODA(공적개발원조)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 것인지 시민사회에서 이야기 되고 있다고 들었다. 한국도 이제는 이런 공적개발원조가 수여국가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지역 공동체를 파괴하고, 기업의 이윤을 확장하는 데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조사는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라이: 한국의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온다면, 돈이 없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어디에서 돈을 들여오겠는가. 일본의 공적개발원조가 했던 것처럼, 한국이 기술과 자금원조를 할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시민사회운동에서도 인도네시아 원자력 발전소 건설 관련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자체가 지방에서 작은 수하르토를 낳아 ”
콘트라스 활동가의 지적에 주목해야


수하르토 독재체제가 붕괴하고 인도네시아에도 많은 변화가 있는 것 같다. 인도네시아에서 직접 활동하면서 몸으로 느낀 변화는 어떤가?

사이키: 민주화로 법이 바뀌거나 제도적 민주주의가 도입되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선거법이 바뀌고, 군과 경찰이 인권유린의 주범이었지만 군의 권력을 엄격하게 국방부 내로만 제한하는 등의 지침이 나오기도 했다. 노동조합이 인정을 받았고, 허가받지 못한 미디어들이 출판을 하기도 했다. 민주화가 진행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수하르토 시대의 많은 침에데 대한 재판이 있었지만 군부는 모두 무죄가 되었다. 수하르토 부패에 대한 조사도 진행되었지만, 수하르토의 건강을 이유로 그것마저도 수사 중지 되었다. 과거의 인권유린의 주범들이 다시 관료로 정권에 남게 되었다.

따라서 실제로는 형식적 민주주의로 보이지만 결코 상황이 좋지는 않다. 특히 주목할 것인 지망자치가 진행되었는데, 오히려 이로 인해 지방에서 작은 수하르토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이영채: 그런 측면에서 콘트라스 활동가의 지적은 대단히 중요하다. 한국의 기업이 일본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수하르토 독재의 유산과 유착되어 있다는 것은 문제다. 민주주의를 위해 인도네시아는 싸우고 있지만 인도네시아의 부패를 연장하는 역할을 한국과 일본의 기업이 하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주목해야 한다.

  콘트라스를 방문한 참가자들


“반제국주의에는 국경이 없다”

이영채: 한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성을 아시아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 계기가 되었다. 한국 내에서도 한국 자본의 제국주의적 성격에 대한 자기통제와 싸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내에서의 가해성이 아시아 지역으로 확장되는 것을 막아내는 것 또한 한국 운동의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라이: 아주 작은 사안 하나를 가지고도 세계를 볼 수 있다. 내 경우에는 ‘새우’였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새우는 실상 동남아 국가에서 지역 공동체, 환경을 파괴하고, 저임금 착취를 통해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나는 이번 조사를 통해 아주 작은 사안, 예를 들어 군부 유산과 유착된 K 기업, 분쟁지역에 중앙정부의 군부를 개입하게 만들었던 A기업 등의 사례를 통해 한국의 활동가들 또한 전체 구조를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현장에서 벌어진 일들을 직접 따라가면서 실체를 추적하고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국경을 통해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가로막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함께 공동 조사를 하면서 서로 이해하고 많은 것들을 함께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함께 조사를 한 것이 시작이다.

사이키: 이번에 한국의 활동가들과 인도네시아를 함께 돌아볼 수 있어서 기뻤다. 지금까지 한일관계라고 하면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한국에 대해 일본은 가해자라는 인식을 시민운동이 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과 일본이 모두 가해자가 되는 구조가 존재한다.

무라이: 반제국주의에는 국경이 없다. 이번 공동조사를 계기로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연대가 강화되고 인도네시아에서의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

닌자(NINDJA)가 일본으로 간 까닭은?

NINDJA 젊은 활동가들과의 수다

NINDJA는 자금 지원을 주로 하는 다른 일본의 NGO와는 조금 달라 보인다. NINDJA에게는 원칙이 두 가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외부자금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카르타와 같은 중앙보다는 지역에서 공동체들과 직접 연대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문제가 일어나는 현장은 자카르타가 아니라 지역이기 때문이다. NINDJA에는 비교적 젊은 활동가들이 많이 있다. 사무국장인 사이키는 30대 중반 이번 조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이번 공동조사를 실제로 코디네이터 역할을 한 에리를 비롯해 함께 참가했던 미오와 사오리는 20대 초반의 활동가이다. 일본의 젊은 활동가들은 어떤 고민을 하는지 잠시 수다를 떨어 보았다.



“세계를 통해 일본을 보았다”

Q: 닌자(NINDJA)라는 이름이 참 재미있다. 인도네시아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활동을 오랫동안 해 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구체적인 활동을 소개해 달라.

사이키: 이름이 재미있어 다들 기억을 쉽게 한다. NINDJA는 98년 2월 만들어졌다. 당시 인도네시아에는 경제적 위기가 있었고, 또한 민주화 운동이 가장 번창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태평양 전쟁당시부터 일본과 인도네시아의 관계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일본은 인도네시아에 많은 지원을 해왔고, 결국 수하르토 독재를 유지했던 것도 일본의 기업이었다. 그래서 일본에서 이런 것을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책임을 느꼈다. 개인적으로는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졸업논문을 쓰기 위해 인도네시아의 젊은 저널리스트를 인터뷰했는데, 그 사람이 속해 있는 미디어가 발행금지가 되었고, 싸우고 있는 젊은이들이 체포를 당했다. 그런데도 그 젊은이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오히려 감옥 안에서도 정치범으로 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인터뷰하면서 싸움을 계속하는 것을 보고 나도 용기를 얻었다. 그것이 처음의 인도네시아에 관심을 가진 첫 계기였다.

Q: 현재 아체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이키: 동 티모르에도 갔었다. 동티모르 주민투표를 기억하나? 아체 사람들과 함께 동티모르에 갔다. 인도네시아 군이 무기를 들고 발포하고, 집을 파괴했다. 독립파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학살했다. 내가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본으로 강제퇴거를 당했다. 지금생각해도 너무 분하다. 어찌되었던 아체를 동티모르처럼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아체문제에 전념하고 있다. 동티모르는 국제적 시선을 받았지만 아체는 아직 잘 알려져 있지도 않다. 지금은 아체의 뉴스를 보내고 아체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국내 문제와 아시아 문제는 하나”

Q: 30대 중반의 사이키에 비해 20대 초반인 에리나 미오의 경험은 좀 더 다를 것 같다. NINDJA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 그리고 현재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에리: 우연히 대학 때 필리핀과 동남아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내 눈으로 동남아시아와 일본의 관계를 직접 눈으로 보게 되었다. 역시 일본의 경제적 기반은 동남아시아의 싼 노동력을 사용하고, 그래서 높은 생활수준을 보장해주는 착취구조라는 것이다. 빈부격차의 문제가 바로 내 삶에 구조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시에는 뭘 할 수 있을지 잘 몰랐다. 그래서 동남아시아 지역에 대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NINDJA의 뉴스를 보면서 인도네시아의 몰랐던 상황들을 알게 되었다. 스나미 피해가 일어난 지역에서 군사작전을 하고 있고, 군대 때문에 원조물자가 도달되지 않았고, 주민들이 살해를 당하고 있다는 것에 충격 받았다. 그래서 NINDJA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미오: 나를 활동가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현재 새우양식을 하는 일에 관여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안무역, 도는 유전자 조작 금지, 여성의 권리 등에 관한 책을 출판하는 회사에 일 년간 근무했다. 말하자면 옛날부터 페미니스트였던 작가가 가장이었는데, 그 회사에서 일을 하다보니 회사가 주장을 해 온 것과, 내가 그 회사에서 노동자로 일을 하는 사이에 괴리를 느꼈다. 그걸 그만두고 무라이 선생님의 추천으로 NINDJA의 자기자본 확보를 위한 NINDJA의 대안무역 프로젝트를 하기 시작했다. 일본 사람들은 새우를 많이 먹는다. 인도네시아에는 많은 새우양식장이 있고, 대부분이 일본에 수출하기 위한 것이다. 수출을 위해 대량생산하다보니 좁은 곳에서 항생물질을 넣고 양식 새우를 한다. 이런 상황을 바꾸면서 전통적인 생산방식으로 새우를 생산하고 일본의 소비자들에게 전달하면서, 인도네시아 주민의 생활과 일본 사람들의 생활을 연결하고 서로 연대하게 하고 있다. 활동가처럼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인도네시아 사람들과 일본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관계를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 내 역할이다. 그래서 나도 활동가라고 생각한다.

사오리: 나는 NINDJA활동가는 아니다. 지금은 대학 2학년 학생일 뿐이다. 나는 미얀마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학 1학년 때 어느 난민 변호를 하고 있는 사무실을 통해 미얀마 난민을 만났다. 그는 88년 아웅산 수지의 측근으로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이었다. 감옥에서 1년을 살았고, 아버지도 체포당하고, 고문을 받았다. 그의 인생 경로를 듣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이런 사람이 일본에서 난민 인정을 받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려야 하고 절차도 어렵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이런 사람을 차별하고 있는 일본사회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 타이와 미얀마의 난민 캠프에 가서 분쟁의 피해자들을 인터뷰 하기도 하고 소수 민족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은 미얀바의 국경지역, 소수민족 지역을 찾아다니면서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과정에 있다.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독재의 모습과 미얀마의 상황은 유사한 점도 많이 있다. NINDJA화동을 참여하면서 어떻게 하면 미얀마의 활동에 도움이 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참가했다.

Q: NINDJA 활동가들은 국제문제를 통해 오히려 거꾸로 일본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분의 활동이 일본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또는 어떤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나.

미오: 우리 세대는 노동운동을 전혀 실감하지 못한 세대이다. 우리에게 한국 운동은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진다. 일본의 NGO들은 국제협력 등에서 높은 위치에서 뭔가를 해준다는 선한 마음 정도에서 출발하는 경우들이 많다. 일본에도 노동, 소비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그리고 시민들의 세금이 직접 들어가는 공적개발원조(ODA)문제도 있다. 보통시민들의 관심은 낮다.

에리: 나도 국내에서 활동을 해온 것이 아니지만, 세계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 일본 사람들의 생활을 꾸려나가는 것에 많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내 국제문제를 꼭 구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국내의 빈부격차 문제라든지 비정규 고용이 증가하고 젊은 층에서 고용이 증가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 물론 이런 활동에 참가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기 때문에, 나는 동남아시아를 통해 운동에 접근하려고 한다.

사오리: 나도 거의 같은 생각이다. 국내 노동문제나 어떤 문제이든 계속 생각하다보면 자연적으로 세계적인 문제로 연결되는 것은 모순이 아닌 것 같다. 자신의 권리가 풍요한 생활이 다른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은 다 알려진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선진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착취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죄책감에 머무를 뿐이기 때문에, 그것을 어떤 형태로 연결해 갈 것인가 그 방식을 계속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본 국내 문제와 아시아 사람들과의 문제는 하나로 연결된다.
덧붙이는 말

NINDJA와 이영채 박사는 이번 인도네시아 현지 조사 결과를 4월 중순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