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아프가니스탄 피랍자 19명 중 남은 7명도 오늘(30일) 석방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변수가 없다면 이번 주말을 전후해 모두 귀국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추가 희생자가 없어 참으로 불행 중 다행이다. 그러나 고인이 된 두 명의 한국사람의 죽음을 잊어서는 안 되며, 이에 대한 책임 소재는 분명히 확인해야 한다.
천호선 대변인은 오늘 우리 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하고 아프간에 파병한 것 자체가 이번 피랍사태의 원인이라는 지적에 대해 "파병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라고 밝혔다. 그 근거로 인도가 파병국이 아닌데 3번이나 피랍되었다는 예를 들었다. 이는 명백한 책임 회피 발언이다. 탈레반은 지난달 19일 한국인 납치 직후 요구사항으로 '한국군 철군'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탈레반은 40일간의 협상 과정에서 다국적군에 파병한 한국 정부에 대한 위협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다산.동의부대가 아무리 인도적 활동을 했다고 강조해도 미 제국주의의 중동 침략전략에 동조하고 다국적군에 참여했다는 점령군의 성격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천호선 대변인은 인질 석방 과정에서 아프간 정부, 아프간 주둔 다국적군, 미국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아 아프간 내 석방 분위기 조성에 기여했다며, 이것이 동의.다산부대 파병으로 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동의.다산부대 파병 때문에 23명의 불특정 한국사람이 납치되고, 2명이 죽임을 당하고, 40일이 넘도록 사선을 넘나드는 고통을 입었으며, 반전평화를 바라는 세계 민중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왜곡하는 주장이다.
더군다나 정부는 인질 구출에 들인 비용을 놓고 "(당사자에) 책임을 지울 일이 있으면 구상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까지 했다. 정부가 특정 사건 해결 과정에 있어 책임 소재를 따지고 비용 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경우 절대 책임이 아프간에 군대를 파병한 정부에 있다는 점에서 구상권 운운 자체가 황당한 일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의 측면에서 볼 때 선교활동 여부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선교활동이 정당하고 좋은 일인가의 가치판단 문제도 관계없는 일이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침략국의 시민으로 전락해 죽음의 공포 속에 헤메다 나온 사람들에게 구상권 운운 하는 것은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꾸미는 교묘한 계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천호선 대변인의 이같은 발언을 종합해 볼 때 정부는 이번 사태에 대해 반성은 고사하고 책임 회피로 일관할 가능성이 높다. 한미동맹에 기반한 파병정책이 근본 원인이고, 따라서 이를 수정하지 않는한 지금보다 더 큰 비극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는 사실상 파렴치한 태도인 셈이다. 예컨대 정부는 앞으로 이라크 자이툰부대 파병 연장과 다국적군이 운영하는 아프간 지방재건팀(PRT) 파견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모두 미국의 요청에 의한 사안이다. 현재 태도로 미루어 볼 때 정부는 파병연장 시도를 중단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도 미국의 대테러전쟁은 계속된다. 미국은 이란에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대규모 전쟁을 벌이기 위한 군사작전을 어느 때라도 실행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대량살상무기 의심 설비에 대한 공격을 넘어 재래식 무기를 사용하여 이란의 군사,정치,경제 기반시설을 하루 밤에 파괴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카스피해 지역 석유와 천연가스 장악을 목적으로 지난 7년간 지속해온 아프간 침략전쟁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전쟁을 통해 소비를 촉진함으로써 막대한 이득을 노리는 군산복합체제의 이익에 부합하고, 한편으로는 중동지역 천연자원을 장악하기 위한 미 제국주의 침략정책을 지속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미국이 말하는 대테러전쟁의 핵심 내용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3대 대테러전쟁 전선에 모두 파병했다. 숱한 파병 반대와 파병 철회 여론을 배타시했다. 뿌리깊은 한미동맹과 그 위에서 이루어진 다국적군에의 동참이 결국 김선일,윤장호,배형규,심성민 씨의 목숨을 차례대로 앗아갔다. 천호선 대변인은 오늘 이 사실을 또다시 은폐,왜곡했고, 한국 정부는 조금도 뉘우칠 의사가 없음을 시사했다. 천호선 대변인에게 묻는다. 아프간에서 이처럼 끔찍하고 혹독한 일을 겪고도 파병정책에 대한 꿍꿍이 속셈을 계속할 셈인가. 과연 앞으로도 이 죽음과 공포의 행렬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고 정부를 대변해 장담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