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가 '언론의 공정성'을 끔찍이 내세우는 이유

공정성 가치 지향, 문제는 생산 주체

언론의 공정성 논란이 계속된다. 이명박 정부가 방송 장악 과정에 공세의 수단으로 ‘공정성’을 물고 늘어져서다. 거듭되다 보니 마치 공정한 세력과 공정하지 못한 세력간 싸움이라는 착시를 유발한다.

방송 장악의 무기로 사용되는 ‘공정성’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9월 2일 방송의 날 기념식에서 “방송의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사회적 책임도 커지고 있다”고 말하고 “방송의 공익성과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요구 수준이 매우 높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은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의 몫”이라고 말한 바 있다. 촛불이 약화된 시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PD수첩’ 공정성 시비, YTN, KBS 사장 교체 등 방송 장악이 본격 추진되는 때였다.

공정하지 않다는 전제, 즉 우열의 힘 관계가 작동함으로써 우성이 열성을 지배하는 구조가 이어질 경우 공정성 문제가 제기된다. 공정하다는 전제, 그것은 공동체적 가치를 추구하든 경쟁 가치를 추구하든 출발에서 물질적 조건의 동등함을 갖춘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렇게만 접근하면 아무 이야기도 안 풀린다.

이명박 대통령은 공익성과 공정성이 국민의 요구 수준에 미치지 못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뿐 아니라 정부 측 인사들이 방송 장악 과정에 끊임없이 공정성 시비를 걸고 늘어졌다. 이유가 무얼까. 간단하다. 먹히기 때문이다.

좀 거슬러 올라가 보면, 2007년 4월에 공개된, 이른바 강동순 녹취록에서도 ‘공정성’에 대한 집요함이 확인된다. 강동순은 '방송의 공적 책임, 공정성, 공공성을 실현하고, 방송 내용의 질적 향상 및 방송 사업에서의 공정한 경쟁을 도모하기 위함'이라는 설치 목적을 위해 일하는 방송위원이었다.

그는 “정말로, 이제 우리가 정권을 찾아오면 방송계는 하얀 백지에다 새로 그려야 됩니다... 새로 건물을 새로 지어야지. 방송이 그렇다는 거에요. 지금 최문순이나 정연주나 이거 껍데기야. 아무 힘도 못 씁니다. 저거 되어 봐야 껍데기에요”라고 말해 미디어 동네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는 빼앗긴 정권, 빼앗긴 방송을 빼앗긴 공정성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 7월 16일 전체회의를 열고 MBC ‘PD수첩’이 지난 4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방영한 미국산 쇠고기 관련 방송에 대해 ‘시청자에 대한 사과’라는 중징계를 의결했다. ‘PD수첩’이 “방송의 객관성과 공정성 규정을 위반했기 때문”이었다.

박명진 방통심의위 위원장은 ‘PD수첩’ 제작진에게 “이리저리 불려 다니지 않을 팁을 드릴까요? 공정성을 지키시면 됩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후에 박명진 위원장은 해외 사례를 분석해 공정성에 대한 강도 높은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미발연, 공언련의 편파성과 공정성 시비

미디어발전국민연합(미발연)과 공정언론시민연대(공언련)가 잇따라 출범했다. 역시 ‘공정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공언련은 아예 문패에 걸고 나왔다.

미발연 출범 선언문의 첫 문장은 “2008년 대한민국의 언론은 언론의 편파성과 공정성 시비 등으로 커다란 위험에 직면에 있다”로 시작된다. 이 말을 조금 바꾸면 ‘언론의 편파성과 공정성 시비가 대한민국 언론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는 말이 된다.

공언련 역시 “언론의 공정성을 선도해야 할 공영언론들의 편파 행위는 언론 스스로에 대한 자해행위이자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이고 “편파방송을 바로잡는 일을 출발점이자 중심으로 설정하고 공정언론 실현 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언련은 ‘광우병 관련 보도를 통해 본 공영방송의 편파보도 사례분석’이라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미발연, 공언련은 ‘공정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주장하고 있을까. ‘공정성’을 키워드로 놓고 변희재 미발연 정책위원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위험하다는 건 언론시장이 위축되고 있음을 말한다. 민영 방송이라면 상관 없지만 국민이 주인인 공영방송은 편파성을 띠면 안 된다. 국민이 낸 세금을 운영하는 방송이 편파성을 가지는 건 맞지 않다. ‘미디어포커스’가 대표 사례다. 시청료는 보수적 국민도 내는데 보수시민단체의 주장은 한 번도 보도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변희재 정책위원장은 일반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보도를 해야 한다며 말을 이었다.

“국민 다수가 공감하는 사안이 많다. 보수와 진보가 아니라 일반 국민이 공감하는 보도를 하고, 그런 상식적인 실력을 갖추기 어려우면 양적 균형성이라도 우선 맞춰야 한다.”

‘국민이 공감하는 보도’라고 했다. 말하자면 지금 위험에 직면한 언론은 국민이 공감하는 보도를 잘 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예를 들어달라고 했다.

“외국인 노동자 문제 같은 걸 심층으로 다룰 수 있다. 한국과 아시아의 대중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연예가 중계나 특집기획, 빈곤이란 무엇인지 역사적으로 심층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면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을 거다. BBC처럼 공룡을 탐구한다거나 혜성을 연구한다거나, 그런 과학 프로그램을 만들 수도 있고.”

시사와 교양 프로그램의 예를 드는 듯 하여, 사회적 갈등이 첨예한 이슈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그건 핫시사라 할 수 있을 텐데, 다루려면 양쪽 진영이 살벌하게 싸우더라도 중간 지점이 있기 마련이고 그 중간지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국가보안법 같은 경우가 그렇다. KBS 시사프로그램은 폐지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중간 지대가 있다. 북 뿐만 아니라 중, 러의 산업스파이와 같은 문제를 거론할 수 있다. 그런 방향으로 다뤄나가야 한다.”

계속해서 변희재 정책위원장은 ‘양적 균형성’을 미발연이 발표한 13대 정책과제와 연결해서 설명했다.

“13대 정책과제가 실현되면 공정성이 상당히 개선될 것이다. 시장이 위축되고 신문 다양성이 무너졌다. 인터넷언론과 유료신문을 정상화해야 한다. KBS와 MBC는 공영방송인지 아닌지 헷갈린다. KBS와 MBC는 경영구조를 정상화해야 한다. 공정성 문제가 가장 심각한 것이 ‘미디어포커스’다. 이 프로그램은 언론개혁시민연대나 민언련의 제안만 반영했지 미발연은 보도하지 않았다.”

13대 정책과제를 보면 KBS ‘미디어포커스’와 MBC ‘PD수첩’, ‘100분토론’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프로그램임에도 특정 좌파언론단체의 지령을 받는 수준으로 제작되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거짓으로 판명된 미친소 괴담을 유포시킨 주범”이 이들 프로그램이라는 주장이다.

보수 인사들이 ‘공정성’을 이와 동일하게 인식하고 있는 지는 모르겠으나. 변희재 정책위원장은 수량적 공정성의 측면과 대립물의 특정한 가치의 지양을 곧 ‘공정성’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권력 재생산 알리바이로서의 공정성

지난 9월 23일 신문법 토론회 자리에서 장호순 교수는 “조중동이 신방 겸영을 하게 되면 방송도 마음대로 만들 거라고 하는데, 소유규제 뿐 아니라 편성규제 등 방송매체는 신문매체와 달리 공정성과 균형성이 의무적으로 적용돼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신방 겸영 반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전제를 지적한 대목에서 한 발언으로, 신문과 달리 소유와 편성을 규제하는 방송에서는 공정성과 균형성이 의무적으로 적용돼 조중동이든 누구든 어느 일방의 마음 대로 좌지우지되지 않을 거라는 주장이었다.

과연 그럴까. 언론으로서의 방송이 공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주관의 소망이나 오해에서 비롯되는 듯 하다. 기계적 중립이라는 장치나 규범의 작동을 두고 수량적 공정성과 균형성을 말한다면 일면 이해될 수 있으나, 제작 편성 주체의 주관과 의지가 반영되는 공정성의 맥락에서 보면 성립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방송은 제작 편성 주체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주관적이며, 따라서 공정성 시비는 주관과 주관의 대립이라는 필연적인 투쟁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홍성일 서강대 연구자는 지난 9월 29일 문화연대가 주최한 문화컨텐츠포럼 발제에서 “저널리즘의 가치로 구현되는 공정성을 근대성의 산물”로 보고 “현실을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회화처럼 저널리즘 역시 현실의 사건을 뉴스로 재현하고자 했으며 이때 현실을 객관적으로 재현하려 했던 시도가 공정성이라는 언론의 가치였다”고 주장했다. 공정성은 세상에 대한 객관적 재현의 한 방식이며 근대성의 산물이라는 정의다.

홍성일 연구자는 방송 저널리즘은 그 특성상 근대성으로부터 벗어난다고 본다. 가령 “근대성에 기원을 두고 있는 인쇄 저널리즘의 공정성이 단일한 소실점을 전제하는 회화적 원근법의 문자적 전환과 자기 참조적 관습 체계라면, 텔레비전은 그와 같은 문자적 전환의 단일한 재현 양식을 벗어나는 움직이는 영상을 활용함으로써 다면적인 시점의 발생을 가능케 하고 공정성을 분산시킨다”는 해석이다.

공정성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조금만 더 보자. 홍성일 연구자는 PD저널리즘을 이야기한 대목에서 근대적 저널리즘의 가치에서 일탈된 저널리즘 관습의 가능성을 언급한다.

홍성일 연구자는 “PD는 텔레비전의 특성에 맞게 원고보다는 영상을 중심으로 사건을 보도하고, 스스로의 시각을 기자라는 익명에 감추지 않으며 시청자의 감정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문예적 태도를 취한다”고 말하고, 이같은 태도에 대해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이며 공정한 보도를 취하려 했던 근대적 저널리즘에서는 피해야 할 가치”였지만 “PD는 적극적으로 이러한 관습을 취함으로써 근대적 저널리즘의 공정성을 탈근대적으로 유동화시킨다”고 주장했다.

이로서 탄핵 국면과 같이 갈등 쟁점이 촉발할 경우 제작자가 주관적으로 옳다고 판단하는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주관적 공정성의 모습을 띠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판단이 맞다면, 방송에서의 공정성은 제작.편성 주체의 의지에 따라 규정된다. 즉 기계적 중립과 같은 수량적 공정성을 넘어, 어떤 가치를 구현함으로써 사회적 공정성을 실현할 것인가의 문제가 화두가 된다.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이나 강동순 전 방송위원, 박명진 방통심의위원장, 미발연과 공언련 인사들이 시종일관 공정성을 문제 삼지만, 실제 겨냥하는 대상이 공영방송의 특히 시사프로그램 제작.편성 주체들이라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강동순 전 방송위원은 말했다.

“걔네들이 안 해. 눈치 보느라고. 왜냐하면, ‘추적60’분에 갖다 박은 PD들이 전부다 ‘정(연주)빠’거든. 시사보도, 시사보도 프로그램에 전부 다 ‘정빠’들 잡혀 있어. 그래서 관리자 1직급 이상 부장급 노조가 필요하다는 게 뭐냐 하면 지금 선거 앞두고 무슨 드라마가 어떻게 됐든 무슨 쇼가 코미디가 어떻게 됐든 그런 거 다 필요 없고, 시사보도 교양 프로그램,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PD가 누구냐가 제일 중요하다고.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PD가 전부다 정빠란 말이야. 걔네들을 갖다가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은 부장급 이상밖에 없어요. 걔들이 어떻게 사악한 짓을 하는지 부장급 이상은 다 알거든. 그거밖에는 방법이 없어.”

이명박 대통령이 ‘방송의 공익성과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언급한 것도, 박명진 방통심의위원장이 ‘PD수첩’의 시청자 사과 중징계를 내린 것도, 변희재 정책위원장이 ‘미디어포커스’를 찍어 강조한 것도, 민발연이 ‘PD수첩’과 ‘100분 토론’을 명시해 감시하겠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9월 17일 KBS 이병순 사장이 KBS사원행동 성원을 중심으로 기습 인사 발령을 낸 것 조차 차분차분 준비되어왔고 또 예고된 일이었다.

공영방송 위기의 실체

여기서 ‘미디어포커스’나 ‘PD수첩’을 옹호하거나 비판할 생각은 없다. 방영중인, 곧 폐지되거나 재편될 운명에 놓인 공영방송의 시사.보도프로그램들이 지금까지 공영방송의 임무를 얼마나 해왔는 지를 평가하는 건 쉬운 일도 아니다.

다만 이명박 정부가 하얀 백지 위에 새로 밑그림을 그린 시점, 방송 제작.편성 주체들은 공정성에 대한 어떤 질적 고민을 가져갈 수 있을까.

공영방송 제작.주체로서는 참으로 공영방송의 위기라 할 만하다. 그만한 징후들이 속속 목격된다. 공영방송 장악의 얼개가 그려졌고, 방송통신기본법 제정 및 방송법 시행령 개정 등과 동반해 자본의 미디어 재편도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정보통신망법 개정, 사이버모욕죄 신설 등의 인터넷 통제 강화도 예외가 아니다.

좀더 압축해서 말하자면 공영방송의 위기는 현 공영방송 제작.편성 주체의 위기이다. KBS의 경우 한 역할을 해온 주요 제작.편성 주체들은 이미 한직으로 밀려났고, 조만간 구조조정으로 아주 쫓겨날 운명에 놓여 있기도 하다. 이처럼 공영방송 제작.편성 주체의 위기는 곧 그들이 갖고 있던 공정성 가치 실현 의지의 박탈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위기는 어떤 수준의 위기일까. 유감이지만 이 위기는 대의 체제 내부에서 벌어진 권력관계의 산물일 뿐 공영방송 주체를 포함한 대안적 미디어 생산 주체 전체의 위기는 아니다.

황규만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지난 8월 14일 열린 인터넷언론네트워크 워크샵 발제에서 “18세기 이후 활자신문과 방송 기술이 만들어지면서 언론은 부르주아 대의질서를 유지 재생산하는 도구로 자리잡았다. 부르주아들은 계몽적인 매스미디어를 통해 스스로를 공중의 담지자로 격상시키며 오늘날 대의제적 질서를 완성시켜냈다”고 짚고 “그들이 그런 지위를 가지게 된 것은 일차적으로는 미디어 생산시스템의 근대적 성격, 즉 생산과 소비의 분리, 주체와 대상의 분리라는 이분법적 성격 때문이었다”고 환기한다.

공영방송의 시사.보도프로그램 제작.편성 주체들 상당수는 이 대의 질서 내부에서 상식과 보편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상식과 보편의 가치는 자유주의 발전의 정점을 이룸으로서, 시민사회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해왔다. 하지만 자본의 추구와 융합하기 어려운 상식과 보편의 가치는 굴절되기에 이르는데, 지금 신자유주의 정부의 미디어정책은 그 현장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황규만 활동가는 “자본과 권력은 부패해있기 마련이고, 언론은 이들의 약한 고리에 대한 독점적인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이는 주류세력 내 분파간의 헤게모니 싸움 때문이다. 그 파열음은 곧바로 약한 고리를 미디어에 노출시킨다”며 자본, 권력과 미디어와의 관계를 언급하고 “저널리즘의 궁극은 이런 타협을 지향하는 폭로의 변증법으로, 조중동이 지난 잃어버린 10년 동안 해왔던 일이며, 과거 언론개혁운동을 이끌었던 1세대 언론운동(개혁세력과 한겨레,경향 등의 개혁신문)이 그러했다. 정권이 바뀐 지금, 그들은 입장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그러하다”고 지적했다.

공영방송의 제작.편성 주체들이 보수와 개혁의 프레임, 즉 지금까지 보수와 개혁으로 양분된 대의 질서 안에서 자본, 권력과 관계 맺으며 보편과 상식의 가치를 실현해왔다는 점에서, 지금 맞이하고 있는 위기는 아주 고약한 필연이다.

가령 KBS의 다수 제작.편성 주체들은 정연주 사장 체제가 보장해준 개혁 컨텐츠 생산을 통해 생존의 구실을 확대해왔다. 대의 질서 내부에서 설정한 의제를 다루는 것만으로도 방송 개혁의 성과를 얼마든지 축적할 수 있었다. 그런 형편 탓에 대의제적 질서가 시민의 이익에 반하는 경우가 있다라도 대의 질서의 바깥의 의제 설정에는 한 발자욱도 움직이지 않았다.

한미FTA가 추진될 때 KBS 제작.편성 주체들이 보여준 엄격한 기계적 중립, 황우석 사태 때 YTN 보도 주체들이 보여준 열광적인 보도 따위는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공영방송은 한미FTA가 추진되면 지금과 같은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시민사회의 경고를 단지 기계적으로 반영하는데 그쳤다. 극히 일부 PD가 찬반 기계적 중립의 프레임을 깨뜨리는 시도를 했을 뿐이다. 이런 수준의 사례는 얼마든지 더 나열할 수 있다.

직접민주주의와 직접행동을 보여주는 촛불집회의 스펙터클 속에서조차 공영방송 주체들은 이들 의제를 쫓아 기획, 생산하는 데 망설였다. 5월 25-26일 청계천 논쟁, 5월 31-6월1일 공권력의 실체, 6월 10일 5시간 넘게 진행된 스티로폼 논쟁에 귀 기울이는 공영방송 주체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시민들은 대의 질서 밖에 있는 매우 급진적인 의제를 두고 논란을 벌였다. 하지만 공영방송의 제작.편성 주체들은 그저 현장을 잠깐잠깐 보여주는 것만으로 제 역할을 인정받았을 뿐이다.

김현석 KBS 기자는 지난 6월 23일 열린 미디어공공성 토론회에서 “6월 11일에 보니까 놀랐다. KBS 어떡할 거냐, 아리까리하다 지켜줄까 말까 고민한다고 했는데, 카메라 기자 한 명이 맞고, 보도에서 서울대생이 맞은 걸 뉴스에서 보여주었다. 일요일까지 보도했는데, 월요일부터 분위기가 바뀌더라. KBS에서도 시위 현장을 보여주네 그런 거다 라고. KBS에 대한 기대가 많은 게 아니라 보여주기만 해달라, 보여주기만 해도 고맙다. 보여주기는 하네. 그런 거였다”며 KBS에 대한 시민의 반응을 이야기한 바 있다.

공정한 가치 지향, ‘질적 공정성’의 가능성

공영방송 주체의 위기는 대의 질서 내부의 권력관계에 따른 위기이고, 신자유주의 미디어정책이 계속되는 한 지속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위기 타개의 거시적 방향은 무얼까. 공영방송 안에서 이루어진 컨텐츠 생산의 틀을 넘어, 대안 컨텐츠 생산 주체간 연대를 통해 우리 사회 곳곳에 내면화하는 신자유주의의 폭거를 보여주는 그런 가능성이 타진될 수는 없을까.

당장은 왜곡된 ‘공정성’ 논란을 깨뜨리고, 보수 인사들이 공정성 논란의 확산을 통한 노림수가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일이겠다. 이 일은 결국 어떤 공정성을 지향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될 수밖에 없어보인다.

홍성일 연구자는 ‘질적 공정성의 가능성’을 언급하는데, 아렌트의 말을 빌어 “근대적 공정성에 대한 처방은 개인의 개성이 존중되는 가운데 대화를 통한 공동체 감각의 확장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 타인을 생각하는 제 3의 위치가 발견되는 질적 공정성임을 알 수 있다”고 짚었다.

계속해서 질적 공정성에 대해 “이는 주관적이며 동시에 공동체적이다. 또한 근대적 저널리즘의 관습이었던 이성 중심적 공정성이 아니라 타자의 감각적, 감정적 개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소통적 공정성”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성에 의해 예측될 수 없는 생방송의 우발성과 현장의 역동성이 걸러지지 않은 채 ‘날 것’으로 전달되는 영상의 특성은 방송 저널리즘의 감각성과 감정적 측면을 한층 부각시킨다”며 1인칭의 컨텐츠를 통한 시민과의 교감에도 관심을 보였다.

‘질적 공정성’의 문제의식과 표현으로 작금의 공정성 시비를 일단락 시킬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여전히 남는 질문은 공정성의 가치 실현, 즉 컨텐츠 생산의 문제다. 컨텐츠 생산 주체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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