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노동자가 양보해서 뭘 얻었는데?

98년 현대차 정리해고 저지투쟁..."사회적 협약은 허구"

1997년말 ‘IMF 경제위기’가 터지고, 1998년초 민주노총 대의원들은 정리해고와 파견제에 대한 사회적 협약을 체결한 당시 직대 지도부를 퇴진시켰다. 새로 선출한 단병호 비대위가 총파업 조직화에 실패하고 물러난 다음, 이갑용 집행부가 들어서서 총파업을 조직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파업과 노정협상, 재파업 선언과 취소를 되풀이하면서, 전국적인 투쟁전선은 실종되고 말았다.

경제위기의 한복판에서 제조업 최대 노조가 있는 울산 현대자동차 정리해고를 둘러싼 투쟁, 아니 노동-자본 간의 전면적 대리전이 벌어졌다. 이 투쟁은 활동가와 노동자들에게 많은 논란과 상처를 남겼고, 그 상흔이 채 아물기도 전에 또다시 찾아온 경제위기는 전체 노동자계급과 민주노조운동을 극도로 위축시키고 있다. 과연 10년 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당시 투쟁에 참여했던 아산 민투위 전대호 의장의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현재에도 살아있는 과거를 들어본다.

  현대차 아산공장 민투위 전대호 의장. 98년 정리해고저지투쟁 당시 울산현대자동차노조 대의원 [출처: 미디어충청]
= 울산에 계셨는데, 어떻게 아산에 오셨어요? 간단한 소개랑 덧붙여서

3공장 MPM 변속기 대의원이었고, 민투위 회원이자 발기인. 99년 7월에 아산에 올라왔지. 98년에 해고됐다가 99년 복직했고. 둘째를 낳았는데 우유 값이 없어서. 다시는 활동 안한다고 마누라한테 각서 쓰고 올라온 거지. 근데 지금 이 모양…….(웃음)

= 먼저 당시 상황을 설명해 주시죠.

97년 노개투 파업이 끝나고 정리해고가 들어온다는 건 조합원들이 알고 있었어. 그 분위기에서 98년도에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두 번 유예시키면서 현장이 어수선해지지. 노란봉투(해고통지서)가 있다더라 등 현장은 위축되어 있었어. 회사가 일방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고. 노동조합은 희망퇴직은 안 된다고만 했지.

그 당시에 회사에서 주는 현자인이란 상이 있었는데, 그걸 탄 사람이 희망퇴직 1호로 나갔지. 노조는 위축되었고 그 당시 대의원들은 손해배상이 들어오는 한이 있어도 막아야 된다고, 대의원 전원이 철농에 들어갔어.

공작사업부(엔진)가 조합원이 6천명인데, 그 때 단조정문에서 열린 집회에 6,500명이 모인거야. 정말 많이 모인 건데, 대의원들이 투쟁을 결의했고. 다른 사업부 같은 경우 삭발하는 사업부 대표도 있었어. 나름대로 현장은 저절로 조직이 좀 되가는 모습도 있었지. 한편에서 불안에 떨고 있었고, 내가 해당될지도 모르니까. 1~5차까지 희망퇴직이 이뤄졌고.

정리해고가 들어온 과정은?

먼저 배치전환을 해. 2공장에서 4공장으로 가고. 뿔뿔이 해산시키고. 두 번째로 집단적으로 교육을 시켜. 우리 경우 본관 교육장에 모아 놓고 조를 짜서 장기교육을 시켜. 마지막으로 회사가 우리를 순환휴가 보냈어. 그리고 나서 7월에 정리해고 통지를 날린 건데, 휴가 갔다가 노란봉투를 받은 사람들도 있어.

98년 투쟁은 자동빵 파업

= 투쟁은 어떻게 시작되었지요?

정리해고가 들어오니까 격한 조합원들은 사무실이란 사무실은 다 때려 부쉈고, 당시 전무, 지금 부사장급도 피 질질 흘리게 두들겨 맞았지. 관리자들도 노동자들한테 엄청 맞았어. 처음부터 공장점거 된 게 아니야. 관리자들도 다 출근했지. 우리가 총파업을 선언하고 나서, 관리자들도 회사 안으로 들어오려고 시도했는데, 그 과정에서 폭력이 난무했지. 고양된 투쟁에서 녹색사수대를 사업부별로 구성했지. 지대장, 중대장, 소대장, 분대장 식으로 조직해서 싸웠지. 예를 들어서 3공장 들어오면 4공장 출신이 들어가서 싸우고 말야.

= 당시 투쟁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현장 조직들의 역할은?

파업은 노조가 조직했다기보다, 자동빵 파업이지. 36일 동안 죽기 아니면 살기로 붙었고. 말미에 김광식 위원장이 고공농성에 들어가고, 전직 위원장들은 굴뚝 농성을 했어. 실질적으로 공장을 우리가 점거했지. 주간에는 7-8천 대오가 있었고, 야간에도 3천대오가 있었어.

그 당시에 회사가 정리해고 명단을 노동부에 접수한 다음에 각 조직들이 정리해고 반대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했지. 양보에 대한 배신감도 있었지. 어쨌든 현장은 8천대오가 파업을 했지만, 울산공장은 집회 때 2만 명이 넘게 모일 정도의 분위기였어.

한마디로 울산공장은 전쟁터였어. 산이나 해수욕장에 노동자들이 모여 있으면 조합원이냐 확인해서 ‘왜 여기 있냐? 파업 중인데.’라고 확인했지. 집에 가는 사람들은 있지만 조합원은 배신은 안했어. 156명을 대표하는 대의원으로서 3개조를 구성해서 퇴근조, 밥조, 반찬조 만들어서 자연스럽게 운영한 거지.

총괄적 평가? 그건 내가 얘기 못하지. 그 당시에 소위 현노신 계열의 수장급, 노연투 임원들이 희망퇴직으로 나갔지. 걔네들이 찌그러드는 것은 당연하지. 이후에 투쟁에는 결합했어. 노연투를 제외하고는 열심히 했어.

가족대책위가 제일 열심히 했어. 임산부를 포함해서. 매일 전 공장 순회하면서 격려해줬고, 역할을 참 잘했어. 또 식당아줌마들이 최선봉에 있었어. 국그룻, 냄비그릇 들고 나와서 투쟁을 독려했어.

= 당시 김대중 정부가 공권력을 투입하려고 했었는데?

마지막쯤에 김광식 위원장 직권조직 직전에 공권력이 새벽에 들어오려고 했는데, 내 눈으로 목격했지. 각 문 앞에 LPG 통이 다 있었어. 내가 조합원들에게 말했어. 도망가더라도 뛰어가지 말라고 했어. 퇴로는 있고, 바리케이드가 많아서 위험하다고. 나는 대의원이니까 장렬히 전사하겠다는 각오였지.

전경들이 정문으로 들어오려는데, 담 밑에 가족대책위 텐트가 있었고 거길 밀면 아이들이랑 식구들이 다치니까 못 친 거지. 정문에서는 식당아줌마들이 나서서 막았고, 정문을 막았던 사수대가 새총을 들고 있었지. 철판을 뚫는다고. 얼마나 겁나는지 아나? 결국 못 들어 온 거지.

= 직권조인 후 현장 상황은?

김광식 위원장이 직권조인 하던 날, 생생한 게 노동조합은 개박살 났지.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으로 새총을 다 쏜 거지. 더 이상 노동조합 필요 없다고. 사건은 그렇게 정리된 거지.


조합원들은 알아. 버티면 이길 수 있다는 걸

= 양보해서 얻은 성과는?

성과는 무슨? 어쨌든 조합원들이 아직 인식하는 게 정갑득이 8대 위원장인데, 밀물 들어오듯이 비정규직을 다 받아들인 거지. 직영을 하청화, 용역화하고. 기준을 마련해서 받았는데, 울산공장은 16%를 넘지 않는 거고, 아산공장은 30%. 조합원들은 생각이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방패막이다.’ 이런 생각을 아직 갖고 있어.

1~5차 희망퇴직으로 8천여명 이상이 회사를 떠났어. 희망퇴직은 위장한 정리해고야. 거기에 277명 정리해고 합의했지. 특히 현장활동가들이 대거 무급휴직과 정리해고를 당하게 돼. 노동자들은 98년을 경험하며 노조가 나를 지켜준다고 생각하지 않지. 월 70만원이 넘는 일방적 임금 삭감이 이어졌고, 무급휴직자 선정문제와 생계비 문제도 분명히 정리되지 않았지. 고소고발과 손해배상, 구속, 체포에 노-사가 무쟁의를 선언하는 지경까지 갔지.

한 측면에서 내 나름의 평가인데, 어쨌든 희망퇴직을 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회사로 복귀했지. 나를 짤랐던 놈이 과장인데 복직해서 다른 반으로 가도 반장이 있잖아. 걔들이 조합원들한테 엄청 맞았지. 조합원들은 알아. 버티면 복직할 수 있다는 거지.


현장여론에서 밀리면 절대로 안 돼

= 투쟁의 교훈이라면?

지금처럼 일이 없을 때 활동가들이 현장을 조직해야 돼. 집단적 교육은 회사에서 받아오더라고, 활동가들이, 특히 현장위원들이 조직을 해야 돼. 어느 시점에 회사가 일방적인 행동을 할 때가 있는데, 그 때 우왕좌왕한다고. 당연히 회사는 갈라치기 할거고.

가라면 무조건 버티고, 조합원은 집행부가 모이라고 하면 무조건 모여야 돼. 현장여론에서 밀리면 절대로 안 돼. 의장부는 98경험이 없는 젊은 친구들이라고. 현장의 조합원들은 붙으면 붙겠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고. 우리가 뽑은 대의원, 집행부를 믿어야 돼.

비정규직이 나가면 정규직은 자동빵이라는 관점을 가져야 돼. 비정규직을 우리가 처내는 방법으로 가는 건 양보야. 회사는 계속 어렵다고 얘기할 거고 노동강도를 높일 거야. 신차가 들어오면 맨아워 협상을 할 텐데, 편성률을 높일 거고. 같이 노동을 하면서도 비정규직이 부담이 많아. 그런 말이 있어. 정규직 누워서 일하고, 비정규직 뛰면서 일한다고. 내부 갈라치기에 놀아나는 순간 끝이야.

= 98년과 지금의 차이는?

98년과 지금의 차이는 98년의 현자와 지금의 현자는 엄청난 차이가 있어. 그 당시 울산에서는 정유회사를 알아줬고, 현자는 그저 그런 회사였어. 그런데 세계 자동차 GT5에 들어간 지금은 관리자부터 나가라고 하면 못 나간다고 해. 나보고 ‘노랑봉투주면 나라도 버틸 겁니다.’ 그렇게 얘기해. 조합 가입도 물어봐. 그런데 지금 조합원들은 고용만 보장받으면 임금은 말 안 해. 월급제 부분은 양보할 수 있다는 여론이 있다니까. 이 옷만 벗지 않으면 애들 교육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니까.

이렇게 양보하면 다 뺏길 건데. 미쳤어? 내가 한 달에 얼마나 번다고.

현자는 지금 총고용은 보장하겠다고 하지만 비정규직 고용보장은 말이 없어. 비정규직은 ‘우리 사람’이 아니야. 현장은 고용에 너무 목매달아서, 회사도 못 믿고, 조합도 못 믿는 상황이야.

= 물량 때문에 조합원들이 어수선한 거 같은데?

2000년대 모듈화와 플랫폼 통합 반대했는데, 어느 순간 인정하게 돼. 쉽게 말해서, 모듈은 배치전환, 플랫폼은 노동유연화야. 그러다보니 물량문제가 조합원들 사이에 민감해. 조합원들 정서가 ‘있을 때 벌자’거든. 그전에는 특근을 그렇게 안 했는데, 98년도 끝나고 나서부터 있을 때 벌자는 정서가 퍼지면서 조합원들이 물량에 대해 집착하게 된 거지.

= 그러면 어떻게?

굉장히 어려워. 물량에 대한 부분은 전적으로 회사가 책임져야 돼. 해마다 몽구 회장이 신년사를 하는데, ‘올해 몇 만대 생산하자’ 이렇게 얘기하는데, 이번에 빠진 거야. 회사측 경영설명회도 1년 계획이 아니라 분기 계획만 발표했어. 미국발 금융위기 상황에 대해 예측을 못하는 거야. 그런데도 노조도 수세적이고, 금속노조도 총고용만 얘기하거든. 양보하겠다는 거지.

내 살기위해 나가라 하면, 그 다음이 우리

=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은?

98년도는 평생 못 잊지. 구조조정은 무조건 들어와. 방식에 대해서 차이가 있겠지만, 98년도를 겪어보니까 회사측에도 정규직에 대한 정리해고, 이건 쉽지 않아. 36일간 파업을 겪었잖아? 회사측도 정리해고 비용이 너무 크다는 걸 알지.

집행부가 생각을 잘해야 되는 건 사실상 비정규직을 짤라 내는 것은 대의원이고 집행부라는 거야. 물량이 줄면 일단 교육을 시킬 거야. 하다하다 안되면 휴가를 보내겠지. 그 이전에 비정규직을 짜를 건데. 예를 들어, 의장부가 800명인데, 100명이 남는다고 한다면, 싸워서 50명을 지켜도 50명 비정규직이 짤리는 거야. 정규직이 나 살기위해 나가라 하면, 그 다음이 우린데. 비정규직 투쟁은 하지 않으면 결국은 아무도 안 남는 거야.


[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저지투쟁 경과]

- 2월 사측의 일방 전환배치, 순환휴가 실시
- 4월17일~ 1차 희망퇴직 강행. 2천여 명 신청
- 4월23일 정리해고 방침 노동부에 통보
- 5월14일~ 2차 희망퇴직 강행. 1천 5백여명 신청
- 5월20일 정리해고 8,189명 노조에 정식 통보
- 5월27~28일 민주노총 1차 총파업 지침에 의해 1차 파업
- 6월5일 6.10총파업 철회
- 6월24일 3차 희망퇴직 강행. 2천여 명 신청
- 6월30일 26시간 1차 총파업
- 7월6일 48시간 2차 총파업
- 7월13일~ 4차 희망퇴직 강행
- 7월14일 민주노총 총파업
- 7월16일 총파업 전면 유보, 정리해고 명단 개별 통보(2,678명)
- 7월21일 전면 총파업 돌입
- 7월23일~ 5차 희망퇴직 강행 (4, 5차 3천여 명 신청)
- 8월13일 회사 임원 70여명, 관리자 2천여 명 현장 진입 시도
- 8월19일 1차 공권력 투입 시도.
- 8월24일 정부측 중재안으로 잠정합의
- 9월1일 조합원 총회에서 잠정합의안 부결. 68.58% 반대
- 9월3일 정리해고자, 무급휴직자 투쟁위원회 발족
- 9월13일 김광식 위원장 자진 출두. 구속수배자 6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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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헛

    귀족노조 답게 잠바 가슴에 나이키 뺏지달고 있네

  • 허헛

    10년 전 양보가 결국 노동계급 영혼까지 몽땅 내 준 것이라 보면
    당시 혹은 과거 투쟁(자의적인) 개선 행진아닌 것 당연지사
    과거 전력사 자랑삼아 늘어놓은 이율배반 하면서 무슨 왈왈이란 말인다.
    다 필요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