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전여옥 의원을 둘러싼 논란 속에 89년 <5.3 동의대 사건>이 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전 여옥 의원은 최근 동의대 사건 등 민주화운동보상위원회의 결정을 재심이 가능하도록 하는 법 개정을 추진해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계승연대) 등 관련단체로부터 반발을 샀다. 지난 27일 낮 12시30분께 민주화운동 유가족들과 5.3 동의대 사건 당사자들이 상경해 국회에서 전 의원과 충돌하면서 한나라당은 현직 의원을 상대로 한 ‘테러’로 규정하고 당사자 중 한 명이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 |
▲ 상경한 민주화운동 유족들앞에 선 윤창호씨. |
참세상은 지난달 27일 당시 동의대 사건의 주범이 돼 검찰의 사형 구형에 이어 법원으로부터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뒤 김영삼 정부때 2번의 감형으로 모두 6년3개월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지난 95년 8.15 특사로 출옥한 윤창호씨(43)를 만나 그의 소회를 들어봤다.
- 전여옥 의원의 법 개정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재심 기간을 일괄 10년으로 늘리는 것에는 계승연대와 같이 반대하지만, 동의대 사건으로만 한정해서 말하자면 좀 다른 의미가 있다. 동의대사건이 민주화운동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이 사건은 아직 실체적 진실규명조차 안 된 사건이다. 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이냐 아니냐를 재심할 게 아니라, 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해 법원이나 국회, 검찰 등 가능한 단위에서 재조사해 줬으면 한다.
- 그럼 민주화운동보상위원회 결정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는가?
2002년 위원회 결정때 살인에 고의가 없었다고만 했을 뿐 동의대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진 못했다. 그 때문에 늘 가슴 한곳에 응어리가 있다. 출소 이후 지금까지 10년 넘게 화물노동자를 조직하는 노동운동을 하고 있는데 동료들은 날 보고 “지금도 감옥 안에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내게 89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동의대 사건은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 소외돼 왔다. 보수는 우리를 맹비난했고, 진보 진영조차도 우리를 뜨거운 감자로 여겼다.
![]() |
▲ 동의대 사건을 보도한 동아일보 89년 5월3일자 1면 |
재판 때 진압 경찰들은 7층에 화염병 불씨 2개를 현장 소대장이 지시해 껐다고 했다. 소화를 지시한 소대장과 직접 불을 끈 전경도 다 그렇게 법정에서 진술했다. 경찰이 7층에 도착했을 때 학생들은 모두 위층으로 올라가고 없었다. 경찰이 7층을 장악한 지 5-10분 뒤 시커먼 연기와 함께 큰 화재가 일어났다. 이번 용산 참사와 똑같다. 진압 초기에 화염병으로 대형 불이 난 게 아니라 진압 막바지에 불길이 치솟은 것이다. 사건 이후 경찰이 현장을 봉쇄하고 언론과 여론의 접근을 일절 차단한 것도 똑같다.
- 모두 7명의 경찰이 죽었는데.
경찰 7명이 죽고, 13명이 다쳐 모두 20명의 피해자를 냈다. 95년 여름 출소 뒤 제일 먼저 대전 국립묘지에 찾아갔다. 돌아가신 분들을 만났다. 우리가 교도소에 있을 때부터 어머니들이 유족들에게 먼저 머리를 조아렸다. 당연한 거다. 실체적 진실을 떠나서 그분들의 죽음은 평생 가슴에 안고 가야할 업보다. 피해자 중엔 같은 대학의 같은 과 동기도 있었다. 수감 초기엔 내가 자살할까봐 그 사실을 가족들도 말하지 않았다.
- 당시 수감됐던 학생들은 대부분 어떻게 지내나?
대부분 일상의 생활인으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 동료 한 둘은 환경운동과 인권운동을 하는 이도 있다.
- 당시 사건 발단이 학원민주화투쟁이라고 하던데.
아니다. 해직 교수님들은 우리 사건과는 무관하다. 사건은 89년 4월30일 노동절 전야제로부터 시작한다. 당시 검경은 노동절 행사를 원천봉쇄해 민중운동진영의 전국적인 저항을 자초했다. 5.1절 집회땐 학교앞 파출소장이 카빈 소총을 들고 나와 학생들에게 쐈다. 사건 전날 학내 집회장엔 사복경찰이 버젓이 집회 대오 속에 앉아 있기도 했다. 우리가 사복경찰들에게 나가라고 했는데도 그냥 있다가 학생들에게 5명의 사복경찰이 잡혔다. 이 과정에서 학생 2명도 경찰에 연행됐다. 서로 풀어주기로 하다가 경찰의 학원 진입에 밀려 도서관 건물로 피할 수밖에 없었다.
![]() |
▲ 당시 사건의 발단이 된 노동자대회 무산 소식을 담은 동아일보 기사 |
민주화운동보상위원회 등은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자행된 많은 조직사건을 민주화운동으로 재조명해주었다. 그러나 학생운동이나 정치인 관련 사건들의 경우 인정 사례가 많지만, 가장 낮은 곳에서 고생하신 노동운동 사건들은 몇몇 대표적인 사건을 빼고는 대부분 인정받지 못했다. 민주화운동에도 진골, 성골이 있어서는 안 된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