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구청에서 일어난 공무원의 장애인 복지보조금 횡령 사건으로 국회에서 청문회가 열리는 등 세상이 떠들썩하다. 이런 가운데 법원이 공금횡령 등 각종 비리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회복지법인에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판결을 내려 장애인단체 등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달 21일 서울고등법원 민사23부는 서울시가 사회복지법인 성람재단을 상대로 낸 강원도 철원의 장애인시설 3곳에 대한 소유권이전 등기 청구 소송에서 원심 판결을 뒤집고, 성람재단의 손을 들어줬다.
성람재단, 시설 비리의 대명사
성람재단은 장애인시설과 정신요양시설 등 사회복지시설 13곳을 운영하며, 100억 원 대의 국고보조금을 받는 국내 최대 규모의 사회복지법인이다. 이곳은 지난 2006년 6월 조모 (전) 이사장이 27억 원의 국고보조금 횡령으로 구속되고, 112건의 위법사항과 인권침해 사례가 적발되는 등 시설 비리의 대표적 사례로 꼽혔다.
지난 2년 반 동안 성람재단 비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장애인들의 노력은 처절했다. 장애인단체들은 지난 2006년 민주적인 이사진 구성 등 성람재단 비리 척결을 요구하며 143일 간 노숙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장애인들의 '투쟁'으로 사회적인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성람재단 측은 지난 2007년 3월 산하 복지시설 3곳을 서울시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재단 소유의 강원도 철원 복지시설 3곳을 서울시립 시설로 전환하기로 해 성람재단 비리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 했다.
그러나 성람재단 측은 스스로 밝힌 '기부채납'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시설의 시립화가 지연되자 지난 2007년 11월 서울시는 "약속대로 성람재단 장애인시설 3개소를 기부하라"며 민사소송을 제기해 성람재단 비리 사태를 둘러싼 논란은 다시 불거졌다.
서울시가 제기한 1차 소송에서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0부는 지난 해 5월 "성람재단은 소유권이전 등기 절차를 이행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성람재단 측은 "직원들의 고용승계 및 해고자임금 등을 서울시가 부담해 주는 조건부로 기부채납을 하기로 했다"고 버티며 다시 항소했고, 이 주장을 이번에 서울고등법원이 받아들였다.
지난 달 21일 서울고등법원 민사23부는 '정황 상 기부채납에 조건이 있었음이 인정되고, 성람재단의 요구사항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와 성람재단 사이의 기부채납 계약이 유효하게 체결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성람재단 전 이사장, 기부 의사 밝혀 감형되기도
장애인단체와 서울시는 이 같은 판결에 대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장애인.인권단체들로 구성된 '사회복지시설비리척결과탈시설권리쟁취를위한공동투쟁단'(사회복지공투단)은 4일 오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법원은 증거재판주의 원칙을 훼손하며 '조건 없이 기부하겠다'는 공식문서가 있음에도 정황을 중요 근거로 어처구니없는 판단을 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성람재단 측이 2007년 3월 기부 의사를 밝히며 서울시에 보낸 공식 문서인 기부채납서에는 기부채납 조건과 관련한 사항이 없다.
또 성람재단 비리 사건의 핵심인물인 조 전 이사장은 형사재판 1심에서 징역 3년과 벌금 3억 원을 선고받았으나, 2007년 3월 기부채납 의사를 밝혀 2심 재판에서 징역3년에 집행유예 4년으로 감형되기도 했다.
단체들은 "2심 판결은 사회복지시설 비리를 더욱 비호하는 판결이자 면죄부를 주는 판결"이라며 "성람재단의 조건부는 자신들의 귀책사유를 서울시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서울시 "법에 따라 기부채납, 조건부 아니었다"
서울시도 이번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시는 지난 달 27일 상고했다. 배동원 서울시 장애인복지과 주임은 "소송이 진행 중인 상황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기 어렵다"며 말을 아끼면서도 "소송은 서울시가 제기한 것이고, 의지가 없다면 왜 상고를 했겠냐"고 되물었다.
그는 '조건부 기부채납이었고, 서울시도 인지하고 있었다'는 성람재단 측 주장에 대해서는 "기부채납을 마음대로 받는 게 아니라 법에 따라 받아야 하는데 관련법에는 담보 등을 조건으로 받을 수 없게 되어 있다"고 반박했다. '서울시공유재산및물품관리법'에 따르면 자치단체는 조건이 수반된 경우 기부채납을 받을 수 없게 되어 있다.
3년여를 끌어온 성람재단 비리 사태 해결의 열쇠는 이제 대법원이 쥐게 됐다. 사회복지공투단은 4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건은 사회복지계에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다. 대법원의 올바른 판결만이 복지를 바로 세울 수 있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비리와 인권유린을 자행하고도 '기부채납 한다'고 쇼를 하며 국민과 재판부를 속여도 그대로 시설운영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사회복지 비리를 근절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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