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들의 진화 그리고 쿠리오네 요정

문화다양성포럼 3차 사랑방, 정태춘의 ‘나의 삶, 나의 노래’

문화다양성포럼이 오랜 동면을 깼다. 포럼은 지난 10일 밤 7시 서울 서대문구 한백교회에서 가수 정태춘 씨를 초청, 세 번째 사랑방 좌담회를 열었다.

정태춘 씨는 ‘나의 삶, 나의 노래’란 이름으로 이날 한 시간여 이야기를 이어갔다. 회원 40여 명이 모인 그리 무거운 자리가 아니였지만 정 씨는 “과거의 인물인 내가 이 자리에 앉는다는 게 주책”이라며 청을 거절하지 못한 걸 잠시 후회했다. 이내 “솔직함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지만 사적인 자리로 여기고 얘기하겠다”고 시작했다.

정태춘의 <나의 삶, 나의 노래> 문화다양성포럼 3차 사랑방 좌담회

일찌감치 홍세화 한겨레신문 기획위원이 자리 잡았다. 그 맞은 편에 이수호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정지영 영화감독이 앉았고 이은 영화감독,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윤재석 국민일보 논설위원 등이 둘러앉았다. <부동산 계급사회>의 저자 손낙구 씨는 자리가 모자라 뒤편에 섰다.

  한백교회에서 열린 문화다양성포럼 사랑방 좌담회에서 /김용욱 기자
정 씨는 이날 준비해온 세 가지 에피소드를 내놨다. 몇 해 전 일본으로 출국때 허리를 다쳐 휠체어에 앉아서 본 세상풍경이 첫 얘기였다. 무장이 해제된 자신에게 사람들은 어떤 관심도 경계도 부담도 느끼지 않아 퍽 편안했다고 한다. 정 씨는 그러면서 영국의 젊은 철학자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불안’을 인용했다. 보통은 이 책에서 사회적 지위에 대한 인간의 불안을 탐구했다.

정 씨는 두 번째 얘기에서 “요즘 이명박 정부를 보고 ‘이래도 되는 거냐’ ‘너무 막가는 거 아니냐’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말하는 사람들은 살펴보면 지난 10년 동안 누구보다 따뜻하게 살았더라.” “가난한 이들에게 지난 10년과 지금이 무슨 차이가 있나.” “그들의 삶에 단 한번이라도 볕이 든 적이 있었던가”라고 되물었다.

“자본에 맞서는 '소비'를 꿈꾸며”

세 번째 얘기에서 정 씨는 대중과 소통하지 않고 지내는 요즘 자신의 일상을 드러냈다. “사진을 찍습니다. 찍은 사진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나만 아는 사이트에 살짝 올려놓는데 사람들이 전시회를 하재요. 아내는 대중과 소통하지 않는 당신이 사진전 하는 게 맞냐고 해요. 그 말이 맞아요. 그 모순을 아직 해결하지 못했어요.”

“몇 달 동안 소비에트과학아카데미가 펴낸 10권짜리 세계철학사(중원문화)에 빠져 지냈어요. 다 읽지는 못했지만 수많은 이상주의자들이 나왔습니다. 난 유물론자입니다. 그래서 난 딸에게도 얘기합니다. 우리 같은 이상주의자는, 주류가 아닌 이상주의자는 남으려고 하면 안돼. 지워져야 한다고. 미래를 낙관하지 않은 사람이라서 미안합니다. 한 때를 분투했으면 된 것이라고 봅니다. 이후의 싸움은 자본의 통제에 맞서는 것인데 ‘소비’를 무기로 자본에 맞서야 할 것 같아요.”

정 씨는 몇 해 전 일본 북해도에서 본 유빙, 노을, 오츠크해, 바다, 매점, 도시락 등을 담은 <갈매기들의 진화 그리고 크레오네의 요정>이란 시를 천천히 읽으며 1시간여 얘기를 끝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의 침묵이 궁금했던 포럼 회원들의 질문이 다시 1시간 가량 쏟아졌다.

첫 질문은 국민일보 윤재석 논설위원(58)이 했다. “까칠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정태춘님에게 ‘이념’이 많아지면서 ‘따뜻’함이 줄어든 것 같은데요?” “이념이 많아졌다는 것도 다 지나간 얘기다. 지금은 개의치 않는다”는 솔직한 답이 되돌아왔다. 정 씨는 지난해 ‘촛불’때의 침묵의 이유를 묻는 질문엔 “거리에 나갔지만 강한 연대감을 느끼지 못했다. 몇몇 장면에서 거북하게 보이는 것도 많았다”고 했다.

양기환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사무처장은 “저는 정태춘, 백기완 선생님을 이 시대 최고의 선동가라고 생각합니다. 나고 자란 고향인 평택 대추리 싸움에 올인 하셨다가 실패하셨는데...?” 정 씨는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지금의 나는 그 싸움들을 망각하고 있다. 대추리도 내겐 필생의 역작 같은 운동은 아니었다. 내가 태어나고 나를 길러준 고향에 헌신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 고향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며 한 발짝 물러섰다.

시계가 밤 8시30분을 지날 쯤 “지금 생활하시면서 가장 힘든 것 세 가지만 말해 달라”는 질문도 나왔다. 좀 머뭇거렸다. 그러자 정 씨와 마주 앉은 김민웅 교수가 “첫째 박은옥....”하고 추임새를 넣어 무거운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정 씨의 답은 간단했다. “없다.”

서울지하철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는 “질문이 아니라 말씀을 드리고 싶다. 진보나 노동운동의 활동가들이 지쳐서 속속 떠나는 보면서 답답하다. 그런데도 노동현장은 더 물러설 곳이 없을 만큼 몰려 있다”고 했다. 정 씨는 그이의 아픔을 이해하면서도 “10년 진보는 없다고 본다. 선진 활동가도 10년쯤 치열하게 살다보면 낡아진다. 그 다음은 새 활동가들이 채워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10년 진보 없다. 사라질땐 사라지자.”

부부가 모두 영화감독과 영화제작자인 이은 문화다양성포럼 이사는 “정태춘 박은옥 부부의 예술과 이성(異性)의 삶과 관계는 어떠신지?”라고 궁금해 했다. “아내는 ‘노래’에선 나를 많이 가르쳤고 이성으로선 많이 다르지만 우리 잘 산다”고 정리해줬다. 박승옥 대안에너지운동 ‘시민발전’ 대표는 “진짜 궁금해서 묻습니다. 요즘 뭘로 먹고 사십니까?”라고 하자 “노래를 만들진 않지만 노래는 합니다”고 답했다.

거대 담론에서 부부 애정, 밥벌이까지 다양한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밤 9시쯤 머리와 가슴의 허기가 웬만큼 채워졌을 무렵 배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출처: 문화다양성포럼]

[출처: 문화다양성포럼]


갈매기들의 진화 그리고 쿠리오네 요정

시_정태춘

2009년 한 겨울, 훗카이도에서 기차로 다섯 시간
오호츠크의 북태평양 바라보는
대 일본의 변방 오지, 아바시리 항에서

유빙을 보았습니다
아아, 푸른바다
그 푸른새에만 익숙했던 고정관념으로
하아얀 바다, 유빙으로 온통 수평선가지 새하아얀 또 다른 바다를 보았습니다

가까이 작은 시가지에는 노을이 깃들고 있는데
쇄빙선에 탄 관광객들은 얼음보다 차가운 갑판 위에서 조용했고
나는 저 얼음 덩어리들이 지난 초겨울 출발했을 북극해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일행
배에서 내려
노을도 져 버린 짓푸른 겨울 하늘만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이튿날,
인근의 토우후츠 호수
모두 얼어 대지처럼 눈 덮인 호수
거기 한 끝자락에 물 흐르고 그 일대에 또 하아얀 새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원래 거기 이름이 <백조들의 공원>이지만
백조들보다는 객들이 더 많았습니다
갈매기들, 오리들...
인간이야 신분 다지지만 동물들이야 참 ...신분이 있나요. 그래서
고개깊이 수그렸습니다

서양 사진작가들이 엄청난 망원렌즈 카메라를 들고 몰려 왔다가 조용히 떠나고 난 뒤,
매점의 늙은 여자분들
썰렁한 매점 안, 안 긴 의자에 소박한 도시락을 올려 놓고
쭈그리고 앉아 조용히 식사를 하시고는

나는, "참 행복해보이십니다."그랬고
"여긴, 한국 사람들 일년에 한 두 팀 보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밖엔 저 새들 소리로 종일 시끄러워도
나는 거기, 이 세상 같지 않았습니다
저 새들
이런, 사람들 더러 구경 오는 인간의 공원에 몰려와 살거나 아니면
복방 혹한에 빙산을 다 녹이지 못하고 흘려보내는
차가운 오호츠크 바다 위를 떠다니며 살거나
식량 이외,

아무런 몸 외부의, 외부로부터의 도움도 필요없는 저 종족들의 한겨울 옷차림
빠알간 맨살의 발목도 결코 추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주 적당한 지방층과 그 두툼하고 매끄러운 털 옷
아, 감동적인 진화 아니겠습니까?

저들, 그들의 모오든 문명을 제 몸 안에 가지고 있는 저들
저 하아얀 백조들과 오리들과 갈매기들과...
완벽합니다.
그리고,
군더더기 하나 없습니다!
그들의 진화.

뭔가 끝도 없이 필요하고, 끝도 없이 부족한 인간의 진화라니...
또,
우린 그 호수, 그 기념품점에서 <쿠리오네요정(クリオネ天使)>도 만났습니다

투명으로 하아얀 몸뚱이 속의 빠알간 속살
팔도 아닌, 날개도 아닌 그 신비로운 것으로 물 속을 헤엄쳐 다니는 요정
겨우 1센치는 될 듯한 인간의 모습 비슷한 형체로 그 파아란
물 속 유영하며
나의 상상력을, 너무나 머얼리 와 버린 어느 이상주의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봐, 눈에 보이는 세계가 다는 아니야.
네가 눈으로 보았던 세계만 다는 아냐

상상도 마찬가지
네가 상상했던 것 이상의 것을 너는 또
만날 수 있다는거야
이렇게 언젠가 불현듯!

어디에선가!
앞으로도!!!
아아,오호츠크 유빙의 요정<쿠리오네>여!

그 아비시리에서 다시 삿포로로 돌아오는 길
철길 옆, 온 산 하아얀 눈 밭의 백양 나무 숲 사이에서
달려가는 우리 기차 무심히 바라보는 한 무리의 사슴 가족을 만났습니다

아직 해 지기 전
객실에 전등이 켜질 무렵
내가 아직 여기로 돌아 오기전...
태그

정태춘 , 문화다양성포럼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이정호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