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거의 두 달에 가깝도록 나 역시 이스라엘 당국이 나의 가자 입국을 허락할 때 까지 이 기다림의 경험을 나누었다.
지난 해, 나는 체류기간을 연장해서 가자지구에서 인권을 위한 팔레스타인 센터(PCHR)에서 일했다. 그곳에서 내가 한 일은 점령지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권침해사례를 문서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그 당시 내가 문서화했던 인권침해사례들은 최근 가자가 겪고 있는 극악무도한 수위에 비교하면 온순한 축에 속한다.
이스라엘 군 당국을 통해 가자로 들어가는 과정은 소설가 카프카의 작품처럼 지속적으로 변신해가는 과정 같다. 1년 내의 보안 검사를 미리 마치지 않을 경우 가자와 이스라엘 사이의 국경에 있는 에레즈 군 검문소 근처엔 얼씬도 못하게 되어 있는데, 그 지원 과정이라는 것이 늘 드라마틱하게 변하기 때문이다.
![]() |
▲ 가자로 들어가고자 하는 외국인들이 거쳐야 하는 에레즈 국경 터미널의 2007년 8월 모습. 이스라엘이 통제하는 곳이다. [출처: 경계를넘어] |
내 경우, 과거엔 별 어려움 없이 입국 승인을 받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역시 무리없이 입국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이전대로라면 5일 이상 걸리지 않아야 했다. 그러나 상황은 늘 예측할 수 없는 것. 도착하기 한 달 전에 신청하면 충분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미리 입국을 위한 보안 검사를 신청해놓았는데, 그게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던지!!!
당혹스럽게도, 이스라엘 군은 몇 주 후 내가 텔아비브로 날아간 뒤에도 결정을 안 내리고 있었다. 에레즈에 있는 이스라엘 병사는 그 지루하고 미숙한 듯한 목소리로 내게 말하길, 내 입국신청 서류는 계류중으로, 보안당국으로부터 아직 어떤 결정도 내려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 역시 이에 굽히지 않고 매일매일 전화를 걸어댔다. 그리고 늘 똑같은 대답이 내게 돌아왔다 - "아직 계류중입니다". 그나마 그런 간단명료한 대답이라도 듣기 위해서는 다섯 번 이상 다시 걸라는 말을 들어야했다. 간간이 특정시간에 걸라치면 아예 어떤 대답도 듣지 못한 채 불발로 끝났다. 꽤나 자주 에레즈의 응답은 친절하게 끊는 것이었고 가끔은 하다만 통화로 끝나기 일쑤였다. 조금 친절한 목소리가 들려오면 무슨 정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는데, 알고 보면 그런 경우는 자동응답기의 녹음된 것이었다.
"보안관계로, 지금은 신청이 어렵습니다. 몇 달째 기다리시는 분들도 계십니다만 내일 다시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분명해 보이는 것은, 이스라엘이 인권에 대한 우호적 취향을 지닌 돈키호테같은 서양인들을 내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스라엘이 고의적으로 나의 입국신청을 질질 끌고 있다는 증거가 어디 있겠는가? 상황을 들여다보고 나는 이내 알았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 이후 이스라엘 군 당국이 체계적으로 인권단체 관련인사들의 입국을 막고 있는데 나는 단지 그 중의 하나였음을.
2009년 3월 초, 이스라엘의 인권단체인 벳첼렘과 하모크드는 그들의 스탭들이 가자에 입국할 수 있도록 이스라엘 대법원에 청원서를 제출했다고 발표했다. 입국목적은 인권현황을 모니터링하는 것이었다. 그 단체들은 "질질 끌어대다가" 마침내는 "충분한 설명없이 거절하는" 이스라엘의 처사를 비난했다. 그 두 단체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인권감시단체와 동참하고 있는데 그들 보고에 따르면 그들의 동료들은 입국신청 시 "이스라엘 군(IDF)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지연' 조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권감시회의 중동지역 팀장인 사라 레아의 설명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가자로 입국하려는 인권단체 사람들의 신청을 이스라엘이 거절하는 것에는 그곳에 뭔가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 혹은 세상에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한다는 것이다.
가자에 있는 친구와 연락하는 가운데, 내가 알게 된 것은 인권단체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몇 달째 이스라엘로부터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입국 비자의 유효기간이 지나도록 이스라엘이 처리해주지 않은 탓에, 그들 중의 일부는 현재 가자에서 불법으로 활동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스라엘로부터 응답을 받은 이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이러한 상황을 제도화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구비조건들과 보안검열 관련 설명된 바 없는 공식적인 신청절차를 만들어놓고 말이다. 정부당국의 그러한 등록절차는 가자로 들어가는 입국승인을 받는데 잠재적으로는 몇 달이 걸릴 수도 있는 장애물이며 그렇게 기다린다 한들 승인을 받으리란 보장도 없게 만드는 것이다.
다른 가능성을 타진해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난 자연스럽게 이집트를 거쳐 가자로 들어가는 가능성을 고려하게 되었다. 그곳은 말하자면 가자의 후문이다. 하지만 자주 봉쇄되곤 하는 곳이다.
이스라엘의 공습 후 몇 주 지나 이집트는 하마스와 이런저런 인권단체들, 활동가들과 언론인들과의 협력 하에 라파의 국경 초소를 개방했다. 영국의 조지 갤로웨이 기자나 미국의 앨리스 워커같은 작가가 그런 이들 가운데 눈에 띄는 이름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다. 2005년 협약에 따라 팔레스타인 ID를 지니지 않은 이들의 경우 라파로 통과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사실은, 이스라엘이 여전히 군사적으로 포위하고 있는 상황인지라 2007년의 경우 57일 이상 개방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는 것이다. 2008년 상황 또한 그닥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2009년의 경우 지금까지는 국경이 자주 개방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전형적으로 입국한 국경초소로 출국하도록 요구하고 있는데, 입국과 동시에 봉쇄되곤 하는 해안지역의 국경으로 입국하는 경우 꼼짝없이 갇힐 가능성이 아주 높아지는 것이다. 불행히도 난 라파로 나갈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취할 수 있는 단하나의 가능성은 에레즈 검문소로 입국하는 것뿐이었다.
이스라엘의 현재 정책은 결정적으로 no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권단체 관련 인사들의 가자 입국을 드러내놓고 거절하는 것이 부정적인 PR효과를 가져오기에 이를 피하기 위함이다. 그 대신 무한정으로 질질 끄는 방식을 통해 활동가들이 가자 접근을 제도적으로 막고 있는 이스라엘을 고발하기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다. 그런 이스라엘이 유엔에서 일하는 이들이 가자에 들어가는 것은 허용하고 있다. 국제사면위원회나 CARE같은 굵직한 국제단체의 경우도 마찬가지. 그러나 상대적으로 목소리가 작은 군소단체들 출신의 경우는 다르다. 앞서 말한 과정대로 제지당하고 있는데 누가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줄 것인가?
묵고 있는 라말라의 호텔 옥상에서 내가 간신히 볼 수 있는 것은, 전원적인 서안지구 너머로 보이는 텔아비브다. 운이 좋다면 바다를 볼 수도 있다. 하루의 의식을 치루듯 태양이 바다로 떨어질 땐 마치 요지경처럼 분홍과 주황색으로 반짝이는 바다. 그 고요한 장면은 자주 가자를 향해 서쪽 하늘을 가로질러 가차없이 날아가는 이스라엘 공습기가 내는 찢어질 듯한 굉음으로 산산조각이 나곤 한다. 그럴 때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밀려든다.
가자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 싱그러운 바다 내음과 사막을 감싸는 훈풍, 오렌지밭의 달콤한 향기와 익지 않은 포도밭의 쌉싸름한 향기. 그리고 이젠 목숨밖엔 남은 게 없는 이들이 보여주는 환대와 따뜻함이라니! 형언할 수 없는 공포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친구들과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물러서지 않겠다는 그곳 사람들의 불굴의 정신에 생각이 미치면 가슴이 먹먹하다. 이제 그곳을 떠난다. 그곳에서 무한정 기다릴 수는 없기에. 이스라엘은 이런 저런 방법으로 나의 가자행을 가로 막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스라엘 압제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는 방법은 그것 말고도 많다는 것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거쳐 가자는 마침내 이겨내리라는 것을.
2009. 3월 25일, 라말라에서 크리스 피터슨
(번역: jeondodo)
- 덧붙이는 말
-
크리스 페터슨은 대학원생으로 2007년 9월부터 2008년 1월까지 가자지구에서 인권을 위한 팔레스타인 센터(PCHR)에서 일했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