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에서 50명이 춤만 추고 간 사연

[기자의 눈] 사라지는 집회시위의 자유

지난 7일 3시께 서울역 앞. 햇볕에 그을린 중년의 남자 50여명이 노조 조끼를 입고 개사한 태진아의 ‘잘살꺼야’에 맞춰 춤을 췄다. ‘해고 없이 함께 살자’는 금속노조 실천단의 퍼포먼스였다. 역 주변을 지나던 시민들은 흔치 않은 광경에 발을 멈췄다.

  금속실천단은 경찰의 해산명령에 7일 서울역 집단 퍼포먼스를 5분만에 마쳐야 했다.

호기심어린 시민들 눈은 1분도 안돼 놀란 눈으로 바뀌었다. 경찰이 금속노조 실천단 주변을 에워쌌다. 춤 추는 금속노조 실천단에게 경찰은 “계속 하면 불법집회로 간주, 연행하겠다”고 경고방송했다. 노조 실천단은 “해고없이 임금삭감 없는 세상이 잘 사는 세상”이라는 말과 함께 춤 하나 달랑 추고 자리를 떠야 했다. 이날 노조 실천단은 여의도에서 서울역까지 자전거 행진을 하려했지만 경찰의 제지로 지하철로 서울역에 왔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비슷한 일은 지난달 30일에도 있었다. '너희가 아닌, 우리의 세상을 향한 질주'란 이름으로 투쟁사업장을 돌던 이들도 자전거행진을 하려했으나 경찰이 제지했다. 신고하지 않은 행진이어서 불법시위로 간주하겠다는 이유였다. ‘질주’의 자전거 25대가 실린 트럭은 10시간 넘게 경찰에 둘러싸여 꼼짝도 못했다. 결국 경찰 ‘호위’속에 이동해야 했다.

기자회견 연행에 집회장소 지정까지

14일 서울 서대문구의 경찰청 앞에서 비정규, 장기투쟁 노동자들이 경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최근 경찰이 집회시위 자유조차 가로막고 있다고 했다.

  14일 경찰청 앞 기자회견은 경찰이 지정한 장소에서만 진행해야 했다.

유명자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 지부장은 “지난달 중순 장기투쟁 사업장 담당 경찰서장들이 연석회의를 해 투쟁사업장 집회에 강경 대응한다는 얘기를 구청직원에게 들었다”고 했다. 지난달 말부터 서울 혜화동의 재능교육 본사 앞 농성장 집회는 불가능했다. 경찰이 집회장소를 지정해 허가해 주었기 때문이다. 재능교육지부의 본사 앞 집회신고는 한 달 사이 무려 61번이나 반려됐다. 이 지경이면 한국에서 집회는 허가제로 전락한 거다.

5년째 투쟁을 이어오는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도 사정은 비슷하다. 김소연 분회장은 “5년을 투쟁하지만 지금처럼 집회하기 어려운 때가 없었다”고 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신고제인 집회가 사실상 허가제로 변했다고 입을 모았다.

14일 경찰은 비정규,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에게 폴리스라인을 쳐 기자회견 자리를 지정했다. 구석에 가까운 경찰청 끄트머리였다. 경찰은 “구호를 외치거나 폴리스라인을 넘으면 불법집회로 간주, 연행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한 방송국 PD는 “PD 생활이 8년째인데 기자회견에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했다.

같은 날 용산참사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의 서울 서초동 검찰청 앞 회견에선 용산 진상조사단의 권영국 변호사 등 7명이 연행됐다. 경찰은 지난 4일에는 노동절 전후로 241명이나 연행한 것을 규탄하던 인권단체의 기자회견에서도 6명을 연행했다.

용산참사에도 거듭 강경해지는 경찰

집회를 벌이던 시위대와 이를 막으려는 경찰 사이에 마찰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집회뿐 아니라 기자회견까지 연행자가 생기고 집회신고가 반려되는 일이 늘어났다.

강희락 경찰청장은 노동절 이틀 전 4월 29일 브리핑에서 “불법폭력 시위로 변질될 우려 있는 집회는 금지통고하고 강행하면 원천 차단한다. 검거하지 못한 시위자는 끝까지 추적해 사법조치와 민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지난 1, 2일 양일간 시위에서 241명이 연행되면서 강희락 경찰청장의 말은 사실로 증명됐다.

[출처: 빈곤사회연대]

강희락 경찰청장은 지난 3월 9일 취임사에서 “불법과 폭력은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 경찰이 매 맞는 상황은 국민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며 시위자들의 불법행위에 엄격하게 대처하겠다고 했다. 이날은 용산참사 희생자의 49재였다. 이명박 대통령도 강희락 경찰청장을 임명하며 “선진일류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권력이 확립되고 사회질서가 지켜져야 한다”고 말해 강희락 경찰청장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공교롭게 강희락 경찰청장 취임 이틀 전인 3월 7일 용산참사 기념식에서 경찰관들이 시위대에게 집단폭행을 당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용산범대위는 경찰의 무리한 진압으로 10여명이 폭행당했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주동자 엄벌”만을 강조했다.

용산참사가 있은 지 100일이 넘었지만 희생자 유족들은 아직까지 장례를 치르지 않고 있다. 참사의 진실이 밝혀지지도 않았고 그 누구도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이유다.

경찰은 용산참사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있다. 경찰청장 내정자였던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좌고우면하지 말고 불법과 불의에 보다 엄정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자진사퇴했을 뿐이다. 오히려 집회, 시위 등에 대한 경찰의 대응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물론 일부 민주당 의원실까지 불법폭력시위단체로 규정하는 경찰에게 노조나 시민들이 벌이는 집회, 시위에 대한 엄정대처는 당연한 모습일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