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직복직 요구 50m 굴뚝 132일 농성

[기획] 노동자 고공농성의 역사와 의미③ 전북지역 고공농성

대량의 정리해고에 맞서 쌍용자동차 노동자 파업이 40일을 넘겼습니다. 비정규직/정규직 노동자가 함께 70m 굴뚝에 올라 농성한지도 50일이 넘었습니다. “왜 노동자들은 굴뚝에 오르는 것일까요?” 굴뚝뿐 아니라 한강철교, 송전탑, 옥상, 골리앗 크레인까지 높은 곳이면 어디든 오르고 매달려야 하는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은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해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노동자 고공농성의 역사와 의미>는 참세상, 참소리, 울산노동뉴스, 미디어충청이 공동으로 기획했습니다. - 편집자 주

  기아특수강(현 세아특수강) 해고자들이 원직복직을 촉구하며 132일간 50m 굴뚝에서 농성을 벌였다. / 참소리 자료사진

전북에서의 고공농성은 2000년대 들어서 발생했다. 민주노총 이전 노동자투쟁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고 활동가들에게 자문도 구했지만 전북에서 2000년대 이전 고공농성은 거의 찾을 수 없었다.

2000년대 이전 고공농성은 명절 전 건설노동자들이 체불임금 청산을 요구하며 크레인 등에 올라 농성을 벌였고 94년 기아특수강 해고자가 10여 시간 농성을 벌인 사실 정도였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고공농성 투쟁이 계속 발생한다.

비교적 잘 알려진 첫 고공농성은 노동현장이 아닌 환경파괴 현장이다. 2002년 해안과 큰 도로변에서 보이는 면을 제외하고 산을 모두 파헤쳐 새만금 방조제 공사로 사용된 것이 알려지자 이에 항의하며 한 환경운동가가 깎아낸 절개지에 올라 농성을 벌였다.

노동자 중에는 2003년 당시 기아특수강 2명의 해고자들이 복직을 요구하며 50m 굴뚝에 올라 농성을 벌인 것이 거의 최초이다. 뿐만아니라 기아특수강 굴뚝농성은 11월초에 시작해 이듬해 3월 중순까지 130일이 넘게 농성을 벌여 전북지역 최장기간 고공농성으로 기억되고 있다.

2003년, 기아특수강 ‘해고자복직’ 굴뚝농성 132일

이 중 한명인 조성옥 해고자는 94년 5월에도 같은 굴뚝에 올라 10시간에 걸친 농성을 벌인 끝에 회사가 복직각서를 써줘 내려왔지만 10년 후까지도 이 각서를 이행하지 않았다. 사측은 이 각서가 “강요에 못 이겨 써 준 것으로 무효”라고 주장하며 끝까지 이행하지 않았다.

  붉은 사각형 안이 농성중인 굴뚝

같이 굴뚝에 올라간 이재현 해고자도 당시 13년 해고자였다. 조성옥 해고자는 사측이 노동조합을 매수하자 이에 항의하는 선전물을 배포해 ‘불법 유인물 배포’로 이재현 씨는 임금인상에 관한 조합원 설문조사를 했다는 이유로 ‘불법유인물 배포’로 각각 해고됐다. 여기에 입사당시 학력을 적지 않았던 것 등을 들어 ‘학력위조’ ‘위장취업’으로 사규를 어겼다며 해고됐다.

이들은 2003년 당시 법정관리에 있던 기아특수강이 세아그룹에 매각되는 과정에서 복직을 위한 마지막 싸움의 기회로 생각했다. 마지막 싸움인 만큼 목숨을 걸고 굴뚝에 올랐다. 또 자신들의 복직문제에 지독히도 완강하던 사측의 태도를 잘 알고 있는 만큼 이들은 매각 과정에 닥칠 현장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조정을 막기 위해 굴뚝에 올랐다.

이들이 굴뚝에 오르자 지역에서는 대책위를 구성해 집회 투쟁을 이어갔다. 공장 진입 투쟁을 벌이다 경찰과 충돌하기도 했다. 공장 밖에서 개인용 텐트를 치고 연대투쟁을 벌였다. 이 텐트가 천막이 되고 농성이 길어지자 컨테이너가 놓였다.

  고공농성에 대한 연대집회가 계속되자 기아특수강 측은 강철 기둥으로 출입구를 봉쇄했다.

회사는 음식 올리는 것도 거부하다 어쩔 수 없이 음식을 올리면서 휴대폰 배터리 등을 올려보낼 수 없도록 국을 젓가락으로 저어보고서야 올렸다.

회사측은 농성이 길어져 여론이 악화되고 지역 노동자들의 연대투쟁이 완강해지자 결국 안을 냈다. 애초 요구안에는 못 미치지만 고공농성자의 건강 등을 염려해 사측과 합의했다. 이 합의안에 대해 농성자들도 받아들였다.

이들은 군산 앞바다의 모진 비바람, 눈보라를 맞고 새해를 굴뚝에서 맞기도 했다. 농성 132일 그 중 23일은 단식농성을 진행했다.

이 투쟁으로 조성옥 해고자는 재입사를 통한 복직에 합의했다. 그러나 회사가 ‘노무관리’ 업무로 복귀를 강요해 지금까지 현장 복귀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재현 해고자는 ‘위장취업’을 이유로 끝내 복직하지 못했다.

사내하청 노동자, 굴뚝 단식농성

기아특수강 굴뚝농성이 마무리되고 채 3개월이 지나기 전에 2004년 삼양화성 전주공장의 사내하청 노동자 6명이 40m 공장 굴뚝위로 올라가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은 사내하청 노조를 만들자마자 원청인 삼양화성이 하청 계약을 해지하고 모두 해고됐다. 이후 사측은 같은 일을 하고 대부분 같은 노동자로 이뤄진 하청회사를 만들고 조합원을 회유해 노조를 거의 와해 시켰다.

그렇지만 복귀한 노동자들에게도 탄압은 그치지 않았고 급기야 6명이 굴뚝에 올라 단식투쟁을 벌였다. 당시 삼양화성은 굴뚝위에 올라간 노동자들이 누구누구인지도 몰랐다. 삼양화성 소속 노동자들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가장 최근에는 2006년 4월 화물연대 전북지부장과 두산테크팩 지회장이 이 공장 용광로 옆 30m 철탑에 올라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화물노동자 두명이 화물연대 사수를 외치며 철탑에 올랐다.

화물연대, 용광로 철탑 농성

두산테크팩이 화물연대를 인정하지 않고 교섭에 나서지 않고 조합원들에게 계약해지, 구사대를 동원한 폭력을 자행했다. 군산경찰서 정보관은 직접 몽둥이를 들고 화물차 유리를 박살내고 수시로 조합원들을 연행했다. 이들은 상황이 이렇게되자 “우리 자신과 가족의 삶을 지켜낼 다른 방도가 없다”며 철탑에 올랐다.

이들의 농성으로 화물노동자들의 투쟁이 주목받았다. 파업과 농성을 한달이 넘게 벌여오며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아 지쳐가던 조합원들의 투쟁의지를 다잡고 주위 다른 지역 조합원들의 지속적인 연대투쟁의 중심이 됐다. 이들은 이렇게 투쟁한 끝에 철탑 농성 19일만에 합의를 이뤄 농성을 중단했다.

이유는 달라도 자본 태도는 같아

전북에서의 고공농성은 10년 해고자, 동지를 배신하고 업무에 복귀했지만 돌아오는 건 역시 착취와 탄압이었던 사내하청 노동자, 법도 회사도 경찰도 적이 돼 버린 화물노동자들이 고공농성 투쟁을 벌였다.

이들은 목숨을 걸고 굴뚝에, 철탑에 올랐지만 이들에 대한 자본의 태도는 그 이유는 달라도 “협상의 여지가 없다”며 한결 같았다. 기아특수강은 ‘이미 10여년 전에 해고됐는데 이제와서 별다른 협상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삼양화성은 ‘우리 회사 소속이 아니다’는 것이다. 두산테크팩은 ‘운송회사와 협상하라’는 것이었다.

이같은 자본의 태도는 지금도 똑같다. 이 자본의 태도가 노동자들을 절망으로 내몰았다. 노동자 투쟁을 더욱 극단적으로 내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