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라는 유령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대구 경북 지방을 빼 놓고는 요즘 세상이 약간은 들뜬 분위기다. 한나라당이 여기저기서 패배했다는 소식은 일단 굿 뉴스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주지하다시피 20-30대가 한나라당의 권위주의가 미워서 이명박 정부의 오버에 짜증 나 민주당에 표를 던진 ‘비대칭형’ 선거다. 2007년 이후 투표율이 낮다고 공격 받았던 20~30대가 이번 선거에 왜 나왔을까? 참여 정부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젊은이들은 참여정부 이후 부동층으로 빠졌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냉소주의 속에서 보수화되었던 그들이 이제는 책임과 훈계의 대상이 아니라 찬사의 대상으로 변했다.
이번 선거를 통해 20~30대는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다. 선거 이후 20~30대의 삶은 변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여전히 스펙 쌓고 토익 공부하고 결혼 걱정해야 한다. 무상급식으로 선거권이 없는 애들만 복 터졌지, 젊은이들은 직장 마련에 아파트 마련에 무상급식 대상인 아이들 육아 걱정에 해 뜰 날이 없다. 선거율이 낮으면 비난하고 선거율이 높게 나오자 ‘니들이 해냈다’라고 추켜세우는 것은 양자 모두 20-30대를 기성세대가 선거희생양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20-30대의 삶이 오늘날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우파는 물론 좌파에게도 없다.
기성세대인 우리 386, 419 세대들이 20~30대 젊은 세대들의 미래를 수탈해 현재를 먹고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아무런 의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엔 우리가 모두 부동산의 욕망에 올인 해 아파트 값을 죄다 올려놓고는 바로 그 하늘까지 치솟은 아파트 값 때문에 결혼을 하니 마니하며 앙 다투는 현실에 대해, 아파트 평수의 크기가 자식의 미래를 결정짓는 교육계급의 사회에 대해 아무런 정치적 상상력도 발동시키지 않은 채 평화, 생태, 인권이라는 추상적인 가치를 앵무새처럼 읊조려댔다.
진보의 또 다른 축에서는 노인, 건강, 복지 차원에서 사민주의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구체적인 정책을 내거는 사람이 사회를 이끌어간다고 말하지만 이 또한 사민주의적인 복지국가 시스템이 한국 사회에서 세대 문제와 어떻게 연동되어 있는지 간파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전혀 구체적이지 못하다. 참여연대 쪽의 빅텐트론에도 진보대연합 쪽의 진보대통합론에도 대중정치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정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최근 건강보험료 1만원 인상으로 전 국민의 건강을 지키자는 운동처럼 진보 좌파들은 아젠다를 선점하는 데에도 느림보 걸음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죽어도 대중정치는 못하겠다고 한다.
적-녹-보 연대라는 추상적인 논의는 잘 하면서 대중과 벽을 쌓은 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현장 좌파 활동가 내지는 노동자를 중심으로 게토화된 운동만을 하겠다고 한다. 교육-부동산-복지-건강-에너지 등 모든 것이 계급적으로 구획되어 가고 있는 대한민국 현실이 좌파의 대중정치 현장이 아니라면 어디에서 그 현장을 찾겠다는 말인가? 자본주의 모순? 자본주의의 모순이 보편적으로 관통되면서 야만적으로 관철되는 특수성을 지닌 나라가 대한민국 아닌가?
좌파는 이번 선거에서 형성된 정치적으로 빈 공간을 치고 들어갈 구체적인 아젠다를 만들어낼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기성세대에 의해 수탈당했으면서도 엉뚱한 소리나 듣는 20~30대 젊은이들의 미래를 어떻게 복원시킬 것인가 하는 고민에서 찾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20~30대 젊은이들의 표심을 얻을 것인가 라는 정치공학적인 고민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어떻게 하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것인가 라는 진지한 고민 속에서 좌파의 대중 정치를 고민해야 한다.
2012년이 2010년의 복사판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빅텐트 안에 들어가 빠져 나올 궁리를 하거나 아예 텐트 안에서 자는 것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민주대연합이나 진보대연합, 거기에 한 두 진영 더 조합한 진보대통합의 텐트 자체를 치워버릴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20~30대 세대에 대한 고민도 고민이지만 현재 10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 대한 고민도 좌파 대중 정치의 영역이 되어야 한다. 박정희가 누구인지도 전두환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이 세대들이 20~30대에 이어 어떤 미래를 갖게 될 것인가도 관심 대상이다.
대중 정치에 죽어도 뜻이 없다면 오던 대로 쭉 그대로 가라고 말할 도리 밖에 없다. 그러나 아래로부터 활성화되는 대중 정치의 전국적인 기반이 없이 코뮌 사회 건설은 무망하다. 좌파의 최종 목적지는 2012년이 아니다. 그러나 늦었을 때가 제일 빠르다고 이제부터라도 좌파적인 아젠다 개발과 선점을 통해 대중 정치의 초석을 놓아야 한다. 다들 정치공학하고 있는데 정치공학이 잘못 되었다고 책상 옆구리 꿰차고 앉아 비판해 봐야 좌파의 현실감은 인지되지 않는다. 좌파 대중 정치의 초석은 세대 문제에 있고 여기서부터 좌파의 대중 정치는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