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 쓰나미 100일 그리고 희망

[현장] 지진, 해일, 방사능...일본 동북지역 미야기현 탐방

일본 동북부 지진/해일이 덮친지 100일이 지났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조금씩 잊혀져가고 있는 가운데, 미나미산리쿠, 이시노마키시 일대를 답사했다.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 지역도 답사할 예정이었으나 답사 당일 미나미소마 지역 방사능 수치가 높아 예정된 답사를 취소했다.)

요즘 주류언론에서는 일본 동북부 대지진과 원전사고에 대한 기사는 주로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관한 기사만 찾아볼 수 있다. 소외되어가는 일본 동북부 지진/해일 피해지역은 관심과 지원 그리고 연대가 필요하다.

  미나미산리구초 시즈가와 마을. 해일의 피해로 이 지역은 초토화되어 있다. [출처: 도영(아래 모두)]

이 곳 사람들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실정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 위험에 대한 정보부족, 그리고 방사능 피폭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바로 앞에 닥친 재난상황에 힘겨워 방사능의 위험성은 알고 있으면서도 방사능 위험에 대해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요즘 도쿄지역에서는 방사능 측정기가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은 방사능 측정기는 사치품에 불과하다. 이 이야기는 미나미산리쿠초 시즈가와에 대한 답사기다.

센다이에서 미나미산리쿠로 가는길

지진의 영향으로 45번 국도는 곳곳에 균열이 많았다. 덜컹거리는 자동차를 타고 센다이에서 이시노마키를 거쳐 미나미산리쿠로 이어지는 도로는 많은 재난복구차량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 중 일본 자위대의 재난지원차량도 자주 눈에 띄었다.

  센다이에서 미나미산리쿠로 가는 45번 국도. 일본 육상자위대의 재난복구 차량이 눈에 띈다.

미야기현 모토요시군 미나미산리쿠초 시즈가와 재난 현장

시즈가와는 조용한 어촌 마을이었다. 하지만 지진과 해일 닥친 시즈가와 마을은 해일에 밀려온 잔해들과 파괴된 건물 잔해가 널부러져 있었다. 해안가에서 약 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마을 초입부터 해일이 덮친 현장은 해일피해가 얼마나 심했을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현장이었다. 내진 설계가 잘 된 철골과 콘크리트 구조로 지어진 건물들만 조금 남아 있었고, 목조로 지은 건물들은 모두 파괴되어 찾아볼 수 없었다. 단지 건물이 있던 집터만 알아볼 수 있었다. (목조 건물은 건축구조상 지진에 잘 견딘다. 하지만, 해일에는 견디지 못한다.)

마을길은 대부분 복구되었지만 워낙 넓은 지역이 피해를 입어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골조만 남은 건물, 잔해들과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자동차, 기차, 배 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몇몇 중장비(굴삭기)와 노동자들이 철거작업을 하고 있었고, 가끔 이 지역에 주민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폐허가 된 가재도구들을 트럭에 싣고 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현재 일본 동북부 재난지역에는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재난복구를 하고 있다. 미나미산리쿠 지역에는 매주 일본 젠토이츠 일반노조에서 재해복구 작업을 돕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재해지역에 비하여 복구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시즈가와마을로 들어가는 길. 해안에서 약 3킬로미터 떨어진 지역까지 해일이 밀려들어왔다고 한다. 작은 트럭 한대가 해일에 밀려와 도로 옆 언덕에 올라가 있다.

해일이 덮칠 당시에 사람들이 얼마나 두려움에 떨었을지 또는 삶의 위협을 받는 급박한 상황에서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살기 위해 높은 지대로 뛰어가는 사람들, 해일에 휩쓸려 발버둥치는 사람들 등 여러 상황을 상상으로나마 잠시 떠올려본다. 그려본다. 친구, 동료, 가족,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마음은 얼마나 찢어지고 있을지 나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가 없을 것이다.

재난이 일어나면 상처와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주로 평범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이다. 소위 상류층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이번 자연 재해에서도 대부분 비켜갔다. 예를 들어 그들은 주로 높은 지대에 집을 짓고 살면서 몸을 쓰는 일은 잘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을 밝고 살아야하는 사회구조 안에서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벌어져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하다.


해안가에서 바라본 시즈가와 마을.


시즈가와 행정사무소. 재난 당시 행정사무소 옥상까지 해일이 밀려 들어왔다고 한다.


시즈가와 병원. 해일이 덮치던 당시 약 110명의 환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중 80여명만이 살아남았다고 한다.


폐허가 된 마을 안.


폐허가 된 마을 안. 집이 있었던 기초골조만 남아있다.


시즈가와 병원. 녹색 십자 모양이 병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5층으로 된 병원은 당시 3층까지 물이 찾다고 한다. 병원 건물 2층에 배 한척이 올라가 있는 것이 보인다.


시즈가와 행정사무소. 철골로 튼튼히 지어진 건물도 해일의 피해는 비켜갈수 없었다. 골조만 남아있다.


건물 지붕에 잔해들이 널려있다. 해일이 이 건물 지붕까지 차 오른 것을 알 수 있다.


마을 안. 잔해들이 널려있다.


시즈가와 병원 옆길. 해일에 밀려온 기차 한량이 도로에 나뒹굴고 있다.


재난복구를 위한 중장비들이 마을로 들어오고 있다. 마을에 있던 다리들은 모두 파괴되어, 일본 육상자위대에서 놓은 가교를 볼 수 있다.


미나미산리쿠 대피소, 자원봉사센터.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을 사람들은 대피소에서 생활하고 있다.


피난민 대피소. 유엔국제식량계획 천막. 선진국이라는 일본에서 유엔국제식량기구가 활동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피난민 대피소. 대피소에 생활하고 있는 어린이가 그린 그림.


피난민 대피소. 대피소에서 생활하고 있는 어린이들의 그림을 모아 바닥에 "꿈" 이라는 글을 만들고 있다.


시즈가와 항구.


답사에 도움주신 분들
아시안미디어활동가 네트워크(Asian media activist network)
센다이미디어떼끄(Sendai Mediatheque / S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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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 쓰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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