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사회 전반에서 ‘정리해고’를 어떠한 견제 없이 휘둘러 왔던 10여년. 그동안 대한민국 사회에서 많고 적은 정리해고 사태가 일어났지만, 국민들은 경제위기의 명분으로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를 내세우는 기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만큼, 길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환영받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와 맞물려 진행된 ‘희망의 버스’는 그동안 국민들이 내보이지 않았던 정리해고의 위기감을 표출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의 노동운동에 나서기 시작했다는 기대도 만연하다. 반면 ‘희망의 버스’가 시대의 아이콘으로 상징될지라도, 정리해고라는 길고 굵은 사슬을 끊어내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우려도 공존한다.
16일 오후 5시, ‘희망의 버스 기획단’은 한진중공업과 희망버스에 대한 집단토론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는 정리해고 당사자들과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모여 ‘정리해고’라는 길고 긴 악연의 기억과, ‘희망의 버스’가 일으키는 바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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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의 정리해고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정영자 현대자동차지부 여성실장은 “11년 전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IMF 경제위기가 사회를 들썩였던 98년. 현대자동차 식당의 278명 여성 노동자들 역시 정리해고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복직투쟁과 교섭을 통해 전원 고용승계를 약속 받았으나, 이는 사실상 ‘하청노동자’ 인생의 첫 시작이었다.
정영자 실장은 “회사는 교섭에서 2년 이내의 리콜을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며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이 3년 후 다시 해고 노동자들을 부르겠다는 말을 듣고 웃음이 났다”고 전했다.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로 정리해고가 되는 것은 쉽지만, ‘경영 정상화’로 복직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쌍용자동차 역시 노동자들의 77일간의 공장점거 농성을 끝내는 조건으로, 무급자의 경우 1년 뒤 복직을 약속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나도록 회사는 복직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15명의 노동자와 가족들이 목숨을 끊어도 회사는 요지부동이다.
정리해고를 피해보기 위해 노조는 시시때때로 회사와 ‘합의서’를 작성하지만, 대개 휴지조각이 돼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형철 흥국생명 노동자는 “지난 2002년 회사는 매년 흑자가 나는데도 정리해고를 시도했고 노조는 사측과 합의서를 작성했다”며 “하지만 합의서는 수차례 작성과 파기를 반복했고 결국 회사는 2004년, 미래 경영상의 이유로 정리해고를 통보했다”고 설명했다. 이 여파로 당시 2/3의 여성 노동자들이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해고 됐고, 그 자리에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사원들이 채워졌다.
쌍용자동차 노동자 역시 ‘노사 합의서’에 배신당한 역사가 길다. 최기민 쌍용자동차 노동자는 “쌍용자동차가 상하이자본에 매각된 후, 중장기적 발전 방안과 기술유출, 정리해고 문제 등의 우려로 노사 합의서를 작성 했지만 항상 합의서는 휴지조각으로 전락했다”고 밝혔다. 2009년 쌍용차 노사 대타협 합의서 역시 지켜지지 않는 약속으로 남아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지난 2007년, 필리핀 수빅조선소 관련 노사 특별합의를 통해 “경영상의 이유로 국내공장의 축소 및 폐쇄 등 인위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고 약속한 바 있다. 2010년 2월 26일에도 노사 간에 “인위적인 구조조정(일방적 정리해고)을 중단한다”는 합의를 했다. 하지만 6개월도 채 되지 않은 7월, 사측은 400명에 대한 정리해고 방침을 밝혔다.
‘경영’은 자본가의 성역...책임은 노동자에게
기업은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를 만들고, 이를 빌미로 노동자를 정리해고 한다. 경영권은 자본이 틀어쥐고 있고, 뒷수습은 노동자들이 하는 꼴이다. 기업이 내세우는 ‘경영상의 이유’역시 이해되지 않은 측면이 많다.
최기민 쌍용자동차 노동자는 “노동자가 경영에 1%라도 참여할 수 있나”며 “노조는 계속 경영 참여를 요구하지만, 자본가들은 경영을 자기들만의 성역으로 만들었고 경영에 위기가 닥치면 그 모든 책임은 노동자에게 전가된다”고 비판했다.
정영자 현대자동차지부 여성실장 역시 “정리해고를 노동자, 서민이 만든 것도 아니고, 자본가와 정치인들이 이익 창출을 위해 정리해고를 만들어 놓고 노동자 서민에게 일방적으로 책임지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서 정영자 실장은 “특히 거리로 내몰려보면 최소한의 복지나 살 권리조차 근간이 없어 정리해고가 살인이라는 말이 와 닿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이 내세우는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역시 납득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다. 콜트 콜텍의 경우, 연간 70~100억 이상의 흑자를 내는 기업이다. 국내 공장을 폐쇄하고, 해외 공장만을 운영하며 작년에만 71억 흑자를 냈다. 이인근 콜트콜텍 노동자는 “사장은 노조와 같이 일하기 싫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국내 공장을 폐쇄했고, 노동자들은 길거리로 나앉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형철 흥국생명 노동자 역시 “매년 흑자를 기록하는 흥국생명이 미래 경영상의 이유로 정리해고를 통보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성토했다.
이어서 이인근 노동자는 “정리해고법이 통과된 이후, 단 한 번도 합법적인 정리해고가 이뤄진 바 없다”며 “심지어 경영상의 이유가 없어 해고는 불가하다고 법원에서 판결을 해도, 자본은 법원 판결조차 무시하는 것이 대한민국 노동의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2011년 ‘희망버스’의 바람, 정리해고 의제화 시켜
2011년 여름, ‘희망의 버스’는 노동계 전반의 가장 큰 이슈로 자리 잡았다. 1, 2, 3차를 진행하며 참가자들은 7000명에서 1만 명, 1만 5천명으로 확대됐다.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결합된 새로운 운동 패러다임이라는 평가를 낳기도 했다.
‘희망의 버스’가 내세우는 중심 의제는 ‘정리해고 철회’와 ‘비정규직 철폐’다. 그동안 노동계에서는 줄곧 외쳐왔던 구호이지만, 시민들에게는 추상적인 구호이기도 하다.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은 “1만 5천명의 시민들이 비현실적인 주제를 가지고 함께 외쳤고, 그것이 지금까지의 제도 정치의 성과를 합한 것보다 더 큰 사회적 울림을 울렸다는 것이 중요한 성과라고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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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그는 “90년대 사회운동은 민중운동의 민중이 시민으로 바뀜으로서, 소액주주문제 등 개혁적인 의제에 집중했고, 노동의제나 계급적 의제는 소홀이 됐다”며 “시민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자본에 현혹되어 노동자임에도 노동운동, 시위, 파업을 밥그릇 싸움이라고 남의 일처럼 생각하면서 단절된 모습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또한 “하지만 희망버스를 통해 시민들은 자신이 바로 노동자라는 것, 정리해고가 내 문제, 내 아이의 문제라는 재인식을 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희망버스 참가자인 김성산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4학년) 씨는 “오리고기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트위터에서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공권력에 참담하게 유린되는 것을 보며 뭔가 갑자기 도움이 되고 싶어 3차 희망버스를 타게 됐다”며 “저와 같은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리해고라는 뿌리 깊은 제도를 뽑아내기 위해 갈 길은 멀다. 오세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지회장은 “희망의 버스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수 없이 많이 잘려나갔던 비정규직 하청노동자의 이야기는 좀처럼 제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조선소를 비롯해 사회 전반에서 이뤄지는 정리해고,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는 현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과연 희망버스를 탈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소리 없이 정리해고를 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희망이 되기 위해 진보적 시민들과 민주노총 등이 함께 나서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의헌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역시 “4차 희망버스는 정리해고 철회를 실질적으로 이행하게 위해 싸움의 장을 더욱 넓혀야 한다”며 “2008년 촛불 때와 같은 세를 가지고 대중적으로 나서야 이길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