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땅을 지키려는 강정 주민들의 삶은 비상사태다

[기고] 8월 24일 경찰체포에 관한 기록

전직 미군 대령이자 현재 평화운동가로 활동 중인 앤 라이트(Ann Wright) 씨가 8월 말 제주도 강정마을을 찾아 연대의 뜻을 전하며 군사기지는 더 이상 생기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앤 라이트 씨가 강정마을에 방문했을 때, 8월 24일 해군이 기지 공사 재개를 시도해 주민들이 항의하자, 경찰은 강동균 강정마을회장 등 5명을 연행했다. 경찰폭력의 강제 연행 사태를 내내 바라보고, 연대한 그가 그날의 일을 기록했다.

한편, 앤 라이트 씨는 2003년 3월, 미국의 이라크 침공 하루 전날, 국방장관에게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 없이 침략하고 정복하는 것은 국제법 위반임을 피력하는 내용의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 뒤 국제 분쟁지역 현장 등에서 평화활동을 벌이고 있다. [편집자 주]



어제 8월 24일 사람들을 부르는 사이렌이 울렸다.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정문으로 모이라는 신호다. 한국 해군은 18척의 군함과 2척의 잠수함이 주둔할 해군기지 건설을 원하지만, 기지건설은 원시적 아름다움을 가진 해안선을 파괴하고 해양생물을 위험에 처하게 할 것이다. 지역주민과 본토에서 활동가들은 해군기지 건설을 저지하기 위해 5년간 투쟁해왔다.

비상사이렌, 마을회장과 활동가 4명이 체포되다

사이렌 소리는 비상상황을 경고하는 쓰나미처럼 들린다. 진짜 비상사태다. 해군기지의 거대한 건설크레인에 눌린 강정마을 마을회장을 포함한 5명의 활동가가 체포되었다. 이 거대한 크레인은 몇 년 전에 마을 주민들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 한밤중에 몰래 기지로 옮겨졌다. 무게가 250톤이나 나가는 이 크레인이 겨우 50톤을 지탱하는 다리 위(강정천교)로 옮겨졌다. 마을회장은 이 불법적 크레인을 가동하는 것을 저지하려고 한다. 그는 크레인을 해체해서 외부로 가져가기를 원한다. 마을회장과, 그를 도우려 달려온 평화캠프(구럼비 일대) 주방장(강정 주민) 및 3명의 활동가들이 함께 체포되었다.

비상 사이렌 소리를 듣고 60명이 재빨리 달려와 트럭과 자동차, 자신의 몸으로 해군기지 정문을 막았다. 다른 사람들은 기지 후문으로 달려갔다. 대부분이 귤밭이나 비닐하우스에서 바로 뛰어온 지역 농민들이었다. 그들은 비상 신호를 듣자 바로 오토바이에 뛰어올랐다. 작업복을 갈아입을 시간도 없이 모자와 고무장화를 신은 채로 달려왔다. 상황을 알리는 문자 메시지로 사람들에게 기지 정문에 집결하라는 지침이 내려졌다. 트위터는 전 세계 연대활동가들에게 비상상황을 알렸다. 지난주에 국제평화캠프가 열렸고, 여기에 참여한 활동가들은 상황을 알고 싶어 했다.

기지 정문 앞에서 10명의 시민이 인간 사슬을 묶어서 정문 앞의 폴리스라인 바로 앞에 연좌했다. 한 시민은 체인을 목에 걸고 기지정문을 가로막은 트럭에 직접 묶기도 했다.



군중들이 경찰차를 막고 경찰을 포위하다

기지 입구가 봉쇄될 시점에 체포된 활동가 중 4명이 해군기지에서 지역경찰서로 옮겨졌다. 마을회장(강동균 마을회장)만 기지 안에 남아있었다. 몇 시간후 군중들은 다른 문으로 기지를 떠나려는 경찰차를 알아봤다. 그 안에 마을회장이 있었다. 군중들은 뛰어서 경찰차를 추적해서 잡았고, 운전자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몸으로 차를 막았다. 자가용과 트럭들이 재빨리 따라와서 경찰차를 막는 데 성공했다.

약 60명의 전투경찰이 곤봉과 방패로 무장하고 나타났지만, 어떤 무기도 경찰차를 막고 포위망을 구축한 활동가들을 뚫고 지나가지 못했다. 전투경찰은 병역 의무를 수행중인 신참들처럼 보였다. 아주 어렸고, 겁먹은 표정이었다.

시민들은 아주 재빨리 경찰과 경찰차를 둘러싸고 연좌했다. 가끔씩 경찰들이 군중을 뚫고 지나가려고 시도했지만, 시민들은 일어나서 경찰방패 앞에 직접 맞섰다. 여성들은 나이가 많든 적든 최전선에 나서서 경찰의 움직임을 맞섰고 격렬하게 밀어붙였다.

놀랍게도 경찰은 시위대에 곤봉을 사용하지 않았다. 한 사람이 제주도의 경찰은 4.3사건의 역사를 아주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2차 대전 후에 한반도의 통일을 원했던 3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공산당 동조자로 간주한 이승만 우익정권에 의해 학살당한 바 있다. 내륙 2마일 안쪽에서 발견된 사람은 누구나 게릴라로 간주되어 처형당했고, 군대와 본토에서 온 우익청년단의 소개 작전으로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었다.

섬에 사는 경찰 중의 많은 이들도 18개월간(1947-48년) 자행된 4.3학살로 친척들이 살해당했다. 작은 제주의 경찰은 중무장 상태인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 이런 이유로, 지난달 정부는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사용할 물대포와 최루탄을 할 1,500명의 본토 경찰을 파견했다.

시민들이 경찰을 포위한 상태는 5시간 동안 계속되었고, 마을행사 분위기처럼 변했다. 화가 난 마을회장 부인이 차량 위로 올라가 사람들에게 남편을 보호해 달라고 외친 다음 차량 꼭대기에서 경찰들에게 몸을 던졌다! 다른 봉고차의 음향기기는 4.3학살 이야기를 담은 노래를 포함하여 애창 운동가를 크게 틀어댔다. 밤 8시 촛불이 폴리스 라인 앞에 켜놓고서 촛불집회가 열렸다. 작은 단위로 모여 앉은 활동가들은 해군기지 건설을 저지하기 위한 다음 대책에 대해 토론했다.


활동가들도 봉고차에 사슬을 묶다

정문 뒤에서 다른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경찰이 마을회장을 태운 경찰차를 보호하려고 정문에서 도로 쪽으로 밀어붙이자, 길이 갈라지면서 시위차량이 정문 앞을 바로 지나 다리 입구 쪽으로 움직여서 간선도로로 이어지는 입구를 차단했다. 체인을 가진 시민들이 차량위로 다가가 봉고차에 몸을 묶었다. 그러자 작은 무리의 경찰이 봉고차를 포위했지만, 몇 시간 동안 봉고차에 몸을 묶은 사람들을 감시하다가, 지쳤는지 다리 옆에 앉아서 쉬었다.

경찰의 이중 플레이

자정쯤 협상이 이뤄졌다. 마을회장과 다른 4인이 서귀포 경찰서에 출두했다가 석방된다는 조건이었다. 군들은 경찰과 차량이 떠날 수 있도록 천천히 길을 비켜주었다. 모든 시민들이 이 협상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일단 마을회장이 경찰차로 떠나면 다른 수단이 없어질 것을 우려했다.

그들의 생각이 옳았다. 50명의 시민들이 마을회장과 다른 활동가들의 석방을 기다리면서 경찰서 밖에서 밤을 새웠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경찰은 약속을 위반했고, 2시경 모두 유치장에 갇혔다.


다시 한 번 비상사태

그러는 사이에 오늘 새벽 비상 사이렌이 다시 울렸고, 사람들은 해군기지 건설현장에 다시 모였다. 크레인 기사가 중장비를 옮기고 있었다. 시민들은 기지로 달려가 크레인 앞에 드러누웠다. 아직도 그대로 있는 상태이다.

사이렌이 다시 울린다. 사랑스러운 땅을 지키려는 강정 주민들의 삶도 비상사태다.

원문 : http://cafe.daum.net/peacek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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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군기지 , 강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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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심이

    한면만 보지말고 여러면을 보면 좋겠네요???한국은 법과 원칙이 확립된 법치국가이고 민주국가입니다..외국인이 불법시위 유도는 잘못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