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김봉규(47) 씨는 아직도 모든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강정에서 나서 지금까지 평생을 살아온 그는 마을의 바다 절반이 그리고 땅의 4분의 1이 사라지는데 무엇 하나 명쾌하게 이해되는 부분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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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봉규 씨는 해군기지 사태를 겪으면서 마을주민들이 정부와 제주도 당국, 그리고 해군이 거짓말만 늘어놓고 우리 주민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뉴스 보고 알았다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세우겠다는 계획이 화순리와 유미리에서 주민들의 강한 반발로 무산되자 해군은 강정마을에서 입지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고 마을회장과 해녀 등 부분적으로 마을 주민들에게 접근했다고 했다. 그렇게 대다수의 주민이 해군기지 유치에 대해 알지도 못했던 2007년 4월, 성인 1천여 명의 실 거주민이 살고 있는 강정마을에서 불과 80여명의 찬성 측 주민이 모여 해군기지 유치를 결정했다.
“입지선정에 문제가 많았어요. 이렇게 큰 문제를 강정마을의 일부 소수가 결정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소수의 의견을 듣고, 다수의 의견을 무시하는 제주도와 해군의 태도가 이해가 안 가죠. 사실 저도 뉴스를 보고서야 우리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선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이렇게 주민들에게 제대로 설명하지도 않고, 공청회 한 번 열지 않고 일을 밀어붙이니까 우리 주민들이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죠.”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주민들은 임시마을총회를 열고 당시 마을회장을 해임하고 현 강동균 마을회장을 선출했다. 그 뒤 주민들은 해군기지 찬반을 묻는 투표를 진행하고 투표율 70%, 반대 94%라는 압도적 우위로 반대를 결정,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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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것은 농어민의 삶의 터전이 없어진다는 거예요. 농어촌 사람들은 자연에 의지해서 사는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고, 땅에서 농산물을 키워서 외지에 팔아 부모를 모시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는 것이 기본이죠. 그런데 해군기지가 들어오면 바다의 절반, 땅의 4분의 1이 없어지게 돼요. 이건 생존의 문제에요. 그리고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마을 여기저기 개발한다고 나설 텐데, 그 땅은 어디서 나옵니까. 또 농사지을 땅이 없어지게 되는 거죠. 결국 우리보고 강정을 떠나라는 얘기에요. 그러니까 주민들이 목숨 걸고 바다와 땅을 지키려고 하는 거예요.”
국가가 한다면 하는 거지 감히 동네주민이 반대를?
공권력의 권위와 위상을 강조해온 조현오 경찰청장은 송양화 서귀포경찰서장을 “미온적으로 대처했다” “공권력의 권위를 실추시켰다” 등의 이유로 25일 문책 경질했고, 검찰은 “국가안보와 직결된 국책사업인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사태가 공사방해수준을 넘어 국가 공권력에 정면으로 도전한 중대사건”이라고 규정했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2일 새벽 5시를 넘긴 시간, 요란한 싸이렌 소리가 조용히 잠들어있던 강정마을을 깨웠다. 경찰병력이 강정마을을 기습,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이 지키던 구럼비 언덕을 유린해 갔다.
“해군기지 사태를 겪으면서 주민들은 정부와 제주도 당국, 그리고 해군과 경찰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거짓말만 늘어놓고 우리 주민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다는 것을 모두 알게 됐죠. 그들 모두가 우리 주민의 편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진 겁니다. 이제는 정부도 해군도 경찰도 아무도 믿을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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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생명의 땅과 바다였던 곳이 이제 국방부의 소유가 되었다고 한다. |
“해군기지 예정지의 50%가 강제수용 당했습니다. 땅의 주인이자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주민과 협의 한 번 없이 법원에 공탁을 걸고 우리들에게서 땅을 빼앗아 갔어요.”
그는 “답답해 죽을 지경”이라고 했다. 4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주민들이 아무리 싫다고 반대를 해도, 강정마을과 구럼비를 그리고 우리를 제발 좀 그대로 놔두라고 하소연해도 육지 경찰까지 동원해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니 그 심정이 오죽할까.
영부인이 아름답다고 소개한 올레길…
이제는 해군기지 세운다고 부셔버려
제주도 남쪽 바다를 앞에 둔 강정마을 구럼비 언덕에는 올레길 7번 코스가 지난다. 그 코스의 일부가 바로 영부인 김윤옥 여사가 2009년 한·아세안 정상회담으로 방문해 걸었던 코스다. ‘2010~2012 한국방문의 해’ 개막식에 참석한 영부인 김윤옥 여사는 “한국으로 유학 온 학생들과 걸어본 제주도 올레길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고 답했었다. 김봉규 씨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몇 년 전에 제주도에서 한국과 아시안 정상들의 회담이 있었어요. 그 때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이 한국으로 유학 온 학생들에게 이 코스가 그렇게 아름답다고 소개해놓고, 이제 와서 그걸 다 부셔버리고 해군기지를 세운다고 하니 이게 이치에 맞는 행동입니까?”
“구럼비에서 중문관광단지에 있는 평화박물관과 평화공원까지 거리가 4km밖에 안 돼요.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중문에서 바다 저쪽 해군기지가 보이게 되는 거예요. 평화의 상징과 해군기지가 그렇게 서로 마주보게 된다는 것은 모순이죠. 해군이 없는 위협도 만들어내고 말도 안 되는 이유도 늘어놓으면서 명분도 없는 해군기지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는 거죠.”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말과 행동 외에도 김봉규 씨를 답답하게 하는 것은 많았다.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 일대는 유네스코생물권 보전지역, 천연보호지역, 생태계보존지역, 해야보호구역 등의 타이틀을 가진 절대보전지역이었다. 하지만 해군기지를 건설하겠다는 정부와 해군의 힘은 그 모두를 뒤엎을 수 있을 만큼 컸다. 법으로 지정한 것을 법으로 부정해버린 것이다.
“절대보존지역을 지켜야 한다고 법원에 소송을 걸었는데, 이 나라 법이 우리 강정마을 주민에게 원고 자격이 없답니다. 아니 우리 주민이 원고 자격이 없으면 도대체 누가 자격이 있다는 말입니까? 멸종위기 동식물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 터를 잡고 살아온 우리가 안 지키면 누가 지키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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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마을 주민들은 절대보존지역을 지켜야 한다고 법원에 소송을 걸었지만, 법원은 그들에게 원고 자격이 없다고 했다. |
스스로 자신의 양심을 도려내야 하는 상황,
4.3 아물지 않은 상처를 또 다시 후벼파다
4.3의 상처를 고스라니 품고 살아온 제주 땅에 또 다시 육지 경찰의 투입되자 김봉규 씨도 아물지 않은 상처가 또 다시 덧난 듯 했다. 주민을 폭도와 빨갱이, 종북좌파세력으로 몰아붙이고, 육지 경찰병력을 동원해 주민들을 그들의 땅에서 폭력적으로 몰아낸 것에서 4.3과 강정마을이 닮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물지 않은 상처를 더 깊게 후벼 판 것이 있었다. 4.3을 겪지는 않았지만 그 이후를 지켜본 김봉규 씨에게 4.3은 “우리 주민들에게 살려면 대신 죽어야 하는 다른 누군가를 지목하게 하는 가장 비인간적인 만행이었다”고 했다.
“서로가 서로를 지목하게 하는 가장 비인간적인 폭력으로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수많은 선량한 주민들이 폭도와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죽어나갔습니다. 부모님이나 형제, 친구들을 잃은 고통도 말할 수 없이 크겠지만, 마음속에 남아 지워지지 않는 그 비인간적인 기억은 치유가 안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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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회에서 시위에 나선 아버지와 막으러 나선 경찰 아들이 마주서고, 찬성하는 주민과 반대하는 주민이 충돌하고 있는 강정마을. |
제주에서 나고 제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소설가 현기영 씨 역시 그의 소설을 통해 “죽창을 들고 토벌대 뒤를 따라다녀야 했던 그들은 동족을 적으로 삼아야 하는 자신의 기막힌 운명에 치를 떨었다”고 4.3을 기억했었다.
스스로 자신의 양심을 도려내야 하는 상황은 지금 강정마을에도 현재 진행형이다. 집회에서 시위에 나선 아버지와 막으러 나선 경찰 아들이 마주서고, 찬성하는 주민과 반대하는 주민이 충돌하고 있다.
“그 악몽에서 벗어나지도 못한 상태에서 정부와 해군은 또다시 같은 악몽을 겪게 만든 겁니다. 찬성 주민들 사이에 껴서 마을 주민들을 이간질하고… 그때나 지금이 다를 게 없어요. 이 상처가 언제 어떻게 아물겠습니까?”
“뭐 하나 시원하게 납득되게 없어요. 정말 답답해 죽을 지경입니다”
농사는 평생직장,
강제로 쫓겨난 노동자와 다르지 않다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회사에서 강제로 쫓겨나면 받아들이겠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농민에게 농사는 그리고 그 땅은 평생직장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막무가내로 빼앗고 내쫓으니 이 울분을 어디서 풀어야 할 지 모르겠어요.”
김봉규 씨는 농사가 1년 내내 수확할 때까지 쉬지 않고 꾸준히 일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했다. 그런데 벌써 4년째 그 일이 쉽지가 않다. 땅과 바다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하고, 그 울분을 삼키며 결고 쉽게 여길 수 없는 그들의 생업도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싸우는 곳에 사람들이 오래있으면 순한 사람도 공격적으로 변해요. 우리가 4년을 넘게 이렇게 힘들게 싸워오니까 마을 주민들도 점점 감정이 격해지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농사일에 매진해야 할 사람들이 이 해군기지 때문에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농사도 예전 같지 않죠.”
딱히 기분 좋을 일 없는 인터뷰 끝에 지난 공권력 투입 뒤로 이제는 더 이상 구럼비 언덕과 바위, 바다를 볼 수 없을 수도 있지 않냐는 질문에 그의 대답은 의외로 담담했다.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하기 때문이다.
“저는 구럼비를 다시 못 볼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곳엔 해군기지가 들어설 수 없어요. 당장은 펜스로 장벽이 세워졌지만 구럼비는 아직도 열려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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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된 하루 일을 마친 주민들은 매일밤 촛불문화제를 함께 하고 있다. |
“경찰이 구럼비에서 우리 주민들을 폭력적으로 끌어내고 펜스를 설치할 때도 그렇고 항상 외지 활동가들을 뒤로하고 우리 주민들이 맨 앞에서 싸웠습니다. 그건 마을회장님과 우리 주민 모두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싸움이 4년이 넘도록 계속될 수 있었고, 또 결국 이길 수밖에 없는 겁니다.”
김봉규 씨는 민주적인 절차와 주민들의 의견을 다 무시하고 사업을 밀어붙이니 탈이 안 날 수가 없다고 했다. 국책사업은 충분한 논의와 설명, 그리고 과정을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해야 원만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어려워 보이는 명제가 아닌데, 이조차 알아듣지 못하는 또는 듣지 않으려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고집이 강정마을을 구럼비를 그리고 바다와 이를 의지해 살아가는 생명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