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만큼 힘든 상황이지만, 주민과 활동가들은 여전히 구럼비 해안을 그리워하며 해군기지 반대 투쟁에 나서고 있다. 또한 이들의 싸움에 정치권과 시민사회 역시 동참하고 나서는 모양새다. 4년 반이라는 시간동안 백기를 들지 않았던 이들이 만들어낸 성과다.
지난 2일, 공권력 투입과 함께 중덕 삼거리 망루에 올랐던 고권일 강정마을해군기지반대대책위원장 역시 지금까지 끈질기게 싸워왔다. 우여 곡절이 많고, 긴 시간을 벼텨내야 했던 투쟁이지만 여전히 그에게는 이 싸움이 희망적이다. 비록 지금 구럼비 해안이 펜스로 둘러쳐졌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넘쳐나는 날, 다시 구럼비 바위를 밟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다. 다시 한 번 사람들의 힘을 장전중인 고 위원장을 만나 현재의 상황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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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권일 대책위원장 |
지난 9월 2일 새벽, 공권력 투입 당시 망루농성에 돌입했다. 망루에 올라 투쟁을 하며 어떤 생각이 들었으며, 망루 농성을 해제하기 까지는 어떤 과정이 있었나.
망루에 있을 때 가장 절실했던 것은 화장실이었다. (웃음) 화장실이 가고 싶어 하루 종일 힘들었다. 다행히 문정현 신부님께서 할 이야기가 있다고 잠깐 내려오라고 하셨는데 그때 무척이나 반가웠다.
사실 거기서 계속 망루를 사수하는 쪽으로 갈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 결정은 쉽지 않았다. 당시 강동균 마을회장도 연행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마저 고립되면 마을 사람들과의 의사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또한 그때는 나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됐다는 소문도 있었고, 긴급 체포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경찰 역시 직접 ‘내려오지 않으면 체포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자유로운 회의도 할 수 없었고 현장에서 투쟁할 수도 없었다. 때문에 여기서 계속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해 나왔다. 교도소도 가본 사람이 안다고, 나야 구금됐던 시간이 25일 밖에 안됐기 때문에 형을 받는 기분은 잘 모르지만, 각오는 돼 있다. 국정기간 동안 최대한 정치, 여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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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2일, 경찰이 강제로 중덕 삼거리에 펜스를 치고 있다. 특히 중덕 삼거리는 문화재 발굴 지역이다. 해군과 경찰은 문화재 발굴 지역 조차 펜스 공사로 말뚝을 박고, 철조망을 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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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2일 새벽, 경찰병력이 투입해 중덕 삼거리에 마지막 펜스를 치고, 사람들을 강제 연행할 때 고권일 위원장은 중덕 삼거리 망루로 올라가 농성을 했다. |
지난 15일, 국회를 방문해 국회의원들과 면담을 진행했다. 면담에서 마을주민들은 △추가 공력 투입 중지 △즉각적인 공사 중단 △예산집행 중지, 사업 전면 재검토 △구속자 석방 등을 요구했다. 정치권의 반응이 어땠나
민주당 국방위 소속 의원 중 군 출신들이 있다보니, 군사시설에 대해서는 ‘묻지마 지지’의 입장인 사람도 있다. 특히 강정마을 해군기지가 노무현 정부 시절 결정된 것이어서 민주당으로서도 정치적 부담이 큰 상황이다. 그래서 “제주해군기지 문제는 1993년 김영삼 시절부터 추진된 것이기 때문에 원죄는 한나라당에 있다. 또한 국민참여당과 민주당에서 이 문제에 대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민주당이 나서달라”고 요구했다. 민주당 측에서도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정치권의 움직임이 해군기지 공사 중단에 얼마나 성과를 낼 것이라 기대하나
사실 정권이 바뀌면 민주당이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우리는 반신반의한다. 현재 야당이 말하는 논리가 정권이 바뀐 다음에도 유효한지에 대해서는 우리 입장에서 어디까지 믿어야 될지 모르겠다. 특히 안보문제는 정권이 바뀌면서 그 정권의 입맛대로 변화한다. 그 와중에 국방부는 무기개발, 무기도입, 기지건설 등의 강경한 입장을 끝까지 고수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기대할 수 없는 이유다.
때문에 무엇보다 안보에 대한 국민들의 합의가 필요하다. 국민 대토론회가 일어날 정도로 해군기지 문제가 더 뜨겁게 확산되고, 나아가 국제적 문제로 승화시켜서 풀어내야 한다. 국민적 합의를 통해 국방, 외교 정책이 정립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여론화 작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언론에서 사안 하나하나를 보려는 것을 버리고, 문제의 근본 핵심이 무엇인지 끝까지 추적하는 집중 분석을 해 줬으면 한다.
야당에서는 민군복합형 기지가 아닌, 해군기지 건설로 강행되고 있기 때문에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결국 민군복합형 기지 건설을 위한 공사중단과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것인데, 이에 대한 입장은 어떤가
기항지는 보급만을 위한 항구다. 막대한 부지를 쓸 필요가 없다. 만약 크루즈 하나만 들어오는 접안시설을 설치한다고 하면, 지금 규모의 1/3정도다. 제주 외항보다 조금 크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기지가 아닌 기항지라 하더라도 강정에 들어올 이유가 없다. 기존 항으로도 충분한 상황이다. 특히 만약 기항지라면 해군이 나서서 짓지 않았을거다. 관광미항 추진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공사 강행 뿐 아니라 행정대집행까지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대응 방법이 있나
시민사회단체와 주민들만 싸우고 있다면 어려움이 있겠지만, 현재 종교계와 정치권까지 결합돼 정부도 힘으로만 무작정 밀어붙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본다. 또한 아무리 한나라당이 멋대로 하고 싶어도, 소수야당이지만 이들을 손쉽게 밀어붙이지는 못할 것이다. 행정대집행을 연기하는 이유 역시 쉽게 야당을 건드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행정대집행이 실시되고 사이렌이 울리면 주민, 활동가 등이 비상체제로 돌입해 같이 막자는 것은 합의된 사안이다. 그 상황이 아니라면 최대한 여론전을 펴서 정치권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생각중이다. 평화버스와 평화비행기에 대한 지속적인 작업으로 중요한 여론을 만들어 낼 때라고 본다.
현재 공사가 강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막기 위해서는 주민과 활동가 등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가장 중요하다. 물론 경찰의 불법적 연행과 구속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위축될 수 있고 행동을 결심하는데 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 예상한다. 잔속에 물이 넘쳐 나듯, 사람들의 마음이 넘쳐나는 시점에 현장에서 사람들은 몸을 던질 것이다. 지난 21일, 세 명의 주민과 활동가들이 구럼비 바위에 들어갔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제 그런 사람들의 힘이 모이면 작은 동기로도 우리가 현장을 제압할 수 있다.
해군기지 건설에 따른 대천동 발전 계획도 논란이 되는 것으로 안다. 주민을 비롯한 고 위원장은 입장은 어떤가
발전계획, 웃긴 얘기다. 특별법을 통해 따로 법률이 제정돼 특별한 재정이 별도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다. 적극지원한다는데 예산은 원래 제주도 예산에서 장소만 변경해 오는 것이다. 진짜 발전계획이냐, 하면 결국은 생색만 그렇게 내다 원래 쓰일 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특히 정부의 발전계획은 어떤 것이든 개발 위주다. 농민들의 삶을 파탄내려 한다. 우근민 제주도지사는 ‘제주도에 농업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 15% 이내로 줄여야 한다’고 했다. 농민 생존권과 식량주권을 포기하면서 군사주권은 내준다고 한다. 아무리 발전계획이 잘 짜여지고 좋게 만들어진다 해도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어차피 군사도시가 된다.
7500명이 상주하게 되는 해군기지라는데, 그러기에는 지금의 사업부지가 너무 작다. 우리는 분명 해군이 시설들을 넓혀나가고, 강정마을 주민들의 삶의 터는 줄어들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해군기지가 들어오면 발전계획이든 뭐든 뭐 하나 의미가 없어진다. 군사기지가 들어오는 이상, 보호구역 설정, 교통통제, 고도 제한, 창문 방향 제한, 개발 제한이 따를 것이고 집을 마음대로 허물지도 못할 텐데 어떤 의미가 있겠나.
강정마을 해군기지 싸움이 벌써 4년 반이다. 반대 투쟁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인가
작년 9월부터 11월까지 사람들이 아예 모이지 않았던 시기였다. 활동가는 전혀 없었고, 주민들의 참여도 적었다. 그 3개월간 1인 시위를 했는데, 그때는 정말 이렇게 끝나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한 달 동안은 오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후 종환이 형님이 날마다 막걸리를 사들고 왔고, 경보도 결합했다. 막걸리팀이 만들어진 셈이다. 어르신들은 지나가다가 힘들지 않느냐고 막걸리를 사다주고, 술값도 내 주시고 했다. 그 과정을 겪으며 조금씩 힘을 얻었다.
동력이 없는 상황에서, 남은 방법은 강정마을에 활동가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라 생각했다. 최성희 씨가 강정마을 사태를 밤새 번역해 외국에 알리고, 나와 함께 3개월간 일인시위를 하기도 했다. 시민사회단체에도 연대를 요청했다. 다행히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 작년 말부터 강정마을 문제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당시 마을 주민들은 외부세력을 끌어들인다고 이상한 사람 취급을 했었다.
올해 초 1월, 개척자들이 방문했고 2월에는 생명평화결사대가 강정에 왔다. 우리 측에서 100일 순례를 강정에서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나서 3월 1일, 생명평화결사대가 우리 마을에서 100일 순례를 진행했다. 개척자도 3월에 다시 들어왔다. 평통사는 4월부터 상주를 시작하고, 끝까지 같이 가겠다고 말했다. 전국 단체 결집에 있어 자잘한 실무 전담팀이 필요해 평통사가 총대를 멨다.
4월에는 문정현 신부님께 연락을 드렸다. 문 신부님께서 자신은 지는 싸움밖에 해 본적이 없다고 극구 사양했다. 전화를 끊고 난 다음, 많이 우셨다고 하더라. 자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데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쉬어도 되겠느냐며 고민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 문 신부님께서 7월에 내려오셨다. 그때 정말 감동스러웠고,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한 순간 순간이 다 고비였고,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시절들을 건너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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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1일. 평화비행기, 평화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이 강정마을 해군사업기자단 맞은 편 운동장에 모여 대규모 평화행사를 했다. |
10월 1일, 2차 평화비행기가 뜬다. 제주도민들과 전국의 국민들에게 평화비행기 참여를 요청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강정을 지키는 것이 평화를 지키는 길이다. 2007년 12월, 강정마을을 생명평화 마을로 선포했고, 생명 평화를 살리는 운동을 하고 있다. 누군가가 평화를 ‘모두가 한 자리에 앉아 밥을 나눠 먹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사회가 평화로운 사회가 도기 위해 헐벗고 핍박받은 자들이 ‘한 자리’로 올라오는 것이다. 우리는 평화를 위해 싸우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강정 문제는 강정 해군기지 문제만으로 다뤄지는 싸움이 아니다. 약자던 강자던 모두가 한 자리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하기 위한 운동이고, 이것이 바로 강정을 지키는 것이다. 국민들께 평화비행기, 버스의 동참을 호소한다. ‘강정을 제발 살려줍서’(미디어충청, 참세상 합동취재팀)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