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천 앞근천에는 은어떼가 놀고 있고, 구럼비에는 붉은발말똥게가 놀고 있다. 이바당 저바당 세별바당 동물까바당 톤돈지바당도 우리 바당 이바당 저바당 두러물 바당도 우리바당 안강정 이바당 저바당 구럼비바당도 우리바당 냇가바당도 우리바당 물러가라 물러가라 해군들은 물러가라. 우리 강정은 우리 손으로 지켜내자 자자손손 후손에게 물려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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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 코사마트 사거리에서 중덕 삼거리, 그리고 구럼비 해안까지 긴 행렬이 이어진다. 행렬의 맨 앞에는 행진을 이끄는 풍물패가 신명나는 소리를 내고, ‘비나이다 비나이다’로 시작하는 노랫가락이 울려퍼진다. 구럼비 해안이 해군의 펜스에 가로막히기 전, 일강정 민속보존회 회원들은 마을 곳곳에서, 구럼비 해안에서 ‘해군기지 반대’를 위한 노래를 불렀다.
1993년 9월, 강정마을 부녀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민속보존회’가 창립됐다. 27명의 창립 회원들은 민속보존회가 ‘소모임’의 역할을 뛰어넘어, 강정마을 사람들의 옛 문화를 후손에까지 물려주는 역할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이후 약 20년간 활동 속에서 회원들은 끈끈하게, 그리고 신명나게 풍물을 다루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건설 사업이 추진되기 시작하면서 민속보존회는 휘청대기 시작했다. 갈등이 증폭대는 마을에서, 그들은 예전처럼 신나게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민속보존회 내부에서도 해군기지 찬반 양론이 대립했다. 강정의 옛것을 지키기도 전에, 마을 자체를 지키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일강정 민속보존회’, 신명났던 세월
20년간 민속보존회를 이끌어온 이영자(62) 민속보존회장은 오늘도 해군기지가 들어오기 전의 마을을 회상한다. 그 때는 ‘일강정 민속보존회’라고 하면, 제주도에서 알아주던 시절이었다. 풍물로, 노래로, 춤으로 서귀포시를 비롯해 제주도를 휩쓸고 다녔다. 민속보존회 회원들 모두가 함께 느꼈던 ‘신명나는’ 세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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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속보존회 이영자 회장 |
“처음에는 부녀회에서 농촌 마을에서 취미생활을 할 수 없을까, 생각했어. 서귀포시 같은 경우만 해도, 여자들이 낮에 취미생활을 할 수 있지만 여기는 농사짓는 곳이잖아. 밤에 모여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지. 고민하다가 93년에 민속보존회를 만들고 풍물을 배우기 시작했어. 근데 취미생활이라고 하기에는 회원들이 정말 열심이었어. 나나 회원들이나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이 좋은 것을, 강정마을에서 사람들이 즐겨왔던 문화를 우리 아이들에게도 남겨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
생긴 지 첫 회에 서귀포시 대표로 한라문화제에 나갔는데, 최우수상을 탔어. 서툴렀지만 이만한 팀웍이 없었거든. 그때부터 더 열심히 했어. 정말 제주시 남군, 북군 합쳐도 이만한 팀이 없었다니까. 고사리꺾기 대회도 나가고, 예술제도 나가고,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도 공연을 했어. 체육대회나 행사가 있어서 공연해달라고 하면 무조건 하고. 공연 하면 점심값으로 20~30만원을 주거든. 그것을 기금으로 해서 강사 초빙해서 또 배우고. 정말 탄탄하게 활동했지.”
민속보존회는 마을 내부에서도 신바람을 전하고 다녔다. 특히 노인회를 중심으로 한 강정마을 노인들에게 민속보존회는 보물이었다. 마을 행사를 진행하며 마을 주민들 간의 정을 나누는 역할도 했다. 아무리 사회가 각박해지고, 과거를 잃어버리고 산다 해도, 강정마을은 그들의 공동체를 요새처럼 지키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어느샌가 민속보존회가 됐고, 이들은 강정마을 사람들을 연결하는 구심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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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2년에 한 번씩 마을에서 지신밟기를 했어. 지신밟기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정월 대보름날 궂은 액을 물리치는거야. 그때는 정말 대단했지. 아침에 시작하면 밤 11시~12시에 끝나는거야. 마을이 들썩들썩하고. 밤 어둡도록 짚신밟기를 하고 다녔던 것이 아직도 생각나. 그렇게 신나게 지신밟기를 했던 것이 2007년 이전, 해군기지가 들어선다고 하기 전까지였지.
그리고 우리가 공연을 하면 밥값을 받아 그걸 기금으로 적립한다고 했잖아. 기금으로 강사를 초청하기도 했는데, 그 외에도 마을 노인들 이불을 사다주거나 여행을 보내드리기도 했어. 5월 가정에 달이 오면 여행 보내드리고, 경로잔치도 하고. 부락 어른들 외로우니까 가서 위문 공연도 했지. 그럼 어른들이 얼마나 좋아하셨다고. 강정에서나 제주도에서나 ‘일강정 민속보존회’하면 다 알아줬다니까.”
해군기지 추진 후 사라져가는 마을 문화, 떠나는 사람들
27명으로 시작된 민속보존회는 70여 명까지 회원 수가 확대됐다. 회원들은 이 모임을 일회성으로 끝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후배들에게 강정마을의 옛 문화를 전승하자는 취지로 조직을 더욱 체계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규약과 회칙이 정해졌으며, 의례회관 옆 빈 공간을 개조하고 공사해 ‘민속보존회관’으로 만들었다. 풍물을 비롯해 민요, 걸궁, 장고춤, 꼭두각시 춤 등을 섭렵했고, 공연 CD와 DVD, 사진, 자료 등은 차곡차곡 자료로 쌓여갔다.
하지만 20년간 끈끈히 묶여 사람들과 소통해왔던 마을 공동체도, 갑자기 마을로 들이닥친 ‘해군기지 건설’라는 국책 사업 앞에서 조금씩 균열이 갔다. 마을의 분열이 곧 민속보존회 회원들의 분열로 이어졌다. 누구나 다른 관점을 가지고 사회를 살아가고, 타인을 이해하며 구성되는 것이 바로 공동체지만, 폭력적으로 다가오는 ‘국책사업’은 이해와 소통을 단절시켰다. 서로에 대한 단절, 어색함이 지난 뒤에는 감정적인 앙금만 남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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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어색하니까 하나 둘씩 떠나게 됐지. 반대하는 주민들이 더 많으니까 찬성 쪽이 떠나게 됐어. 근데 떠나는 것을 잡거나 할 수 없지. 얘기도 안하게 되니까. 요새는 모이는 것이 없어. 그냥 모든 것이 마비된 상태야. 모임도 다 파산되고, 1년에 한번 총회도 겨우 열어. 정말 이렇지 않았는데...부득이한 제사나 물질 같은 일이 있을 때 아니면 회원들이 빠지는 법이 없었는데.
외부 공연도 끊겼어. 해군기지 건설이 제주도나 서귀포시나 다 책임이 있잖아. 도나 시에서 주최하는 공연을 많이 다녔는데, 어떻게 그 사람들 행사에 가서 신나게 공연을 하겠어. 해군기지 터지고 나서는, 아무리 섭외가 들어와도 공연을 안 해.
지신밟기를 하기는 해. 해군기지 일이 터지고 나서 3번을 했어. 근데 예전 같지가 않지. 오후 4~5시면 끝나버려. 신명나지도, 흥이 나지도 않지. 지난 20년의 세월이 정말 꿈같아. 그동안 우리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뒷선으로 물러나고 후배들한테 이걸 고스란히 인계해주고, 신입회원도 보강하고...그렇게 지키고 싶었는데. 이제 그렇게는 안되겠지.”
이영자 회장과 함께 민속보존회관을 방문했다. 넓찍한 방에는 민속보존회원들이 가꾸어왔던 손길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회관 장롱에는 꼭두각시 춤, 신랑신부 춤을 출 때 입었던 색색의 한복들이 들어차 있지만, 먼지와 뒤섞여 윤기가 나지 않는다. 회관 구석에 장구와 꽹과리 등의 풍물 악기가 수북히 쌓여있다. 손때가 더 이상 타지 않아서 그런지 눅눅한 악기의 색이 바래져있다. 이 회장은 “이걸 이렇게 놓으면 안되는데, 악기가 상하는데”하며 안타까운 손길을 거두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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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왜 구럼비 바위가 그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몰랐을까”
해군기지 사업은 한 마을의 문화까지도 단절시켰다. 옛 문화를 이어가고자 했던 사람들은 정작 자신의 마을을 빼앗길 위기에 놓였다. 마을 곳곳이 유산이고 문화이지만, 해군은 그 터전을 깨고 부수고 있다.
특히 구럼비 해안은 오래전부터 마을사람들을 지켜준 전설이었다. 사람들은 구럼바위에서 굿을 했고, 바위틈에서 흐르는 물로 기도를 드렸다. 그 터전을 빼앗긴 사람들은 당연히 그 곳을 되찾기 위해 나선다.
“가장 지키고 싶은 건 그냥 그대로의 마을이야. 민속보존회에서 하고 싶었던 것도, 후손들에게 우리가 살고 만들어온 그대로를 전해주는 것이고. 그래서 구럼비도 그대로 남겨주고 싶어. 구럼비는 정말 마을사람들 사이에서도 뭔가 ‘신기’가 있다고 해. 그 바위에서 기운이 나온다는 거지. 할망물은 그 바위틈에서 나오는 물이야. 예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그 물을 받아 기도를 드리거나 먹거나 했어.
할망물을 먹으면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람이 아이를 낳고, 아이가 아프면 할망물을 떠다 기도를 드리면 낫는다는 전설이 있어. 나도 첫째 아이가 아팠을 때 할망물을 떠다 기도를 드린 적이 있어. 구럼비 바위에서 굿도 많이 하지. 그 바위가 반들반들하고 평평해서 음식을 놓고 제사를 드리거나 굿을 하기 좋거든. 그게 다 사람들이 옛날부터 만들어온 문화잖아.
근데 구럼비 해안에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때는 거기가 그렇게 좋은지 몰랐어. 그냥, 육지에서 오는 올레꾼들이 들어가서 좋다고 하면, 거기가 훤하게 트여있으니까 육지사람들이 좋아하는구나 싶었거든. 근데 정작 들어가지를 못하니까 이제 거기가 그렇게 좋은 곳인 줄 알겠어. 막 티비나 뉴스에 구럼비가 나오잖아. 그럴 때 마다, 아 정말 너무 아름답다, 저기가 저렇게 좋은 곳이구나 하면서 그리워지는 거야. 구럼비 바위에 홍합이랑 말미잘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이랑 거기서 불던 바람도 생각나고.”
해군기지로부터 마을을, 문화를 지키고자 했던 시간이 벌써 4년 반이다. 그 시간동안 민속보존회의 모든 활동이 마비됐다. 하지만 이 회장을 비롯한 회원들은 공권력에 맞서 지금도 그들의 문화를 지켜나가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 만큼, 이 싸움 끝에 또 다시 그들의 문화를 다져나갈 수 있는 민속보존회의 부활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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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쁠 때나, 어려울 때나, 그래도 오랜 시간을 같이 활동했던 사람들이 갈라져 지낸다는 것이 가장 아쉬워. 해군기지가 더 이상 우리 마을에 들어온다는 얘기가 없어지고, 회원들이 다시 돌아와서 또 한데 뭉쳤으면 좋겠어. 지금은 비록 힘든 상황이지만, 그때는 꼭 우리 후손들에게는 강정에 이런 문화가 있었다, 너희들도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를 해 줄거야.
만약 우리 민속보존회가 다시 한데 뭉치게 되면 옛날 같은 패기로 제주도의 대표 자리를 되찾고 싶어. 그리고 우리가 해군기지 반대 활동을 하고 나서, 노인회와도 등지게 됐어. 이 문제가 해결돼 다시 마을 어른들을 존경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어. 그러면 경로잔치도 하고, 다시 여행도 보내드리고 그럴꺼야.
나이가 들어 더 이상 활동을 못하게 될 지라도 꼭 한번 해보고 싶은 게 있어. ‘해녀의 일생’과 ‘논 다루는 소리’ 걸궁을 다시 한 번 연출해 보는거야. 해녀의 일생은 해녀의 하루 일과를 극으로 표현하는 것인데, 해녀들이 물질하는 과정, 옷 갈아입는 과정, 당에 가서 안녕을 기원하는 장면 등으로 구성돼 있어. ‘논 다루는 소리’는 강정마을의 대표 민요야. 이 두 개로 다시 공연에 서고 싶고, 꼭 강정 소리문화재로 지정되고 싶어. 그럴 날이 올꺼라고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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